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66)
아카데미가 망했다 166화
마왕이 부활했다!
그런데 마왕은 조아민트가 아니던가?
최근에는 아카데미의 지하에서 아몬과 브레슬이 군침을 흘릴 음식들을 개발하고 있었고, 지금은 민트를 듬뿍 넣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조아민트가 언제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단 말인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조아민트만 주시하고 있는 아카데미 일행들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저스티시엘이 얼른 덧붙였다.
“설명이 더 필요하겠군. 이곳에 있는 조아민트는 분명 마왕이다. 한데 내가 질문하지. 인간에게는 왕이 단 하나뿐인가?”
“예?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다.”
대륙에는 수많은 왕국이 존재하고, 그만큼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 존재한다.
그리고 저스티시엘은 마왕 역시 하나가 아닌 여럿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魔)의 정점에 도달한 존재.
그렇기에 마왕(魔王)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힘을 지닌 마족.
아몬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데, 그렇게 되면 이곳에 있는 조아민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아민트 역시 마왕이지 않습니까?”
그 의문에 대답한 것은 카이었다.
“아무래도 정통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겠죠.”
“……정통성?”
“예. 조아민트 역시 마왕입니다. 그러나 조아민트는 신의 직위를 잃고 지상에 떨어진 ‘타락한 신성’이지요. 그리고 저스티시엘 님이 말씀하시는 어투로 짐작건대, 이번에 부활했다는 마왕은…….”
저스티시엘이 흐려진 카이의 뒷말을 받았다.
“그렇다. 진짜배기 마족 태생의 마왕이다. 그것도 조아민트 전전대의, 수만 년 전의 마왕이다. 그쪽 말대로 정통성이라는 걸 따지자면 조아민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물이지.”
과거의 마족들은 타락한 신성의 마(魔)를 대신할 대상이 없었기에 조아민트를 따랐다.
진심으로 따랐건, 거짓으로 따랐는지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족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따르던 조아민트를 대체할, 출신 자체가 달랐던 타락한 신성이 아닌 마족 출신의 전전대 마왕이 부활했다면, 따를 대상이 어느 쪽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짐승이라면 당연히 짐승을 따르겠지.”
“으음…….”
일행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여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몬의 아버지 카임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저, 그, 저스티시엘 님?”
“응? 뭔가?”
“그, 그…… 마왕이 부활하는 장소가 어디라고요? 허허, 참나무 평원이라고 하셨던가요?”
“무슨 소리를 하는가? 여기 아르마 산맥 바로 건너, 침묵의 정원이라니까.”
“……억!”
카임은 그대로 뒷목을 붙잡고 고꾸라졌다.
국토, 국경선 방위가 임무인 변경백에 봉해진 지 뭐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따위 사달이 일어난단 말인가!
그것도 어느 만만한 왕국도 아니고 마족과의 전쟁이라니!
쓰러진 카임은 드레이크 가문의 깃발을 냅다 분질러 버리는 마족의 환각을 보며 와들와들 경련했다.
“……휴우.”
쓰러진 아버지를 부축하는 아몬의 표정은 카임 못지않게 착잡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부활하는 걸 막을 수는 있습니까?”
막을 수만 있다면 제국은 물론이고 전 대륙에 이 사실을 널리 퍼뜨려 버릴 것이다.
그럼 뭐 마왕 타도부대 두세 개쯤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싶다.
“막을 수야 있지.”
“오!”
아몬이 희망의 끈을 붙잡고 기어 올라가려는 찰나 저스티시엘이 그것을 싹둑 잘라 버렸다.
“하지만 마왕의 부활을 이뤄주는 마방진은 나와 카셀라그 어르신이 힘을 합치더라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다. 부활의 마방진은 내부, 부활하는 마왕을 보호하는 거대한 껍질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군.”
“……그럼 인간들은 손도 못 쓰겠군요?”
“그렇겠지. 그러니 마왕은 부활을 저지하는 게 아니라 ‘부활한 마왕을 저지’하는 게 보통이다. 예로부터 그래 왔어.”
카셀라그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또한 드래곤은 맹약상 인간을 도울 수 없다. 최소한의 배려로 경고까지만 허용될 뿐이지.”
“……예? 그럼 마왕이 분탕질을 치는 걸 보고만 계시겠다는 겁니까!”
아몬이 섭섭하다는 듯 외치자 카셀라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아몬 이놈아! 머리 좀 굵어졌다고 어른한테 말하는 본새가 그게 뭐냐!”
드래곤이 아니라 알고 지내던 어르신 입장으로 꾸짖자 아몬이 한풀 꺾인 기세로 말했다.
“그럼 카셀라그 어르신, 마왕이 지상계를 유린하는 것을 좌시하고 계실 생각이신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만 예쁘게 한다고 되는 게…… 어휴, 됐다. 하여간 나는 분명히 인간을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게 그거…….”
“아이고! 이놈아! 지상계에 네놈 인간들만 빌어먹고 사는 줄 아느냐!”
“아…….”
당장 옆에만 해도 엘프인 아나르엘이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 있었다.
다크엘프인 브레슬도 있고,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아르마 산맥을 하하호호 뛰놀고 있는 몬스터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드래곤은 지상계의 수호자다. 당연히 다른 계(界)의 존재인 마족이 분탕질을 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드래곤이 힘을 합쳐 마왕을 비롯한 마족에게 전력으로 대적했다가는, 드래곤의 힘에 휩쓸려 지상계가 먼저 멸망하고 말 것이다. 마족에 의해 멸망하는 게 아니라.”
“에이, 그 정도는…….”
“드래곤이 X으로 보이더냐?”
“어르신,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우신…….”
카셀라그가 자신의 머리를 쾅 쥐어박자 아몬은 깨달았다.
‘드래곤은 X으로 볼 게 아니구나!’
두개골이 쪼개지는 것 같은 격통 때문에 연신 머리를 더듬어 뇌수가 흐르진 않는지 확인하는 아몬의 귓가로 카셀라그의 말이 날아들었다.
“그런 고로, 드래곤은 지상계의 멸절이 확실시되었을 때 비로소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마족과의 전투는 다른 존재의 안위를 걱정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싸움이 아니니 말이다.”
“끄응…….”
“그럼에도 싸움이 끝나면 한 줌의 생명은 살아남겠지. 그 자손들은 번성하여 다시금 대륙을 생기로 채울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계(界)의 침공은 수없이 있어 왔고, 그렇게 대륙은 몇 번이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것이다.”
카셀라그가 엄한 얼굴로 일행들을 둘러봤다.
“너희 제국도 ‘대륙의 역사’에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
다소 냉정한 카셀라그의 말에 아몬이 침음을 흘리는 와중이었다.
-재밌군.
“……응?”
-나를 따르지 않는다라.
조아민트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입술을 날름 핥았다.
그것이 입가에 묻은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핥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다소 음산해 보였겠지만, 어쨌든 입술을 핥은 조아민트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진심으로 섬기던 군단장의 수만 여섯이요, 충성스러운 휘하 마족만 해도 수만에 이르렀지. 그들 모두가 나를 배신했을 리가 없다.
“……!”
-전전대 마왕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내 자리를 찬탈하려는 자가 나타났다고?
스르르 몸을 일으킨 조아민트의 전신에서 시커먼 마기가 거꾸로 솟는 폭포처럼 뿜어졌다.
그 맹렬한 위압감에 아카데미의 일행들 모두가 사색이 된 채 경련했고, 카셀라그와 저스티시엘조차 그녀의 막대한 기세에 질린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경악에 사로잡힌 그들을 보며 서늘하게 미소 지은 조아민트가 말했다.
-그자는 이몸의 적이로다.
선언하듯 읊조리며 맹렬한 살기를 뿜어내는 조아민트의 모습에 아카데미의 모두가 질식감에 목을 움켜쥐고, 두 드래곤조차 안색을 창백히 물들이는 와중이었다.
“야, 앉아라.”
-응악!
아몬이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자 조아민트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바람에 살기가 싹 날아가자 모두들 편안-한 기색으로 돌아왔다.
-크, 크으윽! 이, 이 망할 인간이 또 이 몸을 때리다니…….
“혹시…… 꼬우신가요? 꼬우시면 아카데미 지하실에서 방 빼시죠.”
-하! 우습지도 않구나!
벌떡 일어난 조아민트가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마족의 군세가 지상계에 현신한 이상 더는 이 몸이 그까짓 퀴퀴한 지하의 골방에 머물 필요가 없느니라! 아니, 당장에라도 내 충성스러운 마족의 군세에게 네놈을 찢어 죽이라 명할 것이니라!
조아민트의 기세등등한 외침에 아몬이 주먹을 들며 말했다.
“지금은 마족의 군세보다 내 주먹이 더 가깝다?”
-……딸꾹!
“마족의 군세가 오면 허겁지겁 달려가든가 굴러가든가 알아서 하고, 지금은 조용히 좀 하고 있어라.”
-으으으…… 나는 대체 얼마나 더 보잘것없는 지하실에 머물러야 한단 말이냐…….
울상을 짓는 조아민트의 모습에 브레슬도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지내는데 모자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꾸며 놨는데……!’
벽지도 새로 붙이고, 이것저것 예쁜 가구도 들이고 나름 살 만하도록 준비해 놨는데 보잘것없는 지하실이라는 소리나 듣다니!
브레슬의 뺨을 타고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와중이었다.
“……잠깐, 아몬.”
“응? 왜 그러십니까, 카셀라그 어르신?”
카셀라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했다는 듯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었다.
“너, 너 방금 뭘 한 것이냐?”
“예? 제가요? 뭘요?”
“방금 그거!”
“제가 뭘 했죠?”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셀라그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꽥 질렀다.
“방금 마왕을 때렸잖느냐!”
“……엥?”
아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왜요?”
“마왕을 어떻게 때렸냐고 묻는 것이다!”
아몬이 더더욱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때렸는데요?”
“……억! 뒷골!”
늙은 드래곤이 뒷목을 붙잡고 끙끙거리자 상대적으로 젊은 드래곤인 저스티시엘이 황급히 나섰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일세.”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건지를 모르겠습니다만…….”
아몬은 조아민트와 처음 조우했을 때 그녀에게서 ‘언니, 나 좀 살려 줘’라는 울부짖음이 나올 때까지 두들겨 팬 전력이 있었다.
거기서 한술 더 떠 조아민트를 살려 주러 달려온 언니,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도 같이 두들겨 팬 업적까지 있었다.
그러니만큼 말이 안 된다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할 수밖에 없었다.
“음, 설명하지. 마왕이나 신 같은 초월적인 존재에게는 ‘마나 방벽’이라는 것이 존재하네.”
“으음.”
“세상을 이루는 물질인 마나 그 자체를 지배할 정도로 격이 높은 존재가 마왕과 신이니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그 마나 방벽은 우리 드래곤조차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방패일세.”
“허어.”
그런데 자신이 그것을 뚫고 조아민트를 두들겨 팼다는 뜻이다.
주먹을 가볍게 쥐락펴락하며 감촉을 느끼던 아몬이 인상을 찡그렸다.
“근데 딱히 뭘 뚫고 말고 하는 느낌도 없었는데요?”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저스티시엘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조아민트를 바라봤다.
‘사실 기세만 그럴듯하고 마왕이 아닌 건가?’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조아민트를 향해 8서클 마법, 헬파이어를 순간적으로 전개한 저스티시엘은 바위조차 태워 버리는 극강의 화염 마법이 마나 방벽에 의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역시 마왕 맞잖아!’
그리고 느닷없는 공격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조아민트가 스르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호오, 살찐 도마뱀 따위가 겁도 없이 이 몸을 공격…….
“부우웅~ 아몬의 주먹이 날아간다~!”
-아, 하지 말라고. 때리지 말라고.
조아민트가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저스티시엘이 카셀라그를 바라봤다.
“어, 어르신, 저게 대체……?”
카셀라그도 멍한 얼굴로 말했다.
“몰라…… 뭐야, 저거…… 무서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