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68)
아카데미가 망했다 168화
그들은 험하디험한 아르마 산맥을 헤치고 지나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굼벵이 기어가는 속도로 느릿하게 나아가는 중이었다.
미행하고 있는 대상인 조아민트가 천천히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도 딱히 천천히 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악! 나무뿌리가…….
그녀가 나무뿌리에 걸려 흙바닥을 뒹굴었다.
-아이코! 발가락이 돌에……!
콩콩 뛰며 아파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쟤 왜 저럽니까? 마나 방벽이라는 게 있다면서요? 왜 돌부리에 발가락을 찧고 울고 있는 걸까요?”
아몬의 의문에 라인벨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아민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흠, 지금은 마나 방벽을 두르고 있지 않은 모양이구나.”
“예? 그거 자동으로 둘러지는 뭐 그런 것 아니었어요?”
“자동이라도 의식하면 없앨 수 있나 보지.”
“……왜 없애고 있는 거죠? 아니, 그 전에 날아가면 되는데 왜 저렇게 굼벵이 기어가는 것처럼 느긋하게 가고 있는 거냐고요.”
조아민트의 무지함으로 인한 답답함에 아몬이 투덜거리자 라인벨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한테 묻는다고 알겠느냐?”
“에잉.”
아몬은 한심하다는 듯 조아민트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무뿌리와 돌멩이에 이어, 애먼 바윗덩이에 부딪혀서 이마를 붙잡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아, 뿔 휜 것 같아…….
애처로울 정도인 그녀의 추태에 아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산길이 꽤 익숙해진 모양인지 그녀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그들은 아르마 산맥의 최고봉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라인벨트가 근처를 둘러보며 말했다.
“호오, 대단하구나. 산세가 험해도 이렇게 험할 수가 있다니.”
“……그러게요. 저도 사실 여기까지 와 보는 건 처음입니다.”
어찌나 험한지 이 근처에서는 몬스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명색이 마왕인 조아민트도 이름값은 하는지, 어중간한 몬스터보다 육체 능력이 뛰어났기에 산길이 익숙해지자 성큼성큼 정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슬슬 속도를 내죠.”
“그래.”
아몬과 라인벨트도 행여나 놓칠세라 조아민트의 뒤를 빠르게 따랐다.
잠시 후, 아몬은 처음으로 아르마 산맥의 최정상에 도달했다.
“이곳을 아몬봉으로 명명하리라…….”
주접을 떠는 아몬을 흘겨본 라인벨트가 돌멩이를 냅다 던지며 말했다.
“얼른 가기나 하자. 조아민트, 저것은 벌써 저 아래를 내려가고 있다.”
“……아르마 산맥의 최고봉을 정복한 감상을 곱씹을 틈도 없군요.”
나중에 시간을 내서 한 번 더 와야지, 그때는 도시락을 싸서 와야지라고 다짐한 아몬이 라인벨트와 함께 조아민트를 뒤쫓았다.
그리고 아르마 산맥의 최정상에서 내려오던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멀찍이 펼쳐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평탄한 거대한 평원.
아르마 산맥이 ‘대륙의 끝’이라면,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평원은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침묵의 정원이었다.
‘……대단하군.’
아몬은 사실 침묵의 정원을 눈으로 보는 것이 두 번째였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로 부임하기 이전, 침묵의 정원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흐르던 시절의 치기로 아르마 산맥을 넘어서 잠깐 구경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아르마 산맥의 최정상을 거치지 않았고 대충 낮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 우회했다.
‘그때는 그냥 넓다고만 생각했는데 높은 곳에서부터 보니 넓어도 보통 넓은 게 아니군.’
괜히 침묵의 정원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침묵의 정원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대륙의 경계를 넘어 펼쳐진 또 다른 세상이 바로 침묵의 정원이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침묵의 정원은 광대하며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군. 저것인가.’
예전에 잠깐 들러서 봤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광활하기 그지없는 평원의 한가운데, 시커먼 무언가가 뭉글뭉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포위하고 있는 시커먼 점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아니, 포위하고 있는 게 아니라 둘러싸고 지키고 있는 모양이군.’
마족이 분명했다.
이윽고 점점 그곳과 가까워질수록 아몬과 라인벨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아르마 산맥에 거주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침묵의 정원의 생태계에서 밀려나 아르마 산맥까지 도망친 패배자’들이었다.
즉 침묵의 정원에 있는 몬스터들은 생태계의 최정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 몬스터들이 깡그리 죽어 있다.’
드넓은 평원의 군데군데 깔려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
그리고 그 사체들은 계모가 버리고 가는 것에 대비해 쿠키를 뿌린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처럼, 몬스터들의 시체는 어느 방향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이 방향으로 가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흐…… 우리는 그 위험한 곳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네요?”
라인벨트가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드느냐?”
“……뭐, 여기까지 왔는데 어떡합니까? 죽는다고 호들갑 떠는 것보단 낫죠.”
“흥.”
라인벨트는 언제든지 검을 뽑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몬이 라인벨트를 제지했다.
“잠깐 멈춰요.”
“……!”
라인벨트도 이변을 깨닫고 검을 반쯤 뽑았다.
어느새 앞장서 걸어가고 있던 조아민트가 눈살을 찌푸린 채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음. 당장 조아민트를 조져야 하나?’
정말로 그녀가 마족의 군세를 지휘해 자신을 잡아 죽일지 걱정됐다.
아몬이 갈등하며 슬그머니 ‘아몬 특제 캡사이신 주먹’을 일발 장전하는 와중 조아민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여태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냐?
“……크흠. 이제야 들켰군.”
-들키고 자시고, 이 평원에 몸을 감출 곳이 당최 어디 있다는 말이냐?
그녀의 말대로 평원에는 딱히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나무나 풀숲에 숨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넓은 길목에서는 천하제일의 암살자도 미행 같은 건 못한다.
“……마족의 군세를 지휘해서 우리를 냅다 두들겨 팰 거냐?”
조아민트가 피식 웃었다.
-내 그것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니라.
“……그렇군.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무엇이냐?
“왜 날아가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거냐? 게다가 아까 나무뿌리에 걸려서 데굴데굴 구르고, 돌부리에 발가락 찧어서 한 발로 뛰어다니고, 바위에 머리 박아서 뿔 휘어진 것도 펴고 그러던데.”
-……다 본 것이냐.
“어.”
-내 필시 나의 군세를 동원해 네놈들의 눈을 뽑아 버리라.
재차 다짐하며 으르렁거리던 그녀가 한숨을 쉬더니 툭 내뱉었다.
-아무튼 괜히 마나 방벽을 해제하고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니다. 아까 저스티시엘이라는 금색 살찐 도마뱀 자식이 말하지 않았더냐?
“……아, 그렇겠군.”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조아민트를 따르는 마족이 없을지도 모른다.
타락한 신성인 그녀는 진짜배기 정통 마족 마왕에게 영향력 면에서 밀리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새로운 마왕이 탄생한 이상, 현존하는 마왕은 조아민트를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당대의 마왕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조아민트를 가만히 방치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싸울지도 모르니만큼 최대한 힘을 온존하고 있었던 거였군.”
-아무리 대단한 나라도 그 많은 마족 놈들을 상대하려면 최대한 대비를 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군.”
납득한 아몬이 털레털레 조아민트의 뒤를 따라갔다.
‘……음, 근데 지금이라면 일단 조아민트의 멱은 간단히 딸 수 있지 않을까? 마나 방벽도 없으니 아다만티움 검을 쓰거나 라인벨트 어르신이 슥삭…….’
-지금은 마나 방벽을 두르고 있다.
‘음. 안 되겠군.’
자신의 주먹이 마나 방벽을 통과한다지만, 굳이 맨주먹으로 조아민트를 두들겨 패 죽이고 싶진 않았다.
물론 양심의 가책 때문은 아니었다.
‘새 제국의 새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사인 내가 주먹으로 누군가를 패 죽이는 건 교육자로서 좋지 않은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간단하게 ‘슥삭’ 하는 거라면 괜찮을 텐데.
그 불길한 낌새를 느낀 모양인지 앞장서 걸어가던 조아민트가 별안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멀찍이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어림짐작으로 수백에 달하는 마족의 무리였다.
‘음…… 저게 마족이로군.’
아몬은 생전 처음 보는 마족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언뜻 보기에는 조아민트의 외형과 유사했다.
검은색 눈, 머리에 달린 뿔.
물론 뿔이 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눈은 흰자위 검은자위의 구분이 없는 완전한 흑색이었다.
조아민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딱 봐도 ‘우리와 다른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외견을 하고 있었다.
‘와, 저건 다리가 네 개나 달렸네. 와, 저놈은 머리가 다섯 개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인 것으로 보이는 몬스터들의 사체에 걸터앉아 그 사체들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인간과 닮은 것들조차 이질적인 정적을 유지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조아민트가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가 되겠군.’
교육자로서의 도리를 잠시 미뤄 두고 조아민트를 패 죽여야 하느냐, 혹은 일시적인 동맹을 맺고 힘을 합쳐 새로 탄생한 마왕을 저지하느냐.
지금은 그 기로에 서 있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그들을 향해 다가간 조아민트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마족의 12대 마왕, 조아민트 휴미엘.
엄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그들을 때렸음에도 그들은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그저 몬스터들의 사체를 씹으며 조아민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 선언하느니, 그대들은 짐에게 맹세한 충성의 서약을 이행하라.
여전히 이질적인 정적이 마족들을 뒤덮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겠노라. 짐은 12대 마왕, 조아민트 휴미엘. 그대들은 짐에게 맹세한 충성의 서약을…….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돌연 조아민트의 눈앞에서 붉은색의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폭발은 조아민트가 전개한 마나 방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
조아민트는 이질적인 정적에 뒤덮인 그들을 노려봤다.
그들 중 하나가 몸을 일으킨 채 조아민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대는…… 나를 진심으로 섬기지 않았는가.
조아민트를 섬기던 여섯 군단장 중 하나.
피의 마족, 파와코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조아민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대는 나를 섬겼…….
퍼어어엉-!
피의 마족 파와코처럼, 몇 마리의 마족들이 조아민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 조아민트의 사방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 폭발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조아민트의 마나 방벽에 가로막혔고, 그녀에게는 아무런 충격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아민트는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움찔움찔 떨고 있었다.
고통스럽다는 듯이.
-그대들은…….
쾅-!
-나를 섬기지 않았던가…….
콰아앙-! 펑, 퍼펑-!
-한데 어찌…….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조아민트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꽈아아앙-!
지금까지의 폭발과는 전혀 다른 굉음이 귀를 때리자 조아민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은, 아예 달려들어 눈앞에서 공격하던 군단장 중 하나가 곤죽이 되어 움찔움찔 경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이게 무슨…….
그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리는 와중.
지독하게 무거운 아다만티움 검을 집어던져 ‘다진 고기 마족’으로 만들어 버린 아몬이 조아민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후. 이 말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어.”
-……!
아몬이 아다만티움 검을 회수하며 외쳤다.
“어쩔 수 없군! 이번만 임시동맹이다!”
그 외침에 움찔한 조아민트가 으르렁거렸다.
-흥! 네놈은 내 공격에 맞춰 움직여라!
“뭐? 네가 나한테 맞춰!”
그 광경에 라인벨트도 검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이거. 어쩌면 위험한 조합이 탄생한 것 같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