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
아카데미가 망했다 17화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급보를 전하는 전령이 아카데미로 달려가고 있다고?
이유야 뻔했다.
어제 벌어진 일을 감안하면 황제가 기어코 무슨 수작질을 부리려는 거겠지!
‘그런데 대체 무슨 수작을?’
황급히 아카데미로 돌아와 학교장실로 향하니, 아나르엘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아니, 학교장님!”
“흑…… 아, 아몬 선생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곧이어 이쪽을 돌아본 전령이 말했다.
“자네가 아몬 드레이크인가?”
“그렇습니다만…….”
“흥! 본인이 왔으니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하겠소.”
헛기침을 한 전령이 말을 이었다.
“크흠! 아모니스 제국의 정당한 권위를 지닌 황제, 아모니스 18세의 이름으로 말한다! 귀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재직 중인 교사, 드레이크 가문의 ‘아몬’이 본 황제에게 범한 무례를 물어, 본 교사의 파면을 권고한다! 이상!”
전령의 말이 끝나자 아나르엘이 한층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흐어어엉!”
아몬의 파면 권고!
황제 딴에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자, 날이 밝는 대로 아몬을 부르려 했으나 그가 야반도주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분노의 한 수를 둔 것이다!
그리고 흡족한 얼굴로 서신을 둘둘 말아 품속에 넣은 전령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황제 폐하께 무슨 무례를 범했는지 본인은 알 수 없으나, 파면 권고로 마치는 황제 폐하의 드넓은 아량에 감사하시오. 그럼 본인은 이만.”
전령이 물러가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아나르엘이 말했다.
“아, 아몬 선생님…… 대체 수도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갑자기 왜 황제가 당신에게 파면 권고를…….”
어깨를 잡고 흔드는 아나르엘의 물음을 들으며 묵묵히 생각했다.
‘음, 이건 생각도 못했네.’
아카데미를 망하게 하겠다고?
나는 왜 굳이 그렇게 힘든 길을 골랐을까!
‘이럴 줄 알았다면, 수도로 찾아가서 황제 얼굴 한번만 보고 올걸!’
그럼 재빠르게 파면 권고가 내려와서 영지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내 자의로 그만두는 것도 아니니까 계약 위반으로 위약금을 배상할 일도 없지!’
아몬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며 쓰게 웃었다.
그러나 아나르엘의 눈에는 그것이 마지못한 체념으로 짓는 미소로 보였다.
“아, 아몬 선생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니까요?”
“……글쎄요?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드레이크 가문과 황제 폐하의 가문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있었나 봅니다. 어제 대뜸 저를 보고 화를 내시더군요.”
“그, 그런…….”
왈칵 눈물을 쏟은 아나르엘이 입을 막으며 오열했다.
“고, 고작 그런 일 때문에 아몬 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하다니…… 그동안 이 아카데미를 위해 해 준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긴, 짧은 시간 동안 한 일이 많긴 많다.
아카데미의 자금줄을 확보하고, 부학교장의 야욕을 억제하고, 학생들을 경진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참으로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때문에 홀가분한 얼굴로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개뿔.
이별하는 마당이니 말이라도 예쁘게 하는 것이다.
본래 사람이란 머물렀던 자리마저도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아나르엘에게는 그 말이 어쩔 수 없는 체념으로만 느껴졌다!
아나르엘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흐흑, 미안해요, 아몬 선생님. 제가 힘이 없어서…….”
“하하하! 학교장님께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없어요, 없어.”
미련도 없으니 얼른 도장 찍고 보내 줘라.
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무능을 감싸 주는 아몬의 선한 마음이 아나르엘을 자극한 것일까?
“……흐흑, 좋아요.”
예? 뭐가 좋아요?
아나르엘이 결심한 듯, 눈물을 훔치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의 권고는 무시하도록 하죠.”
그 말에 아몬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뭐라고요!? 그게 무슨……!”
“아몬 선생님, 애초에 우리 아카데미는 황제의 운영 중단 권고를 받은 상태예요.”
그렇긴 하다.
그 권고의 철회를 위해 경진대회에 참가했다가, 도리어 파면 권고도 받은 형국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의 특성상, 일종의 독립권을 지니고 있죠. 결국 황제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지는 못해요.”
시종일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몬은 직감했다.
정말 그리되면, 이 아카데미는 한층 더 최악의 상황과 직면한다.
‘운영 중단 권고만 받은 지금 시점에서도 학생과 교사의 유입이 없다. 그런데 황제의 파면 권고를 받은 교사를 꾸역꾸역 안고 가는 아카데미?’
세상천지 어느 미친 학생과 교사가 오려고 하겠는가!
그리고 그렇다는 말은, 자신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서둘러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아나르엘의 눈에 담겨 있는 결의는 도무지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몬 선생님처럼 훌륭한 교사의 파면을 손 놓고 좌시한다는 건 학교장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제 교육자로서의 긍지이자 신념이에요!”
웅변하는 것처럼 우렁찬 아나르엘의 말에 아몬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됐으니까 얼른 해고해 달라고요!”
“훌쩍! 아몬 선생님! 뒷일은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포기하시면 안 돼요!”
“아니, X발! 포기가 아니라, 해고해 줘요! 제발!”
“아몬! 제발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으아아아아!”
말이 안 통한다!
“이, 이 빡통 엘프가 기어코 나를 벼랑길로 걷어차 넣으려고…….”
빡통 엘프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아나르엘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을 닦으며 환히 웃을 뿐이었다.
“일부러 모진 말을 하셔도 저의 결심은 변하지 않아요! 우리 아카데미는 당신을 끝까지 안고 갈 겁니다!”
어떻게 엘프의 탈을 뒤집어쓰고 저렇게 끔찍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실에 치를 떠는 와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입니까!”
“부, 부학교장……!”
아몬이 먼저 부리나케 아카데미로 돌아왔기에 부학교장, 브레슬이 뒤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브레슬을 본 아몬은 호랑이에게 쫓기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다.
‘부학교장은 날 싫어한다! 상황을 들으면 나를 쫓아내려고 하겠지!’
그렇기에 허겁지겁 상황을 설명했다.
“파면 권고라고요?”
“그, 그렇습니다!”
아몬이 얼른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러니 저를 해고해 주십시오!”
간단하게 용건만을 전달!
자신을 싫어하는 브레슬이라면 그 용건을 얼른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이윽고 브레슬이 말했다.
“그럴 순 없죠.”
“예! 감사…… 네?”
희번득 눈을 뜬 브레슬이 말했다.
“아무리 황제의 권고라 한들, 학생들을 훌륭히 가르친 당신을 해고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그 말에 아나르엘이 외쳤다.
“역시 부학교장님의 의견도 그렇군요!”
“그럼요, 학교장님.”
“어쩜! 드디어 알아주시다니…….”
모처럼 의견이 일치하자 아나르엘의 귀가 힘차게 푸드덕거리고, 흐뭇하게 웃는 브레슬을 노려보던 아몬은 깨달았다.
‘이, 이 망할 것이…….’
브레슬의 눈은 비열함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내가 해고당하길 원한다는 걸 알고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거구나!’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학교장님, 이번 경진대회 결과를 보고 드리려…… 응? 뭡니까, 이 상황?”
마리온이 학교장실로 찾아왔다.
‘마, 마리온 선배님!’
술에 취하면 인간 같지도 않아진다는 게 문제지만, 지금처럼 술에 취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나마’ 정상인 마리온이다!
‘군대에서 복무한 마리온 선배라면 황제의 권고가 얼마나 무거운 건지도 충분히 알 테지!’
마리온에게 얼른 상황을 설명했다.
“화, 황제 폐하께서 자네를 파면하라는 권고를 내렸다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를 해고해야겠죠!?
하지만 마리온은 펄펄 뛰었다.
“어찌 이런 부당한 처사가!”
“……예?”
“상황을 듣자 하니, 자네에겐 별 잘못이 없다 하지 않았던가!”
“자, 잠깐…….”
“으음, 어쩔 수 없군. 내 북방 사령관인 윌리엄스 후작 전하와 인연이 있지. 그분께 말씀드려 폐하와의 알현을 요청해 두지! 폐하께 간언을 올려야겠어!”
성군 중의 성군.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는 황제인지라 이런 행동이 용납되는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아몬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그것을 감동한 것으로 착각한 마리온이 아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 폐하께 선처를…….”
아나르엘도 외쳤다.
“맞아요! 저도 이 아카데미의 장으로서, 황제에게 서신을…….”
브레슬도 말했다.
“슬슬 배가 고프군요.”
아몬은 너무 분노한 나머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아몬은 교사 계약서의 위약금 항목을 빤히 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액수!
‘우리 영지의 감자밭 전체를 팔아도 안 되겠군.’
여기서 도망칠 방법은 없을까?
머리를 북북 긁던 아몬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경진대회가 끝나면 휴가를 내서 집에 가기로 했었지?’
현명하신 아버지라면 좋은 의견을 주실지 모른다.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참고가 될지도.’
몸을 일으킨 아몬이 학교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휴가를 가고 싶다는 말에 아나르엘은 흔쾌히 귀를 끄덕였다.
“그거 좋네요! 기분도 울적할 텐데 분위기 전환 겸 고향에 다녀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울적한 이유의 원인 제공자가 말하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튼 아몬 선생님이 여기 온 지 삼 개월 정도 지났으니까, 쌓인 연차가 사흘이네요. 이렇게 휴가 처리를 해 드리면 될까요?”
“네, 알겠…… 잠깐만요.”
“네?”
아몬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 영지까지 가는 데만 보름이 걸리는데요?”
“……아.”
이러면 계산이 이상해진다.
‘휴가를 한 달은 써야 집에 다녀올 수 있는 거잖아?’
문제는 ‘일반 교사’는 아카데미의 규칙 상 휴가를 한 달 이상 쌓아 둘 수 없다는 거다.
즉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집에 못 간다는 거다.
“이, 이게 무슨…….”
아몬이 황급히 말했다.
“하, 학교장님. 제 고향이 아르마 산맥입니다.”
“네? 아, 그랬죠? 그럼 장거리 휴가니까 하루 더 붙여 드릴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나르엘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선 휴가를 더 드리고 싶어도 나쁜 선례를 남기면 안 돼요. 휴가를 더 드리는 건 불가능해요.”
“…….”
“예전에 슬로스 선생이 휴가 더 달라고 학교장실 앞에 드러누워 있던 걸 생각하면…… 절대 빌미를 주면 안 돼요.”
슬로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럼 휴가를 미리 당겨 쓸 순 없습니까?”
“안 돼요.”
“……휴, 알겠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휴가증을 작성하는 아나르엘을 보는 아몬은 빵을 먹다 반 토막 난 벌레를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자, 여기 휴가증이요!”
4일짜리 휴가증!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틀째 되는 날 되돌아와야 하는 휴가증!
그것을 받은 아몬이 이를 악물었다.
“증믈 그믑습느드.”
“뭘요!”
그럼 이걸 가지고 어떡한다?
그냥 휴가를 반납할까?
‘아냐, 잠깐이라도 이 끔찍한 마굴에서 도망치고 싶어.’
아카데미 밖의 도시에 며칠 머물며 숨이라도 돌릴까?
그리 고민하던 와중,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십니까?”
“네? 데려다 드리려고요.”
“데려다……? 아아!”
문득 아나르엘과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세계수가 있는 엘프의 수도!
그곳은 아르마 산맥과 맞먹을 정도로 먼 곳이지만, 아나르엘은 워프 마법 한번으로 이동하지 않았던가!
그 사실을 떠올린 아몬이 확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짐은 왜 챙기십니까?”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올 거 아닌가?
아나르엘이 환히 웃었다.
“저도 아르마 산맥은 못 가 봤거든요!”
아몬의 얼굴이 굳었다.
“……그, 근데요?”
“어차피 다시 데리러 가야 하니까, 그러느니 며칠 같이 머물죠 뭐!”
아몬의 얼굴이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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