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1)
아카데미가 망했다 171화
아몬은 근엄한 얼굴로 일행들을 훑어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탁자 밑에서 굴러 대며 오열하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헌앙하고 당당한 태도였다.
“참으로 가슴이 웅장한 싸움이 되겠군요.”
“……그렇겠지.”
카셀라그는 자신이 발로 꾹꾹 밀어 대서 흙먼지가 묻은 아몬의 등을 툭툭 털어 주며 말했다.
“하지만 웅장하니 뭐니 하는 싸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예? 지상계의 모든 종족과 드래곤이 힘을 합쳐서 싸우는 거잖아요? 그만큼 웅장한 싸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저스티시엘이 한심하다는 듯 아몬을 흘겨봤다.
“어제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될 게 분명하다. 대륙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지도 모르지. 네가 아는 대륙의 역사는 깡그리 지워야 할 정도로 처절한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역사학 교사인 아몬의 밥줄이 모조리 지워지게 생겼다는 말에 그가 입을 쩍 벌렸다.
“하, 하지만 어제 말했던 것은 인간들이 완전히 멸망하기 직전에 드래곤들이 나서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총력전이니 아예 처음부터 전략을 짜고 인간과 드래곤이 연합하면 무사히 마족을 무찌르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텐데요?”
아몬의 말은 확실히 그럴듯했다.
아무리 마족이 강하다고 한들, 인간의 기술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인간들의 역사라는 단어는 ‘피’로 써 내려져 가는 법이다.
숱한 전쟁으로 단련된 그들은 살상 기술은 여느 종족이 따라오지 못한다.
애초에 자연의 축복인 마나조차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상대방을 살상하려는 목적의 마법으로 뒤바뀐다.
“인간은 전쟁으로 단련된 기술력으로 마족들을 공격하고, 드래곤이 마법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한다면 그들을 무찌르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라인벨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전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이야 산나물이나 캐 먹고 검을 휘두르는 노인이지만, 그는 괜히 제국 4대 기사라는 명예직을 맡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 죽은 무수한 적국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며, 병사들은 그가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정문 근처에서 빗자루질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저승에서 땅을 치며 흐느낄 것이다.
전쟁에 일가견이 있는 라인벨트도 아몬의 의견에 동감했다.
“아몬의 말도 틀린 게 아닙니다. 마족의 무서움은 저 또한 인정합니다. 마왕의 통로를 부수기 위해서 수백의 마족들을 상대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들은 마나 저항력에 비해서 물리 저항력이 떨어집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만요.”
인간의 전쟁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먼 거리에서 바위를 투척하는 질량 병기인 트레뷰셋, 무수한 바위와 돌을 파상적으로 투척해 목표 지점을 초토화하는 투석기 등등.
인간에게는 수많은 전쟁 병기가 존재한다.
“게다가 인간은 마법의 발달로 인해 전쟁 병기의 발달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습니다. 마법으로 단련된 재료로 인해 내구성이 상승했기 때문이죠.”
때문에 트레뷰셋은 기존의 그것보다 압도적인 비거리와 파괴력을 자랑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날아와 성벽을 처참하게 박살 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라인벨트가 가슴을 쳤다.
“대전쟁에 참가해 본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드래곤님들과 수많은 종족이 연합한다면 우리는 마족 따위에게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당당한 라인벨트의 말에 아몬이 박수를 쳤다.
“역시 어르신! 저는 항상 어르신을 존경하고 믿고 있다고요!”
“허허험!”
두 사람이 서로를 핥아 주는 와중, 저스티시엘은 골이 아프다는 듯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쉽게 연합한다던?”
“엇.”
“뭐? 대륙의 역사가 피로 써져? 그렇게 서로 때리고 박고 못 죽여서 안달복달인 것들이 연합을 해? 음, 그래. 연합이야 하겠지. 한 인간의 머릿수가 마족들한테 절반쯤 지워지고 나면 우리 X됐구나 싶어서 연합을 하겠지!”
저스티시엘이 눈을 희번득거리며 말했다.
“내 말이 틀렸나?”
“…….”
라인벨트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군터 군도 연합과의 전쟁만 생각해도, 황제 하나 끙끙 앓고 어머니 크라켄인지 문어숙회인지를 등에 업었다고 들고 일어나서 제국을 치지 않았던가.
“마왕의 침공? 어리석은 인간 놈들은 이때가 자기네들이 제대로 한탕 해 먹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혀나 날름거리고 있을 거다. 그리고 인간이 절반쯤 사라지면 그제야 허겁지겁 연합하려고 하겠지.”
“…….”
“그리고 연합을 하면? 거기서도 서로 자기네 입김이 더 세니, 네 입김이 더 약하니 작전권을 우리에게 달라고 드러눕는 놈들 천지일걸?”
죄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어진 라인벨트는 아예 쪼그라들어 숨만 죽이고 있었다.
실제로 라인벨트는 대전쟁 때, 연합국도 아니고 제국 소속의 장군끼리도 서로 추하게 싸우는 꼴을 수도 없이 목격했었다.
저스티시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어제 카셀라그 어르신이 말했지? 이 대륙에는 너희 인간들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고. 수많은 종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당장 인간들만 해도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는데, 다른 종족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 수월할 성싶으냐?”
“어억…….”
라인벨트는 반박할 여지를 찾지 못하고 뒷목을 잡았다.
아몬도 다시 탁자 아래로 기어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 말했다.
“그, 그럼 어찌해야…….”
“그러니 총력전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 될 거란 말이다!”
아몬은 반쯤 탁자 아래로 들어간 채 말했다.
“그럼…… 만약에, 만에 하나 성공적으로 연합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뭐? 연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만약에, 만에 하나요.”
저스티시엘은 아몬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봤다.
그러나 카셀라그는 아몬의 의견에 대답해 줄 의향이 충분히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그는 아몬과 친분이 있는 만큼 그를 두둔해 주려는 것이다.
“만약에 성공적인 연합이 가능하다면 마왕은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요?”
“그래.”
카셀라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늙은 인간의 말대로, 마족들은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극도로 막강해. 마나 방벽만큼은 아니더라도 선천적으로 마나의 저항력이 높지. 그리고 육체도 전투적인 만큼 튼튼하지만 마나의 저항력만큼은 아니지. 그리고 모든 종족이 연합한다면, 마족의 육신에 물리적인 타격을 줄 종족은 많고도 많다.”
“……그렇군요.”
아몬은 문득 드레이크 영지로 침입해 걸신들린 것처럼 감자를 훔쳐먹던 엘더 드레이크를 떠올렸다.
그놈의 완력은 아무리 아몬이라고 해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다만티움 검이 없다면 오직 힘만으로는 아몬도 밀리는 것이다.
“게다가 오거는 마족 못지 않게 호전적인 전투 종족이다. 그들이 인간과 연합한다면 엄청난 무력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장비를 들려준다면 하나하나가 마족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오거는 인간과 연합할 리가 없으니 허황된 이야기지.”
피식 웃는 카셀라그를 본 아몬은 문득 예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요.”
“응?”
“오거는 이미 제국과 동맹과 맺었는데요?”
“……뭐?”
카셀라그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게 무슨 오크가 오거 뒷다리 뜯어먹는 소리냐?”
“진짠데요…… 그 어디냐. 보그 산맥인가? 거기 오거 부족 하나가 제국이랑 동맹을 맺었어요.”
“……저, 정말이냐?”
“예.”
카셀라그가 입을 쩍 벌렸다.
그는 강력한 드래곤이지만 오거의 호전성 하나만은 경시하지 않는다.
근데 그런 오거가 인간과 연합을 했다고?
“물론 부족 하나지만요.”
“……아니다. 오거는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종족이다. 만약 부족 하나가 인간과 연합한다면, 그 부족은 조만간 오거의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강대한 부족이 될 거다. 그 부족을 따르려는 오거 부족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겠지.”
아몬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오거 부족의 족장 이름이 좌가락인지 숟가락인지 그랬는데, 그것도 계산하고 인간과 동맹을 맺은 건가……?’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던 아몬이 말했다.
“그리고 엘프! 엘프는 인간과 쉽게 동맹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저스티시엘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 도도한 엘프들이 인간과 연합을 해? 엘프가 오크와 사교댄스를 춘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을 거다!”
“제가 일하는 아카데미의 학교장이 하이엘프인데요?”
“……어?”
“아직 나이가 덜 차서 보류됐지만, 엘프 왕국의 지도자가 될 거라던데요. 애초에 그녀는 제국의 현 황제, 황후와 절친한 친구입니다. 인간과 연합할 의향은 충분히 있을 겁니다.”
카셀라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냐……?”
“제가 이런 것 가지고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
카셀라그가 허허 웃었다.
“그럼 엘프와 오거는 인간과 연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봐야겠군. 그렇다면 인간들의 국가끼리 연합하는 일은 잘 풀리겠느냐?”
라인벨트가 대신 그 말을 받았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결국 이런 내용은 속도가 생명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정보를 전파하고 위기감을 각인시키면 연합이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흐음.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라인벨트가 강경하게 말하자 카셀라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믿는 구석이 있는가 보군.”
“예.”
애초에 당장 황태자가 아카데미 소속인데 못 믿을 리가 없었다.
다른 인물도 아니라 황태자다!
그것도 2황자, 3황자도 아니고 다음 대 황제가 되는 것으로 확정된 황태자가 작정하고 황제를 설득한 후 다른 국가들을 포섭한다면 인간의 연합은 라인벨트의 말대로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흠…… 그럼 당장 4개 종족의 연합은 가능할 거라고 희망할 수 있는 건가.”
인간, 드래곤, 엘프, 오거.
네 개 종족의 연합이 성공한다면 마족을 상대로도 승산이 확연히 올라간다.
물론 이미 연합이 확정된 건 아니더라도 희망의 끈은 확실히 생겼다.
“피해가 없지는 않더라도 멸망할 정도로 밀리지는 않겠군.”
“아, 그리고 다크엘프도 도움이 될까요?”
“다크엘프? 큰 도움이 되겠지. 다크엘프 종족은 선천적으로 흑마법에 소질이 있어서…….”
잠시 기억을 더듬던 카셀라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그러고 보니…….”
“예. 우리 부학교장이 다크엘프입니다. 정확한 신분은 모르지만, 가끔 자기네 부족 비전의 탕약이니 뭐니 하는 걸 봐선 비전도 있는 부족 같습니다.”
카셀라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흑마법은 일반적인 마법과는 마나의 발동 원리가 다르지. 물론 흑마법과 마족의 상성을 생각하면 큰 피해는 주기 힘들겠지만, 흑마법은 괴이한 마법이 많으니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용사도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질서신교의 신물인 신검 누카엘을 가지고 있는 진짜배기 용사입니다.”
“……아니, 너희 아카데미에는 없는 게 뭐냐? 뭐가 다 있어?”
“그러게요…….”
무슨 비밀 보따리를 풀어 헤치는 것처럼 뭐가 자꾸 나오는 아몬의 입을 빤히 바라보던 카셀라그가 말했다.
“뭐 더 없냐?”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아몬이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