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3)
아카데미가 망했다 173화
이것을 축하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은 결코 축하연이라는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었다.
피와 추악함, 음모와 계략으로 물든 끔찍한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부모님에게 얻어맞아 온통 부어오른 등짝을 가진 슬픈 사나이, 아몬이 낑낑거리며 중얼거렸다.
“라인벨트 어르신을 믿는 게 아니었어. 산나물만 캐 먹고 사는 삶을 살다 보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규범을 잊은 게 분명해. 남의 비밀을 그리 쉽게 발설하다니…….”
아몬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몸을 뒤척거렸다.
터진 등짝 때문에 하루 종일 엎드려 있었더니 가슴팍에 굳은살이 배길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나르엘 학교장도 나를 치료해 주기를 한사코 거부했으니…….’
부모님이 아몬을 호되게 매질하는 것을 본 다른 아카데미의 일행들 역시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아나르엘은 자신의 등을 치료해 달라 간청하는 아몬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왜 제가 고쳐 드려야 해요? 아몬 선생님은 인생을 혼자 사는 것 아니었나요? 그러니까 혼자서 멋대로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느니 뭐니 하면서 위험한 일을 도맡았겠죠!’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귀를 펄럭펄럭 휘두르며 치료를 한사코 거부하는 아나르엘의 행동에 아몬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렇기에 아몬은 다음 동아줄인 마리온을 붙잡고 애걸했다.
‘마리온 선배님, 이 가엾을 후배의 등짝을 살려 주십시오.’
마리온이 껄껄 웃었다.
‘술이라도 부어 주랴?’
‘소독은 잘될 것 같은데, 싫습니다. 마법으로 치료해 줘요.’
‘허허허! 내가 왜? 너 혼자 치료하면 되잖아? 혼자 뭐든 다 할 줄 아니까 혼자서 마왕 부활의 저지니 뭐니 하면서 오밤중에 뛰쳐나간 거 아니었나?’
‘혼자간 건 아닌데…….’
‘갈(喝)!’
‘으이이익……!’
어쨌든 간에 삐져도 단단히 삐진 마리온에게도 더 이상 치료를 간청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아몬은 근처에서 침낭에 감싸져 뒹굴거리는 슬로스에게 말했다.
‘저, 슬로스 슨배임. 그 기사 가문에는 독자적인 상처 치료법이나 그런 것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등이 터진 후배를 가엾이 여기시어 저의 상처를 치료해 주…… 어디 가십니까?’
더 이상 듣기도 싫은지 슬로스는 ‘흥!’하고 콧바람을 뿜더니 침낭째로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결국 어디까지 굴러갈지는 그녀 본인만이 알고 있으리라.
‘으, 역시 정말로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인가?’
아몬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투덜거리던 와중, 엎드린 아몬에게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피오라였다.
‘으으…… 망나니냐? 너라도 좋다. 나의 상처를 고쳐다오.’
그리고 ‘망나니’라는 말을 들은 피오라는 그대로 회전해 멀어져 갔다.
지난 밤의 이야기로 이제 더 이상 ‘망나니’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녀의 믿음은 배신을 당한 것이다!
그 사실을 기억해 낸 아몬이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아니다! 이 피오라야! 내가 잘못했으니 돌아와다오!’
‘……뭘 잘못하셨습니까?’
‘너는 망나니가 아니야! 그게 입에 익어서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해 버렸구나!’
피오라가 경계심을 품은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한걸음 다가왔다.
‘너는 펜도리안 공작 가문의 영애, 피오라 펜도리안이다! 망나니 따위가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피오라의 경계심이 조금 더 풀렸는지 이번에는 두 걸음쯤 다가왔다.
‘옳지, 옳지!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렴. 케헤헷! 키시시싯!’
‘……웃는 목소리가 이상하십니다.’
‘아니, 미안. 진짜 미안. 도망치지 말아 줘.’
결국 피오라가 다가오자 아몬은 자신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펜도리안 가문도 명문가니까 무슨 독자적인 치료법 같은 게 있지? 그 탁월한 기술로 내 등을 치료해 주련?’
아몬의 부드러운 물음에 피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 없는데요?’
‘이 망나니가!’
다시 망나니 소리를 들은 피오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리고 현재, 아몬은 엎드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역시 인생은 혼자 사는 법이지. 공수래공수거라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야.”
등이 터져 낑낑대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자신을 돌봐 주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현실에 설움이 몰려왔다.
“……으, 근데 카이 이 녀석은 어디로 간 거야? 그 녀석이라면 내 등을 치료해 줬을 것 같은데.”
자신과 돈독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후배인 카이라면 흔쾌히 자신의 등을 치료해 주는 것은 물론이요, 요새 몸이 허하신 것 같으시다며 보약도 두어 첩 지어 줄 게 분명했다.
물론 라인벨트에게 사주해 어제의 진실을 고발한 장본인이 카이였다.
즉 그가 아몬의 등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아몬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끄응…… 카이 녀석,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딱 그 꼴이로군.”
물론 진실과는 관계없이 카이를 향한 아몬의 호감도는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카이 이 녀석, 대체 어디 간 거야?”
* * *
카이는 진중한 얼굴로 아모니스 18세의 앞에 부복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황제와 황태자의 관계로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300여 년 후에 마왕 조나난이 대륙을 다시 한번 침공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황제는 황좌에 앉아 굳은 얼굴로 황태자, 카이야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말이 진실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어느 인간의 말도 아닌, 마왕의 출현을 예고하는 골드 드래곤인 아마란스 혈족의 저스티시엘의 경고입니다.”
“흐음…… 아마란스 혈족의 골드 드래곤인 저스티시엘이라.”
황제는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대륙 전체를 아우른다고 해도 아닌 황제의 정보망은 온갖 정보를 손에 넣고 주무른다.
그중에는 드래곤을 비롯한 강대한 존재들에 대한 정보도 존재했다.
‘저스티시엘…… 그는 분명히 인간으로 모습을 바꿔 유희를 즐기고 있다. 현재는 쥰마니 왕국에서 작은 상단을 꾸리고 유희를 즐기고 있다던데…….’
드래곤의 유희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는 놀라운 황제의 정보 집단!
황제가 생각을 거듭하며 입을 열었다.
“내 직접 확인해 보겠다. 저스티시엘이라는 골드 드래곤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 라인벨트 어르신에게 통해서 들은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말이야.”
“예? 하오나 그가 평소에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파악하지 못했…….”
황제는 빙그레 웃었다.
“짐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거라.”
“……예, 폐하.”
황태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황제의 눈인가.’
황태자인 자신이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정보 집단조차 드래곤 같은 거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러나 황제의 정보 집단, 황제의 눈은 그것을 진작 파악하고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흠, 그리고 블랙 드래곤 카셀라그라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마도 아몬 선배…….”
“떼이이이잉!”
아몬의 이름을 듣자마자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발작의 시동을 거는 황제를 본 황태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정정했다.
“블랙 드래곤, 그는 드레이크 변경백의 차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조손과도 같은 사이라더군요.”
“흐음…… 그 카셀라그가 말인가.”
“혹시 아시는 드래곤입니까?”
황제는 길게 침묵했다.
그는 황태자 카이야스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 아모니스 가문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부하느냐?”
“예? 그야…….”
황태자로서 제국의 역사, 또한 아모니스 가문에 대한 모든 것을 깊게 익히고 외웠다고 자부한다.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하지만 너는 우리 가문에 대한 중대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 무, 무슨 사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오직 제국의 황제, 즉 나와 아모니스 19세의 이름을 받게 될 이들만이 알아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너를 다음 대 황제의 재목으로 확실하게 인정하마.”
그 말을 들은 카이야스는 소름이 쭉 돋는 기분이었다.
황태자, 그 이름은 다음 대 황제의 재목을 일컫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태자가 ‘무조건’ 다음 대의 황제가 되는 건 아니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황제가 마음이 변해 다른 황자를 황태자의 자리에 앉히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황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다른 황자에게 그 자리를 넘겨줬다. 정쟁에서 밀리건, 혹은 강대한 적에게 암살당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렇기에 황태자는 어떻게 보면 ‘위험한’ 자리다.
자칫 잘못하면 황태자 자리를 탐내는 다른 황자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정보 집단을 필사적으로 키워 왔다. 혹시 모를 비수를 막아 내기 위해서.’
덕분에 아직까지는 혹시 모를 위협을 잘 막아 낼 수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황태자 카이야스는 몇 번의 암살 시도를 막아 냈다.
비록 신분을 ‘카이’로 숨기고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교사를 하는 동안엔 그러한 시도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하긴, 사실 그곳은 황궁 다음으로 위험한 용담호혈이니까.’
정문 경비가 제국 4대 기사인 창천검왕 라인벨트다.
자신의 신분을 눈치챘다고 한들 암살 시도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폐하께서 나를 진짜 다음 대 황제로 인정하셨다.’
이제 카이야스는 단순한 황태자가 아니었다.
다음 대 황제의 재목으로 추측되는 인물이 아닌, 진정으로 황제가 그를 다음 대 황제로 만들고자 전력을 다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음. 그래. 앞으로 정진하거라. 내가 어째서 너를 다음 대 황제로 삼으려는지 아느냐?”
카이야스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300년 후 닥쳐올 환난을 제가 알고 대를 이어 대비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정확하다. 내 너를 바르게 보았구나. 어쩌면 제국, 나아가서 대륙 전체까지 위험할 환난을 알아내 미리 경고한 것만으로도 너는 다음 대의 황제에 걸맞은 재목이다.”
흐뭇하게 웃은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이제 우리 가문과 제국의 진실을 알려 주마.”
“진실…….”
카이야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본 일은 제 목숨을 걸고 불문에 부칠 것을 맹세하겠나이다.”
“그래. 그렇다면…….”
황제가 손에 쥐고 있던 홀을 높게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그그그그긍-!
황좌의 뒤편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균열의 안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이, 이게 대체……?’
황궁의 황좌 뒤편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존재했다고?
이 아래에는 도대체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카이야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따라오거라.”
“……예, 폐하.”
카이야스는 앞장서는 황제를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