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4)
아카데미가 망했다 174화
며칠 후, 아몬 일행들은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몬의 만신창이가 되었던 등도 누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렇기에 아몬은 당장 수업을 진행해야 했으나, 한 가지 이변이 있었다.
아나르엘의 호출에 학교장실로 간 아몬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 카이가 휴가를 가서 복귀를 안 했다고요?”
“네. 카이 선생님이 급하게 볼일이 생겨서 복귀하기가 힘들 것 같대요. 가문의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던데요?”
“며칠이나…….”
“글쎄요? 아마 쌓인 연차를 모두 쓸 작정인 것 같더라고요.”
비교적 신입 교사인지라 연차가 얼마 쌓이지도 않았을 테지만, 아직 단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기에 그럭저럭 쌓여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 연차를 몽땅 소모한다고?
“얼마나 쌓였는데요?”
“열흘이 조금 넘어요. 뭐 이것저것 다 포함하면 그 정도 되더라고요.”
“그럼 그 열흘 동안, 수학 수업은 누가 합니까?”
아나르엘이 활짝 웃었다.
“호호!”
“……왜 대답을 안 해 주시죠?”
“호호호!”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긴, 현재 남아 있는 교사들 중에서는 적임이 자신밖에 없었다.
‘슬로스, 마리온 선배님에게는 맡길 수 없다. 슬로스 선배는 할 줄 아는 게 칼 휘두르는 것밖에 없는 무지렁이다. 그리고 마리온 선배님은 마법사니 수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아실 텐데…….’
훗날 그 사실에 대해 마리온에게 질문해 봤지만, 마리온은 ‘배틀 메이지는 수학 공식을 거의 안 쓰는데? 달리고 구르는데 수학 공식을 사용해서 정교하게 마법을 사용할 틈이 어디 있겠나?’라는 답변으로 아몬의 기대를 간단하게 짓밟았다.
‘그리고 피오라는…… 음, 그 녀석도 이것저것 많이 배웠으니 수학에 대해서 알기야 할 테지만, 아직은 자기 수업을 하나 진행하는 걸로도 벅차겠지.’
결국 수학 수업의 대타가 자신이 적임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나도 수학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보리스를 비롯한 꼬맹이들을 가르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도 라스티아넬은 드래곤이니까 나보다도 수학을 잘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건 카이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렇기에 자신이 카이의 대타로 수학 수업을 맡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 노동권의 보장은?’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직장의 환경에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건만, 이제는 최소한의 휴식 시간마저 앗아 가려 한단 말인가?
부들부들 떨던 아몬이 악덕 고용주에게 울분을 토하려던 순간이었다.
“물론 일한 날만큼 봉급이 추가될 거예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만큼 봉급이 늘어난다면 아몬도 납득했다.
물론 그 시간에 쉬는 것도 좋지만, 쉬느니 돈을 버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집이 변경백 가문이니 뭐니 해도 나는 내 돈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말이야.’
비록 변경백 가문이 되었다곤 하나, 가문의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돈 들어갈 구석이 많을 텐데 괜히 가문의 돈을 빨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만큼 추가로 돈을 벌 기회가 오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좋다.
“그렇다면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카이 이놈은 뭘 한다고 선배를 고생시키고 그런답니까?”
“글쎄요? 저도 전혀 들은 게 없어요. 가문의 사정이라더군요.”
“흠, 집안 사정이라니 더 이상 뭐라고 하는 것도 그렇군요.”
“이미 할 만큼 하셔 놓고선…….”
아나르엘의 투덜거림에 아몬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럼 가 보겠습니다.”
“네, 당장 오늘부터 수학 수업을 부탁드릴게요.”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수학 교사, 카이.
진짜 신분은 ‘황태자 카이야스’인 그는 황궁의 지하 서고에 틀어박힌 채 몇 날 며칠을 책에 파묻혀 있었다.
이곳에는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가문의 비화를 깡그리 엎어 버리는 충격적인 사실이 가득했다.
‘이, 이럴 수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실은 도대체……?’
카이야스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렸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국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황제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궁의 지하 비밀 서고에서 아모니스 가문에 대한 비밀을 머릿속에 쑤셔 넣던 그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있는 방향이었다.
‘나, 나는 대체 뭘 준 거지……?’
* * *
“으, 아! 해췌기!”
힘껏 재채기를 한 아몬이 코를 훌쩍거렸다.
본래 제국의 속담에 의하면 누가 자신의 욕을 하면 귀가 간지럽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느 외국에서는 누가 자기 이야기를 하면 재채기가 나온댔다.
“훌쩍! 누가 내 욕을 하는가 보군.”
카이를 대신해 수학 수업을 하던 아몬이 중얼거리자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클로에가 말했다.
“저기, 아몬 선생님.”
“응? 왜 그러니, 클로에. 수업에 대해 질문이라도 있는 거니?”
아몬의 물음에 클로에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카이의 수학 수업보다는 아몬의 수업이 훨씬 낫지만, 그녀는 애초에 수학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뇨, 질문이긴 한데 수업에 대한 건 아니에요.”
“응? 그럼 나중에…… 아니지, 조금 쉬었다 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아몬이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수학책을 내려놓자 학생들이 환호했다.
“우리는 아몬 선생님이 좋아요!”
“더 이상 카이 선생님의 수학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아!”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 선언에 아몬이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 녀석들. 그나저나 클로에는 뭐가 궁금하니?”
“아, 네. 선생님이 방금 재채기하실 때 본 건데, 선생님이 허리에 달고 있는 시계는 뭐예요?”
“응? 시계?”
아몬이 자신의 허리춤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허리춤에는 검은색의 회중시계가 달려 있었다.
교사 제복에 꿰매다시피 해서 매달아 놓은 시계였기에 아몬 본인도 가끔 그 존재를 까먹는 물건이었다.
“이거 말이야? 예전에 황실에서 우리 아카데미의 학습 실태를 조사하고 간 적이 있었거든. 그때 선생님의 수업 태도가 좋다고 황실에서 부상으로 하사해 준 시계란다.”
“정말요? 역시 아몬 선생님이세요.”
“하하, 고맙다. 클로에가 오늘따라 수업을 정말 듣기 싫은가 보구나.”
“…….”
속내를 정확하게 꿰뚫린 아몬이 문득 시계를 들고 살펴봤다.
‘그러고 보니, 이 시계…… 아주 비싸 보인단 말이지.’
제국의 상징인 드래곤이 문양화되어 음각되어 있는 검은빛의 회중시계.
예전에 이것을 받았을 때 몰래 팔아먹을까 싶었지만, 황실의 엄중한 징계가 두려워 미처 팔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황실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요’라는 의미를 담아 허리춤에 항상 매달고 다니긴 했는데, 아무도 알아봐 준 적 없었던 슬픈 사연이 있다.
‘그런데 이 시계, 가만히 살펴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는 말이지.’
제국의 상징은 ‘드래곤’과 ‘금색’이었다.
그런데 시커먼 회중시계에 제국의 상징인 드래곤을 새겨 놓는다?
금색의 황금으로 만든 시계에 드래곤을 새겨넣었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시커먼 색에 제국의 상징을 새겨 넣는 것은 척 봐도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단순하게 원가 절감하려고 그러는 건가?’
그것도 일리는 있는 이야기였다.
고작 수업 태도가 좋은 교사라고 부상을 하사할 정도면, 이 시계를 여기저기 펑펑 뿌려야 하니 금으로 만들면 단가가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단 말이지. 그렇게 펑펑 뿌리는 물건이라면 나 말고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조금은 있어야 할 테니까.’
시계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별것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옆을 바라봤다.
어느새 클로에가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응? 왜 그러니?”
“저도 그 시계 한번 보면 안될까요?”
“괜찮은데…… 오늘 정말로 수업 듣기 싫은가 보구나?”
“……봐도 돼요?”
“그래, 보렴.”
아몬은 허리춤의 시계를 풀어 클로에한테 건넸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 한참 시계를 둘러보던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선생님.”
“응?”
“혹시 선생님의 가문과 제국의…….”
잠시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핀 클로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들어서 좋을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 선생님의 가문과 제국의 황실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뭐?”
아몬은 내심 소스라치게 놀랐다.
클로에의 말에 정곡을 찔린 것이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드레이크 가문과 현 황실인 아모니스 가문은 가까운 친척 관계라고 했다.
즉 사촌인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은 비밀 중의 비밀이고, 클로에한테 정곡을 찔린 아몬은 간신히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아니나는무슨소리인지모르겠구나.”
“네? 어, 음…… 그래요?”
“하하그런데갑자기왜그런농담을하는거니?”
아몬의 경직된 말투에 위화감을 느낀 클로에였지만, 그녀는 회중 시계의 문양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저는 아란 왕국의 왕족이잖아요? 지금은 없는 나라지만…….”
“아, 응. 그렇지…….”
“하여간 그래서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요. 각 가문의 깃발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주느냐, 머릿속에 각인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응? 그야 그렇지?”
그래야 전장 같은 곳에서 전공을 세웠음을 단단히 주장할 수 있다.
확 눈에 들어오는 깃발을 가진 군대가 적을 무찌를 경우, 그때는 깃발을 근거로 해서 논공행상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가문의 상징은 차별화되어야 하거든요? 어느 가문이 먼저 드래곤을 선점했다면 다른 가문은 드래곤과 유사한 상징을 사용할 수 없어요. 그나마 유사한 것이라고 해 봐야 ‘와이번’ 정도겠죠. 하지만 그 정도로 차이점이 있다면 얼핏 봐도 다른 상징이구나 하고 알 수 있을 거예요.”
“……으음, 그렇군.”
아몬은 비로소 클로에가 왜 ‘드레이크 가문과 아모니스 가문’의 관계를 의심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가문의 깃발은 드레이크를 상징으로 한다. 그리고 드레이크는 날개 없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드래곤과 비슷하게 생겼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잠깐만.’
아몬이 회중시계를 빤히 노려봤다.
‘그럼 이건 뭔데……?’
아몬은 지금까지 이것을 ‘드래곤의 문양’이라고 생각했다.
흑색의 회중시계에 드래곤을 새긴 것이라고, 황실에서 하사한 것이니 당연히 드래곤을 상징으로 새겨 넣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새까만 검은색의 시계인지라 자세히 살펴봐야만 볼 수 있는 그 문양에는, 날개가 없었다.
즉 이 시계는 ‘드레이크의 상징’을 새긴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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