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5)
아카데미가 망했다 175화
카이는 책을 덮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아몬 선배에게 도대체 뭘 선물한 거지……?’
예전에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원 평가 건을 빌미로 아몬에게 선물한 회중시계.
그 물건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물건이었다.
‘말도 안 돼. 황실 기념관의 창고에 처박혀 있길래 별것 아닌 물건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었다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기념이랍시고 아몬 선배한테 선물한 거였어?’
그토록 중요한 물건이 그렇게 형편없이 관리되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괜히 엄중하게 관리했다가는 그 물건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생길 테니 일부러 그렇게 대충 아무 곳에나 박아 둔 것이다.
‘아버지! 그게 우리 가문의 비화와 관련된 중요한 물건이었다면 이렇게 비밀 지하실에 숨겨 뒀어야죠! 그걸 어째서 그렇게 아무 곳에 박아 둔 겁니까!’
물론 황제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만에 하나 이곳 비밀 지하실이 남들에게 드러나 드레이크 가문의 상징이 새겨진 회중시계가 발견될 경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냥 ‘그러그러한 증거가 있다’라는 기록만 남아 있으면 ‘와, 그런 게 있었구나. 그게 어디에 있을까?’라고 대충 넘기고 말겠지만, 기록 속의 증거가 눈앞에 떡 하고 있으면 그대로 이야기는 끝나 버린다.
그렇기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듯, 황제도 위험한 물건을 다른 장소에 나눠 보관한 것이다.
게다가 세상천지 어느 미친놈이 ‘황실 기념관의 창고’에 있는 물건을 멋대로 빼돌리겠는가?
황태자쯤 되는 미친 권력자가 아닌 이상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 황태자 덕분에 황제의 계산은 단번에 박살 났다.
‘만약 이 사실을 들키면 나는 모가지다. 황태자 자리에서 끌어내려진다는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모가지가 달아날 거다.’
카이는 정교하게 제작한 모조품을 황실 기념관의 창고에 도로 돌려놓으리라 다짐했다.
* * *
그날 밤, 아몬은 침대에 누운 채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워낙 오래된 시계라 작동하지도 않았기에 정말로 기념으로 차고 다니던 물건이었는데, 오늘 클로에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의미심장한 물건이었다.
‘왜 황실에서 하사한 물건에 우리 가문의 상징이 새겨져 있는 거지? 우리 가문이 황실의 방계라서 특별히 우리 가문의 상징을 새겨 준 걸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의 비화는 황실의 구성원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다.
교사질을 잘했다고 기념품이나 준비하는 황실의 말단이 그 비화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으음…… 아버지한테 한번 물어봐야 하려나? 하지만 아버지도 모르실 것 같은데.’
그러나 현재로선 이것에 관해 믿고 기댈 구석이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래, 내일 연차를 내자!’
* * *
이튿날 아침, 피오라는 흥얼거리며 머리를 빗고 있었다.
이제 막 씻고 나온 그녀는 탐스러운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말리고 있었다.
요새는 교사로서 일하는 게 조금 익숙해지기도 했고, 다른 동료 교사와의 관계도 썩 나쁘진 않았으니 만족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지내는 게 가문에 있는 것보다 훨씬 편하니까!’
명문 중의 명문인 펜도리안 가문의 규율은 심각할 정도로 엄격했다.
그나마 할머니인 디아나가 예뻐하는 손녀인 피오라였기에 망정이지, 조금 밉보인 가솔들은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울 것이다.
그 이외에도, 아몬과의 관계가 조금은 개선되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만족스럽게 했다.
‘요새는 그 인간이 나를 망나니라고 부르는 게 뜸해졌지?’
어렴풋하게 미소 지은 그녀가 머리칼을 정성스럽게 빗는 와중이었다.
“피오라 선생님, 안에 계세요?”
“네? 아, 네! 학교장님.”
이제 막 씻고 나왔기에 가벼운 옷차림이었지만, 찾아온 사람은 동성인 아나르엘이었다.
게다가 자기보다 몇 배는 오래 살았고, 할머니인 디아나보다 긴 세월을 살아온 아나르엘이 아니던가?
피오라는 거리낌 없이 문을 열어 줬다.
“네, 학교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조금 괘씸한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네? 무슨 소리십니까?”
“아뇨, 그보다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오늘 아몬 선생님이 급하게 연차를 내셔서요.”
“……네?”
“그래서 피오라 선생님이 아몬 선생님이 맡고 계신 수업에 대신 들어가 줘야 하실 것 같아요.”
“……잠깐, 잠깐만요.”
피오라는 씻고 나와 따뜻해진 몸에 찬물을 끼얹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그럼 제가 아몬 선배님의 역사학 수업을……?”
“네.”
“그리고 카이 선배가 휴가를 가서 아몬 선배님이 대타를 서고 있으니까, 그 수업도 제가 맡아야……?”
“물론이죠!”
아나르엘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에 피오라는 머릿속이 팽 도는 것 같았다.
‘왜 쪼개지?’
피오라는 비로소 아몬이 어째서 아나르엘에게 그토록 혹독하게 대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단 하루만 고생해 주시면 돼요. 아몬 선생님이 급한 일이 생겨서 하루 다녀오는 거라고 하셨거든요.”
덧붙여진 아나르엘의 말에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있었던 피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오늘 하루만 부탁드려요!”
아나르엘도 심상치 않은 피오라의 기세를 느꼈는지 달아나는 것처럼 후다닥 돌아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피오라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몬 그 인간…… 나한테 한마디 말이라도 해 줄 것이지…….”
원래 경고받지 않고 한 대 얻어맞을 때가 가장 아픈 법이다.
아몬을 향한 호감이 땅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느낀 피오라가 한숨을 쉬었다.
* * *
그 시각, 아몬은 도시 에덴으로 통하는 워프 마법진을 눈앞에 두고서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야! 역시 우리 가문에서 큰돈을 들여 에덴에 설치한 마법진이야. 마나가 흐르는 기세가 장난이 아닌걸? 다른 워프 마법진들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이야. 역시 ‘우리’ 가문에서 도시 ‘에덴’에 설치한 워프 마법진이야!”
아몬은 다른 사람들더러 들으라는 것처럼 온갖 유세를 부리고 있었다.
자신의 신분도 알리고 에덴에 대한 홍보도 하려는 목적이었다.
얼마 전에 자신의 주접이 초래한 비극을 잊은 것인지, 아몬은 오늘도 어김없이 주접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아몬은 워프 마법진을 관리하는 직원의 ‘얼른 가세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라는 면박에 결국 워프 마법진을 통과했다.
‘고객 응대가 아주 형편없군.’
투덜거리며 에덴에 도착한 아몬이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에덴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번창하고 있었다.
얼마 전 축하연에 참석하느라 에덴에 왔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건물들이 뚝딱뚝딱 지어지고 있었다.
‘아임 형이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던데, 우리 형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군.’
아몬은 흐뭇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던 와중, 도시 곳곳에 펄럭거리고 있는 드레이크 가문의 상징 깃발을 본 아몬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몬은 얼른 아버지가 있는 영지로 향했다.
* * *
느닷없이 나타난 아몬을 본 아버지, 카임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응? 아몬, 아카데미로 돌아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왔느냐?”
어머니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휴가를 너무 자주 오는 것 아니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돌아온 아들을 반가워하지도 않는 부모님의 모습에 아몬은 야속함을 느끼며 말했다.
“아버지한테 여쭤볼 게 있어서 급하게 연차를 냈습니다.”
“응? 물어볼 게 있다고?”
머리를 긁적거린 카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래. 뭐가 궁금하느냐?”
“그게 말이죠…….”
아몬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회중시계를 풀어 카임의 책상에 올려놨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회중시계를 집어 든 카임이 그것을 살펴보고, 카임의 얼굴이 서서히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회중시계를 아몬에게 돌려준 그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어디서 얻었느냐?”
“……예전에 우리 아카데미에 교사들의 근무 태도를 살피러 감찰단이 방문했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에 대한 보상과 함께 부상으로 그 시계를 받았습니다.”
“그 말은 기념품으로 이걸 줬다는 말인데…….”
시계를 만지작거리던 카임이 말했다.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아버지를 찾아온 겁니다.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아서요.”
“흠…… 그렇구나.”
“혹시 아버지는 이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습니까?”
카임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야 알지. 나는 드레이크 가문의 현 가주니까.”
카임의 말에 아몬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굳이 연차를 내고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휴, 다행이군요. 혹시 모르시면 어쩌나 했는데.”
“다만…… 너에게 알려 줄 수는 없다.”
“예? 어째서요?”
카임이 쓴 얼굴로 아몬을 바라봤다.
“너는 차기 가주가 아니잖느냐?”
“……아.”
아몬은 카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가주인 카임은 시계에 얽혀 있는 사연을 알고 있고, 장남이 아닌 차남인 아몬은 가주직을 물려받을 수 없으므로 그 사연을 알려 줄 수 없다.
“오로지 가주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인 겁니까?”
“……그렇단다. 미안하구나. 나도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건 어쩌면 가문 전체가 큰 화를 입을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안이란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은 카임의 모습에 아몬이 입맛을 다셨다.
“그 말은, 제가 이 시계의 비밀을 모르면 우리 가문도 큰 화를 입지 않을 거라는 말이네요?”
“……아마도 그럴 것 같구나. 황실에서 이 시계를 너에게 하사했다며?”
“그렇죠.”
“그럼 황제 폐하도 이 사실을 묵인하겠다는 의미일 테니…… 굳이 더 깊게 파고들지 않는 이상 별일은 없을 거다.”
카임이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찌하겠느냐? 이 시계를 나에게 맡기겠느냐? 아니면 네가 가지고 있겠느냐?”
“제가 가지고 있다고 별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에게 맡길게요.”
아몬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카임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이 시계는 네가 가지고 있거라. 황실에서 너에게 하사한 물건이니 황제 폐하께서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겠지.”
카임은 아몬의 손에 시계를 쥐여 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이 시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파고들지 말거라.”
아버지의 당부에 아몬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그냥 허리에 장식으로 차고 있던 물건이에요. 굳이 더 파고들 이유도 없고, 생각도 없습니다. 이번에 찾아온 것도 혹시 아버지라면 알고 계실까, 싶었던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의문을 접으라면, 접어야죠.”
“……그래, 고맙구나.”
카임은 미소 지었다.
그가 아는 아몬은 한번 말한 것은 지키는 성격이다.
“그래. 기왕에 왔으니 오늘 저녁에 다 같이 식사나 하자꾸나. 아임도 오늘은 돌아올 거라고 했으니까 모처럼 가족 모두가 모이겠구나.”
“그래요? 그거 좋…….”
잠시 침묵한 아몬이 말했다.
“아미가 안 왔는데요.”
“……아, 맞다.”
* * *
그 시각, 아모니스 아카데미.
아미는 얼떨떨한 얼굴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아카데미에 들이닥친 ‘황실 근위 기사단’이 아몬을 체포하려다가 아몬이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동생인 아미를 냅다 붙잡은 것이다.
“어라? 나 왜…… 눈물이?”
아미는 돌연 느껴진 서러움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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