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7)
아카데미가 망했다 177화
잠시 후, 아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동안 연차를 내고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않았던 자신의 믿음직스러운 후배,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후배인 카이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카이! 구하러 왔구나!”
방으로 들어온 카이는 동행한 근위 기사단에 의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힘없이 털썩 쓰러지는 그의 모습을 본 아몬은 깨달았다.
‘아, 얘도 잡혀 온 거구나.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후배의 추태에 아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카이는 왜 붙잡힌 거지? 이 녀석은 황실을 보좌하는 가문인데……. 아니, 잠깐만! 설마 카이 이 녀석……?’
순간 아몬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애초에 카이가 아몬을 반역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끄나풀이었다면?
더 커다란 배후가 카이의 뒤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카이가 왜 붙잡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아몬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에 크게 낙담하며 절규했다.
“카이! 이 개새끼야! 네가 나를 낭떠러지로 걷어차 넣었구나!”
“아, 아몬 선배님…….”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 새끼는 거두는 게 아니랬는데, 옛말 그른 게 하나도 없구나! 내가 그토록 너를 믿고 의지했는데 이렇게 거하게 뒤통수를 쳐!?”
언제 믿고 언제 의지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몬은 거리낌 없이 카이를 향한 울분을 토해 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머리가 몸통과 작별할 텐데 뭐가 걸리겠는가?
아몬이 씩씩대며 한창 카이에게 울분을 토하는 와중이었다.
빡-!
갑자기 누가 뒤통수를 때리자 아몬이 눈을 홉뜨며 비명을 질렀다.
“악! 어떤 새끼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 천박한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뭐, 뭐?”
뒤를 돌아본 아몬은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인물이 근위 기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제의 명일 수행하고 있는 근위 기사는 황제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이미 몸통과의 작별 인사를 마친 아몬의 머리는 퉁명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여기가 무슨 안전이길래 뚫린 내 입으로 말도 못 해? 황제는 뭐 제풀에 씩씩거리면서 나가 버렸고, 여기에는 내 후배랑 당신네 근위 기사들밖에 없는데 내가 왜 입조심을 해야 해?”
“뭐, 뭐라고!?”
근위 기사가 된 이후로 정면에서 이따위 천박한 모욕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이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이미 말했듯이 아몬의 머리는 이미 몸통과 작별 인사를 마쳤다.
아몬은 정수리로 근위 기사의 각반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여기서 살려 달라고 싹싹 빈다고 당신이 살려 주기나 할 거야? 황제의 명령이 없으면 나를 멋대로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무슨?”
“이, 이이익……!”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근위 기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그러나 근위 기사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아까 말했던 ‘어느 안전’의 주인을 팔아먹기로 했다.
“황태자 전하의 앞이다! 그 천박한 주둥아리를 닫지 못하겠느냐!”
“뭐? 황태자 전하?”
아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몬, 분기탱천한 근위 기사, 상심해서 축 늘어져 있는 얼빠지고 약에 쓸래도 못 쓸 후배인 카이밖에 없었다.
아몬은 비웃음의 의미로 껄껄 웃었다.
“약을 팔아도 정도껏 팔아야지. 폐하가 황태자 전하 찾으러 나가셨는데 무슨 황태자를 여기서 찾아? 떽! 이놈, 이 어르신을 놀리면 못 쓰…….”
그때 옆에 축 늘어져 있던 카이가 어깨로 아몬을 툭툭 건드렸다.
“뭐야. 뭐 하는 거야. 왜 갑자기 치대고 그래.”
“……선배님.”
“뭐? 지금 나는 근위 기사님과 논리적인 토론을 하는 중이다. 너는 조용하고 있어라.”
카이가 말했다.
“그……. 사실 제가 황태자입니다.”
“……어?”
느닷없는 카이의 헛소리에 아몬이 멍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아몬이 황당해한다는 것을 깨달은 카이가 설명을 이었다.
“제 진짜 신분은 스트로 자작가의 카이가 아니라, 아모니스 제국의 현 황제인 아모니스 18세의 아들이자 황태자인 ‘카이야스 아모니스’입니다.”
“……?”
잠시 멍청한 얼굴로 카이를 바라보던 아몬이 피식 웃었다.
‘드디어 미쳤군.’
공포에 정신이 나가 버렸는지 스스로를 황태자라 생각하는 착란에 빠지다니!
나약하기 그지없는 후배의 정신머리에 아몬은 내심 탄식했다.
하지만 여기서 괜히 약해빠진 후배와의 말싸움으로 정신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하, 그래. 카이, 너는 황태자란다.”
“…….”
“그럼 우리 황태자 전하께서 왜 이렇게 나랑 같이 잡혀있는 걸까?”
비아냥이 듬뿍 묻어 있는 아몬의 말에 카이야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 시계 때문이죠.”
“허어, 그래?”
“제가 지난번 교원 평가 때 기념으로 선물해 드린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아몬은 공포로 정신이 나간 후배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솔직히 내심으로 ‘잠깐만, 이 새끼 정말로 황태자인가?’하는 의문이 조금 들었지만 아몬은 그 의혹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정말로 카이가 신분을 속인 카이야스였다간 자신의 입장은 지금보다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고백하는 건데, 내가 카이를 조금 홀대하긴 했지? 아주 조금, 카이 본인도 모를 정도로 아주 조금이지만 말이야.’
켕기는 게 있었기에 아몬은 카이를 자신이 황태자라고 착각하는 미친놈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는 게 옳으리라.
그러나 희망이라는 단어는 무너질 때 가장 빛나는 법이다.
“호튼 경, 황제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예, 황태자 전하. 폐하께서는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하기야 심적으로 고충이 심하시겠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는 카이와 그런 카이의 말을 받아 주는 근위 기사를 본 아몬의 눈가가 파르르 경련했다.
앞선 대화는 서로 잘 알고 지내는 관계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가 아닌가.
‘진짜 황태자인가?’
의혹이 슬금슬금 자신이 진실이라 주장하기 시작하자 아몬이 허겁지겁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날려 버렸다.
‘카이도 황실을 보좌하는 가문 출신이니까 근위 기사 한둘은 알고 있겠지. 그리고 이제 보니까 근위 기사도 단단히 미친놈이었군.’
필사적으로 행복 회로를 불태우는 아몬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 봐도 자신이 X됐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근위 기사가 아몬을 탐탁지 않은 얼굴로 노려봤다.
“황태자 전하, 이 무례를 범한 천박한 자는 어찌할까요? 어차피 황제 폐하께서는 이자를 엄벌할 생각이신 듯한데, 황태자 전하를 모욕한 명분으로 이자를 즉결 처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호튼 경은 황태자를 걱정하는 척하며 자신이 아몬에게 당한 모욕을 갚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호튼 경. 폐하의 어명을 기다리십시오.”
“……알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호튼 경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앞선 대화를 통해 아몬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황태자였구나.’
하긴, 예전에 황후를 만날 때 황태자를 불렀더니 카이가 슬금슬금 나타났을 때도 의심하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황후도, 카이도 말을 맞춰서 거짓으로 둘러댔었기에 아몬도 의혹은 품었지만 애써 그 의심을 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몬도 더 이상 카이를 미친놈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하아, 젠장. 카이야.”
“……예, 선배님.”
“아니지, 황태자 전하.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나를 이렇게 함정에 빠트렸대?”
아몬은 말로는 황태자 전하라고 해도 평소 카이를 대하듯 대했다.
이 상황까지 처하니 대접해 줄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이 천박한 놈이……!”
당연히 발끈한 호튼 경이 검을 뽑자 카이가 엄한 얼굴로 말했다.
“호튼 경,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끙……. 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
비록 지금 당장은 역모의 혐의로 이곳에 있는 황태자지만, 확실한 처분을 받기 전까지는 호튼 경도 카이를 황태자로 대해야 했다.
호튼 경이 물러서자 카이가 입을 열었다.
“아몬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건 오해와 실수가 겹쳐 일어난 사고일 뿐입니다.”
“오해와 실수? 두 사람의 모가지가 문자 그대로 날아가게 생겼는데 오해, 실수라는 단어로 포장이 될 것 같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떨어트리는 카이를 본 아몬이 짜증스레 허리를 흔들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시커먼 회중시계가 덜그럭거리며 흔들렸다.
“이 망할 시계가 대체 뭐길래 반역이니 뭐니 하는 건데?”
“……휴.”
아몬의 의문은 정당했다.
그렇기에 카이야스는 가는 길 선물으로라도 아몬의 의문을 풀어주고 싶었다.
‘황제 폐하께서 저 시계에 얽힌 비화를 설명해 주지는 않으실 테니까.’
황제가 돌아온 순간 아몬과 자신은 처형대에 오를 게 분명했다.
그러니만큼 아몬에게 최소한 이유라도 알려 주고 싶었다.
“호튼 경.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 줄 수 있겠습니까?”
“예? 하지만 황태자 전하…….”
“비록 내가 죄인의 신분으로 이곳에 있지만, 나를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허튼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호튼 경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황태자 전하의 명예를 믿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호튼 경. 죽어서라도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단 5분입니다. 그 이상은 안 됩니다.”
5분이라면 아몬에게 설명해 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맙습니다, 호튼 경.”
“……흠흠, 저는 요의가 급하니 잠시 변소에 다녀오지요.”
호튼 경이 방을 나간 후, 카이야스는 아몬을 바라봤다.
“그 시계에 얽힌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몬은 꽁꽁 묶인 채 턱을 까딱거렸다.
“얼른 말하기나 해. 내가 왜 죽는지나 알고 죽자.”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의 관계는 알고 계실 겁니다.”
“아모니스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모니스 대제와 우리 드레이크 가문의 초대 가주인 드레이크 대공이 형제, 내지는 친척 사이였다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현 시점에서도 저와 아몬 선배님은 먼 친척 사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고개를 끄덕인 카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도 최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충격을 금치 못했던 진실.
그 진실을 입 밖으로 내려니 다소 망설여졌지만, 아몬에게는 진실을 알 자격이 있다.
크게 심호흡을 한 카이가 말했다.
“아모니스 제국을 건국한 것은 아모니스 가문이 아닌 드레이크 가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황태자, 카이야스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