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8)
아카데미가 망했다 178화
아모니스 제국을 건국한 것은 드레이크 가문이다!
아모니스 제국의 황태자가 내뱉은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아몬은 자신이 잘못 들었구나 싶은 마음에 귀를 후비려 했다.
하지만 포승줄 때문에 막힌 귓구멍을 긁을 수 없었던 아몬은 한참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끄응, 이제 조금 낫군. 그래서 카이야, 뭐라고?”
“제국을 건국한 것은 아모니스 가문이 아니라 드레이크 가문입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아몬은 탄식했다.
곧 죽을 거라는 공포 때문에 카이가 드디어 미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카이야, 인생이란 원래 덧없는 것이다. 그만하고 죽음을 받아들여라.”
“무슨 소리십니까?”
“어허, 이 녀석이 그래도.”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연차를 낸 이후 며칠간 황실의 비밀 서고에 박혀서 두 가문 사이의 진짜 내막에 관해 조사했다고요.”
카이의 표정은 자신의 주장이 티 하나 없는 결백이라 말하고 있었다.
워낙 절박한 표정이었기에 아몬도 슬금슬금 설득당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예,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진실입니다.”
“아모니스 제국을 건국한 게 아모니스 대제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사람이었다고……?”
황당함을 뛰어넘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린 아몬이 말했다.
“……우리 가문의 초대 가주인 드레이크 대공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드레이크 대공, 그가 아모니스 가문의 초대 가주인 대제 아모니스의 형이자 전우였습니다.”
“동생도 아니고 형이라…….”
아몬이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대체 어째서? 드레이크 대공이 제국을 건국했는데 어째서 아모니스 대제가 초대 황제가 된 거야?”
“……이유는 간단합니다.”
카이가 심호흡을 했다.
“아모니스 대제와 드레이크 대공은 함께 힘을 합쳐 혼란스러웠던 대륙을 평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병사들과 사람을 토대로 국가를 건국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달이 일어난 겁니다.”
“사달?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국가의 건국을 선포하고, 드레이크 대공이 초대 황제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대관식 날…….”
아몬이 침을 꿀꺽 삼켰다.
“대관식 날……?”
피바람이라도 불었나? 아모니스 대제가 뒤통수를 때렸나?
아몬이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와중, 고개를 푹 떨어트리고 있던 카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드레이크 대공이 술 먹고 숙취로 대관식에 불참했습니다.”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뭐?”
“…….”
“어, 그? 숙취로, 대관식에 불참했다고? 자기가 정식으로 황제 자리에 오르는 날인데?”
카이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치심으로 얼룩진 얼굴을 본 아몬은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드레이크 가문과 아모니스 가문의 비화를 알았던 날!
아몬의 할아버지 되는 벨리알 드레이크가 현 황제의 소시지를 뺏어 먹었다고 개같이 싸웠다는 진실을 알았을 때의 그 기분!
“그딴 게, 아모니스 제국의 탄생 비화라고……?”
카이도 ‘그딴 게 진실’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수치스러운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대관식에 불참했다고 다른 신하들이 우르르 모여서 아모니스 대제를 황제로 추대한 거였어?”
“……예. 아주 인사불성이 되어서 깨워도 깨질 않았더군요. 그렇다고 술에 취해서 자는 사람을 앉혀놓고 대관식에 진행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당시 아모니스 대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절반, 드레이크 대공을 지지하는 세력이 절반으로 거의 백중지세의 구도였습니다. 그런데 숙취로 자신의 대관식에 불참했기에…….”
“……내가 드레이크 대공의 세력이었어도 아모니스 대제를 지지했겠다.”
“바로 그겁니다…….”
아몬은 드레이크 대공이 원망스러웠다.
그가 그 전날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도 아몬이 황제의 아들이었을 텐데!
‘……아니지, 술 먹고 대관식에 불참하는 꼬라지를 보면 드레이크 제국은 10년 안에 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자신의 선조라도 한심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드레이크 대공은 대관식이 끝난 다음 날, 숙취에서 깨어나서 황궁을 아주 뒤집어엎었다더군요. 내 황제 자리인데 왜 동생 놈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냐면서요.”
“……우와오.”
선조의 혐오스러운 인성에 아몬은 감탄만 나왔다.
‘나였으면 부끄러워서 황궁에는 들어가지도 못했을 텐데!’
“게다가 무력으로는 드레이크 대공이 아모니스 대제보다 한 수 위라서 제지하려는 아모니스 대제도 얻어맞았답니다.”
‘선조님…… 당신은 대체……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가문에서 보유한 실록에서도 ‘황제가 드레이크 대공과의 개싸움에서 두들겨 맞고 앓아누웠다’는 대목이 있었다.
애초에 드레이크 대공이 황제보다 한 수 위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아모니스 대제가 드레이크 대공에게 대공위를 하사하고서야 일이 일단락됐답니다.”
“미치겠군. 그래도 대공위면 어지간한 나라의 왕 직위는 되니까 그걸 받고서야 만족했다는 거 아니야?”
“그런 거죠.”
“……하, 선조님.”
결국 드레이크 가문의 선조인 드레이크 대공이 난동을 피우고 생떼를 부리고서야 ‘드레이크 가문’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수치스러움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아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이는 다시금 가혹한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아모니스 대제는 드레이크 대공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용서했다고? 그걸?”
아모니스 대제는 천사인가?
“나였으면 아주 백만대군을 끌고 가서 치도곤을 냈을 텐데.”
“……그랬다면 선배님도 여기 계시지 못할 텐데요.”
“그건 그래. 아무튼 드레이크 대공이 용서받았는데, 그래서?”
“문제는 드레이크 대공이 아모니스 대제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뭔……!?”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아몬은 헛숨을 들이마시고 말았다.
카이는 연이어 가혹하고 수치스러운(아몬에게)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드레이크 대공은 아모니스 대제가 자신에게 약을 탄 술을 진탕 먹여서 자신이 대관식에 불참한 것이라고 소문을 냈답니다. 문제는 아모니스 대제께선 술을 전혀 못 마셨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우리 가문 사람들이 대부분 술을 못 마셔요. 아모니스 대제는 특히 심해서 술 냄새만 맡아도 질색을 했다고 하시더군요.”
“앗, 아아…….”
그러고 보니 아몬도 카이가 술을 마시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드레이크 대공의 주장은 금세 반박당했고, 그래서 아모니스 대제와 마주칠 때마다 허튼짓을 해서 시비를 걸었다고…….”
“그만, 그만해…….”
“한 번은 아모니스 대제께서 몇 개월에 걸쳐 손수 만든 고기 훈제를 드레이크 대공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서 훔쳐 먹었다고…….”
“그만해, 제발…….”
실록에서 본 내용까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자 아몬은 수치심에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그 기록이 진실이라는 보장이 없잖아?”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당대에 청렴결백으로 유명한 벨몬트 사관이라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양 가문의 비화를 진실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벨몬트 사관이라는 사람의 이름도 실록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얼마나 상세하게 내용을 기록했으면 그 망나니 같은 드레이크 대공을 용서한 아모니스 대제조차 ‘쓰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며 벨몬트 사관을 업어치기 하지 않았던가.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 하겠다…….”
“저도 실록의 속편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
“결국 그래도 아모니스 대제는 ‘황제 자리를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빼앗겼으니 섭섭할 만도 하겠지’하며 넘겼는데, 드레이크 대공은 아모니스 대제를 향한 억하심정을 접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의 선조가 보인 끝없는 추태에 아몬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아몬이 직접 자신의 양 주먹으로 드레이크 대공을 때려죽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드레이크 대공은 자기 자식한테도 자신이 겪은 수모와 울분을 낱낱이 말해 줬다는 겁니다…….”
“뭐, 뭐…….”
“자신은 아모니스 가문의 악랄하고 잔혹한 술수에 놀아난 나머지 황제의 자리를 빼앗겼으나 아들아, 너는 와신상담하여 아모니스 가문에 처절한 복수를 해 달라고…….”
“설마, 잠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마 실록 대대로, 자신의 선조가 대대로 아모니스 가문의 황제와 끝없이 다퉈 온 이유가……?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이크 가문에서는 대를 물려 가며 아모니스 가문에 대한 원한을 뿌리 깊게 새겼다고 합니다…….”
“…….”
“그래서 실제로도 드레이크 대공의 사후 드레이크 가문에서 한 번쯤 반역의 모의를 하긴 했는데…….”
“했다고!? 진짜 역적질을 하려고 했다고!?”
“……예, 드레이크 가문의 5대 가주가 실제로 저지르진 않았지만, 반역을 계획한 것에 대한 처벌로 대공위를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모니스 6세쯤 되니까 드레이크 가문의 가주가 대공이 아니라 공작으로 바뀌긴 했었다.
“아무튼 아모니스 대제께서 드레이크 대공에게 두들겨 맞았던 것에 한이 맺히셨는지, 자신의 자식들은 항상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익히게 했답니다. 두 개를 동시에 다루면 맞고 살 일은 없을 거라면서…….”
그런 이유로 현 황제인 아모니스 18세도, 황태자인 카이도 검술과 마법 모두 경지에 오른 실력자란 말인가?
“아, 아아…….”
어처구니없는 진실에 결국 언어 기능을 상실한 아몬은 입만 뻐끔거렸다.
‘근데 그 이후로도 종종 황제들이 우리 가문 선조들한테 맞던데…….’
아몬은 굳이 그 말은 내뱉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때로는 감춰진 진실이 더욱 아름다울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휴, 하여간 그런 이유로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의 악연이 깊어진 것입니다.”
“…….”
“물론 아모니스 대제는 드레이크 대공을 용서했지만, 후대의 황제들이 드레이크 가문을 용서하진 않았으니…… 서로 치고박고 싸우고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다더군요. 아, 이것도 벨몬트 사관의 자식이 대를 이어서 기록한 것이니 거짓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벨몬트 사관도 몇 대를 이어서 사관을 해 먹는구나.”
“지금도 벨몬트의 성을 쓰는 사관이 있습니다.”
“돌아버리겠군, 정말로.”
아몬이 묶인 채 몸을 뒤척거렸다.
허리춤에 매여진 시계가 덜그럭거렸다.
“그래서, 이게 그 드레이크 대공의 물건이라는 거냐?”
“……맞습니다.”
“아주 그냥, 우리 가문은 반역의 핏줄이네?”
“……굳이 그렇게 표현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운한 사건과 사고가 겹친 오해의 연속이었을 뿐입니다.”
카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애초에 저와 아몬 선배님만 해도 잘 지냈지 않습니까?”
그랬나? 잘 지냈나?
하지만 어차피 좀 있으면 둘 다 나란히 죽을 마당이었기에 아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후배였다.”
“아아…… 아몬 선배님.”
카이가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는 순간이었다.
덜컹-!
문을 박차고 들어온 황제가 으르렁거리며 아몬과 카이를 노려봤다.
“카이야스.”
“폐, 폐하.”
크게 심호흡을 한 황제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주겠다. 네놈은 내가 앞으로 긴히 지켜볼 것이야.”
“……예?”
“이미 네놈을 다음 황제에 앉히기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런데 네 녀석을 처벌했다간 추태도 그만한 추태가 없다. 그러니 당분간 자중하고 있어라! 알겠느냐!”
속사포로 말을 쏟아 낸 황제가 이번에는 아몬을 노려봤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네놈은 죽어 줘야겠다!”
“무, 무슨 진실 말입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황제가 낄낄 웃었다.
“내가 뭐 한다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겠느냐? 황태자가 네놈에게 진실을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밖에서 찬바람이나 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네놈이 진실을 알게 됐으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네놈을 죽여야겠지?”
“뭐, 뭣……!?”
충격으로 입을 떡 벌린 아몬이 고개를 카이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카이, 이 새끼가 결국 나를 또 벼랑 밑으로 걷어차는구나!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