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79)
아카데미가 망했다 179화
카이가 자신을 또 나락으로 걷어찼다는 생각에 아몬은 이를 꽉 깨물고 저주를 잔뜩 담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느낀 카이는 식은땀을 흘렸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지금은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머리통이 터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
카이는 황제를 향해 넘어지는 것처럼 납죽 엎드렸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 허허허허! 지금 네놈이 자기 입장을 잘 모르나 본데, 나도 좋아서 네놈을 극형에 처하지 않는 게 아니니라! 말했듯 네놈을 이미 다음 대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그 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부득불 네놈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화난 어조로 쏘아붙인 황제가 손을 휙 흔들었다.
“에이! 듣기 싫다! 여봐라! 당장 이 어리석은 황태자를 끌고 가거라!”
황제의 노성에 우르르 몰려 들어온 근위 기사들이 카이를 붙잡았다.
그러나 소드 마스터 최상급인 것과 동시에 8서클의 대마법사인 카이가 작정하고 버틴다면 아무리 날고 기는 근위 기사들도 강제로 그를 끌고 갈 수 없었다.
카이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엎드려 말을 이었다.
“폐하! 잊으셨습니까? 사사로운 일에 눈이 멀어 대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뭐? 사사로운 일!? 지금 그게 황태자의 입에서 나올 말…….”
“머지않아 마왕이 부활하리라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카이의 말에 황제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 중요한 사실을 떠올리곤 껄껄 웃었다.
“크하하하! 네놈, 그 알량한 혀로 짐을 농락하려 드는구나! 마왕이 부활하려면 아직 수백 년의 시간은 남았다! 한데 어찌 감히 마왕을 들먹여 죄를 피하려 드느냐!”
중요한 지적이었지만, 카이는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였다.
“하오나 그것은 단순한 추측일 뿐입니다! 만에 하나 마왕이 부활하는 시기가 앞당겨진다면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마왕의 부활이 앞당겨져?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이미 저지한 마왕의 출현을 저지한 것도 모두가 입을 모아 ‘가능할 리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몬 선배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해냈습니다!”
“……크흠!”
카이가 ‘혹시 모를 위험’과 ‘아몬의 공’을 동시에 내세우자 이번에는 황제 역시 할 말이 없었다.
죄는 죄고 공은 공이다.
황제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카이가 연이어 말을 이었다.
“그 공을 귀히 보아주시어 당분간은 아몬 선배의 처벌을 미뤄 주십시오! 또한 마왕의 부활은 제국, 나아가서는 대륙 전체에 화마를 불러올 중대한 사안입니다! 폐하의 정보력을 감안하시면 마왕의 부활을 예언하는 아마란스 혈족의 드래곤과도 얼마든지 접촉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마왕의 부활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점쳐 본 이후 형을 집행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끙…… 이놈이…….”
이제 황제는 폭풍 속의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말대로 황제의 정보 집단인 ‘황제의 눈’은 현재 아마란스 혈족의 당주인 저스티시엘이 쥰마니 왕국에서 작은 상단을 운영하는 유희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한 상태였다.
‘확실히 마왕의 부활은 중대한 사안이다. 확신을 가진 후 가증스러운 드레이크 일족의 젊은 놈을 조져, 아니지. 처벌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황제, 아모니스 18세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아몬을 노려봤다.
아몬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몸뚱이와 애절한 작별을 나눈 이후인지라 자포자기해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카이의 처절한 변호로 삶의 희망이 조금 생기자 아몬은 더없이 위풍당당한 얼굴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 있었다.
‘끙, 저 헌앙한 대장부인 척하는 꼴을 보니 당장 혼쭐을 내고 싶군. 다만 카이야스의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황제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성군으로서의 자질이 가증스러운 드레이크 일족의 아몬에게조차 한 줄기 선의를 보이려 하고 있었다.
황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이가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폐하, 물론 죄인인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오나 폐하의 심정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아몬 선배가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 사이의 비화를 누설할 것이 우려되시는 게 아닌지요?”
“…….”
“분명 그것은 제국의 근간을 흔들지도 모를 중대한 비화입니다. 사실 제국의 주인이 아모니스가 아닌 드레이크 가문이라는 사실을 어느 뜻 모를 무뢰배들이 깨닫는 순간 그것을 빌미로 정통성에 관한 문제를 걸고넘어질 것입니다.”
황제는 침음했다.
지금껏 수많은 국가와 그곳을 다스리는 왕들이 똥멍청이라서 자신의 왕권을 빼앗긴 게 아니다.
그 정도로 ‘정통성’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허술한 정통성은 변수가 나오는 순간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드레이크 가문은 어찌 보면 아모니스 가문보다 한층 더 커다란 정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드레이크 대공이 숙취로 대관식에 불참하지만 않았더라도 거대한 제국의 주인은 드레이크 가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비화가 알려진다면, 역사서 속에서 드레이크 대공이 주장했던 것처럼 자신이 대관식에 불참한 이유가 아모니스 가문의 협잡질 때문이라고 믿는 도당들이 출현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황좌의 주인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한 그들은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제국의 주인을 바꿀 수 있다면, 그들은 황가의 비호 아래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 황태자의 말대로 나는 그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굳은 얼굴로 말하는 황제의 말에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우려는 결국 비화가 발설되느냐, 발설되지 않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아몬 선배님.”
아몬이 헌앙하기 그지없는 대장부의 시선으로 카이를 바라봤다.
“그래, 카이 후배, 황태자, 후배…….”
“후배로 대해 주십시오.”
“어, 그래, 카이야.”
“아몬 선배님은 혹여 이 비밀을 누설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현 황실을 전복시키고 황좌를 차지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십니까?”
카이의 물음에 ‘오, 내가 황제가 되면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아몬이 급속도로 정색하며 말했다.
“나는 황좌에 아무런 욕심도 없다. 나는 그저 학생을 가르치며 평온하게 사는 게 행복한 소시민 중의 소시민이다. 게다가 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취미는 없어!”
아몬의 말에 카이는 잠시 흠칫했다.
‘얼마 전에 라스티아넬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한테 떠벌리셔 놓고…….’
아무튼 아몬도 일단 비밀을 떠벌릴 가능성을 부정하자 카이가 거 보라는 듯 황제를 바라봤다.
하지만 황제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흥! 입으로는 뭐라 말하지 못할까?”
“물론이죠. 폐하께서도 그 정도로는 납득하실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잠시 뜸을 들인 카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몬 선배를 황실의 일원으로 맞이하시는 건 어떨는지요?”
“뭐라!?”
“뭣!?”
아몬과 황제가 동시에 경악했다.
이건 또 무슨 논두렁으로 굴러떨어지는 소리란 말인가!
“폐하, 분명 5황녀의 미색과 마음씨가 고우며, 황가의 일원답게 총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 막 혼기가 찬 나이가 되었지요.”
“설마…….”
“예. 5황녀와 아몬 선배가 혼인한다면, 아몬 선배는 황실의 일원이 되는 거지요.”
카이는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아몬 앞에서 말하기에는 조금 실례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다음 대 황제로 확정된 상황이긴 하지만, 5황녀쯤 되면 황위의 계승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아몬 선배의 입장을 생각하면 데릴사위로 들어와야 할 테니 계승권은 더더욱 멀리 날아가 버리지.’
더군다나 정말로 황실의 데릴사위가 되어 버린다면 아몬이 알고 있는 비밀을 다른 이들이 알게 되더라도 그 가치를 잃게 되어 버린다.
어떤 면에서는 아모니스 가문보다도 확고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드레이크 가문의 차남이 황실의 데릴사위가 됐다는 말은, 이미 그 정통성을 포기하고 굽히고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한편 황제도 카이의 그러한 속내를 파악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렇겠군. 게다가 5황녀, 그 총명한 아이라면 저 가증스러운 놈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겠지. 게다가 그 아이는 빅토리아를 닮아 당찬 면이 있단 말이야. 또한 황실의 일원이 된다면 저놈을 감시하는 것 역시 쉬워진다. 물론 저놈은 마음에 안 들지만, 확실히 나쁘지 않은 계획이야.’
때문에 황제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고, 카이는 자신의 말이 잘 먹혔다는 사실에 흐뭇해하고 있었으며, 아몬은 토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하다 하다 황실의 데릴사위가 되라고?’
왜 세상은 ‘아직은 교사 일에 집중하고 싶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이토록 가벼이 여기는가!
‘내가 아직은 혼인을 하고 싶지 않다는데, 왜 모두들 나를 결혼을 못 시켜서 안달이지?’
아몬이 원망과 저주의 시선으로 카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카이는 그 공허한 시선을 잘못 해석했다.
‘하하! 아몬 선배님도 내 제안에 많이 놀라셨나 보군. 하지만 황실의 일원이 될 기회이니 아몬 선배도 내심 기쁘실 테지!’
아니다.
아몬은 지금 토할 것 같다.
하여간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황제가 결국 입을 열었다.
“크흠, 내 황태자의 제안을 진중히 고려해 보겠느니라.”
“감사합니다, 폐하.”
‘안 돼, 안 돼…….’
“또한 마왕의 부활 건에 대해서도 내 정보 집단을 움직여 확실하게 알아보겠다. 황태자의 말대로 이런 일은 확실할수록 좋은 법이니 말이다.”
“폐하의 혜안에 감사드리옵니다.”
‘카이, 네 이놈……. 말도 안 된다고!’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드레이크 가문의 네놈은 당분간 이곳 별실에 머물며 네놈의 처우를 기다리거라. 알겠느냐?”
“…….”
“이놈! 짐이 묻지 않았느냐!”
“아, 눼.”
아몬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이미 심사가 꼬일 대로 꼬여서 제대로 대답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 모습에 황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지만, 솔직히 황태자의 말을 잘 듣고 보니 아몬을 이대로 제거하는 것은 아까웠다.
‘마왕의 부활을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힘을 지닌 놈이다. 이대로 제거하는 건 아깝지.’
그러니 살려서 두고두고 부려 먹을 작정이었다!
“커흠! 내 이번 한 번만은 드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마.”
“서어엉은이 망극합니다요.”
“……커허허험!”
애먼 헛기침을 터뜨린 황제가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별실을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근위 기사가 황제에게 다가와 말했다.
“폐하, 시급히 폐하를 뵙고자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뭐라? 누가?”
“그게…….”
근위 기사가 다급히 말했다.
“엘프 왕국의 국왕과 그의 여식 되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학교장, 펜도리안 공작가의 태상가주와 가주의 여식 되는 영애, 피드 후작가의 가주와 그의 여식 되는 영애. 이렇게 모두 여섯 분이 폐하를 뵙고자 하십니다.”
“…….”
황제의 얼굴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마냥 홀대하기 힘든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