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
아카데미가 망했다 18화
“우리 집에 머무르겠다고요?”
“네, 안 되나요?”
“왜 될 거라 생각하시죠?”
“왜 안 되죠?”
고개와 귀를 갸웃거리는 아나르엘에게 말했다.
“학교장님은 엘프라 잘 모르시나 본데, 인간 사회에서는 남의 집에 멋대로 찾아가는 게 굉장한 실례랍니다. 잘 아시겠습니까?”
아나르엘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말했다.
“솔직히 제가 인간의 관념에 익숙지 않은 건 인정해요. 그건 종족의 차이 때문이니까. 하지만 당신보다 귀족 사회 물을 더 많이 먹은 엘프로서 충고하건대, 다른 귀족들에겐 그런 말 마세요. 욕먹어요.”
“……예?”
“귀족 간에 서로의 자택에 방문하는 것은 서로의 세를 과시하고 확인하기 위한 일상적인 행위랍니다. 즉, 상대 귀족의 방문을 거절하는 것은 제법 큰 무례라고 할 수 있죠. 저야 괜찮지만, 다른 귀족들에겐 조심하세요.”
“…….”
웬일로 아나르엘이 옳은 말을 했다.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좋아하는 귀족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관습이었다.
아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까놓고 아나르엘을 집에 들이기 싫어서 대충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진지하게 지적당하다니.
“……잘도 아시네요.”
무심코 튀어나온 본심에 아나르엘이 헤헤 웃었다.
“의도는 달라도, 엘프에게도 비슷한 문화가 있으니까 그나마 와닿더라고요! 집에 머무르게 할 정도로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죠!”
“하하하! 저는 학교장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어머나! 농담도 참!”
농담 아닌데.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네?”
“학교장님을 우리 영지에 초대하기 싫다! 그게 본심이라면 어떡할 겁니까?”
순간 아나르엘의 귀가 땅에 닿을 기세로 축 늘어졌다.
“왜,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큰일이군.
늘어진 귀의 각도를 보아하니,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흘 내내 눈만 마주쳤다 하면 ‘흥!’ 하고 삐진 티를 팍팍 낼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땐 전혀 신경 안 썼지만, 이번만은 다르단 말이지.’
그렇게 삐지면 아나르엘의 워프 마법은 꿈도 못 꾼다.
즉 집에 갈 수 없단 뜻이다.
‘하필 삐지는 것도 나흘, 휴가 기간도 나흘.’
어쩔 수 없군.
원래 말도 타기 전에는 당근도 주고 빗질도 해 줘야 하는 법.
채찍도, 박차도 타고 나서나 쓸 수 있는 것이다.
아몬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제가 ‘만약에’라고 했잖아요! 제가 왜 학교장님을 우리 영지에 초대하기 싫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학교장님을 우리 영지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군요!”
아나르엘의 귀가 슬금슬금 제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정말인가요?”
“그럼요! 다만 우리 영지가 풍족한 편은 아니라서, 큰 대접은 못해 드린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나르엘은 어느새 방실방실 웃으며 귀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번 방문은 교사의 격려를 위해서니까요!”
격려해 줄 거라면 영지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워프 마법이 걸려 있기에 아몬은 그 말을 삼키며 활짝 웃었다.
* * *
‘그럼 짐 챙기고, 처리하던 서류만 마저 끝내고 출발해요!’
아나르엘의 말이 있었기에 아몬은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물론 짐이라 해 봐야 별것 없다.
‘어차피 워프 마법으로 갈 거니까.’
갈아입을 옷은 집에 있을 거고 식량도 필요 없다.
즉 챙길 건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임을 증명하는 수첩 하나가 전부!
“그리고 내 전 재산 1골드 43실버 65쿠퍼.”
모든 짐을 챙긴 아몬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똑똑-!
“응? 누구십니까?”
“날세, 마리온.”
얼른 문을 열어 줬다.
“휴가를 간다면서?”
“예, 맞습니다. 그런데 아직 말씀 안 드렸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학교장이 말해 주던걸?”
그걸 왜 제가 말해 줄까?
뭐, 생각해 보면 동료 교사니 업무를 생각하면 말해 두는 게 옳을지도 몰랐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허허, 아닐세. 자네가 온 지 벌써 세 달이 지났으니 다녀올 때가 되긴 했지. 자, 받게나.”
마리온이 웬 술병을 건넸다.
“이건…….”
“아무르의 명주인 디데이 아무르일세.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게.”
“헉!”
이건 한 병에 거의 1골드는 하는 술 아닌가!
“가, 감사합니다!”
“허허허, 후배가 첫 휴가를 간다는데 이 정도야 뭘.”
푸근하게 웃은 마리온이 말했다.
“돌아올 때 선물을 기대하겠네.”
저게 본심이었구나.
그러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술병을 챙기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래. 아무튼 학생들 경진대회도 끝났겠다, 나도 휴가를 내서 만날 사람이 생겼다네. 그래서 같이 못 가게 된 건 미안하군.”
“예, 그러시…… 예? 같이 못 가게 됐다뇨?”
고개를 갸웃거린 마리온이 말했다.
“응? 이번 휴가에 다 함께 자네 영지로 가는 거 아니었나?”
“……예? 누가 그럽니까?”
“학교장님께서 그러시던걸?”
아몬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눈을 깜빡이는 일상적인 행위조차 버벅거리는 것이다.
“……학교장님이요?”
“그래. 아르마 산맥까지 가는 게 처음이시고, 거기까지 갈 기회도 흔치 않으니 ‘현장체험 학습’ 명목으로 함께 떠나는 것도 좋겠네!라고 하시던걸?”
“……….”
점점 굳어 가는 아몬의 얼굴을 본 마리온이 헛기침을 했다.
“합의된 이야기가 아니었나 보군.”
“…….”
“허, 허허허! 아무튼 나도 휴가를 냈으니 먼저 가 보겠네! 휴가 잘 보내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리온은 도망가듯 부리나케 달아났다.
그리고 홀로 남은 아몬은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스으읍…… 휴우.”
이윽고 분노가 가라앉자 아몬은 학교장실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좋아, 학교장을 죽이자.”
분노가 가라앉은 게 이 정도였다.
그리고 학교장실로 향하는 와중.
“선생님!”
“응? 보리스?”
“휴가 가신다면서요?”
“……그, 그렇단다.”
그 망할 엘프가 보리스에게도 말한 건가?
“헤헤, 기대되네요!”
“……뭐, 뭐가 기대되니?”
“네? 선생님 영지가 있는 아르마 산맥으로 현장체험 학습 가는 거 아니었나요? 마침 경진대회도 끝났으니까 분위기 전환 겸으로요.”
아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학교장님이 그러셨니?”
“네.”
“……그렇구나.”
“네! 그럼 얼른 짐 챙길게요!”
후다닥 사라지는 보리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몬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결심이 섰다. 학교장을 죽이자.’
그리고 다시 학교장실로 향하던 와중.
마침 학교장실에서 나온 클로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몬 선생님!”
“……그래, 클로에. 우리 영지에 가는 게 기대된다고 말하려고 하는구나?”
“네? 아, 네. 맞아요.”
“하하하, 그렇구나!”
웃음을 터뜨린 아몬이 클로에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그래. 얼른 짐 챙기러 가렴.”
“네, 선생님.”
클로에가 멀어지자 아몬이 옷매무새를 정갈하게 정리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학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아몬입니다.”
“아, 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나르엘이 환히 웃으며 반겨 줬다.
“서류 처리 거의 다 끝났어요! 무슨 일이…….”
말하던 아나르엘이 멈칫했다.
“문은 왜 잠그는 거죠?”
“…….”
“아, 아몬 선…… 꺄아악! 내 귀!”
* * *
“우리 영지가 무슨 관광지입니까?”
“훌쩍…….”
“애초에 집에 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제 아버지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대로 일을 진행해요? 저도 아니고, 학교장님이?”
“훌쩍!”
힘차게 코를 먹는 아나르엘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이미 학생들은 기대에 차서 짐을 꾸리고 있는 상황!
그런데 거기다 대고 ‘안 갈 건데?’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학생들은 그렇다고 칩시다. 학교장님도 그렇다 치자고요. 그런데 마리온 선배님께는 왜 같이 가자고 말한 겁니까?”
“…….”
“그래도 못 간다 하시니 다행이군요. 다른 분들은 데리고 갈 명분이 없으니까.”
그때 아나르엘의 눈동자가 바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말했다.
“……설마 다른 분은 간대요?”
아나르엘이 귀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요? 갈 사람이 없는데?”
남는 사람은 부학교장과 슬로스다.
다만 부학교장은 아몬을 싫어하고, 슬로스는 모두가 알다시피 게으름뱅이다.
“슬로스 선생님이 같이 갈 거래요.”
“말도 안 돼!”
경악에 휩싸인 아몬이 말했다.
“거짓말! 그 인간이, 아니지. 그분이 아카데미 밖으로 나갈 리가 없잖아요!”
“……간대요. 부학교장이 안 가기로 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지?
“봐요. 마리온 선생님 휴가, 아몬 선생님도 휴가. 저도 휴가. 학생들도 없고, 남는 사람은 부학교장님과 슬로스 선생님뿐.”
“…….”
“그런데 둘뿐인데 부학교장님 성격에 슬로스 선생님을 내버려 둘까요?”
슬로스는 그나마 다른 사람들이 시선을 분산시켜 줬으니까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부학교장은 슬로스를 절대 내버려 두지 않겠지.’
수업 준비를 시키건, 청소를 시키건 뭐든 시키려 들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식당일을 도우라 하는 거겠지.’
결국 슬로스는 아몬의 영지로 현장체험 학습을 간다는, 최악보단 차악을 택한 것이리라.
“……그런데 학교장님.”
“네?”
“그럼 부학교장님이 혼자 여기 남게 된다는 뜻인데…….”
아나르엘의 눈동자가 다시금 바닥으로 향했다.
“일단 제 금고에 자물쇠는 걸어 뒀어요.”
“……부학교장님 금고에는요?”
“……손도 못 대게 하더군요.”
“……….”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돌아왔더니 신축 초호화 식당을 보지 않으려면 부학교장을 억지로 끌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왜, 왜 이렇게 뒷목이 아프지……?”
뒷목을 잡고 끙끙대는 와중, 학교장실로 들어온 마리온이 말했다.
“학교장님, 제 지인에게 급한 일정이 생겼다고 해서 휴가를 반납하려고 하는데, 현장체험에 같이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어억!”
아몬은 결국 뒷목을 붙잡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 * *
아나르엘이 워프 마법을 준비하며 말했다.
“자, 다들 준비됐죠?”
“네!”
모두들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내친김에 술병을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마리온, 침낭을 꼭 안고선 이 순간에도 졸고 있는 슬로스!
그리고 안 가겠다며 버티다 제압당해 기절해 있는 브레슬!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인간들.’
이런 것들을 데리고 휴가를 간다고?
‘그것도 우리 영지로?’
지옥이 다른 게 지옥일까? 이런 게 지옥이지.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가 좋게 설득해 돌려보내는 것뿐이다.’
핑계거리야 많다.
영지의 궁핍한 사정, 식사 대접의 애로사항 등등.
‘그러니 아버지, 부디 제 염원을 들어 주십시오!’
간절하게 소망하는 도중 워프 마법이 발동됐다.
* * *
결국 쓰레기들과 아버지, 카임 드레이크 남작의 만남은 성사됐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들을 따사로이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누추한 곳이지만 부디 편히 쉬다 가십시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드레이크 남작님.”
“별 말씀을요, 학교장님.”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 왜 그런 끔찍한 선택을!’
아버지는 다른 일행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마리온이 ‘자작’이라는 것을 듣고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으며, 슬로스가 피드 후작가의 자제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거의 토할 것 같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속으시면 안 됩니다. 인간은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요.’
마리온이 아버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마침 좋은 술을 가지고 왔으니 저녁 때 함께 한잔하시지요.”
“좋지요, 럼덤 자작 각하.”
“허허허,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아몬이 얼른 끼어들었다.
“아버지.”
“응? 그래, 아몬.”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으음, 그래.”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정중한 아몬의 모습에 마리온이 슬로스와 소곤거렸다.
“저 망나니 같은 놈도 아버지 앞에서는 예의를 차리는군그래.”
“누가 아니래요.”
아몬도 배려를 해 주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보일 저들의 모습도, 저들에게 보일 아버지의 모습도.
그리고 아버지의 집무실 안.
“아버지! 어째서 저 말종들을!”
“왜, 왜 그러느냐?”
“이 나흘간 우리 영지가 풍비박산이 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뭐, 뭐라고?”
아몬이 특히 위험한 요주의 인물을 말했다.
“부학교장을 조심하십시오. 수도에서 혼자 밥값으로 5골드를 쓴 분입니다.”
“뭣……!?”
영지의 감자밭 전부를 파헤쳐야 할지도 모를 일!
아버지의 안색이 공포로 창백히 물들었다.
“휴…… 아무튼 간에, 아버지.”
“그, 그래.”
“그리고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분위기를 가라앉힌 아몬은 비로소 용건을 꺼냈다.
경진대회가 있었고, 알현한 황제의 반응이 이상했다고.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드디어 너도 알 때가 됐구나.”
“예? 알 때라니…….”
“말해 줄 시기를 잡기가 어렵더구나.”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드레이크 가문은 황제의 가문인 아모니스 가문의 방계다.”
“……뭐라고요?”
방계. 즉, 드레이크 가문은 아모니스 가문의 친척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
“잠깐만요. 그럼 우리는 왜 남작 가문입니까?”
“…….”
“황제 혈통의 친척뻘이라면, 적어도 더 높은 관직에 있는 게 맞잖아요? 애초에 황제의 친척인 오르카 대공가도 친척이라서…….”
“아몬.”
말을 끊은 아버지가 웬 책을 내밀었다.
“이건…….”
“너도 이제 드레이크 가문의 진실에 관해 알 때가 된 듯하구나.”
가문의 진실.
침을 꿀꺽 삼킨 아몬이 책을 받아 들었다.
“이, 이건…….”
“제국의 초대 황제 때부터 쭉 기록되어 온 실록이다. 말했듯, 나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우리 역시 초대 황제의 피를 이은 가문. 때문에 여태 한 권을 보관하고 있었단다.”
아버지가 쓰게 웃었다.
“뭐, 기록은 내 아버지 대에서 끊겨 버렸지만 말이다.”
“…….”
“그럼 읽어 보거라. 너도 이제 진실을 알 때가 되었으니.”
아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의 악연.
‘우리 가문의 진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실록의 첫 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