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0)
아카데미가 망했다 180화
‘뭐, 뭐라고?’
영애들은 차치하고, 엘프 왕국의 국왕과 펜도리안 공작가의 태상가주와 피드 후작가의 가주들이 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엘프 왕국의 국왕은 누가 봐도 당당한 일개 국가의 군주고, 펜도리안 공작가와 피드 후작가도 어지간한 왕국의 왕족에 버금가는 권세를 자랑한다.
‘그런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온 이유?’
그야 뻔했다!
그들 모두가 각기 자식들을 데리고 왔다!
엘프 국왕은 딸이자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학교장인 아나르엘을, 펜도리안 공작가의 태상가주는 손녀인 피오라를, 피드 후작가의 가주는 딸자식인 슬로스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아몬의 직장 동료들이었다!
‘아아아! 내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이 무자비하고도 몰상식한 폭군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달려오다니!’
아몬은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포박당한 상태였기에 벅차오르는 가슴을 움켜쥘 수조차 없었다.
아무튼 근위 기사가 전한 급보를 들은 황제는 서둘러 별실을 나갔다.
‘음? 바로 옆의 별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모양인데?’
벽 너머에도 별실이 있는지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여섯 명 중 다섯은 자신이 아는 목소리였다.
아나르엘, 슬로스, 피오라는 단연 익숙한 목소리였고 피드 후작과 디오나 펜도리안의 목소리도 워낙 인상 깊었으니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인데…… 으음, 저 사람, 아니지. 저 엘프가 아나르엘 학교장의 아버지인 엘프의 국왕인가 보다.’
흥미진진했다.
자신의 위기를 깨닫고 부리나케 달려온 사람들이 과연 자신을 어떻게 변호해 줄까!
잠시 후 벽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몬은 벽에 귀를 바짝 붙였다.
* * *
잠시 후, 황제가 들어오자 황제와 사담을 나눌 배분이 아닌 여식들은 얼른 별실에서 나갔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모니스 폐하.”
엘프 왕국의 국왕, 아르에논의 공손한 인사에 황제는 황급히 만류했다.
“허허, 예를 과하게 차리시면 제가 다 부담스럽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인간 제국의 황제라지만 엘프 왕국의 국왕이 이리 예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나라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종족도 다르다.
따지고 보면 아예 남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딸인 아나르엘의 절친한 친구이니만큼 관계가 없다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아르에논은 황제를 일국의 군주에 맞게 대우해 줬고, 딸의 아버지인 아르에논의 예의에 황제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자, 자. 고개를 드시지요. 그런데 아르에논 님, 이렇게 급작스럽게 방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한…….”
황제는 동행한 다른 이들도 둘러보았다.
피드 후작, 디아나 펜도리안.
그들 모두가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섣불리 대하기에는 힘든 이들이었다.
“다른 분들도 무슨 연유로 방문하신 것인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허허, 모두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면 좋겠습니다만.”
웃으며 내뱉어진 황제의 말에 모두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도 서로가 한날한시, 한곳에 모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하, 저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방문한 것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드 후작의 말에 디아나 펜도리안도 빙그레 웃었다.
“맞습니다. 저 또한 황제 폐하께 개인적인 말씀을 드리려 온 것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이분들을 만나리라곤 예상치 못했어요.”
아르에논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 또한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방문한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그들 각자가 제각기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황제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는지 껄껄 웃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개인적인 이야기이니만큼 장소를 옮길 필요가 있겠군요. 다른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아르에논 님과 먼저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황제의 말뜻에 담긴 의미는 간단했다.
아무래도 아르에논이 종족 하나를 대표하는 군주이니만큼, 가장 먼저 대화를 나눌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피드 후작과 디아나 펜도리안도 그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르에논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분들이 들어도 별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으음…… 알겠습니다.”
그냥 오랜만에 방문해서 인사나 나누러 왔나 보다.라고 생각한 황제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아몬 드레이크라는 인간 청년을 우리 엘프 왕국에게 주십시오.”
“……뭐, 뭐라고요!?”
느닷없이 떨어진 폭탄선언에 황제가 눈을 부릅떴다.
워낙 충격적인 발언이었기에 황제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그, 아니, 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르에논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그는 현재 죄인의 신분으로 구금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긴급히 호송된 것이니만큼 그의 죄질이 가볍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그에게는 처형에 준하는 극형이 선고되겠지요?”
“으, 어, 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몬에게 혼인을 빙자한 개목줄을 채울 심산이던 황제는 떨떠름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이럴 땐 고개를 저어야 할지, 끄덕여야 할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 그래서요?”
“하오나 그 청년을 가엾이 여기시어 우리 엘프에게 맡겨 주십시오. 우리 엘프 왕국에서 그를 데려간다면 오랜 세월 그의 죄를 반성케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형이라는 형벌은 그에게 너무 가볍지 않겠습니까?”
“으, 음…….”
“또한 종신형 같은 구금 생활이라면, 더더욱 우리 엘프 왕국에서 죄를 치르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인간 생활과 동떨어진 곳이니 더욱 자신의 죄를 반성할 여지가 크지 않겠습니까?”
“허, 허허허…….”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황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국가, 종족이 다르다곤 하더라도 다른 국가의 법률에 간섭하려고 드는 것은 누가 봐도 심각한 월권행위이자, 정치적인 실례였다.
그러나 상대는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
때문에 황제는 심기가 불편하더라도 한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심기가 불편한 것은 황제만이 아니었다.
“흠, 커흐흠! 디아나 어르신, 피드 후작. 진정하십시오.”
“……하오나 폐하.”
“제 절친한 친우의 아버님이십니다. 그러니 기세를 누그러뜨리시지요.”
“……알겠습니다.”
앞선 이유로 디아나 펜도리안과 피드 후작도 불편한 기색을 풀풀 풍기고 있었으나, 황제의 만류에 결국 기세를 갈무리했다.
헛기침을 한 황제가 말했다.
“흠흠, 아르에논 님. 죄송합니다만, 그 제안은 들어드리기 힘듭니다.”
“그렇군요. 저도 불가능한 부탁이라는 예상은 했습니다.”
“……한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황제의 의문에 아르에논은 쓴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엘프도, 인간도 자기 자식에게는 이길 수 없는 법이지요.”
“……예?”
“그럼 이번에는 폐하의 친구인 아나르엘의 아비로서 부탁드리지요.”
“예? 아, 아나르엘 공주가 갑자기 왜 나오는…….”
아르에논이 얼른 말을 이었다.
“아몬이라는 청년이 죽으면 아나르엘은 크게 상심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청년의 죄를 폐하의 너그러운 아량으로 한 번만 사해 주십시오. 그 청년은 저희 엘프 왕국에서 엄중하게 관리하겠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아나르엘과 혼인을 시켜 엘프 왕국의 왕족으로서의 책임감과 체통을 심어 주겠습니다.”
그 순간.
쾅-!
벽 너머에서 머리를 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누군가가 소리의 주인을 붙잡고 만류하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
“허, 허허허허! 아무것도 아닙니다.”
옆방에 그 아몬 놈이 갇혀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황제는 얼른 아르에논을 만류했다.
‘그나저나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자신의 친구인 아나르엘 공주가 아몬이 죽으면 크게 상심할 거라고?
게다가 혼인을 시키겠다고?
그 말은 어느 정도 아나르엘의 의사가 반영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아몬, 그 망할 놈팽이가 감히 나의 친구를 홀려?’
그것도 그거지만, 황제는 이로써 외통수에 몰리고 말았다.
아나르엘의 의사가 반영된 이 제안을 함부로 물리쳤다간 아나르엘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엘프 왕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아나르엘은 하이엘프로, 차기 엘프 여왕이다!
‘그렇다고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만, 아몬 놈을 5황녀와 혼인시켜 개목줄을 채우는 계획 역시 깔끔하게 날아간다! 이를 어찌해야…….’
황제가 내심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는 와중이었다.
“하아, 전하. 이것 참 의외로군요.”
‘아니, 디아나 어르신?’
디아나 펜도리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르에논을 바라봤다.
“엘프와 인간, 종족이 다른데 원만한 혼인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것인지요?”
‘아니, 여기서 종족 차별 발언을?’
황제가 흘리는 식은땀이 점점 많아졌다.
“전하, 음유시인들이 엘프와 인간이 맺어진 이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부르는지 아십니까?”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현실로 혼동하시는 것입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요?”
“……지금 비꼬는 겁니까?”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오나 전하만큼은 아니지만, 저 또한 긴 세월을 살아오며 엘프와 인간의 사랑을 숱하게 보아 왔습니다. 결국 수명의 차이 때문에 결말 또한 비극적이지요.”
“끙…….”
황제는 미칠 것 같았다.
‘디아나 어르신,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수명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없어진 아르에논을 힐끔 훔쳐보곤 만족한 듯 미소 지은 디아나 펜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하여 황제 폐하, 저희 펜도리안 가문은 지금까지 엄격한 규율과 법도를 기반으로 황실을 섬겨 왔습니다. 그 사실은 폐하께서도 익히 아실 테지요?”
“그, 그럼요. 물론이지요.”
“하오니 이번에는 저희에게 기회를 주실 수 없으십니까? 폐하께서 엄벌에 처하시려는 죄인을 저희 가문에서 훌륭하게 갱생시켜 보이겠습니다.”
황제의 손발에서 식은땀이 쫙 뿜어졌다.
“그, 그게 무슨…….”
“물론 저희도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손녀이자 가주의 자식인 피오라를 그와 혼인시켜 그에게 제국의 가신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똑똑히 심어 주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쾅-!
벽 너머에서 머리를 박는 것 같은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응? 이게 무슨 소리죠?”
“아, 아무, 아무것도 아닙, 크흡……!”
슬슬 혈압이 오르는지 황제가 뒷목을 잡았다.
그리고 피드 후작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벌떡 일어나 예를 취하며 말했다.
“폐하, 신도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끄, 끄어어억…….”
“자고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그 탕아를 저희 가문에서 책임지고 교육하겠나이다!”
“꺽, 꺼헉…….”
“저희 피드 가문은 비록 펜도리안 가문에 비하면 짧은 역사를 자랑하나, 심도 높은 검술을 기반으로 견고한 입지를 다진 검술 명가입니다. 또한 가문의 구성원 전원이 소드 마스터에 오를 정도로 혹독한 교육열을 자랑하지요!”
황제는 더 이상 대꾸할 기력도 없는지 벌벌 떨고만 있었다.
“저희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드리고자, 저의 외동딸인 슬로스와 그 청년 간의 혼인, 혼인, 꺽, 호오온…… 크흡! 시키겠…….”
비장하게 말하는 와중임에도 아몬에게 슬로스를 내주기는 싫은지 피드 후작은 반쯤 오열하고 있었다.
쾅-!
그리고 어김없이 들려오는 벽에 머리를 박는 소리!
하지만 셋 모두가 아몬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소리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지, 진정하자.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어. 그러니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자.’
황제가 입을 뻐끔거리며 느긋이 심호흡을 하는 와중이었다.
왈칵-!
옆 별실에서 달려나온 모양인지, 산발을 한 황태자 카이야스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외쳤다.
“폐하! 제가 직접 그 청년과 5황녀의 혼인을 주선하겠습니다!”
“억……!”
결국 황제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
콰아앙-!
옆방에서 머리로 벽을 박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