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1)
아카데미가 망했다 181화
참사도 이런 대참사가 없었다.
아몬에겐 웬 팔자에도 없는 혼담이, 부모님도 모를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이니 금세라도 미쳐서 까무러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얼마나 격렬하게 벽을 들이받았는지, 어느새 아몬이 박은 벽에는 실금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고 아몬만 원통한 상황이느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꺽, 꺼허억! 께르륵…….”
황제는 게거품을 물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미운 아몬을 5황녀와 혼인시켜 개목줄을 채우는 것조차 원통한 상황인데 엘프 왕국의 국왕이, 피드 후작이, 펜도리안 가문의 태상가주가 아몬을 자기네 사위로 삼겠다고 서로 눈을 부라리는 상황이다.
‘꼽다, 꼬와도 너무 꼽다.’
누구보다 아몬의 파멸을 원하는 황제로선 이 상황이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치 없는 황태자 놈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선 앞선 경쟁자들을 견제하겠다고 ‘5황녀와의 혼담을 내가 직접 도맡겠다.’라는 말이나 지껄이고 있으니, 활활 타들어 가는 아비의 마음을 모르는 자식새끼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더욱 원통한 것은, 이제 황제가 게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모습을 봐도 다들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황태자 전하!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게르륵! 나 죽는다…….’
“맞습니다! 그 청년과 5황녀께선 일면식도 없지 않습니까! 혼사란 남녀의 중대한 일인데 그리 얼렁뚱땅 처리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아이고, 나 죽는다니까…….’
“아니, 어르신들! 정략결혼에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귀족이란 본래 상황에 맞춰서 혼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는 지는 황태자 신분에 연애로 혼인하면서…….’
황제가 게거품을 물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거듭하는 와중, 정략결혼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황태자의 모습에 엘프 왕국의 국왕인 아르에논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딸인 아나르엘의 말을 듣고 오긴 했지만, 참으로 실망스럽군요. 인생의 반려를 그저 허울에 맞춰서 정하다니요!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아르에논의 말에 디아나 펜도리안, 피드 후작, 황태자가 눈을 번뜩이며 동시에 외쳤다.
“하하! 그럼 나가 주시죠!”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껄껄껄! 경쟁자가 줄었, 아니지, 엘프 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을 쫓아내려는 그들의 행태에 아르에논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사실 반려를 정하는데 이해득실만 따져서 되겠냐, 서로의 마음을 존중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 정략결혼은 빠져라, 이 순서로 강력한 경쟁자인 황태자를 배제하려 했다.
하지만 이 천박한 야만인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한 구절만 듣고 모든 판단을 마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흐흐흠! 사실 인생이 꼭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요.”
“안 나가십니까?”
“출구는 저쪽입니다.”
그럼에도 아르에논은 어금니를 꽉 다물고 오히려 의자에 엉덩이를 깊이 묻었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수치심 때문에라도 나갔을 텐데 말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로군.’
눈을 이글거리며 눈치를 보는 그들의 모습에 아르에논도 직감했다.
‘만만치 않은 야만인들이로군.’
그 시각 소외된 황제는 게거품을 물고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당사자인 아몬도 옆방에서 벽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 가고 있었다.
* * *
마왕의 출현을 예고하는 골드 드래곤의 아마란스 혈족의 수장, 저스티시엘은 충격으로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각에 웬 기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분명 얼마 전에 마왕의 중간계 침공을 저지하지 않았던가?
듣기로는 통로를 부숴서 마왕 조나난의 침공을 저지했고, 자신은 그가 다시 중간계를 침공하기까지 수백 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 계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벌써 놈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이냐?’
느껴지는 기운을 감안하면 놈이 출현하기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자리에 앉은 채 부들부들 떨던 저스티시엘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 사실을 당장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마왕 조나난의 침공.
저스티시엘은 드래곤 중에서도 최고 연장자인 카셀라그에게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다.
이윽고 카셀라그는 소식을 듣고 금세 나타났다.
“그 말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제가 느끼는 기운을 감안하면 틀림없습니다.”
“분명 얼마 전에 네 입으로 수백 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수백 년도 짧다고 생각했건만, 조나난의 침략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라니.”
카셀라그의 침음에 저스티시엘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입니다.”
“으음…… 위치는?”
“침묵의 정원의 깊숙한 곳입니다. 지난번보다 훨씬 깊은, 거의 침묵의 정원의 끝자락이군요.”
“……이번에는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카셀라그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도 아몬 녀석이 조나난의 침공을 저지할 수는 없을까?’
솔직히 카셀라그는 내심 손자로 여기는 아몬을 그런 위험한 사지로 밀어 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조나난의 부활이라는 사안은 중대해도 너무 중대했다.
‘그렇기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절반, 그래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아몬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절반…….’
물론 만약 아몬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졌더니 보따리도 구해 오고 물도 떠 오라고 하시네요?’라며 분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만은 오크 머리통만한 금덩어리를 몇 개 던져 주면 해소될 불만이리라.
‘그렇기에 아몬에게 해결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문제는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왕 조나난은 집요하기로 악명이 높은 사악한 마왕. 이번에 침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단축시켰다면 다음 번에는 반년, 그다음으로는 그 이하로 줄일지도 모를 일이다.’
본래 병이 들면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법.
놈이 부활할 때마다 전전긍긍하느니 문제의 원인인 조나난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최선일지도 몰랐다.
“저스티시엘.”
“예, 어르신.”
“인간의 황제를 만날 방법이 있나?”
물론 카셀라그 같은 드래곤이 만나고자 한다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황궁의 문을 두드려도 된다.
하지만 저스티시엘은 카셀라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는 정식으로, 예를 갖춰서 제국의 황제를 만나려고 하고 있었다.
“있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풀어 둔 것 같은 인간들이 저를 지켜보더군요. 딱히 큰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내버려 두고 있었으니, 그들과 접촉한다면 황제와도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군. 그럼 당장 황제와 만날 자리를 만들어 보게.”
“예, 어르신. 한데 어떤 이유로……?”
카셀라그가 한숨을 쉬었다.
“총력전의 준비를 해야겠지.”
“……!”
“언제까지 조나난의 출현에 전전긍긍하고 살 수는 없다. 대륙의 모든 종족과 생명이 연합한다면, 조나난이 작정하고 쳐들어와도 아주 큰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한다면 조나난을 제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저스티시엘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수백 년 전으로 미뤄졌을 거라 생각했던 총력전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그에게도 긴장감이 떠오른 것이다.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아니, 오늘 당장에라도 인간 황제와의 만남을 주선해 보겠습니다.”
“그래. 서두르게. 전 종족을 연합하려면 하루가 급하니 말이야.”
저스티시엘이 마법을 사용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카셀라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나난, 이번에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 동료의 목숨을 앗아 간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파천광룡, 카셀라그의 눈이 전성기의 살심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 * *
아몬과 황제는 나란히 누워 있었다.
심적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결국 게거품을 물고 고꾸라진 황제를 옆의 별실로 데려가 눕힌 것이다.
문제는 아몬도 열심히 벽에 머리를 박느라 앓아누운 상태였기에, 둘은 급조된 침상에 나란히 눕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끄으…… 네놈, 네놈 때문에 일이 이렇게 어그러졌구나…….”
황제의 분노 섞인 중얼거림에 무명천으로 이마를 싸맨 아몬도 낑낑대며 중얼거렸다.
“제가 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저는 잘난 죄밖에 없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까놓고 말해서 저는 앉아서 숨만 쉬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여 버렸는걸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아몬의 흐느낌에 황제가 침음성을 흘렸다.
하긴, 솔직히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 아몬은 정말로 잘못을 한 게 없다.
드레이크 대공이 황제에 오를 인물이었다는 증거인 시계도 황태자가 멋대로 선물한 것이지, 지금도 옆방에서 ‘우리가 아몬을 데려갈 거다’라고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람들도 멋대로 찾아와서 저러는 것뿐이다.
비록 아몬이 밉지만, 그 사실은 똑똑히 알고 있는 황제가 입을 열었다.
“미, 미…… 미친놈아! 네가 잘못했잖아!”
“……듣자듣자 하니까 진짜!”
“어어? 이놈 봐라? 이러다 황제 한 대 치겠다?”
결국 옆방에서도 티격 대고, 아몬과 황제도 태격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던 와중이었다.
“폐, 폐하! 큰일 났습니다!”
“크르르…… 응? 무슨 일이더냐? 또 무슨 큰일이 났어?”
“드, 드, 드래곤이 폐하를 뵙기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뭐? 드래곤이?”
방 안으로 들어온 근위 기사가 상황을 설명했다.
쥰마니 왕국에서 상단을 운영하는 유희를 즐기고 있으리라 추정되는 드래곤, 저스티시엘이 별안간 접촉해 왔다.
그리고 그는 황제를 만나 뵙기를 청하고 있다.
“……흐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아니지, 잠깐, 설마?”
황제는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아몬을 노려봤다.
“네, 네놈 설마 드래곤의 딸도 홀린 것이냐!?”
옆방에서 아몬을 데려가겠다고 기 싸움을 하는 세 집단을 생각하면 세 집단이 네 집단이 되리라는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황제의 억측에 아몬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가 홀리긴 뭘 홀립니까!”
“그, 그렇지?”
“저스티시엘님에게도 딸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네놈이 결국 드래곤의 딸까지 홀렸구나!”
“아니! 아니라고요!”
아몬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걔는 내 제자일 뿐입니다. 저랑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요.”
“그럼! 옆방에 있는 사람들의 딸과는 그런 관계가…….”
“아아아악! 아니라고요! 아니야!”
아몬은 원통함에 오열에 가까운 비명을 토했다.
그리고 드래곤이 왔다는데 왜 저럴까, 싶은 얼굴로 눈치를 보던 근위 기사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폐, 폐하, 하면 어찌하면 좋을는지…….”
“오, 그, 그래. 그 저스티시엘이라는 드래곤을 이리로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한데 두 분이십니다만.”
“두 분?”
“예. 카셀라그라는 블랙 드래곤도 동행하고 있습니다.”
“……으음. 카셀라그, 그 드래곤도 말인가.”
황제 역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또한 그는 드레이크 가문과 긴 인연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황제의 가문인 아모니스 가문과도 긴 인연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좋다. 두분을 모두 이리로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잠시후, 저스티시엘과 카셀라그가 그들이 있는 별실로 찾아왔다.
저스티시엘이 우선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처음 뵙겠소, 인간의 황제여.”
“처음 뵙겠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그리고…….”
황제가 카셀라그를 바라봤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셀라그 어르신.”
“…….”
황제의 인사를 듣고도 잠자코 있던 카셀라그가 아몬을 힐끔 바라봤다.
그리고 피떡이 된 아몬의 이마를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설마 아몬 팼냐?”
“……엇!”
황제는 X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