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2)
아카데미가 망했다 182화
물론 황제는 아몬을 패지 않았다. 몇 번이고 패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모두 생각에서 그쳤다.
아몬의 낯짝이 걸레짝이 된 이유는, 그가 스스로의 분을 참지 못해 벽에 머리를 박는 자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아몬이 모진 수모를 당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황제였기 때문이다!
간접적 가해자인 황제가 발이 저린 도둑처럼 전전긍긍하는 와중, 아몬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저를 때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몬의 고백에 얼굴이 시뻘건 진홍색으로 물들었던 카셀라그의 낯빛이 조금은 풀렸다.
“크흐흠, 그러냐?”
“그렇습니다, 어르신.”
이제 핫핑크색이 된 카셀라그의 얼굴을 본 아몬이 말을 이었다.
“때리지만 않았지 사실상 더 가혹한 짓을 저질렀죠.”
“황제, 네 이놈!”
아몬을 실질적인 손자로 여기는 카셀라그가 크게 대노하여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광경에 저스티시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머지않아 마왕 조나난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미증유의 사태를 눈앞에 둔 시점이다.
이런 하찮은 일로 인간의 대제국의 황제와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용서하십시오, 어르신.’
저스티시엘이 카셀라그의 뒷목을 손날로 후려쳤다.
“크아악! 저스티시엘, 이 새끼가 감히 날 쳐?”
“헉!”
“오냐, 이 새끼가 황제의 감시를 알고도 내버려 뒀다니 뭐니 하더니만 뒷구멍으로 황제와 붙어먹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런…….”
기절하기는커녕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카셀라그를 본 저스티시엘이 황급히 몸을 날렸다.
팔으로 상대의 목을 조여 기절시키는 슬리퍼홀드!
저스티시엘에게 붙들린 채 낑낑대며 버둥거리던 카셀라그가 이내 축 늘어졌다.
그 광경을 본 아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X됐다! 어르신을 휘둘러 황제를 친다는 나의 계략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그런 아몬의 속내를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인지 저스티시엘이 차가운 얼굴로 아몬을 노려봤다.
“네놈…… 마왕 조나난의 침략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 이따위 허튼 장난질이나 칠 생각이더냐?”
아몬이 가만히 정좌한 채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카셀라그 어르신을 뵈었더니 제가 겪은 수모가 떠오른 나머지 손자 된 마음으로, 잠깐만요. 뭐라고요?”
아몬이 눈을 끔뻑거렸다.
“마왕 조나난의 침략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뇨?”
“들은 그대로다.”
“허…….”
아몬이 황당함 섞인 한숨을 흘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아몬의 비상하기 그지없는 두뇌는 고속으로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시간관념은 인간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단 말이지.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말은 해도 드래곤의 코가 좀 크냔 말이야. 인간의 시간으로는 못해도 100년은 걸리겠지? 아니, 그래도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표현할 정도니까 50년 정도 남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50년 뒤에 조나난인지 뭔지가 나타났을 때 아몬은 70을 훌쩍 넘긴 노인이다.
조금 더 넉넉잡아 100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아몬은 저승에서 팝콘이나 먹으면서 조나난과 인류의 운명을 건 싸움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최악을 가정해서 50년 뒤면 나는 아다만티움 검은커녕 숟가락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노인이 되어 있을 텐데, 마왕과의 싸움에서 앞장설 필요는 없겠지? 나 같은 늙은이는 뒤에서 북이나 치면서 응원이나 하면 될 거야.’
금세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아몬이 푸근하게 웃었다.
“그렇군요. 조나난의 침공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군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휴, 마음이 무겁군요. 그래서 놈의 침략까지 대충 얼마쯤 걸리겠습니까?”
아몬은 내심 ‘50년은 걸리겠지’라며 마음을 편히 먹고 있었으나 얼굴만은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아몬의 물음에 저스티시엘이 말했다.
“1년도 안 걸릴 거다.”
“허어, 1년…… 1년? 1년이라고요!?”
수백 년이 반의 반토막이 나서 50년이 된 것까지는 참을 수 있겠다만, 그 50년마저 50토막이 나서 1년으로 줄었다고?
소스라치게 놀란 아몬이 발딱 몸을 일으켰다.
“아니, 예전에는 분명 수백 년은 걸릴 거라면서요! 그렇게 말한 지 뭐 얼마나 지났다고 갑자기 1년입니까!?”
아몬은 조금 전의 카셀라그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서 저스티시엘에게 따졌다.
만약 몸을 묶고 있는 줄이 없었다면 시원하게 삿대질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몬의 격렬한 반응에도 저스티시엘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가볍게 대꾸했다.
“난들 알겠느냐? 얼마 전에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조나난의 기세가 느껴지는 것을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놈이 중간계로 현신할 새로운 수단을 생각했나 보지.”
“그, 그런…….”
하기야 저스티시엘이 조나난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나난의 기운이 느껴졌기에 서둘러 사실을 알려 준 것뿐이다.
저스티시엘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가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마왕 조나난의 침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드잡이질을 할 게 아니라 힘을 합쳐야 한다는 뜻이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저스티시엘의 말에 아몬이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저스티시엘은 황제를 바라봤다.
“아시겠소? 인간의 황제여.”
저스티시엘의 물음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긍정의 의미가 아니라 게거품을 물고 숨이 깔딱거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꼬로로록…….”
* * *
마왕 조나난의 부활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년 남짓.
그 소식은 황제에게 있어 결정타였다.
안 그래도 아몬을 자기네가 데려가겠다고 아옹다옹하는 무리들 때문에 심적인 고충이 큰 와중에 알게 된 충격적인 소식은 황제를 앓아눕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발작을 일으킨 황제는 급히 어의에게 실려 갔다.
“음, 상황이 참으로 난처하군.”
저스티시엘은 이 상황이 마뜩잖았다.
당장 황제가 마왕에게 대적하기 위해 대륙의 모든 국가를 통합하는데 진두지휘해도 모자랄 판에 충격으로 쓰러지다니!
“그러게 정보를 좀 슬금슬금 풀어 놓지 그러셨습니까. 너무 대번에 말씀하시니 그렇지요.”
퉁명스러운 아몬의 투덜거림에 저스티시엘이 눈을 홉떴다.
“뭐? 그럼 이게 내 잘못이란 말이냐?”
“아뇨, 뭐, 그런 뜻은 아닙죠. 저스티시엘 님의 잘못이라기보단, 소식의 전달 방식에 조금 문제가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내 잘못이란 말이 아니냐.”
“허 참,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말입죠.”
“이놈이 정말…….”
복장을 갈퀴로 벅벅 긁는 것 같은 아몬의 말투에 저스티시엘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이런 일로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 장본인으로서 당장 아몬과 드잡이질을 할 수는 없었다.
‘저놈 저거, 눈빛을 보아하니 내가 화를 내면 그걸 걸고넘어질 게 분명하다.’
쥰마니 왕국에서 상단을 경영하는 유희를 즐기고 있는 장사꾼 드래곤, 저스티시엘은 노련한 상인의 눈치로 아몬의 흉흉한 간계를 빠르게 간파했다.
혀를 찬 저스티시엘이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좀 더 차근차근 말했어야 했다. 되었냐?”
“……쳇.”
“너 지금 혀 찼냐?”
“아닙니다요. 입 안에 뭐가 들어와서리.”
“끄…….”
빠르게 올라가는 혈압 때문에 뒷목을 잡는 저스티시엘을 힐끔 바라본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결국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러 온 이유는 지난번에 말한 ‘인간 국가의 통합’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끙…… 그래, 분명 그렇다. 하지만 전권을 지닌 황제가 앓아 누운 상황이니 원.”
“괜찮습니다. 전권까진 아니더라도, 마왕의 침략이라는 상황이니만큼 이에 관련해서 어느 정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있거든요.”
“응? 그래?”
저스티시엘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축하연에서도 라인벨트인가 하는 늙은 인간 기사가 ‘인간의 국가를 연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야. 근데 그 인물은 누구야?”
“제국의 후계자인 황태자입니다.”
“황태자, 흐음…… 다음 대의 황제가 될 재목인가.”
확실히 그 정도라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일을 진행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저스티시엘 님이 도와주시면 인간의 국가를 연합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드래곤의 보증이 있는 이상, 제국이 다른 속내가 있으리라는 의심이 현저히 줄어들 테니까요.”
“……흐음, 확실히 그렇군. 제국의 사절단에 드래곤이 하나씩 동행하건, 혹은 드래곤을 각기 왕국에 보내면 될 일이군.”
마왕 조나난과의 총력전이 확실시된 상황이었기에 저스티시엘도 노력을 아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 주신다면 인간의 국가를 연합하는 건 무조건 가능할 겁니다. 의심이 없다면 연합도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지금 옆방에는 제국 내부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제국 내부에서의 결속도 단단히 할 수 있을 겁니다.”
“호오? 그래? 마침 잘됐군. 안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더니 좋은 일도 있군그래.”
“그게 다 저스티시엘 님의 인덕이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껄꺼르르륵! 이 사람 참 말도 예쁘게 하는군.”
아몬의 간교한 혀놀림에 저스티시엘은 다시 한번 함락되고 말았다.
“허허, 그럼 어서 가서 이 소식을 알리세. 이 일은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으니 말이야.”
“암요. 제가 앞장섭지요.”
아몬이 포승줄에 묶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저스티시엘의 슬리퍼홀드에 의식을 잃었던 카슬라그도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크으윽…… 여, 여긴 어디지?”
“헛! 어르신, 정신이 드셨습니까?”
“으음, 저스티시엘 아닌가. 내가 왜 정신을 잃었지?”
저스티시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카셀라그는 자신의 뒷목 손날치기와 회심의 목조르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하, 그것이…….”
상황을 대충 둘러대려던 저스티시엘은 순간 흠칫했다.
돌연 뒤에서 느껴진 오싹함에 고개를 돌린 저스티시엘이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아몬이 뱀의 눈을 한 채 볼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저, 저 가증스러운 놈이 설마…….’
자신이 카셀라그에게 저지른 짓을 낱낱이 고하려는 것인가!
소스라치게 놀란 저스티시엘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몬이 말을 이었다.
“긴 여행이 매우 피곤하셨나 봅니다. 갑자기 곯아떨어지시더라고요.”
“응? 그러냐? 근데 뭐가 내 뒷목을 때린 것 같은…….”
“아아, 곯아떨어지실 때 의자 등받이에 뒷목을 부딪치시더라고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 그래? 근데 뭐가 내 목을 조른 것 같은…….”
“쓰러지시면서 탁자에 목이 걸리셔서 얼른 눕혀 드렸어요.”
“흠, 그러냐?”
카셀라그가 겸연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능구렁이처럼 카셀라그를 납득시키는 아몬의 행동에 저스티시엘이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
아몬이 희번득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걸로 나에게 빚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더러운…… 인간 놈 같으니라고.’
어금니를 꽉 깨문 저스티시엘이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 하하하. 어르신, 그보다 슬슬 가시죠. 어르신이 주무시는 동안 인간의 국가를 연합시킬 계획을 세워 놨습니다.”
“허어? 내가 속 편하게 자는 동안 고생이 많았군.”
“별말씀을요. 자, 가시죠.”
저스티시엘이 카셀라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그런 저스티시엘의 등 뒤로 따라붙은 아몬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시죠, 저스티시엘 님.”
“빠드드드득!”
저스티시엘의 이 가는 소리에 아몬이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