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3)
아카데미가 망했다 183화
아직도 옆방에서는 과격한 설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용기 있는 자가 훌륭한 반려를 얻는다고, 여기서는 말발이 좋은 사람이 아몬을 얻게 된다!
엘프인 아르에논은 엘프답게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사람끼리 혼인을 치르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른이 멋대로 혼사를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죠. 아무리 자녀라도 어른이 선택권을 앗아 가는 건 어른으로서 못 할 짓이 아닐까요?”
아르에논은 참으로 엘프스럽게 온건하고 합리적인 제안을 했지만, 탐욕에 찌든 인간 귀족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기적이고 못된 심성을 지닌 인간 귀족들은 자연스러움 같은 불확실한 것에 아몬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싶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라고 말씀하셨는데, 인간의 귀족은 인간 귀족과 혼례를 치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엇……!”
“엘프의 공주님께서는 그분의 품격에 걸맞은 훌륭한 엘프 남성을 찾는 것이 어떨는지 싶군요.”
“으으으……!”
사랑하는 자연에게 발목을 걸려 넘어진 아르에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디아나 펜도리안의 말에 피드 후작도 힘을 보탰다.
“맞습니다. 디아나 할머님의 말…….”
“뭐?”
“디아나 누님!의 말씀대로 인간은 응당 인간과 맺어져야 하는 법이죠. 더구나 기사로서의 재능이 충만한 아몬이라면 응당 명문 기사 가문의 귀족과 맺어지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빠득, 이를 악문 디아나가 피드 후작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 가증스러운 것이 감히?’
발언에 힘을 보태 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기네 형편에 맞게 말을 바꾸는 피드 후작의 행태에 디아나는 치를 떨었다.
더군다나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디아나와 피드 후작은 아몬의 ‘기사’로서의 재능이 너무 탐났다.
그렇기에 욕심을 버리고 보면 아몬이 피드 후작가로 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일이었다.
비록 펜도리안 공작 가문이 명문 중의 명문이지만, 오직 검 한 자루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피드 후작가와 비교하면 무력 하나만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권세를 내세우자니 황태자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니 원.’
아무리 펜도리안 가문의 권세가 대단해 나는 와이번도 떨어트린다지만, 제국의 황실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황태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음, 제가 곰곰이 잘 생각해 봤는데…….”
“…….”
“아무래도 아르에논 전하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옛!?”
느닷없는 황태자의 발언에 디아나와 피드 후작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가장 먼저 정략결혼을 운운하던 황태자가 돌연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주장하는 아르에논을 지지하다니!
예상치도 못한 뒤통수에 디아나와 피드 후작이 입만 뻐끔거리는 와중, 황태자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저도 정략결혼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을 추진하는 것은 실례되는 일이지요. 저의 생각이 짧았던 점을 사과드리며, 가르침을 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르에논 전하.”
황태자가 느닷없이 자신을 치켜세우자 아르에논은 내심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일단은 솔직하게 그 인사를 받아주기로 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황태자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군요.”
“아닙니다. 오랜 세월 지혜를 쌓아 온 전하께 부끄러울 따름이죠.”
서로의 낯짝에다 금칠을 해 주는 황태자와 아르에논의 모습에 디아나와 피드 후작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다, 당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2:2 구도!
더군다나 피드 후작과 디아나는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말이 2지 사실상 적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구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르에논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것이 황태자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승산이 높다는 점이었다.
‘아몬 선배님이 아나르엘 학교장만 생각하면 치를 떨다 못해 어금니를 박박 가시는데, 뭐? 자연스러운 만남? 자연스러운 파탄이겠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황태자의 복안!
억지로 비교하자면, 꾸역꾸역 비교한다면 아몬에게는 아나르엘보다는 피오라와 슬로스의 ‘연애 점수’가 조금 더 높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개미 더듬이털 만큼의 차이일지언정, 선취점은 선취점이니 황태자는 그 점수 차이를 간과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아몬 선배님이 아나르엘 학교장님을 반려로 맞을 생각은 없을 테니까, 그 사이에 우리 5황녀랑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지게 손을 쓴다면…… 후후후!’
밀가루가 익어 빵이 되고, 귀리를 쑤어 오트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황태자가 입꼬리를 관자놀이까지 올린 채 해맑게 웃는 와중이었다.
쩌억-!
웬 손바닥이 황태자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크아아악! 어, 어느 놈이 감히……!”
고꾸라지며 노성을 내지른 황태자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아몬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정색하고 있는 모습이 비췄다.
“엇, 어, 어어어…….”
예전에 아몬이 혼사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불쾌해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카이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그리고 아몬이 카이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을 본 피드 후작과 디아나도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저, 저 녀석이 지금 황태자를 때렸어?’
황태자란 공식적으로 황제의 바로 다음 서열인 2인자다.
더구나 황제가 다음 대 황제로 밀어 주기 위해 물밑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니 더 이상 권력의 우열이 바뀔 리 없는 확고부동한 제국의 2인자다.
그런 황태자의 뒤통수를 후려쳤다고?
제국의 충신, 펜도리안 가문의 디아나가 금세 벌떡 일어났다.
“네 이놈! 지금 네놈이 감히 누굴 해한 것인지 아느냐!”
아몬이 탐나긴 하지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어린 시절부터 제국에 충성해 온 디아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아몬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멋대로 말하는 후배를 때렸습니다. 뭐 잘못됐습니까?”
“뭐? 후배? 이놈이 무슨 헛소리를…….”
“이 녀석이 지금까지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걸 몰랐나 봅니다? 여태 내 후배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뭐……?”
디아나가 당황한 얼굴로 황태자를 바라봤다.
“화, 황태자 전하. 저 말이 사실입니까?”
카이야스, 아니,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수학 교사이자 아몬의 후배인 카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입니다.”
“세, 세상에…….”
자신이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극비로 부쳤기에 펜도리안 가문의 디아나조차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태자를 때리다니?
디아나는 그 사실을 걸고넘어지려 했지만, 황태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잇자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아몬 선배님. 제가 또 실수를 범했군요.”
“너, 지난번에 분명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지? 그런데 또 이따위 짓을 해?”
“……죄송합니다. 다른 분들께서 아몬 선배님의 혼사를 두고 워낙 설전을 벌이시기에 저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럼 너라도 자중해야지, 너까지 끼어들어서 난리법석을 피우면 내가 뭐가 되냐?”
“……죄송합니다, 선배님.”
황태자 본인이 ‘아몬의 후배’라는 입장으로 아몬에게 사과를 하고 있으니 디아나도, 피드 후작도 차마 무어라 딴죽을 걸 수 없었다.
그저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을 죽 훑어본 아몬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드 후작 각하, 디아나 어르신.”
“으, 음. 그래. 아몬.”
“어떻게 저의 의사는 묻지도 않으시고 남의 혼례에 왈가왈부하십니까? 아니, 저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는 응당 저의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나눌 말씀이 아닙니까? 펜도리안 공작가문과 피드 후작가의 어른들이 어찌 이런 무례를 범하십니까?”
“…….”
디아나와 피드 후작은 얼굴만 붉힌 채 쭈뼛거렸다.
황태자, 공작가의 태상가주, 피드 가문의 현 가주가 새파란 젊은이에게 혼나고 있는 진풍경이었다.
아몬이 아르에논을 힐끔 바라봤다.
설마 이번에는 자신이 혼날 차례인가 싶은 생각에 아르에논이 침을 꼴깍 삼켰지만, 그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온건파 중의 온건파였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하, 그보다 여러분께 전해 드릴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마왕 조나난의 침공이 1년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럼 카셀라그 어르신, 저스티시엘 님. 이분들에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뒤를 돌아본 아몬이 흠칫했다.
저스티시엘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고, 카셀라그는 어째서인지 눈을 반쯤 허옇게 뒤집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 저러시지? 아니, 잠깐만. 설마…….’
불안감에 아몬이 멈칫한 순간.
카셀라그가 꽥 고함을 질렀다.
“우리 아몬은 너희 같은 인간들에게는 못 준다! 아몬은 내 손녀와 이미 장래를 약속한…….”
결국 분노가 폭발한 아몬은 저스티시엘을 본받아 카셀라그의 목을 졸랐다.
* * *
아몬의 특별 수면법으로 인해 카셀라그는 새근새근 잠들었고, 저스티시엘은 곤히 잠든 카셀라그를 간호하며 모두에게 설명을 마쳤다.
“……해서, 조나난은 1년 안에 부활할 것으로 예상되네. 그러니만큼 모두 인간을 연합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야.”
“1년, 1년이라고요……?”
카이는 아까 전의 아몬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수백 년은 너무 길어서 문제였는데, 1년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만…….”
“음, 확실히 1년은 지나치게 촉박한 감이 있지. 하지만 마왕 조나난은 마계에 있으니 무슨 조치를 취할 수도 없고, 선제 타격도 가할 수 없으니…….”
카이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철저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말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조나난을 제거한다면 당분간 마계 놈들도 중간계의 침략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야.”
그러니만큼 확실하게 대응해야 한다.
요점을 파악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요. 언제까지고 아몬 선배님이 출입구를 파괴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음. 후배가 내 생각을 해 주니 기분이 좋구나.”
“별말씀을요.”
“그렇게 선배를 생각해 주는 놈이 왜 남의 혼사 문제를 그렇게 걸고넘어질까.”
“……죄송하다니까요.”
머리를 긁적거린 카이가 숨을 몰아쉬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아나 공.”
“……예, 황태자 전하.”
“황태자의 이름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펜도리안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든 가문에 이 사실을 널리 알려 주십시오. 펜도리안 가문에게는 제국 내부의 크고 작은 세력들을 한 목적 아래로 규합시킬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디아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제국의 번견, 펜도리안 가문의 디아나가 말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피드 후작.”
“예, 황태자 전하.”
“현재 피드 가문의 주도하에 제국과 보그 산맥의 오거 부족이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피드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현재 제 아들인 랜슬로가 그 일을 도맡고 있습니다.”
“이번 일에 관해 오거 부족과의 동맹을 추진해 주십시오.”
피드 후작은 조용히 예를 표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카이가 아르에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
“아르에논 전하, 제국의 황태자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모니스 제국은 마왕 조나난의 침략이라는 사태에 맞서기 위해 엘프 왕국에 동맹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부디 사태의 위중함을 헤아리셔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아르에논은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의 침략은 종족을 떠나 모든 종족이 힘을 합쳐야 할 사태지요. 우리 엘프는 마왕의 침략에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영명하신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아르에논 전하.”
카이와 아르에논이 서로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취했다.
곧이어 그가 제국의 황태자로서 아몬을 바라봤다.
“드레이크 가문의 아몬 드레이크.”
“……예, 황태자 전하.”
“그대에게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부학교장, 브레슬의 종족인 다크엘프 종족과의 친선을 위한 사절의 임무를 부여하겠네.”
“예, 명을 받들…….”
순간 멈칫한 아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다크엘프 종족과의 친선? 왜 내가 그런 임무를 해야 하는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