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4)
아카데미가 망했다 184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임무였다.
“저, 황태자 전하…….”
“뭔가?”
“죄송하지만, 왜 제가 다크엘프 종족과의 친선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아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떨떠름한 아몬의 목소리에 황태자가 미간을 좁혔다.
“설마 황태자의 명령을 거절하겠다는 말인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옵고…….”
준엄하기 그지없는 황태자의 목소리에 아몬은 내심 짜증이 났다.
‘이 새끼, 후배면 후배고 황태자면 황태자일 것이지 무슨 이중인격자도 아니고 왜 왔다 갔다 지랄이지?’
제발 부탁인데 둘 중 하나만 좀 해 줬으면 싶었다.
그러나 지엄하신 황태자 전하의 분부이시니 아몬은 입술에 침을 잔뜩 펴 바른 후 말했다.
“명령을 거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황태자 전하께서 품으신 연유를 알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다크엘프 종족과의 친선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을 경우에 어떠한 이득이 있는지를 알고자 할 뿐입니다.”
아몬은 카이가 말을 이을 틈도 주지 않고 연달아 말했다.
“한 종족과의 친선이라는 막중하기 그지없는 임무입니다. 혹여 제가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저 본인의 우려가 있습니다만, 황태자 전하께서 지닌 복안을 알려 주신다면 그것을 이정표 삼아 신중하게 임무에 임하겠나이다.”
정중하기 그지없는 아몬의 말에 디아나와 피드 후작은 내심 탄성을 질렀다.
‘참으로 말을 곱게 하는 청년이로다.’
‘저 녀석이 점점 탐나는군.’
아르에논도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배어 있는 교양을 보아하니 지적인 내 딸과 잘 어울리겠구나.’
아몬을 탐내는 이들이 내심 감탄하는 와중, 아몬과 제법 알고 지낸 카이만이 아몬의 말에 담긴 의미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큰일을 왜 나한테 맡기냐? 일 말아먹으면 네가 책임질 거냐? 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나한테 일 대충 떠넘긴 거지?라고 묻고 계시는군.’
카이는 으음,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고민에 잠긴 그를 본 아몬은 ‘너 이 새끼,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나한테 대충 일을 떠넘긴 거였구나.’라는 얼굴로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카이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본 황태자가 판단하기로는, 아몬 드레이크와 다크엘프 종족은 다소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네. 본래 친선, 외교, 사절은 서로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인원으로 보내는 것이 지당하지 않겠는가?”
카이의 말에 아몬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배고프면 제 살도 뜯어먹을 다크엘프와 내가 잘 어울린다니? 이 자식이 자기가 황태자라고 입에 담지도 못할 모욕을 서슴없이 하는구나.’
아몬은 카이의 도를 넘는 인신공격에 강한 모멸감을 느꼈다.
‘이 방탕한 망나니가 황제가 된다면 필시 제국의 미래가 어두우리라.’
이 자리에서 제거해야 할까?
아모니스 가문이 음험한 간계로 강탈해간 황좌를 다시 드레이크 가문의 것으로 돌려놔야 할까?
아몬이 고심하는 와중, 카이는 아몬이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서둘러 덧붙였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자네는 브레슬 부학교장과 친하지 않은가?”
“예?”
아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요?”
“그래.”
“브레슬 학교장과 친하다고요?”
“제대로 들은 게 맞네.”
아몬은 조금 전의 ‘브레슬과 어울린다.’라는 모욕을 들었던 것과 대등한 수준의 모멸감을 느꼈다.
아무리 황태자 전하라도 이런 도를 넘는 폭거는 용납할 수 없었다.
신분 갈등 타파 혁명의 주먹을 일발 장전한 아몬이 썩어빠진 황가를 개혁하려는 찰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애초에 브레슬 부학교장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아몬 자네가 유일하지 않은가?”
“……엥? 사적인 이야기 말입니까?”
아몬이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자신이 브레슬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게 뭐가 있지?
‘조아민트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으니 어서 먹으러 가자, 이번 음식은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번 신메뉴에 대해서 토론을 해 보자…… 그 정도가 전부인데? 그 정도는 다들 하는 것 아니야?’
아몬의 속내를 알아차린 것인지 카이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브레슬 부학교장은 다른 교사들과 사담을 거의 나누지 않아. 나 역시 교사로 일하면서 브레슬 부학교장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건 손에 꼽을 정도지.”
그러고 보니 문득 아몬은 브레슬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번 본적이야 있다만, 가뭄에 벼락 떨어지는 것 같은 빈도로 두어 번쯤 봤을 뿐이다.
‘애초에 브레슬은 야행성 짐승…… 아니지, 밤에 주로 활동하는 다크엘프라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기도 하고…….’
결국 아카데미의 교사진 중에서 브레슬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굳이 꼽자면 학교장인 아나르엘, 그리고 아몬 정도였다.
그렇기에 카이는 브레슬이 속한 다크엘프 부족과의 친선을 위해 아몬을 선택한 것이리라.
부학교장과 대화를 자주 나눈 아몬이기에 부학교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 부학교장과 제가 그렇게까지 호의적인 관계는 아닙니다만…… 그걸 빌미로 종족 간의 협정을 맺기에는 무리가 아닐까요?”
애초에 아몬이 브레슬이랑 나누는 대화라고 해도 조아민트의 새로운 메뉴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걸 제외하면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아니, 애초에 좋은 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하지만 아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종족 간의 협정이 개개인의 친분 따위로 결정될 사안은 아닐세. 그러나 ‘다크엘프라는 폐쇄성’을 부학교장을 통해 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결국 서로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다면 협정은 맺어지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마왕의 침략이라는 중대한 일이 닥쳐오는 이상, 자리만 만들어진다면 협정을 맺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 의견은 지당했다.
종족 간의 이념의 차이는 둘째치고, 그 종족이 마왕 조나난에 의해서 깡그리 씨가 마를 상황이었으니 머리가 있다면 협정을 맺는 것이 당연하다.
애초에 다크엘프와 인간의 관계가 썩 나쁜 것도 아니니까 카이는 자리만 마련되면 어렵지 않게 협정이 맺어지리라 예상했다.
“자, 그럼 아몬 드레이크. 자네는 먼저 출발하게나. 시간이 많지 않으니.”
“끙…… 알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공손하게 예를 취한 아몬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몬 선배님!”
황태자에서 다시 ‘카이’로 돌아와 해맑게 지껄이는 그를 본 아몬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카이야, 황태자를 하거나 내 후배를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안 되냐?”
“하지만 둘 다 저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진짜 돌아 버리겠네.”
“어허! 어서 가게나, 아몬 드레이크.”
“빠드득!”
아몬이 어금니를 박박 갈며 별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카이가 피식 웃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내 신분을 밝힐 걸 그랬어. 선배님을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군.’
아몬이 알았더라면 ‘혁명의 주먹’을 날렸을 정도로 괘씸한 생각을 한 카이가 미소를 지웠다.
그가 다른 이들을 보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다른 국가와의 교섭을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카셀라그 님, 저스티시엘 님께서도 사절단에 동행하셔서 마왕 조나난의 위험성을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음, 알겠네.”
앞서 이야기가 끝난 내용이었기에 드래곤들도 불만이 없었다.
카이가 결연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마왕 조나난의 타도를 위한 계획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 *
브레슬을 창구로 이용해 다크엘프 종족과의 연합을 꾀하는 작전!
그것의 시작을 위해 아카데미로 돌아온 아몬은 직감했다.
‘X됐군.’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은 아몬도 예상치 못했다.
그 대단하신 황태자 전하께서도 이런 전개는 예상치 못했으리라.
돌아오자마자 브레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은 브레슬은 심드렁했다.
‘호오, 그렇습니까? 마왕 조나난이 대륙을 침공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제국은 다크엘프 종족과의 연합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크엘프 종족과의 연합을 하려는데,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부학교장인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뭡니까?’
다 알고 있을 텐데도 꾸역꾸역 말꼬리를 잡는 브레슬의 행동에 아몬은 관자놀이에 굵은 혈관 한 줄기를 돋운 채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하.하. 다크엘프라는 종족이 워낙 외부와 교류를 하지 않는 고결한 종족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들과 접촉하기 위해 부학교장님의 도움을 조금 받고 싶어서요.’
‘흐응, 그렇군요.’
‘이것은 황태자 전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만큼 제국의 녹을 먹는 부학교장님께서도 황태자 전하의 명령에 응하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은근슬쩍 협박도 한 스푼 가미해 봤지만, 브레슬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황태자 전하의 명령은 중요하죠.’
‘예, 그러니…….’
‘그런데 만약 일을 그르치면, 누구의 죄가 더 클까요? 교섭을 거부한 자, 그리고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억지로 교섭을 강행하려는 자…… 황태자 전하의 명령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우선시하는 책임자…… 이것 참 흥미롭군요.’
‘……뭐라고요?’
순간 아몬은 오싹함을 느꼈다.
브레슬이 눈을 희번덕 빛내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자세를 바로 한 아몬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하하하, 저는 오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깍듯한 청년이지요.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예의 바른 아몬입니다요.’
‘후후, 그렇군요. 그런데…….’
브레슬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왜 아몬 선생의 머리가 저보다 높은 거죠?’
내가 당신보다 키가 크니까!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몬은 현재 다크엘프와의 소통 창구를 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일개 을(乙)에 불과했다.
아몬이 삽시간에 머리를 브레슬의 그것보다 낮게 낮췄다.
‘이제 목이 좀 편하십니까요?’
‘아아, 이제 좀 낫군요. 음,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했더니 목이 칼칼한…….’
‘세계적인 쉐프, 조아민트가 만든 민트초코 우유입니다요.’
‘오오, 이 달콤함과 향긋함이 저의 메마른 목을 촉촉이 적셔 주는군요.’
아몬이 갑(甲)에게 손을 삭삭 비비며 말했다.
‘헤헤헤, 어르신. 그럼 이제 슬슬 브레슬님의 부족장님과 말씀을 나눌 기회를 부여해 주실 수는 없으신지…….’
‘호오, 제가 속한 부족의 장을 만나고 싶었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미천한 일개 인간에게 그러한 영광을 허락해 주십시오.’
브레슬이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흠, 흠…… 그렇군요. 아아, 오래 서 있었더니 발이 좀 아픈데, 누가 제 발을 좀 주물러 줬으면 좋겠군요.’
하루 종일 빈둥거리던 다크엘프가 발이 아프다는 헛소리를 지껄이자 아몬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더구나 발을 주무르라니!
도를 넘은 횡포에 아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학교장님! 거 좀 적당히 하십쇼!’
‘응?’
‘아니, 마왕이 대륙을 침공한다니까요? 인간이랑 다크엘프가 연합을 해야 그놈을 막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요! 그러니까 교섭을 위해 부학교장님이 속한 부족의 족장과 교섭을 해야 합니다!’
아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더 이상의 장난은 사양하겠습니다. 어서 부족장님을 뵙게 해 주시거나, 아니면 아예 만나게 해 주지 않겠다고 확언하십시오. 그래야 제가 다른 수단을 생각해 볼 것 아닙니까.’
아몬의 마지막 엄포에 브레슬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러니까, 발을 주무르세요.’
‘……하, 됐습니다.’
아몬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다크엘프 종족의 최대 규모 부족, 블랙탄 부족의 족장 브레슬.’
‘……예?’
‘그게 바로 접니다.’
그리고 현재.
브레슬이 발을 내밀었다.
“자, 그럼 아몬 선생.”
“아, 으, 아아아…….”
“발을 주물러 보세요. 만족스러우면, 제 권한으로 블랙탄 부족은 제국과의 동맹을 선언하겠습니다.”
브레슬이 흉심이 가득한 눈을 빛내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