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5)
아카데미가 망했다 185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복달인 관계.
정말로 상대를 죽이겠다는 흉흉한 각오를 품고 있는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잔망스러운 관계!
그것이 바로 아몬과 브레슬의 관계였다.
‘발을…… 이 내가, 다름 아닌 대드레이크 변경백 가문의 차남인 아몬 드레이크가 이깟 다크엘프의 더러운 발을 주무르라고?’
치욕, 수치!
아몬의 눈가가 절망감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치욕으로 몸을 떠는 아몬을 본 브레슬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짜증스레 쏘아붙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다크엘프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합니다. 무례한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브레슬은 저녁에 일어나서 한번, 아침에 자기 전에 한번,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더군다나 밀크 초콜릿향이 나는 초코코스모스의 잎을 띄운 목욕물로 목욕을 즐기는 청결한 다크엘프였다.
그러나 아몬은 깨달았다.
‘나, 사실 초콜릿 싫어했구나.’
브레슬에게서 풍겨 오는 향긋한 초콜릿 냄새조차 지금 이 시점의 아몬에게는 악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브레슬이 서늘한 얼굴로 발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제 발을 주무를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아뇨, 잠깐 고민을 좀…….”
“이미 늦었습니다.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죠.”
브레슬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내 발을 주무르세요.”
이 시점에서 아몬은 경악했다.
‘이 악마 같은 다크엘프가!’
사실 아몬의 무릎은 저렴하다 못해 수시로 팔리는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조건만 맞다면 언제든 꿇을 수 있는 무릎!
몇몇 사람들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무릎을 꿇느냐 하겠지만, 무릎은 자존심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체 기관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브레슬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를 수치스럽게 하려고 작정을 했군! 어떻게 내가 브레슬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단 말인가…….’
맹렬한 모욕감에 아몬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남자의 뜨거운 눈물에 브레슬도 당황할 법도 했건만, 아몬을 상대로 하는 브레슬은 결코 호락호락한 다크엘프가 아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몬을 본 브레슬은 크게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후! 자아, 어서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발을 주무르십시오! 우리 블랙탄 부족을 제국의 동맹으로 삼고 싶지 않으십니까?”
“큭…… 죽여라…….”
“호오, 죽음까지 각오할 정도로 싫은 겁니까?”
싱글싱글 웃던 브레슬이 발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조건을 조금 바꿔 보죠. 발을 정성스럽게 주무르려면 못해도 몇 분은 필요하겠지만…….”
브레슬이 두 눈을 흉흉하게 빛냈다.
“복종의 의미로 발등에 입을 한번 맞추는 걸로 끝내드리죠.”
“뭐, 뭣……!?”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제 발을 정성스럽게 주무르면서 몇 분 동안 모멸감을 곱씹거나, 아니면 두 눈 딱 감고 발등에 복종의 입맞춤을 한 번 하거나.”
“크, 크으윽…….”
아몬은 심각하게 갈등했다.
‘그 말대로, 발을 주무르는 건 몇 분이나 걸린다. 아니, 브레슬이 만족하려면 몇 분이 아니라 수십 분,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은 계약의 맹점이었다.
‘반면 발등에 입술을 한 번 맞춘다는 것은 조건이 확실하다. 이것 가지고 딴죽을 걸기는 힘들겠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느니,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면 동맹이고 뭐고 브레슬의 머리통을 갈라 내용물을 확인할 작정이었다.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브레슬의 추악한 발을 주무르고 양손을 잃느냐, 아니면 발등에 입술을 맞추고 입술을 잃느냐…….’
아몬은 곧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이 밥을 먹고 살려면 양손이 있어야 숟가락질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입술이 없으면 낯짝이야 흉측하겠지만,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으리라.
‘내 이 치욕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훗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수모를 복수할 것이다…….’
아몬이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흐느끼며 브레슬의 발등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와중이었다.
“……지금 두 분, 뭐 하시는 거예요?”
“엇……?”
“아몬 선생님이 아카데미로 돌아갔다고 해서 얼른 와봤더니 이게 무슨……?”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몬은 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나르엘이 창백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더구나 혼자도 아니라, 슬로스와 피오라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황실이 있는 수도에서 이제 막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녀들을 본 아몬이 분하고 원통하다는 얼굴로 하소연을 했다.
“흐흐흑, 사악하고 음습한 브레슬 부학교장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발등에 입을 맞추지 않으면 다크엘프 부족이 제국과 동맹을 해 주지 않겠대요…….”
“뭐라고요……?”
아나르엘이 정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브레슬을 노려봤다.
늘 브레슬에게 잡혀 사는 아나르엘이었지만, 이런 일은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흉흉한 눈빛이었다.
“브레슬 부학교장님! 어찌 부학교장 되는 다크엘프가 아카데미의 엄격한 규율을 이런 음행으로 흐리려 하시는 건가요!”
대체 언제부터 이곳에 엄격한 규율이 있었던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브레슬을 꾸짖는 아나르엘의 목소리에 아몬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잘한다, 우리 학교장!’
그러나 브레슬은 기다란 귀를 후비적거리며 퉁명스레 내뱉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아카데미에 엄격한 규율이 있었습니까?”
‘아니, 부학교장인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게다가 음행이라뇨? 발등에 입을 맞추는 것은 예로부터 존재했던 충성, 순종, 복종의 맹세가 아닙니까? 이것은 다크엘프와 인간 종족의 연합을 위한 의식일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그…….”
아나르엘은 꿀 먹은 엘프처럼 입술만 오물거렸다.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아나르엘을 본 브레슬이 진득하게 미소 지었다.
“설마 학교장님의 눈에는 이 맹세가 음행으로 보이시는 겁니까?”
“그, 그으읏…….”
“대체 평소에 뭘 읽고 뭘 상상하시는 겁니까?”
“기이이잇……!”
얼굴을 붉힌 채 부들부들 떠는 아나르엘을 본 브레슬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피오라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국과의 동맹에 복종의 맹세라니요? 다크엘프 종족은 정말로 우리 제국이 다크엘프 종족에게 복종하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제국의 번견!
펜도리안 가문 출신의 피오라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어찌 보면 크나큰 외교적 결례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브레슬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대체 누가 제국이 다크엘프 종족에게 복종하라고 말했습니까?”
“……네?”
“아몬 선생이 제국입니까? 저는 제국과의 동맹을 제안하러 온 사절인 아몬 선생에게 동맹을 위한 증거로 맹세의 입맞춤을 하라고 말한 것뿐입니다. 애초에 우리 블랙탄 부족은 다크엘프 종족의 최대 규모 부족입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블랙탄 부족의 족장인 제가 대부분의 다크엘프를 통솔하는 종족의 군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죠.”
브레슬이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종족의 군주에게 큰 권한도 없는 일개 귀족 자제 하나를 사절로 달랑 보내는 것은 법도에 맞는 행동입니까?”
“으, 우우웃……!”
“그렇기에 저로선 크게 선심을 써서, 아몬 드레이크라는 귀족 자제의 명예를 증거 삼아 제국과의 동맹을 선언하려는 겁니다. 제국에게 있어 아주 싸게 먹히는 장사가 아닙니까?”
“으그극…….”
능수능란하게 혀를 휘둘러 피오라의 말문을 받아버린 브레슬이 실실 웃었다.
‘이, 이럴 수가…… 브레슬의 언변이 이렇게나 좋았단 말인가?’
사실 다크엘프의 최대 규모 부족인 블랙탄의 지도자인 브레슬의 언변이 나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 언변을 발휘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몬을 괴롭히겠다.’라는 최대의 목적이 생겨 버렸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평소의 140퍼센트에 달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는 정말로 브레슬의 발등에 입을 맞춰야 한다.’
아몬은 마지막 희망인 슬로스를 바라봤다.
어쩌면 그녀가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해 줄 수 있을지도…….
‘……그럴 리가 없지! 기대도 안 했다!’
슬로스는 그럴 의지조차 없는지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애초에 아나르엘과 피오라의 적절한 명분마저 브레슬의 언변에 박살이 나버린 시점이라, 슬로스가 브레슬을 막을 명분 자체가 없는 것이다!
‘후, 젠장…… 젠장…….’
결국 아몬이 어금니를 악문 채 브레슬을 올려다봤다.
“……진짜로 합니까?”
“그럼 가짜로 할 생각이었습니까?”
브레슬이 스산하게 웃으며 발을 까딱거렸다.
“자, 다크엘프와의 동맹을 위하여.”
아몬의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 *
치카치카치카-!
“그르르륵! 퉤, 가르르르륵!”
아몬은 잇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맹렬하게 양치를 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필사적으로 양치질을 하는 아몬의 양 뺨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구슬프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 아몬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의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하하하! 참으로 꼴 좋군요! 무릎 꿇고 내 발등에 입을 맞추는 아몬 선생의 모습이라니!’
‘크흑, 커흐흐흑…….’
‘좋습니다. 이로써 우리 블랙탄 부족은 마왕 조나난의 습격에 대비해 제국과 동맹을 맺겠습니다. 또한 다른 다크엘프 부족들도 제국과 연합하도록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걸로 됐습니까?’
‘예흐흐흑…….’
결과적으로 황태자의 명령인 ‘브레슬을 창구로 해서 다크엘프 종족과 연합하라.’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덕분에 아몬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아몬은 치욕감과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13번째 양치질을 시작했다.
‘이 수모를 어찌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하겠지.’
눈물 섞인 양칫물이 아몬의 입가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몬이 14번째 양치질을 시작하려던 와중이었다.
“아몬, 안에 있느냐?”
라인벨트의 목소리에 아몬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가르르륵! 퉤! 안에 있슴다. 들어오십쇼.”
“그래. 너한테 우편이 왔는데…… 근데 너 몰골이 왜 그러냐?”
“흡……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진짜 힘드네요. 근데 웬 우편이?”
딱히 올 우편이 없을 텐데?
소매로 얼른 눈물을 닦은 아몬이 우편을 열어 봤다.
거기에는 황태자의 직인이 찍힌 편지가 한 통 있었으며,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주머니가 있었다.
‘……이, 이거 설마?’
아몬이 얼른 편지를 열어 봤다.
[그대가 다크엘프 종족과 성공적으로 협상을 마쳤다는 소식은 들었다네. 덕분에 다크엘프의 가장 큰 부족인 블랙탄 부족이 제국과 동맹을 맺기로 결정됐고, 추후 다른 부족들도 차례대로 합류하기로 했다네.] [그대의 노고에 감사하며, 포상으로 ‘금화 1천 개’를 하사하겠네.]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금화 1천 개……?’
아몬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막 신입의 탈을 벗은 아몬의 봉급은 한 달에 금화 4개다.
그런데 금화 1천 개?
‘거의 20년 치 봉급이라고……?’
아몬이 황급히 주머니를 풀어 헤쳤다.
그곳에는 번쩍거려 눈을 어지럽히는 금화와 몇 장의 어음이 있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금화 200개, 그리고 100골드짜리 어음이 8장.
아몬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참하게 찢겨 나갔던 아몬의 자존심이 금융으로 인해 회복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브레슬 부학교장의 사무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 뭐 하는……!”
“감사의! 의미로! 제가! 발등에 입을 맞춰드리겠습니다!”
“뭣!? 갑자기 미친 겁니까?”
“발을 이리 내놓으십쇼!”
“무, 무슨…… 아아악! 그만! 멈춰!”
브레슬은 아몬이 괴로워하며 발등에 입을 맞추길 원했던 것뿐이지, 진심으로 기뻐하며 발등에 입을 맞추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움! 움마! 움움움마!”
“그만! 그마아아아아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