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8)
아카데미가 망했다 188화
카이는 서신을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전쟁? 어째서 아메라 왕국이 전쟁을 선포하려는 거지?’
아메라 왕국은 중립 성향의 국가다.
제국에게 아주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이지도 않다.
그저 제국의 강력한 힘을 존중하고 경계해서 조금 숙여 주긴 하지만, 딱히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문화적인 교류가 상당히 활발해지고 있으니까 설득하는 게 비교적 간단할 거라 생각해서 아몬 선배님을 가장 먼저 아메라 왕국으로 보낸 건데…….’
갑자기 왜 전쟁이?
설마 아몬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아메라 왕국 국왕에게 무례를 저지른 것일까?
‘설마 뺨이라도 때렸나?’
아무튼 이것은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원래 외교라는 무대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휘둘리지 않고, 휘두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다른 국가들 사이의 분쟁에서 ‘조율자’로서의 입지를 가져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중립국을 자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다른 국가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군사력이 없다면 중립국을 자처하는 건 오만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또한 세력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정치력과 외교력도 있어야 한다.
즉 아메라 왕국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국가였다.
‘그런 아메라 왕국이 왜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거지? 정말로 아몬 선배님이 국왕의 따귀를 후려치기라도 했나?’
하여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정보 집단은 이럴 때 부려 먹으려고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것들이다.
“거기 누구 있느냐!”
카이의 외침에 창문 밖에서 기다렸다는 듯 그림자가 나타났다.
카이가 그에게 당장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황태자 전하!”
“……응?”
돌연 구르는 것처럼 문 안으로 뛰어 들어온 전령이 뭔가를 내밀었다.
“아메라 왕국으로 간 사절단에서 보내온 급보입니다!”
“급보? 또?”
조금 전에 전쟁을 선포할 거라는 급보가 왔는데 또 급보가 왔다고?
얼른 서신을 낚아챈 카이가 그것을 열어 봤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카이의 얼굴은 더욱 굳어 가고 있었다.
[전쟁은 거짓이다.] [아메라 왕국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척하면서 분위기를 살펴봐.] [아몬 드레이크]* * *
아메라 왕국의 국왕, 로만 3세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무리 거짓일지라도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요?”
걱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로만 3세의 투정에 아몬이 사과를 와작와작 씹으며 말했다.
“국왕 전하께서도 동의하신 일이 아닌지요?”
“그야 그렇지만…….”
“전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에 로만 3세는 탁자 위에 올려 둔 각서를 힐끔 바라봤다.
카이에게 외교권을 위임받은 아몬은 황실에서 사용하는 직인(職印)까지 넘겨받았다.
각서에 황실의 날인까지 떡하니 찍혀 있으니 로만 3세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아몬의 말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또한 말씀드렸듯 아메라 왕국이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소문을 내는 것만으로 향후 100년간 제국과의 우호 협정을 맺게 될 겁니다. 헛소문을 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걸로 얻는 보상치고는 너무나도 큰 것 아닙니까?”
“끄응…….”
로만 3세가 나직한 침음성을 흘렸다.
100년간 제국과의 우호 협정.
아메라 왕국은 분명히 중립국이다. 그러나 중립국이라도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륙에서 으뜸가는 강대국인 제국과 우호 협정을 맺는 것은 결코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가 잃는 것은 크지 않다. 제국과 전쟁을 벌인다는 헛소문. 그건 왕실과 연이 닿은 호사가들에게 넌지시 알린 거짓 소문에 불과해.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도 아니다.’
물론 당분간 아메라 왕국은 불안감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아메라 왕국도, 제국도 실제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곧 시끄러운 분위기도 잠잠해지겠지. 그러니만큼 결과적으로 우리들을 잃는 게 없겠지만…….’
로만 3세가 아몬을 힐끔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사과를 와작와작 씹어 먹고 있었다.
“음, 사과가 아주 달군요. 이게 그 서리 맞은 사과라는 건가.”
“……아주 태연하시구려.”
“음?”
“어찌 그리 자신만만한지 모르겠군. 그대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릴 거라 생각하면 아주 큰 오산이오. 외교와 정치는 대국적으로 봐야 하는 거요.”
약간의 비웃음이 어려 있는 로만 3세의 물음에 아몬이 피식 웃었다.
그가 입가에 묻은 사과즙을 핥으며 말했다.
“내기하시겠습니까?”
“……내기? 무슨 내기 말이오?”
“이번 주 안으로 몇몇 나라에서 은밀하게 접촉해 올 겁니다.”
“은밀한 접촉?”
“제국과의 전쟁을 지원하겠다고 재물을 내밀고, 병력을 지원해 주겠노라 말하는 것들이요.”
순간 로만 3세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군. 애초 대륙에서 제국에 적대적인 국가를 추려 내는 게 진짜 목적이었군.”
분명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다.
그러나 제국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상에 따라 함부로 그 힘을 휘두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아모니스 제국에 겉으로는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로만 3세의 추측에 아몬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게 제 진짜 목적입니다.”
응, 아니야. 구라야.
* * *
며칠 후.
카이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일이 참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아메라 왕국은 중립국이다.
그 특성에 맞게 국가들 간의 분쟁에 조율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결국 아메라 왕국의 평판은 나쁘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런 평판 좋은 중립국이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렇다면 모두들 중립국이 먼저 전쟁을 선포할 정도의 명분이 있다 생각하겠지. 그 명분이 뭐든 간에 말이야.’
결국 강한 힘을 지닌 제국은 ‘가해자’고 명분 있는 전쟁을 선포한 알메라 왕국은 ‘피해자’가 되어 버린다.
알메라 왕국이 전쟁을 선포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제국도 그에 대응하지 않는 이상 여론은 그렇게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제국 내부의 사정이다.’
뒷사정은 차치하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만 거론해 보자.
황제가 앓아누웠다.
전권을 황태자에게 넘긴 상태다.
그런데 공정한 중립국인 알메라 왕국이 영문 모를 전쟁을 선포했다?
‘크크크, 내가 무능하고 나쁜 놈이 되겠군.’
덕분에 제국 내부의 가신들을 결속시키라는 임무를 받았던 펜도리안 가문은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황제라는 믿음직한 거목이 앓아누운 상황에서 황태자가 전권을 위임받자마자 알메라 왕국이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 제국의 방침인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 그 사상에 알게 모르게 불만을 품고 있던 제국의 강경파 귀족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이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카이에게서 도착한 서신을 받은 아몬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제국도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뒤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나 보군.’
그들은 조만간 있을 마왕 조나난과의 전쟁에서 불화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는 주체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당장 제거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경계할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그럼 그다음으로는…….’
아몬은 로만 3세에게 접견을 신청했다.
잠시 후, 아몬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로만 3세에게 말했다.
“내기는 제가 이겼겠군요.”
“…….”
“제국과의 전쟁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는 몇몇 국가에 대해 묻지는 않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조금만 알아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럴 테지.”
거짓말이다.
아몬은 알아볼 생각도, 알아볼 능력도 없다.
그러나 협상할 때는 숨겨 둔 한 수가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 좋다.
“한데,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제국에게 적대하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소.”
로만 3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설마 그들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오?”
로만 3세는 알메라 왕국에서 흘려 보낸 거짓 정보가 전쟁의 발단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려스럽게 던진 질문에 아몬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우리 제국도 전쟁은 원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왕 조나난과의 전쟁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인데 우리끼리 피를 흘릴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으음.”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에 로만 3세는 말을 멈췄다.
적대적인 국가가 있다, 없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혹시 모를 위협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로만 3세가 아니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잠시 기다린 아몬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전쟁에 관한 허무맹랑한 헛소문을 수습하죠. 저도 황실에 연락해 그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적극적으로 부인해 달라 전하겠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로만 3세가 돌연 눈을 부릅떴다.
‘……잠깐.’
마왕 조나난의 침공.
사절단이 도착했던 첫날, 동행했던 드래곤이 보증했던 사실이니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니만큼 알메라 왕국은 무조건 제국과 동맹을 맺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마왕과의 싸움에 제국만큼 든든한 우군은 또 없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로만 3세는 아몬이 도착한 첫날 곧바로 동맹 협정을 맺으려 했다.
그러나 아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하십시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과 다름없는 영문 모를 헛소리.
로만 3세는 그 말에 크게 놀라며 거절했으나, 아몬은 그를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왕실과 연이 닿은 호사가들을 통해 전쟁에 관한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 결과 제국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국가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알메라 왕국과의 동맹은 확정이었다.
그런데 헛소문을 한번 퍼뜨리는 것으로 혹시 모를 적들을 추려 냈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리 알메라 왕국은 헛소문을 퍼뜨린 대가로 향후 100년간 제국과 우호 협정을 맺었다. 그때 전쟁에 관한 헛소문을 부정한다? 그럼 우리에게 제국과의 전쟁을 지원하겠노라 말한 국가들은…….’
그들은 속된 말로 X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향후 100년간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제국에 책잡히고 싶지 않은 만큼 그들은 마왕 조나난과의 전쟁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가담하려고 할 것이다.’
로만 3세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 다음 행선지가 어찌 되는지 여쭤 봐도 될는지요?”
로만 3세의 물음에 아몬이 빙그레 웃었다.
“부르스타 왕국, 뷰테인 왕국, 가스레인 도시연합입니다.”
로만 3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모두 제국과의 전쟁에 알메라 왕국을 지원하겠노라 제안한 국가들이었다.
‘켕기는 게 있는 그들은 마왕 조나난과의 전쟁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리겠군.’
잠재적인 적을 비굴한 아군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제국이 지불하는 대가?
‘……없다. 아무것도.’
로만 3세는 사과를 씹어 먹으며 웃고 있는 아몬이 무섭게 느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