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89)
아카데미가 망했다 189화
카이는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음, 이런 결과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원래의 계획은 단순히 마왕 조나난에게 대비하기 위한 아메라 왕국과의 동맹이었다.
그들도 마왕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제국과의 동맹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순한 일정에 불과했다.
그저 아메라 왕국에 방문해 ‘동맹을 맺는다.’라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하지만 아몬 선배님은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서 혹시 모를 내부의 위험에도 대비했다. 아메라 왕국이 우리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는 낭설을 퍼뜨리는 것 하나만으로…….’
카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로써 현 황실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제국 내부의 귀족들을 추려냈고, 제국에게 적의를 지니고 있던 국가들을 특정할 수 있었다.
‘정말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아몬 선배님.’
카이는 아몬에게 사절의 의무를 부여한 것과 외교적 권한을 넘겨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 *
아몬은 불만이었다.
“X같네!”
아몬이 상소리를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내가 이 정도 해 줬으면 됐지, 뭘 또 얻을 게 있다고 계속 나를 부려 먹으려 하는지를 모르겠네. 안 그렇습니까, 호튼 경?”
황실의 근위기사이며, 예전에 아몬을 포박하고 목을 베어 죽이겠노라 협박에 공갈까지 일삼던 호튼 경은 아몬의 수행원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몬의 투덜거림에 호튼 경은 손바닥을 열심히 비비며 말했다.
“하하, 드레이크 공자. 분을 푸시지요. 애초에 드레이크 공자의 사절 임무는 아메라 왕국, 부르스타 왕국, 뷰테인 왕국, 가스레인 도시연합. 네 개 국가와의 동맹 성사가 아니었습니까? 아메라 왕국과의 동맹을 이토록 수월히 달성하셨으니, 나머지도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고정하십시오.”
이미 황태자는 황제에게 전권을 위임받았고, 아몬은 그런 황태자에게 외교에 관한 권한을 상당수 넘겨받은 권력자!
예전에 그의 목을 베어 죽이겠다고 협박했던 죄가 있었기에 호튼 경은 연신 아몬에게 굽실거렸다.
그리고 호튼 경이 필사적으로 다독여 줘도 아몬의 분노는 가볍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메라 왕국이랑 동맹도 맺었겠다! 제국에게 반기를 들지도 모를 국가들도 특정해 줬겠다! 이렇게나 성과를 냈으면 얼른 돌아와서 상이나 받고 푹 쉬어라!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몬이 끊임없이 징징거리자 호튼 경은 식은땀을 흘리며 실실 웃었다.
“드레이크 공자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만, 황태자 전하께서도 워낙 중대한 사안이니 믿어 마지않는 드레이크 공자께 맡기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믿을 걸 믿어야지, 왜 나 같은 걸 믿는 걸까?”
“…….”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었기에 호튼 경은 어색하게 웃으며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호튼 경은 화제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런데 드레이크 공자, 궁금한 게 있는데 한 가지만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쩝. 예, 뭐가 궁금하십니까?”
호튼이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말고삐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워프 게이트를 사용해서 이동하면 될 텐데, 굳이 이렇게 마차를 끌고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르스타 왕국, 뷰테인 왕국, 가스레인 도시연합. 앞으로 갈 곳이 세 군데나 되는데, 마차로 세 곳 전부를 경유하면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것 같습니다.”
호튼 경의 순진한 물음에 아몬은 탄식이 나왔다.
“역시 근위기사시군요.”
“하하, 별말씀을…….”
“칭찬하는 것 아닌데요. 어수룩하다는 말이었습니다.”
“…….”
잠시 썩은 미소를 짓고 있던 호튼 경이 말했다.
“뭐가 어수룩하다는…… 아!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면 그들이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겠군요! 좌표를 바꾼다거나 해서…….”
아몬은 다시 한번 탄식했다.
“그럼 협상이고 뭐고 진짜 전쟁이 터질 텐데요? 나라를 제국의 손으로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게 그놈들 꿈이래요?”
“……아닙니까?”
“애초에 사절단을 위협하거나 건드리는 건 엄청난 무례예요. 그러는 순간 다른 주변 국가에게도 밉보일 거라고요.”
침음성을 흘린 호튼 경이 말했다.
“그럼 왜 이렇게 마차로 이동하는 겁니까?”
그 물음에 아몬은 마차 위에 드러누운 채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의 여유를 좀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시간의 여유 말씀이십니까?”
호튼 경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드레이크 공자, 이 사절 임무는 최대한 서둘러 끝마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마왕 조나난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건…….”
“아유, 괜히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예? 그럼 다른 이유가 있으시다는…….”
마차 위에 드러누운 아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요. 이게 다~ 외교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작전이다, 이 말입니다.”
“그, 그렇군요.”
근위 기사는 상당히 귀한 신분이다.
게다가 황실을 경호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으니만큼 외부 임무를 나갈 기회가 적다.
즉 세상 물정이 어둡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여유부리는 걸로만 보이는데…….’
마차 지붕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초콜릿만 우물우물거리는 것을 보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찝찝함을 간직한 채 마차를 몰던 호튼 경이 말했다.
“그나저나 드레이크 공자, 슬슬 부르스타 왕국의 수도가 보이는군요.”
“음, 아메라 왕국과 부르스타 왕국이 가깝다더니 벌써 도착했나 보군요. 아직 닷새밖에 안 지났는데.”
두 왕국의 거리는 말을 채찍질하며 전력으로 달리면 하루 남짓 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느긋하게 마차를 몰며 왔기에 닷새나 걸린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본 아몬이 초콜릿이 가득 든 봉투를 챙기며 기지개를 켰다.
“그럼 공자께서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셔서 협상에 필요한 준비를 하시죠. 제가 절차를 밟겠습니다.”
“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거예요.”
“예?”
“어서 들어가기나 하자고요.”
호튼 경은 아몬의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외국인의 입국 절차는 까다로운 편이다.
심지어 왕국의 수도에 들어가려면 온갖 절차로 꼬박 몇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사절단은 신분이 확실하기에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치르진 않지만, 그럼에도 ‘수도’라는 곳의 특성상 신분을 철저하게 확인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모니스 제국에서 오신 사절단이시라고요!?”
공문을 확인한 경비병이 펄쩍 뛰더니 성벽 안을 향해 고함을 꽥 질렀다.
“정문을 열어라! 아모니스 제국에서 사절단 일행분들이 오셨다!”
어지간해서는 열지 않는 성벽의 거대한 정문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비병들이 연신 굽실거리며 마차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호튼 경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무리 사절단이라도 이렇게까지 행동한다고?’
분명 아모니스 제국과 부르스타 왕국 간의 국력 차이가 심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필요는 없지 않나?
이윽고 왕궁까지 직행으로 안내받은 호튼 경이 마차를 대고, 말을 묶고 있는 와중에 아몬이 슬금슬금 마차 지붕에서 기어 내려왔다.
“끙, 호튼 경. 그럼 슬슬 가 봅시다.”
“예, 드레이크 공자.”
이번 사절단 임무에서 아몬의 철저한 호위와 경호가 목적인 호튼 경이 조용히 아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아몬은 가장 먼저 왕궁에서 안내를 위해 나온 시종장을 만났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드레이크 공자님.”
“아, 예. 뭐.”
아몬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시종장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광경에 호튼 경은 괜히 불안해 발을 동동 굴렀다.
‘저래도 되나? 자칫하면 외교적인 결례가…….’
잠시 후, 왕궁 안으로 안내해 준 시종장이 물러가더니 웬 중년인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메라 왕국의 재상인 볼메스입니다.”
“아, 예. 뭐.”
심드렁한 아몬의 반응에 스스로를 재상이라 소개한 중년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광경에 호튼 경은 다시 한번 불안감에 치를 떨었다.
‘재상인데? 시종장도 아니고, 고위 귀족인 재상한테 저래도 되는 거야?’
아무리 제국에서 보낸 사절단이라고 한들 타국의 고위 귀족에게 저렇게 무신경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괜히 불안해하는 호튼 경의 눈치를 읽은 아몬이 피식 웃었다.
‘일이 잘 풀리고 있군.’
역시 근위 기사들은 황궁에서 경호 임무만 해 왔기에 이런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마중 온 사람이 시종장에서 곧바로 재상으로 건너뛴 걸 감안하면 애가 달아도 단단히 달았나 보군.’
본래 외국의 사절단을 마중해 주는 사람은 왕국 내부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마중 나온 사람이 시종장?
처음에 아몬이 퉁명스러웠던 것은 진심이었다.
‘다음으로 마중 나온 사람은 재상. 그리고 재상 정도면 사절단을 맞이하기에 충분한 입지를 가진 사람이지만…….’
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몬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도로를 이용해 마차로 느긋하게 온 이유.
물론 정말로 느긋하게 관광 차 여유를 부린 것도 있긴 했지만, 진짜 목적은 부르스타 왕국의 애간장을 살살 녹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닷새가 걸렸다. 우리 제국과 아메라 왕국이 동맹 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하루. 그럼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인 나흘 동안, 이놈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겠지.’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절단이 도착하지는 않았을지 워프 게이트를 수시로 확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사절단은 워프 게이트를 통해 나타나지 않는다.
제발이 저려도 잔뜩 저린 도둑들은 생각할 것이다.
‘얘들 왜 안 오지? 설마 우리를 어떻게 응징할지 회의라도 하고 있나?’
온갖 추측과 추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드디어 사절단이 도착했다!
아하! 워프 게이트가 아니라 마차로 이동했으니 닷새나 걸린 거구나! 어쩌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는걸?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몬이 재상에게까지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을 보고 무참하게 깨져 나갔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앞장서서 아몬을 안내해 주고 있는 재상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닷새 동안 회의할 분위기가 익어도 푹 익었군.’
아몬이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재상, 볼메스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께 사절이 도착했음을 전하겠습니다. 이곳 접견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설설 기는 재상의 공손한 목소리에 아몬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래 기다리진 못합니다.”
“……!”
“공사가 다망한지라.”
퉁명스러운 아몬의 말에 재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재상이 나가자 호튼 경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드, 드레이크 공자, 행동이 너무 과하신 듯합니다.”
“과하다고요?”
“예. 아무리 그대로 일국의 재상에게, 또한 일국의 국왕에게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는 의사를 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례한…….”
호튼 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우당탕-!
한바탕 구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리고, 부르스타 왕국의 국왕인 버너드 4세가 시뻘건 얼굴로 외쳤다.
“아모니스 제국의 사절이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소! 그럼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가 제국과의 동맹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우리 왕국은 마왕 조나난과의 전쟁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자신할 수 있소!”
아메라 왕국에게 제국과의 전쟁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고, 닷새 동안 애간장을 질퍽하게 녹였던 버너드 4세는 자존심 따위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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