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9)
아카데미가 망했다 19화
[통일 제국력 1년] [그레모리 아리앗 드레이크 대공과의 일담]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드레이크 대공? 우리 가문이 원래는 대공 가문이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왜 남작 가문이지?
얼른 다음 글귀를 읽어 봤다.
[사관이 기록하되, 황제께서 말씀하시니 “드레이크, 그 개XX가 내가 아껴 둔 훈제를 훔쳐 먹었다. 내 오늘 그 XX를 두들겨 패고 만다.”고 하시었다.] [황제께서 “사관 개XX야, 이거 적지 마라.”고 하시었다.]“……응?”
고개를 갸웃거린 아몬이 실록을 계속 읽었다.
[통일 제국력 3년] [황제께서 드레이크 대공과의 개싸움에서 두들겨 맞고 앓아 누우셨다.]“……어?”
[통일 제국력 6년] [황제께서 말씀하시길, “그래도 우리 아들이 심성은 고와.”라고 하셨으나 드레이크 대공께서 “그래서 걔 마법 성적이?”라 하시자 황제께서 술상을 엎으셨다.]“…….”
[황제께서 벨몬트 사관을 업어치기 하시며 “쓰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하셨기에 수십 사관이 황궁에 모여 통촉하시길 아뢰었다.]실록을 읽는 아몬의 얼굴은 어느새 굳어 있었다.
‘……이딴 게 실록?’
무슨 실록이 이렇게 개판이란 말인가.
이후로도 비슷한 내용이 계속 이어지다가 슬슬 ‘대’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모니스 2세, 3세, 4세…….’
실록은 꽤 두툼했고, 글씨는 깨알 같았다.
때문에 아몬은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실록을 읽었다.
딱히 눈이 침침해 그런 건 아니고, 워낙 골 때리는 내용이라 두통이 치민 것이다.
[아모니스 6세께서 말씀하시길 “드레이크 공작 저 XX랑 이야기를 한 내가 XX이다.”하시니, 드레이크 공작께서 “응, 선제 폐하 만수무강하시길.”이라 하시어, 황제께서 뒷목을 잡으셨다.]“……어라?”
어느새 드레이크 대공은 ‘공작’이 되어 있었다.
‘대공위를 박탈당했어……?’
그리고 대가 바뀔수록 드레이크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아모니스 8세께서 드레이크 후작은 상종 못할 자식이다 하시니…….] [아모니스 11세께서 드레이크 백작의 따귀를 후려치시니, 매서운 반격을 당하시어…….]이윽고 두툼하던 실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산드리오 황태자께서…….]‘산드리오? 현 황제인 아모니스 18세의 이름이잖아?’
그리고 이어진 글귀는 충격적이었다.
[……황궁의 만찬회에서, 드레이크 자작의 후계자인 벨리알 드레이크가 산드리오 황태자께서 아껴 드시던 소시지를 뺏어 먹었다.] [황태자께서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만찬회에 참석한 뭇 귀족들이 한탄을 금치 못하더라.]“……어어?”
그리고 이어진 내용은, 황태자가 울자 전대 황제가 크게 격노해 드레이크 자작을 질타했으나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는 것이다.
결국 자식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번지고, 격노한 황제가 할아버지의 자작위를 몰수하고 남작위로 강등시킨 것이다!
‘그 이후로도 황태자가 황제로 즉위하고,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할아버지와 싸우고……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실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책을 덮자 아버지가 말했다.
“……모두 읽었느냐.”
“……예.”
아버지는 어느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게 드레이크 대공가가 남작가로 몰락하게 된 전말이란다.”
아몬도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떨어트렸다.
“무슨 반역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대를 이어서 사소한 일이 겹치고 겹쳐서 대공가가 남작가까지 떨어졌다고요?”
“……그래.”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차라리 반역을 저질렀다는 게 나을 정도였다!
아무튼 실록을 보니 현 황제가 황태자 시절, 할아버지에게 당한 것이 상당히 많았다.
소시지를 뺏긴 것 외에도, 아끼던 말의 꼬리털을 할아버지가 죄 뽑아 놨다느니, 예뻐하던 강아지의 털을 기마 민족의 머리털처럼 밀어 놨다느니…….
‘그래서 황제가 날 봤을 때 얼굴에 탐욕이 가득하느니 그런 거였어?’
하지만 아몬은 억울했다.
‘그건 할아버지가 잘못한 거잖아?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지? 나처럼 청렴결백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서러움에 눈물을 글썽거리던 아몬이 말했다.
“아버지는 현 황제 폐하와 별일 없었나요?”
“내 부친께서 현 황제 폐하와 완전히 척을 진 상황이고, 대전쟁이 수습된 것조차 고작 몇 년 전이지 않으냐. 황제 폐하의 얼굴 한번 뵙지 못했다.”
“아아…….”
대전쟁.
대륙 전역을 엎진, 십여 년간 이어진 전란의 시기.
현 황제가 성군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대전쟁을 훌륭하게 종식시키고 전란의 여파를 빠르게 수습했다는 것에도 있었다.
“그나마 악연이나마 인연이 있었기에 대전쟁 때 우리 영지까진 징집되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
“……그냥 너무 멀고 험해서 잊어버린 거 아닐까요?”
“……그런가?”
애초에 영지민 전부를 합쳐 봐야 오십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아무튼 이 사실은, 황제 폐하의 최측근과 우리 드레이크 가문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극비 중의 극비. 너도 이 사실을 누설하진 말거라.”
“……이딴 거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무튼 왜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려 주신 겁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네 성격에 이걸 알면 가만히 있겠느냐?”
“……제 성격이 뭐 어때서요.”
“네가 생긴 건 날 닮았어도 성격은 어머니를 쏙 빼닮지 않았느냐.”
어릴 때부터 줄곧 들어온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아, 맞다. 그런데 어머니는요? 그리고 형이랑 동생은요?”
“네 형이랑 동생은 이 앞의 도시에 볼일 보러 갔고, 율리아는 슬슬 돌아올 때가 됐을 텐데…….”
그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누군가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카임, 이 다크엘프는 대체 뭐죠?”
“오, 율리아. 돌아왔…….”
아몬과 아버지는 경악했다.
어머니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브레슬의 뒷덜미를 붙들고 있었다.
“어, 어머니!?”
“어머나, 아몬 왔구나.”
“예, 오랜만…… 이 아니지. 그걸, 아니지. 그분을 왜…….”
“응? 이거?”
어머니가 축 늘어진 브레슬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게 우리 감자밭을 파헤치고 있더구나. 그래서 일단 기절시켰지.”
일단 손이 먼저 나가고 보는 어머니!
아몬이 괜히 어머니 성격을 닮았다는 게 아니었다.
“……감자밭을 파헤쳤다고요?”
브레슬은 그 정도로 타락했단 말인가.
“응, 무슨 마나가 어쩌고 하면서 파고 있더구나. 근데 아는 다크엘프니?”
“……우리 아카데미 부학교장이에요.”
“부학교장? 부학교장이 왜 감자밭을 파헤치고그래?”
그 물음에 아몬이 애먼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건 저도 알고 싶네요…….”
* * *
보리스는 공포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문득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떠올랐다.
워프 마법으로 막 도착했을 때, 영지는 인기척이라곤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응? 단체로 다들 사냥이라도 갔나?’
아몬의 말에 마리온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사냥? 단체로?’
‘예. 여기 몬스터가 만만하진 않거든요. 단체로 가서 때려잡는 거죠 뭐.’
‘……애들도 없는데?’
‘애초에 애들이 적기도 하고, 일손도 딸리니 애들도 가야죠. 애들도 오크, 트롤 정도는 잡을 수 있잖아요?’
‘그렇…… 뭐?’
결국 일행은 곧장 아몬의 자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몬의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 아몬과 그의 아버지가 대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생긴 시간의 공백.
‘영지나 좀 둘러볼까?’
‘그러죠.’
‘흠, 별건 없군.’
‘아몬 말대로 풍족하진 않은 곳 같군요.’
마리온과 슬로스가 실례되는 말을 쑥덕거렸지만, 보리스에게는 가슴에 와닿는 풍경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 같아.’
게다가 널찍하게 펼쳐진 감자밭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그런데 그 정겨운 풍경을 망가뜨리는 불한당이 하나 있었다.
돌연 감자밭을 둘러보며 경악하는 브레슬!
‘이, 이 감자! 어떻게 된 거야? 무슨 감자의 마나가 이렇게 진해?’
아나르엘도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그, 그러게요? 무슨 감자가…….’
‘가, 감자! 다 내 거야! 내 거!’
외치며 감자밭으로 달려간 브레슬이 정신없이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어찌 저런…….’
‘크흠, 부끄럽군.’
모두가 혹시 일행으로 오인될까 두려워 브레슬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하지만 브레슬의 감자 수확은 오래가지 못했다.
돌연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그림자!
콰직-!
‘키아아아악!’
고라니 같은 비명을 토하며 쓰러지는 브레슬!
쓰러지는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챈 건장한 체격의 여인이 중얼거렸다.
‘뭐야, 이 다크엘프는?’
곧이어 여인이 브레슬을 아몬의 자택으로 질질 끌고 간 것이다!
또한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십의 남녀노소가 피 칠갑을 한 채 제각기 몬스터 시체들을 짊어지고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털썩-!
아나르엘이 귀를 축 떨어트리며 주저앉았다.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의 흉악한 모습에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영주님의 손님인가?”
“우리 영지에 손님? 자네, 포이즌머쉬 포자라도 마셨나?”
“마셨지. 아까부터 머리가 띵해 죽겠어.”
악의라곤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 칠갑을 한 그들의 흉흉한 모습에 마리온과 슬로스는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했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보리스가 침을 꼴깍 삼킨 순간이었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엇! 아몬 도련님!?”
“언제 돌아오신 겁니까?”
“하하, 아까 막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반가워하는 마을 사람들을 쭉 훑어본 아몬이 말했다.
“다들 오늘 수확이 썩 좋지 않네요?”
그 말에 얼굴에 흉터가 그득한 사내가 오거의 옆구리를 툭툭 차며 말했다.
“쩝, 요새 몬스터가 이상하게 뜸하더라고요.”
“저런, 왜 그러지?”
“도련님 떠나시기 전에 잔치 연다고 좀 많이 잡긴 했죠.”
“너무 많이 잡아서 씨가 말랐나…….”
고개를 갸웃거린 아몬이 손뼉을 쳤다.
“아무튼 다들 오랜만입니다. 여기 이분들은 아카데미의 학교장님, 선배님, 그리고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입니다.”
“오오! 이분들이…….”
“우리 영지에 손님이라니…….”
그들이 감격한 듯 외쳤다.
“정말 교사가 되셨군요, 도련님!”
“이야! 그럼 꾸준히 근무하시면 언젠가 학교장이 되시겠네요!”
계약 기간인 3년만 지나면 도망칠 생각인데 그 무슨 끔찍한 소리란 말인가.
아몬의 표정이 썩는 것을 본 마을 아낙네가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응? 뭐가?”
“부학교장이 먼저 돼야죠!”
“아아! 그렇구만!”
하하호호 웃음을 터뜨리는 마을사람을 본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아무튼 여러분,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 얼른 씻으러 가시죠.”
“예! 손님도 오셨는데 얼른 씻어야겠군. 어서들 가세!”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멀어지고, 비로소 조용해지자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휴, 간만에 보니 반갑긴 한데 많이 소란스럽네…….”
입맛을 다신 아몬이 일행을 둘러봤다.
“그런데 다들 왜 밖에 나와 있…… 어라? 왜 다들 그러고 있어요?”
일행들은 주저앉은 채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흉악한 외견의, 게다가 상당한 수준의 몬스터 시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물러가자 비로소 긴장이 풀린 것이다.
* * *
모처럼 영지로 돌아온 아몬!
영지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날 밤 연회가 벌어졌다.
그리고 연회하면 술이고, 술 하면 마리온 아니겠는가!
‘좋군, 근데 연회 음식은 뭔가?’
‘오늘 고기 많이 가져왔잖아요.’
‘고기? 무슨 고기…… 설마 몬스터 고기?
아나르엘이 경악했다.
‘그, 그걸 어떻게 먹어요!’
그 외침에 아몬은 ‘설마 다른 사람들은 몬스터 고기를 안 먹나? 또 내 상식이 잘못된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헛된 걱정이었다.
‘허허, 학교장님은 감자 드시면 되잖습니까.’
‘아, 그럼 되겠네요.’
‘마운틴보어가 꽤 튼실하던데, 정말 안 드실 겁니까?’
‘인간 세상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고기는 입에 영 안 맞더라고요.’
그냥 엘프라 입맛 때문에 경악했던 거였다.
연회가 시작되고서 가장 신난 건 마리온이었는데, 어느새 아버지와 어깨동무까지 하고선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카임도 농담이 참 심하군!”
“어휴, 럼덤 자작님. 농담 아닙니다.”
그리고 한편에선.
“돌아가는 길에 감자 좀 싸 드릴게요. 그러게 왜 밭을 파헤치고 그래요?”
“훌쩍…….”
어머니와 브레슬의 화해까지!
‘음, 평화롭군.’
슬로스도 모닥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고, 클로에와 보리스도 몬스터 고기는 처음이라 마을 어른들의 ‘오크 삼겹살’을 먹어 보라는 회유에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꿀꺽! 크, 좋네.”
그런 풍경을 안주 삼아 술 한잔하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게다가 최근엔 몬스터가 뜸해졌다고 하니, 마음 놓고 마셔도 되겠지?’
싱긋 웃은 아몬이 술병을 컵에 기울인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돌연 밖에서 울려 퍼진 돌 굴러가는 소리.
그 소리가 들려온 순간.
술과 고기를 탐하던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씨…….”
“에이, 한창 좋았는데.”
투덜거리며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 마을사람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온은 상황 파악을 못한 듯 벌게진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응? 뭔가? 뭔 일인데?”
그 물음에 아몬의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몬스터가 쳐들어왔나 봅니다.”
“……엉? 모, 몬스터가?”
“예. 아까 돌 굴러가는 소리가 마을 입구에 쌓아 둔 경계용 낙석이거든요.”
“……마을 입구에 낙석이 있다고?”
“그 정도는 돼야 시간을 벌죠.”
“……대체 뭐가 쳐들어오길래 말인가?”
아버지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 마리온은 술이 확 깬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편.
아몬이 짜증스레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잭슨 아저씨, 요샌 몬스터가 뜸하다면서요?”
아까 아몬과 대화를 나누던 사내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그러게요. 한동안은 정말 조용했는데…….”
“휴우…… 그럼 그렇지. 내 인생이 잘 풀릴 리가 없지.”
푸념을 토한 아몬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택의 옆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쇳덩어리’를 끌어당겼다.
그그그그긍-!
무슨 사람 크기만 한 철판. 아니, 도끼.
그것을 어깨에 척 짊어진 아몬이 하품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여러분, 얼른 해치우고 마저 먹읍시다!”
“예, 도련님!”
드레이크 영지의 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