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91)
아카데미가 망했다 191화
카이는 기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중립국인 아메라 왕국을 시작으로, 제국에 은근슬쩍 반기를 들려 했던 부르스타 왕국까지 유리한 조건으로 협정을 맺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몬은 말 그대로 쾌진격을 하고 있었다.
‘대단해. 아메라 왕국과 부르스타 왕국을 선례로 만들어서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다른 국가인 뷰테인 왕국과 가스레인 도시연합과도 단숨에 동맹 협정을 맺으셨다.’
카이는 아몬의 수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보고서를 통해 접한 내용을 감안하면, 아몬의 수단은 결코 정상적인 외교라고 할 수 없었다.
‘……사실 반쯤은 협박에 공갈이니까.’
정상적인 외교관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잘 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무작정 상대를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달아날 구멍을 만들어 둔 후.
무슨 양치기 개처럼 상대를 몰아붙여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카이는 아버지인 황제가 드레이크 가문을 왜 그리 경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기야 과거의 드레이크 대공이라는 사람도 단순히 무력만으로 황제 자리에 추대된 게 아니겠지. 그에 걸맞은 정치력도 갖추고 있던 거다.’
물론 숙취로 그 기회를 날려 먹기는 했지만, 그 능력 자체가 모자랐던 것은 아니리라.
아무튼 황제인 아버지가 아몬을 경계하는 것은 차치하고, 카이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드레이크 가문과의 악연을 자신의 대에서 끊어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니만큼 나는 아몬 선배님을 믿는다.’
빙그레 미소 지은 카이가 주먹을 불끈 움켜쥔 찰나였다.
“황태자 전하! 급보입니다!”
전령이 구르는 것처럼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서신을 전했다.
이윽고 그것을 읽어 본 카이는 피를 토했다.
“컥!”
아몬이 도착한 ‘야마닌 연합’에서 제국에 전쟁을 선언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야마닌 연합은 동맹을 제안하려던 곳이 아니었다.
‘아몬 선배님! 갑자기 왜 계획에도 없던 야마닌 연합으로 가신 겁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몬을 전적으로 신뢰하던 카이의 눈동자는 서신을 읽으며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 * *
아몬의 호위이자 보좌역인 근위기사, 호튼 경은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인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드, 드레이크 공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
“갑자기 야마닌 연합을 도발하시다니요!?”
호튼 경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원래 제국에게 반기를 들려 했던 국가들인 부르스타 왕국과 뷰테인 왕국, 가스레인 도시연합과의 동맹을 성사시킨 이후 제국에 복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몬은 갑자기 선언했다.
‘맞다, 호튼 경.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야마닌 연합이라고 있죠?’
‘예? 야마닌 연합…… 예, 그런 곳이 있긴 합니다만.’
야마닌 연합은 일개 국가라기에는 규모가 작고, 일개 부족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비대한 이른바 ‘군장국가’라는 집단이었다.
야마닌 연합은 여러 개의 야만 부족이 뭉쳐 만들어진 연합으로, 현재 그들은 어느 강력한 군장을 중심으로 ‘연합’이라는 깃발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야마닌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야마닌 연합과도 동맹을 맺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몬의 말에 호튼 경은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하기 싫다며 투덜투덜, 가기 싫다며 마차 바퀴에 대롱대롱 매달려선 발버둥을 치던 아몬이 이제는 의욕적으로 외교 임무를 수행하려 하다니!
게다가 야마닌 연합은 굴강한 육체를 지닌 야만인들이 모여 있는 연합이었기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드레이크 공자!’
‘허허허, 뭘요.’
‘그럼 황태자 전하께 바로 서신을 올리겠습니다. 야마닌 연합을 경유해 제국에 복귀하면서 겸사겸사 그들과도 접촉해 협정을 맺어 보겠다고요.’
아몬이 의욕을 보이자 호튼 경도 의욕적으로 양피지를 꺼냈다.
그리고 단숨에 깃펜을 휘갈겨 서신을 쓰려는 그를 본 아몬이 얼른 만류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예?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 먼저 보고를…….’
‘에헤이! 어차피 제가 외교 권한을 넘겨받았잖아요? 선조치 후보고! 언제 답신을 받고, 언제 명령을 기다려요? 때로는 현장에서는 현장 책임자가 지휘관보다 우선권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야마닌 연합으로 가죠.’
‘하, 하지만…….’
근위 기사인지라 명령을 우선시하는 호튼 경이 망설이자 아몬은 망설임 없이 뱀의 혀를 휘둘렀다.
‘원래가끔은이렇게자유롭게움직이는게좋을때도있는법이고.’
‘크으윽…….’
‘게다가우리가깜짝선물로동맹을맺으면황태자전하가얼마나기뻐할까요좋아서데굴데굴구를지도모르는.’
‘좋습니다바로출발하죠!’
결국 현혹당한 호튼 경은 눈알을 뱅글뱅글 돌리며 야마닌 연합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현재.
“그아아아! 우! 우! 우!”
“제국의 인간! 죽인다! 우워워워!”
야마닌 연합의 야만 전사들은 극도로 분노한 채 아몬과 호튼 경을 향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럴 만한 것이, 아몬은 협상을 하자며 야마닌 연합의 군장을 부르더니 속된 말로 냅다 죽탱이를 날려 버린 것이다.
그 광경에 호튼 경도 경악하고, 외교관이 왔다는 소식에 삼삼오오 몰려온 야마닌 연합의 사람들도 놀라 까무러치고 말았다.
“으, 어, 어, 드레이크 공자!? 이, 이게 대체 무슨…….”
아몬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호튼 경을 무시하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아아! 감히 누가 나를 상대할 것이냐!”
“우, 으으으!?”
“너냐!”
아몬이 왜소한 야만인에게 삿대질을 하자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크워어어! 네놈이 나를 상대할 테냐!”
아몬이 우렁찬 목소리로 다음 상대를 지목하자 건장한 체격의 야만인이 크게 노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쿠어어! 제국의 나약한 샌님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용맹하게 나선 건장한 야만인은 아몬에게 죽탱이를 털린 채 군장 옆에 누웠다.
야마닌 연합의 군장에 이어서, 연합의 둘째가는 전사까지 고이 눕혀 버린 아몬의 용맹함에 야만인들은 술렁거렸다.
그 술렁거림을 읽은 아몬은 길길이 날뛰었다.
“크아아! 나를 쓰러트릴 용맹한 전사를 데려오라! 그렇지 못하면 너희들은 나의 발아래 복종해야 할 것이다!”
매섭게 포효한 아몬은 쿵쿵 발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군장이 거주하는 저택에 냅다 들어가 버렸다.
얼떨결에 아몬을 뒤따라 저택에 들어온 호튼 경은 아직도 놀랐는지 창백한 얼굴로 떠듬거리며 말했다.
“드, 드레이크 공자! 미치셨습니까? 갑자기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
“…….”
“어떻게 일국의 군주에게 이런 무례를…….”
무례하고 무자비한 아몬의 행보에 호튼 경은 발만 동동 구르면서 저택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우리에 갇힌 짐승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빙글빙글 도는 호튼 경을 힐끔 바라본 아몬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앉으세요, 정신 사납게 그러지 말고.”
“하, 하지만…….”
“이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예? 이것도 다 계획인 겁니까?”
호튼 경의 물음에 아몬은 저택의 중앙에 털썩 드러누우며 말했다.
“그럼요. 제가 아무 이유 없이 야마닌 연합의 군장을 때렸겠어요?”
“…….”
이유가 있다고 한들, 이렇게 다짜고짜 일국의 지배자를 때릴 순 없지 않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아몬에게 다 계획이 있다니 호튼 경은 조금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그럼 어째서 그러신 건지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드레이크 공자? 예?”
“…….”
대답 없이 빙글 돌아눕는 아몬을 본 호튼 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냥 아무 계획 없는 거 아니야?’
* * *
야마닌 연합의 군장, 바바루스는 흉측하게 부어오른 얼굴을 감싸 쥔 채 으르렁거렸다.
“크으으…… 제국의 샌님놈, 갑자기 이 몸을 기습해 쓰러트리다니…….”
그는 분노에 찬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 자신이 거주하는 군장의 저택은 갑자기 자신을 두들겨 팬 무뢰한이 강제로 점거하고 있었다.
저택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아하니 아마 밥이라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고 염치없게 밥이나 짓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크게 분노했으나, 마땅히 아몬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이미 저택의 탈환 및 아몬의 척살을 위해 수십 명의 전사를 보냈으나, 그들 모두 들것에 실려 나오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바루스 군장, 이대로 계실 겁니까?”
야마닌 연합의 이인자, 아몬에게 두 번째로 죽탱이를 털렸던 전사가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 제국의 샌님에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크르르…… 그래, 이렇게 우리의 긍지를 짓밟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바바루스 군장이 두 눈을 희번덕 빛냈다.
그리고 급하게 제국어로 서신을 쓴 그가 전령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이것을 제국에게 전달하거라!”
“예! 군장!”
전령이 후다닥 달려가자 2인자 전사가 눈을 빛냈다.
“군장의 빠른 결단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크하하하!”
“그런데 군장, 제국에 뭐라고 했습니까?”
뭐, 필시 아몬이라는 작자에 대해 항의하거나 강력한 제재를 요청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2인자의 물음에 바바루스 군장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으하하하! 역시 대단한 결단, 잠깐. 바바루스 군장, 뭐라고요?”
전쟁이라고? 군장이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소리에 2인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제국의 샌님들이 우리 야마닌 연합의 긍지를 이렇게 짓밟게 둘 수는 없지! 그들에게 우리 연합의 무서움과 용맹함을 뼛속 깊이 새겨 주겠다!”
“…….”
“크하하하! 제국의 나약해빠진 병사들은 우리 연합의 용맹한 전사들 앞에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이야!”
“…….”
“크하하하!”
2인자의 얼굴에 진한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 * *
호튼 경의 끊임없는 닦달과 채근에 아몬은 결국 상황을 설명했다.
“휴, 잘 보세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죠?”
“……예?”
“아이 참. 제국이 있고, 왕국이 있고, 이권을 위해 국가의 형태까지 취한 도시연합까지 있는 시대라고요.”
“……어, 그렇죠? 근데 그게 왜요?”
아몬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자, 정당한 일국의 군주라는 정통성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예? 어, 음.”
잠시 고민하던 호튼 경이 금세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혈통! 혈통에서 나옵니다.”
“그럼 반역을 저지르는 놈들은 정당한 군주보다 혈통이 더 좋겠네요?”
“…….”
“간단해요. 정통성이라는 놈은 결국 ‘힘’에서 나와요.”
“예? 하, 하지만…….”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반박할 수 있는 힘을 지녀야만 자신이 군주라는 근거를 지킬 수 있는 법이라고요.”
다만, 하고 운을 뗀 아몬이 손가락을 세웠다.
“물론 그 힘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의 무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온 ‘힘’을 말하는 거예요. 이른바 자신만의 세력을 말하는 거죠.”
“……세력이요?”
“예. 흔히 국가의 지배자 가문, 왕실이나 황실 등이요. 오랜 세월 쌓여 온 가문의 힘. 다른 가문이 군주가 되려는 것을 막아주고, 군주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가문의 힘이요. 그걸 ‘힘’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호튼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과 이 계획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툭툭 두드린 아몬이 말했다.
“그러니까, 왕국이나 제국은 오랜 세월 대를 쌓아 오면서 가문의 ‘힘’을 축적했어요. 우리 제국만 해도 무려 18대 동안 아모니스 가문이 황제 자리를 이어 오면서 가문의 힘을 쌓아 왔다고요.”
“……!”
“그렇게 왕국의 형태로, 제국의 형태로 오랜 세월 가문의 힘을 쌓아야 비로소 ‘정통성’이니 ‘왕권’이니 할 수 있는 겁니다. 근데 야마닌 연합은요?”
호튼 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 한 대에 머무르는 군장이 지도자입니다.”
“맞아요. 오직 개인의 강력한 힘 하나만으로 그 권위를 유지하고 있죠. 그런데, 어라? 갑자기 나타난 내가 그 군장을 두들겨 패 버렸네?”
“……권위가 깨졌군요.”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만약 야마닌 연합이 정상적인 왕권, 정통성, 가문의 힘을 지닌 국가였다면 저도 이런 무식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이런 짓을 했다고 한들 권위가 깨지지도 않았겠죠.”
“…….”
“그리고 군장 본인도 알 겁니다. 자신의 권위가 깨질 거라는 사실을요.”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람은 수치심과 수모를 겪으면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고.”
아몬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눈이 돌아가면 무리수를 감행하겠죠. 하지만 권위가 깨진 상황에서 무리수를 감행하면?”
“…….”
“배신자가 나오기 마련이죠.”
아몬이 문을 열었다.
마침 안으로 들어오려던 2인자가 흠칫하며 멈춰 섰다.
그런 그의 손에는 포박당한 바바루스 군장이 질질 끌려 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호튼 경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아몬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말인가!
호튼 경은 문득 아몬의 심계가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옳지 않아. 강제로 야마닌 연합을 취하는 형태가 아닌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제국의 방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양새였다.
그 사실에 호튼 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
아몬이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으아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몬이 구르는 것처럼 바바루스 군장에게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그 광경을 본 호튼 경이 눈을 끔뻑거렸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