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95)
아카데미가 망했다 195화
일등사제 레이즌의 충격적인 고백에 아몬은 입만 뻐끔거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계는 드레이크 가문의 먼 선조인 드레이크 대공의 유물이었다.
그 사실이 거짓일 리는 없었다.
‘다름 아닌 황실의 비밀 서고에 적혀 있던 내용이라고. 그런 게 거짓일 리 없잖아?’
그렇기에 아몬은 불신과 여유가 가득 묻어 있는 얼굴로 레이즌을 바라봤다.
“호오, 그 말이 정말입니까?”
네 말은 거짓이다!
나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니 네 기만은 무의미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몬의 시선에 레이즌이 벌레 씹은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당연히 몰랐죠. 이 시계가 신성왕국의 초대 법왕이자 용사의 시계라니…….”
아몬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레이즌을 비롯한 신성왕국의 수뇌부는 이에 대해 아주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초대 법왕의 상징인 시계를 가지고 있는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건가?’
신성왕국은 종교를 토대로 하는 국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리저리 어지러운 구석이 있는 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지배하는 군주의 혈통이 몇 번이나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초대 용사의 혈통을 잇는 인물이 신성왕국의 국왕이다.
그런데 갑자기 초대 용사의 신물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드디어 나라가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정통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초대 법왕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나타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이래저래 왕권이 흔들릴지도 모를 일.’
물론 그것은 이 시계가 정말로 초대 법왕과 용사의 물건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다.
‘하지만 이 시계는 내 선조의 물건이다. 게다가 제국과 관계가 있는 물건이다. 생판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왕국과 관계가 있을 리가 없지.’
아몬은 이쯤해서 그들의 잔망스러운 오해를 풀어 주기로 했다.
“흠흠, 신성왕국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군요. 이 시계는 초대 법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물건입니다. 제 입으로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제국 황실에 문의해 보시는 게 빠를 듯싶습니다.”
아모니스 가문, 드레이크 가문의 비화이니만큼 아몬은 자기 입으로 직접 비밀을 말하는 것은 켕겼다.
그렇기에 아몬은 책임을 황실로 돌렸다.
‘음, 완벽해.’
이걸로 신성왕국은 외통수에 몰렸다.
아몬은 시계가 신성왕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확언했다.
신성왕국은 아몬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알아내야 하는데, 아몬은 자신에게 말할 권한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황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럼 신성왕국은 세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첫 번째로, 제국 황실에게 묻지 않고 강제로 나에게 진실을 캐내는 방향.’
하지만 사절을 억류한 시점에서 신성왕국은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국가로서의 덕목을 저버렸다.
그런데 거기서 나아가서 강제로 정보를 캐내려 한다?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가 사악한 악신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만큼 생각이 있다면 신성왕국도 강제로 정보를 캐내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정말로 황실한테 시계에 대해 질문한다는 건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신성왕국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신성왕국의 국왕과 최고사제의 머리가 텅 비어서 제국에 그런 질문을 한다면, 제국 황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랑 전쟁하고 싶냐? 개 같은 질문 집어치우고 당장 사절을 해방해라.’
애초에 제국의 황실은 아모니스 가문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시계의 내막에 관해 알려 줄 생각도 없을 것이고, 제국의 사절을 억류했다는 시점에서 강하게 나갈 수 있는 명분을 쥐고 있다.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자연히 마지막 선택지를 고르겠지. 세 번째 선택지, 그냥 내 말을 믿고 순순히 풀어 준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아몬은 자신의 말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시계에 대한 내막을 모릅니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를 해방해 주시죠.”
아몬의 말에 레이즌은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 정적을 지키고 있던 레이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아몬 선생님도 신성왕국의 내부사정에 대해 잘 아셔야 한단 말입니다.”
정적 끝에 던져진 레이즌의 말에 아몬은 아찔했다.
‘아니, 내가 알고 싶지 않다는데 갑자기 무슨…….’
결코 전쟁을 외치려던 아몬은 딱 한 번만 참아주기로 했다.
애써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억누른 아몬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러니까 저는 알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렸…….”
“신성왕국은 두 명의 지도자에 의해 통치됩니다. 그 사실은 알고 계시죠?”
“……!”
갑자기 다짜고짜 본론을 늘어놓는 레이즌의 행동에 아몬은 황급히 귀를 막으려 했다.
‘이대로 이야기에 휘말렸다가는 빼도 박도 못하게 엮여 버린다!’
때문에 귀를 막으려 했지만, 몸을 포박하고 있는 망할 놈의 신성금속 때문에 귀를 막을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문 아몬이 온몸에 힘을 불끈 밀어 넣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대로 끊는…….’
“현재 신성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그레고 13세 전하께서는 초대 법왕의 혈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사실은 거짓입니다.”
“끊…… 예? 뭐라고요?”
느닷없이 들려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아몬은 힘이 쪽 빠져 버렸다.
‘내부 사정? 이거 보통 내부 사정이 아닌데?’
그레고 13세는 신성왕국 그레고리안의 초대 법왕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명분을 통해 정통성을 획득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초대 법왕의 혈통이 아니라고? 그럼 정통성이 흔들리잖아?’
그런 중대한 사안을 일개 외부인인 자신에게 알려 준다고?
눈앞의 레이즌이 드디어 미쳤구나 싶은 생각에 아몬이 다급히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레이즌이 빨랐다.
“우리 신성왕국은 일반적인 국가관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국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왕파, 그리고 종교적인 관념을 토대로 나라의 규율을 확립하고자 하는 최고사제님을 위주로 한 종교파. 두 개의 파벌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듣고 싶지 않…….”
“물론 말이 파벌이지, 국왕파와 종교파는 화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평화로우며 서로를 돕는, 지극히 온전한 관계지요.”
종교인 특유의 신실함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주절주절 말을 잇는 레이즌의 행동에 아몬은 말을 끊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듣다 보니 조금 흥미롭기도 했다.
결국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어질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당신이지요.”
“……내가 뭘 했습니까?”
“예전에 당신이 질서의 여신님을 해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예?”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 아몬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조아민트를 두들겨 패려고 했는데 갑자기 웬 허여멀건한 뭔가가 끼어들어서 그걸 때리고 말았지.’
이른바 레이즌의 말대로 해한 게 아니라 우연히 벌어진 사고였다.
“……근데 그게 왜요? 그 이야기는 그때 끝난 것 아닙니까? 애초에 그건 조아민트를 때리려고 했던 거였고, 질서의 여신님도 그럭저럭 이해해 주고 넘어가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레이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이제 와서 그것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당시 제가 의문을 조금 품었거든요.”
“의문이요? 무슨 의문?”
“그 당시, 저는 당신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기에 여신님과 마왕을 그렇게 때릴…… 으음, 몸에 손을 댈 수 있느냐 하고 말이죠.”
그 물음에 아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때린 건데요.”
“그렇군요. 뭐, 그 이유가 궁금한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신성왕국 내부에서 전해져 오는 전설에 의하면…….”
레이즌이 아몬의 허리춤에 있는 ‘드레이크 대공의 시계’를 가리켰다.
“마왕, 조아민트를 봉인한 초대 법왕이자 용사인 그레고리께서는…… 그 시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오해라니까요?”
“계속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문제는, 정작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와 초대 법왕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
갑자기 이야기를 확 틀어 버리는 레이즌의 말에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즌이 갑자기 나라의 건국 신화를 비틀어 버린 것이다.
“그건 또 대체 무슨 소립니까……?”
“이야기하자면 긴데…….”
잠시 망설이던 레이즌이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마왕 조아민트가 스스로의 율법을 창제하여 대륙을 어지럽히려 할 때…….”
“설명은 거창한데, 그 ‘음식’을 퍼뜨리려 했다는 것 말이죠?”
“……그렇습니다. 아무튼 조아민트의 횡포를 보다 못한 질서의 여신님께서는 신검 누카엘을 지상에 내려 주셨고, 그 신검으로 마왕을 물리치라는 신탁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검을 뽑을 수 없었죠.”
아몬도 뽑지 못했다.
그날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 아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서론이 길군요. 그래서요?”
“곧 끝납니다. 아무튼, 그 신검을 뽑은 자가 바로 용사였습니다. 그분은 여행자 같은 행색으로 나타나셔서 단숨에 신검을 뽑으셨고, 그 용사님은 조아민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단매에 그를 후려쳐 봉인시키셨죠.”
“허어, 참으로 대단…… 응?”
잠깐만.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전에 조아민트랑 마족들이랑 싸웠을 때, 조아민트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 않나?’
두루뭉실하게 떠오르는 기억에 아몬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던 와중, 아몬의 얼굴이 퍼뜩 굳어 버렸다.
하지만 그의 안색을 보지 못한 레이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조아민트를 봉인한 축하연에 참석하셨죠. 그리고 다음 날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그를 배웅해 준 시종이 말하기를 ‘이러다 즉위식에 늦겠다’라고 말씀하셨다더군요.”
아몬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야기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들고 있던 시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드레이크가 그려진 검은색 시계요.”
“…….”
“때문에 저를 필두로 우리 신성왕국의 사제들은 전설을 토대로 그분에 대해서 조사했습니다만, 결국 알아낸 것은 많지 않습니다.”
“…….”
“그런데 마침 당신이 그 시계를 가지고 찾아오셨군요.”
“…….”
“혹시 짐작 가시는 게 없으십니까?”
레이즌의 물음에 아몬은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전혀 모르는 눈치가 아닙니다만?”
레이즌은 아몬이 조아민트를 봉인한 용사의 후손이라고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몬은 필사적으로 잡아뗐다.
“저는 모르는 일인데요.”
“그렇군요.”
“아, 진짜 모른당께요.”
“어설픈 사투리는 그만두시죠.”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 레이즌이 말했다.
“그럼 한번 확인을 해 보죠.”
“……무슨 확인을요?”
“당사자라면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습니까?”
“당사자…… 설마!”
아카데미의 음습한 지하실에 처박혀 맛난 음식을 창조해 내는 요식계의 대가, 조아민트를 말하는 것인가!
“예. 전대의 마왕, 조아민트를 불러 한번 확인해 보죠.”
그 말에 아몬이 코웃음을쳤다.
‘흥, 조아민트라고 알 턱이 있나?’
애초에 조아민트는 지금까지 아몬의 허리에 매달린 시계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시계를 알아보고 ‘네가 나를 봉인한 용사의 후손이구나!’하고 뒤늦은 깨달음을 얻을 리가 만무했다.
피식 웃은 아몬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
“하지만 이것 하나는 명심하십시오.”
아몬이 심각한 얼굴로 레이즌을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오해라고 밝혀진다면, 저는 신성왕국에 이 죄를 엄중하게 물을 겁니다!”
* * *
조아민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몬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맞구나! 그 시계, 나를 봉인시킨 가증스러운 용사 놈이 가지고 있던 것이구나!
“…….”
-으으, 신검 누카엘을 들고 있으니 이제야 확실하게 알아보겠군.
“…….”
아몬이 고개를 돌려 레이즌을 바라봤다.
“오오오! 드디어 진짜 용사의 후손을 왕좌에 앉히는 날이 온 것인가……!”
레이즌을 비롯한 종교파가 진짜 용사의 후손을 찾아 헤맨 이유였다.
그들은 국왕으로서의 정통성 따위가 아니라 ‘진짜 용사의 후손’이라는 종교적인 명분을 더욱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동에 젖은 레이즌의 오열을 듣던 아몬은 생각했다.
‘내가…… 신성왕국의 왕좌에 앉는다고?’
아몬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