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96)
아카데미가 망했다 196화
자신이 신성왕국의 국왕이 될 수 있다니!
아몬은 입꼬리가 광대뼈를 지나 관자놀이까지 닿을 것 같았으나,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며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일이 잘 풀리면 국왕이 될지도 모를 상황이니, 앞으로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될 레이즌의 앞에서 체통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크흠…… 그렇군.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물론입니다!”
레이즌도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손을 마구 흔들며 설명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장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종교파는 국왕파와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것은 현 국왕인 그레고 13세 전하…… 아니, 왕위를 찬탈한 그자가 마왕 조아민트를 쓰러트린 용사의 먼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정통성이 떨어진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정통성이 거짓이라는 것이 증명된 이상, 그는 더 이상 우리 종교파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종교파는 현 국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조아민트를 쓰러트린 초대 용사’를 따르는 거니까요.”
“그렇…… 잠깐만.”
이야기를 듣던 아몬은 묘한 위화감을 발견했다.
“그런데 초대 법왕과 그 용사는 동일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나? 마왕 조아민트를 쓰러트린 인물은 이 시계의 주인이잖아?”
“예.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와 초대 법왕은 별개의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성왕국의 왕권이 몇 번이나 뒤바뀌는 비극이 있었지요. 만약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께서 법왕이 되어 주셨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가슴 아프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는 레이즌의 모습에 아몬은 침음을 흘렸다.
‘내 선조이신 드레이크 대공은 무슨 깽판을 치고 다니셨던 걸까?’
무책임하게 왕국을 건국할 빌미를 만들어 주고 쌩하니 도망치더니, 정작 중요한 대관식을 숙취 때문에 불참해 버려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의 오랜 대립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내 선조지만 참으로 한심하군. 하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조님.’
드레이크 대공의 시계를 만지작거리던 아몬이 히죽 웃었다.
‘선조님 덕분에 이 후손이 왕좌에 앉게 생겼군요.’
아몬의 어린 시절의 꿈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어 보는 것과 황제가 되는 거였다.
그 두 개의 원대하기 그지없는 꿈은 카셀라그라는 할아버지 같은 분에 의해 좌절되었고, 황제가 되는 것은 아모니스 가문과의 기나긴 악연으로 인해 그 종지부를 목도하고 말았다.
‘애초에 내가 황제가 될 자격도 없지만 말이지…… 하지만 신성왕국의 국왕? 황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벼락출세다. 어린 시절의 아몬도 신성왕국의 국왕 정도면 만족할 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레이즌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성왕국의 왕좌에 오를 결단이 서셨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사제들은 당장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또한 우리 사제단은 민중을 단단히 휘어잡고 있습니다.”
하긴, 종교만큼 민중의 환심을 장악하기 좋은 것도 없긴 했다.
“자,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레이즌의 재촉에 아몬은 입을 열었다.
“나는…….”
연이어 ‘국왕이 되겠다’라고 말하려던 아몬은 순간적으로 등골을 달리는 오한을 느꼈다.
‘잠깐. 일이 너무 쉽고 간단하게 풀린다.’
이렇게 타이밍 좋게 왕좌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자신이 엉덩이를 대고 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게다가 누가 덥혀 주던 것처럼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왕좌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는 말이 있지. 근데 호박이 굴러들어 와야 먹어 볼 생각이 드는 건데, 이건 웬 호박죽이 들어 있는 그릇이 데굴데굴 굴러오고 있는 격이니…….’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을 감안하면 이렇게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아몬이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예? 그, 그게 무슨……?”
“이토록 큰일을 눈에 앞두고 성급하게 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은 주시지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우리가 당신을 속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일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이즌이 품속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이것은 제 사제로서의 신을 향한 믿음과 신념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또한 저는 일등사제로서, 최고사제께서 부재 시 종교파를 지휘할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 지팡이를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대를 속이고 있으리란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레이즌이 공손한 자세로 자신의 지팡이를 아몬에게 내밀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이건 거의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아몬이 지팡이를 넘겨받자 레이즌이 공손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영명하신 결단을 내리시기를…….”
벌써 아몬이 국왕이 된 것처럼 뒷걸음질로 공손하게 방을 나가는 그의 모습에 아몬은 깨달았다.
‘흠, 이거 진짜로 내가 왕이 될 수 있는가 본데?’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탐욕!
하지만 아몬이 허겁지겁 그 탐욕을 억눌렀다.
이럴 땐 냉철하고 까다롭게 모든 것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아몬이 팔짱을 낀 채 심사숙고하는 와중,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조아민트가 퉁명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흥, 네놈이 이곳의 왕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군.
“너는 또 뭐가 불만이라서 투덜거리냐?”
-네놈이 나를 봉인시킨 용사의 후손이라는데, 네 얼굴만 봐도 불만이 솟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내가 신성왕국의 국왕이 된다면 너에게도 상당한 이점이 생길 거다.”
-하! 인간놈의 국왕 따위가 된들, 마왕인 내게 이점이 생긴다고?
“말은 확실하게 하자. 전대 마왕.”
-……전대 마왕인 내게 이점이 생긴다고?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보통 왕국이 아니라 신성왕국이잖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게다가 네 자매인 바누민트를 직접적으로 섬기는 종교 국가라고.”
-……그래서?
바누민트의 이름이 나오자 조아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만큼 바누민트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늘어나겠지?”
-……뭐? 바누민트와의 소통?
조아민트는 ‘혈육간의 정’을 강하게 상기했는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아몬이 다급히 말했다.
“진정해. 목적만을 보라고.”
-…….
“너는 너의 ‘신념’을 이 세상에 전파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 하지만 바누민트는 너의 ‘정의’를 부정하고 있어!”
아몬이 괴식을 신념과 정의라고 멋들어지게 포장하자 조아민트는 다소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민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 그리고 그 우민들을 계몽시켜 주려면, 우선 그들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바누민트를 먼저 깨우쳐야 해.”
-그 말은…….
조아민트는 비로소 아몬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렇군. 네놈이 신성왕국의 국왕이 된다면, 조아민트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래. 바누민트라는 우매한 신에게 올바른 맛을 깨우쳐 줄 기회가 늘어나겠지. 게다가 내가 너를 봉인한 용사의 후손이니만큼 내 말이라면 조금은 들어 주지 않을까?”
-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부정할 수만은 없겠군.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는 조아민트를 본 아몬이 쐐기를 박았다.
“내가 신성왕국의 국왕이 된다면 너를 도와주지.”
-……정말이냐?
“그러엄! 그러니까 너도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
아몬이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윽고 조아민트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군. 좋다, 금방 다녀오마.
“그래! 너만 믿겠다!”
-하지만 약속하거라. 내가 너를 돕는 만큼, 너 역시 나를 도와야 한다!
“물론! 내가 신성왕국의 국왕이 된다면 물심양면 너를 도우마!”
애초에 아몬도 조아민트가 만드는 음식을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그리고 잠시후, 조아민트가 돌아왔다.
-다녀왔다.
“오! 금방 다녀왔군. 문제 될 일은 없었나?”
-전직 마왕인 나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황궁에 잠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
아몬은 조아민트에게 황궁에 잠입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흥! 인간이 만든 마법 따위로는 나를 감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드래곤도 들키지 않고 황궁에 잠입하는 것은 어려울 텐데…….”
-그깟 드래곤 따위가 무에 대수라고. 나는 드래곤일지언정 몇 마리든 단숨에 쳐죽일 수 있는 마왕이다.
“전대 마왕.”
-……전대 마왕이다.
하긴, 드래곤도 쩔쩔매는 존재라면 황궁에 몰래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간단할지도 모른다.
“흠흠, 그렇군. 수고했어.”
-그래. 얼른 받아라.
“좋아. 그럼 한번 볼까.”
아몬은 조아민트에게서 서신을 넘겨받았다.
아몬이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황궁에 몰래 들어가 카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받아오라고 한 것이다.
‘정보를 콱 틀어쥐고 있는 카이라면 이 정도 조사는 간단했겠지?’
아몬은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다잡으며 편지를 열어 봤다.
[신성왕국 재정 상황]가장 중요한 신성왕국의 재산!
국왕이 된 자신을 사치와 향락에 빠지게 해 줄 가장 중요한 요소!
군침을 흘리며 신성왕국의 재정 항목을 읽어 봤다.
‘……어?’
아몬이 눈을 비볐다.
‘뭐야?’
수입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신성왕국은 헌금이나 사제의 파견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빠져나가는 게 이렇게 많아? 게다가 지출 내역이 빈민 구휼, 난민의 지원 등의 선행만 하고 있다고……?’
그런데 아몬이 국왕이 된 이후,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이런 지출을 억지로 줄여 버린다면?
‘보인다. 단두대가.’
자신은 혁명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른다. 다음 항목인 국왕의 부정부패를 보자.’
공식적인 주머니만이 국왕의 재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 국왕이 저지르고 있는 부정부패를 토대로 나의 사업을 구축하면 나도 남 부럽지 않게 사치와 향락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국왕이니만큼 통 크게 놀 수 있을…….’
[그레고 13세는 사치를 꺼리며, 부정부패를 일삼지 않는 청렴결백한 국왕입니다. 그는 본인의 사유재산마저 국고에 넣어 빈민의 구휼에 힘쓰며, 식사도 때로는 풀뿌리를 씹으며 빈자를 구휼하기 위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그레고 13세는 놀라울 만큼 깨끗한 왕이었다.
그런 그레고 13세를 밀어내고 자신이 국왕이 된 이후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다?
‘보인다. 화형대가.’
자신은 혁명을 위한 횃불이 될 게 분명했다.
아몬은 손을 떨며 마지막 대목을 확인해 봤다.
‘그래도 이것만 확실하다면…….’
[최고사제와 레이즌 일등사제의 입지] [국왕파는 그레고 13세의 청렴과 뜨거운 의지로 결속되어 있으며, 종교파는 몇몇 사제의 타락과 향락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미미한 균열이 진행되고 있으며…….]글귀를 읽던 아몬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보인다. 교수대가.’
자신이 무슨 짓을 조금만 했다간 어디서 저런 국왕을 데려왔냐고, 저런 게 용사의 후손일 리가 없다면서 종교파가 내부 분열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종교파의 개혁을 위한 국왕파의 본보기가 되겠지. 남아 있는 국왕파가 종교파의 분열을 두고 보고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던 아몬은 마지막 대목을 발견했다.
카이가 서신에 적어 놓은 사견이었다.
아몬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새끼가 나보고 거지 빈털터리가 되라고 저주를 퍼붓는구나.’
조아민트도 옆에서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어떠냐? 신성왕국의 국왕이 될 것이냐?
“…….”
-아! 네놈이 국왕이 된다면 내 뜻을 세상에 전파할 기회가 늘어나겠지!
“…….”
-네가 하루라도 빨리 국왕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몬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자신이 앉으려던 왕좌는 이미 상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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