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97)
아카데미가 망했다 197화
아몬은 일등사제 레이즌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아몬 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몬 선생’이라고 부르던 레이즌은 어느새 아몬을 ‘아몬 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눈도 아주 초롱초롱한 것이, 당장이라도 아몬을 국왕 전하라 부를 마음의 준비를 마친 눈치였다.
그런 그를 짠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몬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말입니다.”
“말을 낮춰 주십시오, 아몬 님.”
“아뇨, 아뇨. 제가 일등사제님에게 말을 낮출 이유가 없죠. 하하.”
“아닙니다. 고귀하신 분께 어찌 말을 낮출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도 지지 않고 존대하는 레이즌의 행동에 아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재차 헛기침을 한 아몬이 말을 이었다.
“어, 그러니까 제가 심사숙고해 봤는데…… 저는 일등사제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레이즌의 눈이 경악으로 동그랗게 변했다.
조아민트도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네 이놈! 갑자기 그게 무슨……!
자신의 음식을 전 대륙에 전파하려면 아몬이 신성왕국의 국왕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배신하다니!
경악과 분노에 휩싸인 조아민트가 방방 뛸 준비를 마치고, 레이즌도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진심이십니까?”
“예. 저도 오랫동안 생각을 마친 결과, 저는 신성왕국의 왕좌에 오르기엔 너무나도 미숙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몬이 겸허한 손짓으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말을 이었다.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한 몸입니다. 저처럼 미흡한 자로선 아직 일개 왕국을 지탱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겸손하기 그지없는 아몬의 사양에 조아민트가 다급히 달려들어 설득했다.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으냐. 비록 네가 모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국왕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다 보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전대의 마왕이 아몬을 신성왕국의 국왕 자리에 앉히려고 설득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리고 일등사제는 전대 마왕의 의견에 동조했다.
“흠흠, 저도 조아민트느으임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자람을 안다는 것은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소 두려우실 수도 있겠지만, 부디 우리 신성왕국을 이끌어 주십시오.”
아몬을 신성왕국의 왕좌에 앉히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는 한 배에 탔으니 조아민트를 존중해 주긴 해야겠는데, 차마 ‘님’이라 부르긴 힘든지 그녀를 ‘조아민트느으임’이라고 부른 레이즌이 공손하게 몸을 낮췄다.
“이미 사제단은 아몬 님을 국왕 전하로 추대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아몬은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아차! 내가 잠깐 뭣 좀 알아본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 이 새끼들은 이미 밑 작업을 끝내 뒀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시간을 달라고 할 것도 없이 패대기치고 도망쳤어야 했다.
-그래! 이 몸도 네가 신성왕국을 이끌 재목이라고 생각한다.
“맞습니다! 부디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아몬 왕! 캬! 멋지구나, 멋져!
“즈어어언하!”
자신을 둘러싸고 살살 바람을 불어넣는 둘의 행동에 아몬의 귀가 아나르엘의 그것처럼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가? 정말로 내가 왕이 될 재목인가?’
반쯤 설득당한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그래, 뭐…… 사제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내가 조금씩 정책을 바꿔서 뒷구멍으로 돈을 야금야금 빼돌려서 사치와 향락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를…….’
괘씸한 생각을 하며 슬금슬금 신성왕국의 왕좌와 가까워질 결심을 하던 와중, 아몬이 레이즌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저, 근데…… 신성왕국의 국왕이 되면…… 그것도 가능합니까?”
“예? 그거라뇨?”
아몬이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거요, 그거.”
“……?”
“결혼이요.”
“아.”
수줍은 아몬의 발언에 레이즌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물론이죠. 물론 사제들은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만, 국왕 전하께건 대를 이어야 하느니만큼 당연히 혼인을 해서 후사를 보셔야죠.”
“하하하! 역시 그렇죠?”
혹시나 종교적인 국가라 결혼은 죄악이라느니 하는 말을 할 줄 알았던 아몬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몬이 종종 말하는 ‘아직은 혼례를 치를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아직’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나도 장가는 가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뭐 하러 출세해 보겠다고 아등바등 살겠냐고.’
그런데 그 걱정이 해소됐으니 아몬이 훈훈한 미소를 머금은 채 신성왕국의 왕좌에 앉겠노라 공언하려던 순간이었다.
“질서신교의 교리에 의하면, 일국의 국왕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혼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아몬이 퍼뜩 굳었다.
“……뭐라고요?”
“예? 마흔이 넘은 나이에 혼례를 치를 수 있다고요.”
아몬이 귀를 후볐다.
손가락에 딱히 걸리는 게 없는 걸 보니 귓구멍이 막힌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째서요?”
“아, 질서의 여신님께서는 그것이 생물의 올바른 질서라고 하시거든요.”
레이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른바 마흔이라 함은 불혹(不惑)의 나이라, 삿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판단 또한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했습니다. 그러니만큼 후대를 잇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나이라, 질서신교의 남성은 마흔의 나이가 되어야만 후대를 이을 수 있습니다.”
레이즌이 뿌듯한 얼굴로 가슴을 쭉 폈다.
마치 ‘우리 질서신교는 후대 문제도 이렇게 사려 깊게 고민한다.’라고 뿌듯해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문제는 아몬은 그리 말하며 당당한 표정을 짓는 레이즌의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10년이 더 지나야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식 새끼도 볼 수 있다고? 질서신교의 규칙 때문에?’
앞서 말했듯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몬은 10년이나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결국 아몬은 큰 결심을 했다.
* * *
황태자 카이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참 잘된 일이야.’
아몬이 신성왕국의 새로운 국왕이 된다고?
‘음, 우리 제국도 아몬 선배님의 즉위를 철저하게 지원해 줘야겠군.’
제국에게 있어선 아몬의 즉위가 큰 이점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대한 국력을 지닌 제국인데, 거기에 신성왕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종교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지. 게다가…….’
아몬은 드레이크 가문이라는 틀에 묶여 있기에 황제인 아버지의 적의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드레이크 가문을 벗어나 신성왕국의 국왕이라는 지위를 갖추게 된다면 황제도 그를 무턱대고 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하! 참으로 기이한 운명이로군. 아몬 선배님은 신성왕국이라는 종교 국가의 군주가 되고, 나는 대제국의 군주로서 선배님과 마주할 수 있게 되다니.”
카이가 흐뭇하게 미소 짓는 와중이었다.
덜컹-!
문을 박차고 들어온 전령이 구르는 것처럼 카이에게 달려왔다.
다급한 전령을 본 카이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또 급보가 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설마 신성왕국에서 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혹시 아몬 선배님과 관련된 일이냐?”
“그렇습니다!”
카이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속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전령이 내민 서신을 펼쳐 봤다.
[아몬 드레이크가 일등사제 레이즌을 폭행한 후 도주]“컥!”
카이는 피를 토했다.
* * *
‘어? 갑자기 왜 주먹을 들어 올리시는…… 크아악!’
시원하게 일등사제 레이즌의 죽통을 돌려 버린 아몬은 창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곧이어 아몬은 성벽을 기어 올랐다.
‘마흔까지 결혼을 못해? 어림도 없는 소리.’
생활이 적당히 안정되면 혼인도 하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상한 미친 광신도들의 왕국에 붙잡혀서 마흔까지 썩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번개처럼 성벽에서 뛰어내린 아몬이 신성왕국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 아몬에게 따라붙은 조아민트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이 일을 어찌 감당하려 하느냐?
“제국의 사절을 강제로 억압하고 핍박한 저들에게 죄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무례에 주먹으로 대답한 것뿐이다.”
-……뒷감당은 생각 안 했다 이거냐?
조아민트의 물음에 아몬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놈들은 나를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눈치였잖아? 내가 몇 번이고 거절했는데 재고를, 다시 한번 생각을, 시간을 더 드릴 테니 조금만 사려 깊게 생각을, 이러면서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고.”
그 말대로, 아몬은 마흔이 넘어서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진실을 들은 후 국왕 자리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도 레이즌은 몇 번이고 아몬의 거절을 거절한 것이다.
“그럼 어떡해? 주먹을 써야지.”
-……뭐, 말이 안 통하면 그 방법밖에 없긴 하지.
“역시 전대 마왕님은 말이 잘 통하는군.”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도주하던 아몬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불안하기는 했다.
‘근데 진짜 이제 어떡하냐?’
엄밀히 따지면 신성왕국의 잘못이긴 했다.
사절인 아몬을 억류하고, 거의 반강제로 아몬에게 신성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할 것을 종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죄는 죄고, 아몬이 일등사제를 냅다 후려친 것도 죄였다.
‘제국도 이 사실을 알면 상당히 난감해할 텐데…… 정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
아몬이 불안감을 간직한 채 도주하는 와중, 뒤에서 무수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힐끔 뒤를 돌아보니, 새하얀 마갑을 걸친 말 위에 올라탄 신성 기사단이 게거품을 물고 득달같이 쫓아오고 있었다.
‘미친! 벌써 추격을 보냈구나!’
이를 악문 아몬이 조아민트를 보며 고함을 질렀다.
“조아민트! 저놈들이 너를 잡아 죽이러 온다! 당장 대응해!”
조아민트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내가 등신인 줄 아느냐? 널 잡으러 오는 거지, 나를 왜 잡아?
“젠장! 등신이 아니었나!”
아몬이 이를 빠득 악물었다.
‘어떡하지? 솔직히 나도 지금 엄청나게 짜증 나는 상황인데, 그냥 미친 척하고 전부 두들겨 패 버릴까?’
아몬이 일등사제에 이어 신성 기사단마저 싹 다 패 버릴까를 고민하던 와중, 갑자기 저 멀리 앞에서도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자 소름이 쭉 돋았다.
‘설마 이 새끼들, 앞뒤로 나를 싸 먹을 생각인가?’
얼굴을 창백히 물들인 아몬이 얼굴을 굳혔다.
‘……하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싹 다 두들겨 팬다.’
그리고 아르마 산맥 깊숙한 곳에 파묻혀서 라인벨트 영감처럼 산나물이나 캐 먹는 은둔생활을 하자.
그리 결심한 아몬이 정면 돌파를 위해 주먹을 꽉 쥐고 질주하는 순간이었다.
‘……엥?’
앞에서 달려오는 말들은 신성왕국의 병력이 아니었다.
‘제국 깃발……? 그리고 선두의 사람은…….’
아몬이 펄쩍 뛰었다.
황태자 카이야스가 선두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카이야!”
믿음직한 동아줄이 뚝 떨어지자 아몬은 반가움에 양팔을 활짝 펼치고 달려갔다.
“카이야! 나를 구하러 왔쿠아아악!”
말 위에서 몸을 날린 카이의 날아 차기가 아몬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