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98)
아카데미가 망했다 198화
말이 질주하는 속도로 인해 일어나는 가속도, 그 위에서 몸을 날리는 카이의 날아 차기는 그야말로 한 줄기 번개와 같았다.
벼락처럼 쏘아져 아몬의 가슴팍에 꽂히는 카이의 발은 어지간한 바위도 박살 낼 게 분명했다.
다름 아닌 소드 마스터 최상급의 경지에 다다른 카이였기에, 실제로도 전력을 다한 그의 발차기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낸다.
그런 발차기가 아몬의 가슴팍에 정통으로 꽂혔으니, 아몬이 그대로 붕 날아가 땅을 구르는 것은 당연했다.
“크아아악!”
피화살을 뿜으며 지면에 나동그라지는 아몬의 모습에 카이를 뒤따르던 근위 기사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마, 맙소사!”
“황태자 전하께서 사람을 죽이시다니…….”
다소 고지식한 면은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선한 면을 많이 보아 온 근위 기사들은 카이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웬걸, 피화살을 뿜으며 바닥을 구른 아몬이 용수철처럼 발딱 몸을 일으키더니 괴성을 내지르는 게 아닌가!
‘시, 시체가 움직인다!’
‘아니, 저걸 맞고 살아 있다고?’
근위 기사들은 카이의 행동을 보고 놀랐을 때보다 한층 더 크게 경악했다.
그리고 한편, 입가로 줄줄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은 아몬이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음산하게 웃었다.
“크크크. 카이, 이 개새끼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이참에 날 죽여 없애려는 것이렷다?”
밑도 끝도 없이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
아몬의 섬뜩한 중얼거림을 들은 카이도 이례적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삿대질을 했다.
“그러는 아몬 선배님이야말로 저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하셨습니까!?”
“뭐……!?”
카이도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눈을 부라리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저는 아메라 왕국이 전쟁을 선포했다고 했을 때 피를 토했고! 야마닌 연합이 또 전쟁을 선언했을 때도 피를 토했고! 갑자기 신성왕국에 감금당했다 했을 때도 피를 토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카이는 그동안의 토혈 때문에 안색이 창백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성왕국의 일등사제를 두, 두들, 두들겨 패고…… 도주했다고요? 정말로 저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하신 겁니까!?”
잦은 토혈로 쓰려 오는 가슴팍을 붙잡은 카이는 차마 말을 잇지도 못하고 떠듬거리고 있었다.
그런 카이의 안쓰러운 모습에 그를 수행하던 근위 기사들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으나, 아몬은 냉정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공격하면 간단하게 쓰러트릴 수 있겠군.’
어차피 이미 신성왕국의 일등사제를 두들겨 팼다는 전과가 붙어 있는데, 황태자 하나 더 두들겨 팬다고 무슨 대수겠는가!
‘게다가 나는 명백한 피해자다. 갑자기 카이 저놈이 날아와서 걷어찬 거니까 이른바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지.’
이 일이 끝나면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산나물이나 캐 먹고 살리라.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주먹을 꽉 말아쥐고 카이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려는 찰나였다.
두두두두-!
아몬을 추격하던 신성 기사단이 다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추격 대상인 아몬 말고도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으니 그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제국의 황태자로,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제국의 유명 인사 중에서도 최고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화, 황태자가 어째서 이곳에……!?’
그들이 당황한 채 머뭇거리는 와중, 카이의 뒤편에 서 있던 근위 기사들이 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황태자 전하의 어전이오! 그대들은 속히 말에서 내리시오!”
비록 국가가 다르다지만, 제국의 황족은 신성왕국에서도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쭈뼛거리며 말에서 내린 신성 기사들 중 이들의 지휘자가 주저하며 앞으로 나섰다.
“화,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하온데 저희는 현재 본국의 일등사제를 폭행한 인물을 추격 중입니다. 그러니…….”
뒷말을 삼킨 신성 기사가 카이와 대치하고 있는 아몬을 힐끔 바라봤다.
우리의 입장이 이러하니 순순히 아몬을 내줄 수 있느냐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아몬과 대치한 채 씨근거리고 있던 카이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몬 때문에 화가 난 것은 화가 난 것이고,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하면 이렇게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우…… 그 전에, 제국의 황태자로서 말하겠네.”
“……!”
“귀국이 우리 제국의 사절인 아몬 드레이크를 억류한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먼저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카이의 말에 신성 기사가 우뚝 굳었다.
그런 신성 기사에게 손가락을 겨눈 카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외교에 있어 사절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중차대한 결례. 먼저 그런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아몬 드레이크가 귀국에게 가한 결례를 걸고넘어지려는 건가?”
카이의 지적에 신성 기사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것은…….”
“물론 그대들이 제국의 사절을 억류한 것, 그리고 우리의 사절이 그대의 일등사제를 폭행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지. 그렇기에 그 별개의 일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말한다면, 본 황태자 역시 받아들이겠네.”
카이의 말에 신성 기사는 침음을 흘렸다.
이야기가 길고 돌려 말하긴 했지만, 요점은 간단했다.
‘니들이 먼저 잘못했잖아!’
황태자로서의 체통이 있기에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 같은 어휘를 쓸 수는 없었으니, 카이는 최대한 돌려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협박의 의미도 다분하게 깔려 있었다.
아몬이 일등사제를 폭행한 것, 그리고 신성왕국이 아몬을 억류한 것은 둘 다 경중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중죄다.
하지만 아몬의 잘못은 아몬 개인의 잘못이고, 신성왕국이 저지른 짓은 신성왕국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는 국가적인 사안이다.
‘제국 측은 아몬이라는 자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신성왕국과 일등사제에게 사죄와 보상을 해 주면 그걸로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신성왕국은 외교적으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다른 국가에게도 경원시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제국이 국가적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려고 하겠지.’
결국 두 개의 사안을 별개로 보고 처리하자면, 신성왕국이 잃는 것이 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신성 기사가 한층 풀죽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황태자 전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인지요?”
조심스러운 신성 기사의 물음에 카이가 빙그레 웃었다.
“신성왕국 측도 알고 있겠지만, 마왕 조나난의 대륙 침공이 머지않은 상황이오. 대륙의 미래에 무거운 암운이 깔려 있는 이 시점에서, 국가 간의 다툼은 무용하다는 것이 본 황태자의 견해요. 어찌 생각하시오?”
“……으음. 황태자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결국 카이는 ‘그냥 우리 둘 다 잘못했으니까 서로 없었던 일로 하자.’라고 말한 것이다.
그 말귀를 온전히 알아먹은 신성 기사였지만, 그는 최고사제와 국왕은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스러웠다.
기사단을 이끄는 일개 지휘자가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이가 가볍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대에게 책임이 갈 일은 없을 테니 우려치 마시오. 롤랑 경.”
“예, 황태자 전하.”
뒤편에 서 있던 근위 기사가 카이의 말에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대는 현 시각 부로 신성왕국으로 찾아가 본 황태자의 의견을 전하게.”
“예! 황태자 전하.”
“그리고 혹여 신성왕국 측에서 본인의 의견에 유감을 표할 경우…….”
카이는 끝내 뒷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익히 알고 있었다.
마왕 조나난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괜한 분쟁을 만들려 하는 신성왕국을 향한 제국의 움직임은 절대로 가볍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윽고 롤랑 경이 신성 기사들과 동행해 신성왕국으로 향하고, 카이는 다시 굳은 얼굴로 아몬을 바라봤다.
“……아몬 선배님.”
아몬은 비로소 일이 일단락되었다는 생각에 자리에 쪼그려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후…… 카이야, 진짜 내가 웬만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거든?”
“…….”
“근데 나도 진짜 억울해.”
“……억울하다니요?”
카이가 인상을 찡그리자 아몬은 뒤편의 근위 기사들을 힐끔 바라봤다.
그 눈치를 읽은 카이가 근위 기사들을 잠시 물리고, 아몬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드레이크 대공이 신성왕국의 건국 계기를 만들었고, 자신이 그의 후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자신을 왕위에 앉히려 했다는 이야기.
게다가 신성왕국의 국왕이 40살까지 장가를 못 간다는 충격적인 조건!
“……그런데 나를 놓아주려는 눈치가 아니더라고. 내가 원래 사람을 이유 없이 막 때리는 성격은 아니잖아? 나도 참다가 참다가 결국 일등사제라는 놈을 때린 거야. 집에 간다고, 나는 왕 안 할 거라고 노래를 불러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안 보내 주는데 어떻게 해?”
“…….”
“게다가 너도 나한테 왕 되라고 하는 걸 보면, 내가 거기 가만히 붙잡혀 있는다고 네가 날 도와줄 것 같지도 않더라고. 그럼 어떡해?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지.”
“……음.”
자초지종을 들은 카이가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쉬었다.
“으음…… 그래도 그렇지, 때리지 말고 조용히 도망을 치셨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진 않았을 텐데요.”
카이의 말에 아몬이 대답했다.
“내가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진 않지만, 이 정도로 시달렸는데 안 때리는 사람은 아니지.”
“……그건 그렇죠.”
픽 웃은 카이가 헛기침을 하더니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하여간, 저도 순간 분을 참지 못하고 선배님께 손찌검을 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손찌검이 아니라 발찌…….”
“선배님.”
“그래, 그래. 용서할게. 네 입장도 이해한다.”
아몬이 입맛을 다시던 와중, 카이가 한숨을 쉬며 괜한 투정을 부렸다.
“그나저나 왜 굳이 신성왕국으로 오셔서 괜한 일을 만드셨습니까? 일을 열심히 하시는 건 좋지만, 그냥 쉬셨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요.”
카이의 말에 아몬이 눈을 뒤집었다.
“야, 이 자식아. 네가 나한테 슬슬 그만하고 돌아와서 쉬라는 말 한마디 한 적이나 있어?”
“……예?”
“어떻게 사람을 부려 먹어도 이렇게 험하게 부려 먹을 수가 있냐.”
아몬의 말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혹시 볼타르 왕국을 경유해서 오지 않으셨습니까?”
“볼타르 왕국?”
“예. 그, 신성왕국으로 오는 길에 있는 왕국입니다만…… 분명 이곳으로 오려면 그곳의 도시 하나를 지나쳐야 할 텐데요?”
아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거기? 그냥 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지나치고 바로 신성왕국으로 갔는데?”
“……!”
그 말에 카이는 비로소 아몬이 왜 신성왕국에 왔는지를 깨달았다.
“그, 그 도시에 선배님에게 전달할 우편을 맡겨 뒀거든요.”
“……뭐? 우편을?”
“예. 그동안 성사시키신 일의 보상이랑, 그만 복귀하라는 편지를…….”
“…….”
아몬은 자신이 정말로 의미 없는 개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볼타르 왕국에 속한 도시.
그곳의 우편물 담당자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사절에게 전달하라는 우편물을 툭툭 던졌다 받았다.
‘뭐 제국의 사절단이 오면 이 우편을 꼭 전해 주라더니 사절단은 무슨. 제국에서 온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구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