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2)
아카데미가 망했다 2화
학교장실의 문을 두드리자 축 늘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들어가니 등 돌리고 있는 학교장을 볼 수 있었다.
‘귀가 축 늘어진 걸 보니 삐졌군.’
아까 인간과 엘프의 시간 관념이 다르다는 걸 열정적으로 ‘설명’해서 그런 모양이다.
학교장이 퉁명스레 말했다.
“빡통 엘프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삐져도 단단히 삐졌군.
삐진 학교장에게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뭘요?”
“이 명문 아카데미를 이끄는 학교장님이 단순히 본인의 재미를 위해 달팽이 경주에 돈을 쓸 리 없지요. 달팽이 경주는 그저 돈을 불려 투자를 하려는 수단일 뿐. 그리고 투자 또한 아카데미의 미래를 위한 수단일 뿐. 그렇죠?”
학교장이 귀를 흠칫 떨었다.
“그, 그럼요.”
“역시 그렇군요. 어리석은 저는 그것도 모르고 학교장님께 빡통이니, 빡대가리 엘프니 하는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 점,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축 늘어진 학교장의 귀가 아주 약간이지만 힘을 되찾았다.
“……앞으로는 주의하세요.”
“물론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또 할 말이 있나요?”
“예. 솔직히 말하자면, 달팽이 경주에 조금 관심이 생기더군요.”
뭐 하나에 꽂힌 놈과 대화를 풀어 가려면 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면 된다.
그 예상대로, 여태 등을 보이고 있던 학교장이 몸을 틀어 이쪽을 바라봤다.
“정말인가요?”
“예. 솔직히 저도 지금 상황을 정상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결국 현재로썬 조금은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죠.”
“제,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학교장의 귀가 힘을 조금 더 되찾았다.
그 기세를 빌어 밀어붙였다.
“게다가 긴 세월을 사는, 현명한 엘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경주 달팽이가 인간들의 도박인 경마에 비견될 리가 없잖습니까? 아마도 합리적이며 예술의 범주에 오른 문화이리라 추측되는군요.”
어느새 학교장은 몸을 완전히 이쪽으로 돌린 채 귀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해 주시는군요!”
“예! 그러니 아까 그 잡지를 한 부 더 구할 수…….”
“사실 하나 더 있어요!”
학교장이 숨겨 뒀던 경주 달팽이 잡지를 한 권 꺼내자 자신도 모르게 ‘이 빡대가리 엘프가 미쳤나’라 외칠 뻔했다.
하지만 참자.
‘그래야 여길 망하게 하지.’
아몬이 억지로 하하 웃었다.
빡통 학교장도 헤헤 웃었다.
“혜안이 있으시군요! 참 대애애단하십니다!”
“뭘요! 그보다 얼른 읽어 봐요!”
엘프어라 읽을 수가 없으니 그림과 숫자만 보며 훌훌 넘기는 와중, 학교장이 손가락으로 한 페이지를 짚었다.
“보세요! 10년 전 우승 달팽이인 슈퍼맘이에요!”
웬 커다란 달팽이가 벌떡 일어나 있는 흉측한 그림이었다.
“정말 멋지죠? 힘차게 세계수를 거슬러 올라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땄습니까?”
“…….”
“다른 데 걸었군요.”
“……네.”
그럼 그렇지.
한숨을 쉬며 잡지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럼 이게 이번 경주의 선수 달팽이들이군요? 이 숫자는 배당률인가?”
“맞아요. 그리고 이 녀석과 이 녀석이 조우지조우와 스틸슬러그예요. 이렇게 직접 보니까 어째서 제가 둘을 눈여겨봤는지 아시겠죠?”
전혀 모르겠다.
하여간 달팽이들을 대충 훑어보다 하나를 선택했다.
“이 녀석이 좋겠네요.”
지목당한 달팽이를 본 학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좋아요?”
“이 녀석에게 한번 걸어 보죠.”
“……네? 뭘 걸어요?”
되묻는 학교장이었지만, 눈빛에서 한 줄기 기대감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이 녀석에게 걸고 한몫 따서 아카데미의 미래를 되찾아 보죠.”
“아아아!”
탄성을 지르는 학교장의 귀는 저러다 떨어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파닥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제 깊은 뜻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다니!”
‘전혀.’
“아몬 선생님의 뜻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내가 지목한 달팽이를 가리킨 학교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슬러그는 안 돼요. 그 녀석은 이번 경주에 최약체!”
근엄하게 말한 학교장이 믿음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경험자인 제 판단을 믿으세요. 조우지조우와 스틸슬러그는 지난 9년간 가공할 특훈을 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가 왔다고 보는 게 좋겠죠. 배당률도 50배! 나쁘지 않은 승부죠.”
“…….”
“하지만 하나슬러그의 배당률은 무려 상한선인 500배예요! 최약체라는 평가도 평가지만, 주최 측도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이번에는 계획대로 스틸슬러그에 걸어 보죠!”
학교장의 비장한 연설을 묵묵히 듣고 있던 아몬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하나슬러그에게 거는 겁니다.”
“……네?”
“최약체라는 그 설움이 있기에.”
“……!”
아몬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약체라고 평가받지만, 하나슬러그 역시 뼈와 살을 깎…… 뼈가 없겠구나. 아무튼 필사적인 훈련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세계수를 거슬러 올라갈 자격을 얻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세간의 시선은 최약체라는 평가와 멸시뿐.”
“…….”
“그러나 앞서 말했듯 훈련을 통해 하나슬러그 자체의 기량은 다른 달팽이에게 밀리지 않는 수준일 겁니다. 그럼에도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이겠죠.”
도박에 미친 학교장이 그럴싸한 개소리에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아몬이 쐐기를 박듯 힘 있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부진은 타인의 ‘기대’와 ‘믿음’으로 얼마든지 깨고 나올 수 있습니다!”
“……아!”
“우리의 작은 믿음이 하나슬러그를 당당한 우승 달팽이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앗, 아아!”
환상을 보고 탄성을 지르는 학교장에게 현실을 밀어붙였다.
“게다가 배당률이 500배입니다! 500배!”
“5, 500배……!”
“쩨쩨하게 50배를 따서 어디다 쓸 겁니까! 위대한 숲의 일족이라면 크게 놀아 봐야죠! 안 그렇습니까!?”
연이은 도발에 부들부들 떨던 학교장이 주머니를 휙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맞아요! 하나슬러그에게 걸어 보죠!”
“예! 바로 그겁니다!”
“그, 금화 10개! 가즈아아!”
피를 토하듯 고함을 지르는 학교장을 보며 아몬이 활짝 웃었다.
‘배당률이 500배?’
돈을 날리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드디어 아카데미는 망하게 될 것이다.’
* * *
엘프가 신성시한다는 세계수.
엘프 종족과 교류가 활발해졌지만, 선택받은 소수만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 속의 나무!
그 신비를 직접 보게 되었다는 감상을 곱씹을 겨를도 없이, 아몬은 엘프라는 종족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조우지조우! 가즈아아!”
“슬러그파이터! 너무 강하다앗!”
세계수를 둥글게 둘러싸고 술 냄새 나는 것 같은 괴성을 빽빽 질러 대는 아름다운 엘프들!
‘딱히 엘프에 환상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그런 참상 와중에도 가장 충격적인 광경은, 엘프 중에서도 눈에 띠게 아름다운 학교장이 달팽이 경주의 달팽이권을 쥐고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나슬러그! 하나슬러그! 그는 신이야!”
그 추태에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그럼 아몬 선생님, 말 나온 김에 보러 갈까요? 곧 시작할 텐데.’
‘네? 뭘 보러 가요?’
‘달팽이 경주요.’
‘제가요?’
‘네.’
‘왜요?’
‘달팽이 경주에 관심이 생겼다면서요?’
그 길로 워프마법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두통 탓에 지끈대는 미간을 꾹꾹 누르던 아몬이 학교장을 붙잡았다.
“학교장님.”
“카쯔아아앗!”
“학교장님!”
“아씨, 뭐야! 안 놔…… 핫! 아몬 선생님?”
“예, 아몬 선생입니다. 그나저나 이거 시작하긴 하는 거죠?”
아닌 게 아니라, 거대한 달팽이들이 세계수에 다닥다닥 붙어 있긴 했다.
하지만 출발할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엘프 같지도 않은 괴생명체들은 30분째 고함만 꽥꽥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학교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경주 중이잖아요?”
“……네?”
“방금 막 하나슬러그가 치고 나가아악! 추월당했어!”
그 말에 달팽이들을 물끄러미 노려보는 아몬이었지만, 뭐가 하나슬러그고 뭐가 추월한 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참을 노려보니, 달팽이들이 움직이고 있기는 했다.
차마 깨닫기 힘들 정도로 느리게.
‘저 속도로 세계수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고개를 들어 세계수를 보라.
세계수의 정상은 구름에 덮여 있었다.
“허.”
“나~ 는 행복합니다!”
“하하!”
“하나슬러그라 행복합니다!”
“으하하하하!”
결국 아몬은 실성한 듯 웃고 말았다.
* * *
아카데미까지 걷고 달리느라 지치기도 했고, 심적 충격이 워낙 큰지라 아몬은 경주를 잠시 지켜보다 쓰러지듯 잠들고 말았다.
중간중간 엘프들의 고함과 비명에 몇 번 깨긴 했지만, 피곤한 탓에 그럭저럭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잤을까.
“……님.”
“으, 으으…….”
“……선생님.”
“10분만 더…….”
“아몬 선생님!”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깬 아몬은 울먹거리는 학교장을 볼 수 있었다.
“뭐, 뭡니까?”
“으흑, 아흐흐흑…….”
갑자기 오열하는 학교장을 본 아몬이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엘프들이 사방팔방에서 달팽이권을 찢어발기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경주가 끝났구나.’
그 말은 즉.
‘이걸로 돈을 날렸구나! 마침내 아카데미의 숨통이 끊어졌구나!’
아몬이 활짝 웃었다.
학교장은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울고 있으니 웃음을 감출 필요조차 없었다!
‘이제 돌아갈 수 있어! 아카데미가 망했으니 왜 돌아왔냐고 등짝 맞을 일도 없겠지!’
가문을 일으키겠다는 꿈도 좋지만, 그 길이 여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따위 생지옥에서 3년을 버티느니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음흉한 미소를 거둔 아몬이 학교장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학교장님, 진정하세요. 이렇게 된 걸 어떡하겠습니까!”
“아흐흐흑…….”
“우선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추후의 일을 논의해 보죠. 경우에 따라선 아카데미의 폐쇄도 고려해 보는 것이…….”
그 순간 마법으로 증폭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번 경주의 우승 달팽이는 하나슬러그입니다!
그 말에 뺨 맞은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뭐, 뭐라고!?”
동시에 붙잡은 학교장의 어깨에서 느껴지던 떨림이 점점 격렬해졌다.
“흐, 흣! 으흐흣!”
“이, 이게 대체 무슨…….”
“힉, 이히힉! 꺄하하하핫!”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린 학교장이 아몬의 손을 붙잡더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외쳤다.
“해 냈어요! 아몬 선생님!”
“아, 으으으…….”
“우리의 계획이! 적중한 거라고요!”
“으, 아아아아…….”
그때 사회자가 감동했다는 듯 격정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또한 놀랍게도, 하나슬러그의 우승을 점친 것은 단 한 분입니다! 때문에 자신을 믿어 준 분과 악수를 나누고 싶다는 하나슬러그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하나슬러그에게 거신 분은 세계수 앞으로 나와 주세요!
“으아아아!”
“아몬 선생님! 이렇게 기뻐하시다니!”
“으아아아아악!”
아몬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