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200)
아카데미가 망했다 200화
카셀라그가 전해 준 충격적인 소식에 아몬은 어리둥절해졌다.
운석이라니?
분명 예전에도 웬 운석이 떨어져서 제국에 궤멸적인 피해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침묵의 정원에 또 운석이 떨어졌다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무릎을 철썩 때리며 외쳤다.
“그렇군요! 드래곤이 힘을 합쳐서 전설의 마법이라는 미티어 스웜인지 서몬 메테오인지를 사용한 거군요!”
그리 확신한 아몬이 무릎에 이어 이마를 철썩 때리며 탄복했다.
“캬! 그 생각을 못했네! 하긴, 드래곤 종족이 힘을 합치면 그런 마법을 하나 구사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아몬을 본 카셀라그가 벌레 씹은 것 같은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분명 우리 드래곤이 힘을 합치면 이미 사라진 전설의 마법인 서몬 메테오를 사용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역시! 역시!”
“근데 이번엔 아니거든.”
“예?”
크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카셀라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서몬 메테오는 불가능해도, 드래곤 몇이 힘을 합치면 마나를 대규모로 조작해 운석을 지상으로 유도하는 마법쯤은 사용할 수 있다.”
“……근데요?”
“하지만 대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아무리 드래곤들이 힘을 합쳐도 유도할 수 있는 운석은 기껏해야…….”
카셀라그가 손을 들더니 엄지와 검지로 조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고작해야 이 정도 크기……?”
“어…….”
“물론 그 정도의 운석 조각으로도 어지간한 인간의 도시 하나쯤은 그대로 지워 버릴 수 있지. 그런데 문제는, 그 작은 운석을 유도하느라 사용한 마나가 운석 조각의 성질을 바꾼다는 거다.”
“……운석의 성질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마법으로 변한다는 말씀이군요?”
“역시 마법사의 아들이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군.”
카셀라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몬의 얼굴이 아리송해졌다.
“그럼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마족에게는 운석 소환 마법이 통하지 않겠네요?”
“그렇지.”
“그럼 이번 침묵의 정원에 떨어진 운석은요……?”
카셀라르가 허무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운석이다.”
“…….”
“그냥 진짜 생 운석이야.”
“…….”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그냥 쾅! 침묵의 정원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마왕도 대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구나.’
하기야 기세등등한 제국의 몇 개 군단도 운석 한 방에 깡그리 궤멸했다.
“그럼…… 마왕은 어떻게 됐대요?”
“미처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저스티시엘이 관찰 중이다.”
“그렇군요…….”
아몬이 입맛을 다셨다.
‘음, 조금 뒷맛이 찝찝하긴 하지만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니 불평불만을 터뜨릴 수는 없겠지.’
마왕과의 싸움은 지상계의 명운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은 함부로 걸어선 안 된다.
‘뭐, 일이 잘 풀렸으니 잘된 일이지!’
아몬은 껄껄 웃었다.
* * *
정신을 차린 마왕 조나난은 직감했다.
‘X됐다.’
그는 부하에게 정을 주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부하는 지상계를 침공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도구였다.
하나하나가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
‘그런 부하를 싹 다 갈아서 제물로 바쳐 지상계로 현신하는 통로를 열었다. 그런데 그 통로가 박살이 났다고……?’
조나난이 힐끔 고개를 돌렸다.
마침 콧물을 질질 흘리며 손가락을 쭉쭉 빨고 있는 마족 하나가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폐급 중의 폐급 마족으로, 부하들을 갈아 넣다 보니 순번이 돌아온 마족이었다.
-어어억……!
뒷목을 붙잡은 조나난이 낑낑거렸다.
‘이런 것들을 데리고 지상계 정벌을 나서야 한다고……?’
강한 힘을 지닌 마족을 제물로 바쳐야 통로를 만들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내가 현역에 있을 땐 나에 버금갈 정도로 쟁쟁한 마족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거늘…… 마계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그 이면에는 전대 마왕인 조아민트가 ‘맛난 음식’의 개발에 힘을 쏟았기 때문도 있었다.
조아민트는 알게 모르게 지상계의 수호에 힘을 보탠 것이다!
아무튼, 뒷목을 잡고 끙끙대던 조나난이 눈을 희번덕 빛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용사, 아몬 드레이크를 산 채로 잡아 죽이기 전에는 결코 지상계 침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자긍심, 자존심, 오만을 짓밟은 사악한 용사놈!
-내 강대한 힘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기필코 지상계로 현신하고 말리라!
조나난이 분노의 괴성을 내지르자 그에 호응한 마계가 천둥 벼락을 일으켰다.
* * *
“아몬, 큰일이다!”
“예?”
드러누워 초콜릿을 까 먹으며 배를 긁고 있던 아몬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카셀라그 어르신, 운석으로 침묵의 정원이 박살 난 마당에 큰일이라뇨?”
카셀라그가 방방 뛰었다.
“저스티시엘의 예지가 끝났는데, 지금 조나난이 지상계로 향하는 통로를 기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아몬이 펄쩍 뛰었다.
“우, 운석이 떨어졌다면서요? 통로는 멀쩡하대요?”
“아니! 통로는 부서졌지만, 조나난이 자신의 힘을 소모해 통로를 복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 세상에…….”
아몬이 턱을 덜덜 떨었다.
손 안 대고 코를 푸는가 싶더니만, 이대로 지상계의 명운을 건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려는 건가!
‘역시 코를 풀려면 손을 대고 시원하게 풀어야 하는 건가!’
아몬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 소식을 서둘러 알려야겠습니다! 젠장, 지금 침묵의 정원에 운석이 떨어졌으니 전쟁을 안 해도 된다고 연합군이 나태해졌을 텐데…….”
“그래! 어서 가거라!”
“예!”
“젠장…… 조나난 그놈, 힘을 상당히 소모했을 텐데 조아민트에 버금가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허겁지겁 나갈 채비를 하던 아몬이 경악했다.
“세상에! 조아민트에 버금가는 힘을, 뭐라고요?”
“응? 뭐가?”
“그놈이 조아민트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다고요?”
아몬이 눈을 스산하게 빛냈다.
* * *
침묵의 정원에는 검은 마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운석에 의해 초토화된 대지가 마기에 의해 검게 변색되며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여 있는 핏빛의 구슬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곧이어 검은 마기가 거꾸로 솟는 폭포처럼 뿜어지더니 그 중심에서 한 명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핫! 이게 얼마만의 중간계인…….
깡-!
-가아아아악!
솟아난 조나난이 그대로 말뚝이 꽂히는 것처럼 지면에 처박혔다.
-케헥! 뭣, 뭔…….
두개골을 쪼개는 것 같은 격통에 조나난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지면에 깊숙이 처박은 장본인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네, 네놈은…….
“하하하!”
가증스러운 용사, 아몬 드레이크!
그 사실을 깨달은 조나난이 괴성을 내질렀다.
-이 개자시…….
깡-!
-이이이이익!
조나난의 눈동자가 홱 돌아갔다.
뭐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 마나 방벽은? 아무리 마기를 소모했더라도 마나 방벽은 건재할 텐데……?’
그러한 의문이 조나난의 머릿속에 아련하게 떠올랐으나, 그는 그 의문을 고찰할 시간이 없었다.
아몬이 묵직한 아다만티움 검을 가지고 조나난의 머리통을 휘모리장단으로 후드려 까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빡빡! 쾅, 빡! 꽝-!
조나난은 분명히 마나 방벽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나 방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아몬의 매질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개자식! 죽어! 죽어어!”
-거억, 걱! 꺽, 켁!
“울어라! 울어서 네 순수를 증명해 봐라, 마왕아!”
-캐르르릉…….
“영혼의 절규! 이야아압!”
땅속에 처박힌 채 매질을 당하던 조나난이 그대로 고개를 떨어트리더니 축 늘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 씩씩거리며 숨을 고르던 아몬이 말했다.
“해치웠나……!?”
-……커흡!
“그럼 그렇지!”
아몬은 숨이 돌아온 조나난의 매타작을 재개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아몬을 지원하려고 따라온 이들이었다.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군. 그런데 저건 좀…….”
카셀라그가 침음을 흘렸다.
마왕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상계에 현신하자마자 말뚝이 땅에 꽂히듯 지면에 처박혀선, 저항도 못 하고 저렇게 머리통을 사정없이 두들겨 맞다니.
카셀라그의 침음에 저스티시엘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저렇게 되면, 마왕의 출현을 예고하는 제 일족의 사명이 뭐가 됩니까?”
“아몬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 사명을 잊어도 될 것 같군.”
“…….”
조아민트는 조나난을 패는 아몬의 모습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고삐가 풀린 아몬은 사나운 망아지 그 자체였다.
-나는…… 내 지금 처지가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자신도 저렇게 됐을 것이다!
한편, 라인벨트는 허리춤의 검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심했다. 은퇴하자.’
아몬은 몇몇의 마음을 짓밟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조나난의 머리를 연신 두들겨 대며 광란에 휩싸여 있었다.
“푸리오소(미친 듯이)! 프레스티시모(아주 아주 빠르게)! 퀸터플 포르테(매우 세게)!”
* * *
잠시 후, 라인벨트는 황태자와 독대하고 있었다.
“그…… 황태자 전하.”
“라인벨트 경.”
황태자, 카이는 결전을 위한 갑옷을 걸친 채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조나난이 지상계에 현신할 거라는 소식은 들었소. 전군 출진 완료요.”
“……그, 그것이 말입니다.”
어두운 라인벨트의 얼굴에 카이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아르마 산맥이 벌써 돌파당한 겁니까?”
“아닙니다, 그게…….”
“서, 설마 아르마 산맥에 주둔 중인 연합군이 궤멸한 겁니까!?”
“아뇨, 그러니까 그게…….”
황태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어서 말씀해 보시오!”
“마왕이 뒈졌습니다.”
“……예?”
라인벨트가 말을 이었다.
“그, 아몬이 마왕이 현신하자마자 땅에 처박아 넣고선…….”
“…….”
“아다만티움 검으로 마왕의 머리통을 쪼개기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아예 곤죽을 만들어 놓곤 빙글빙글 돌면서 무슨 이상한 춤을 추면서 확인 사살을 하는데…….”
“…….”
“어우, 제가 여러 전장을 다녀 봤지만 그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 봅니다.”
카이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그럼 지상계 침공도 끝났다는 말입니까……?”
“조나난이 아예 곤죽이 됐다니까요. 그마저도 아몬이 돼지 여물로 쓰겠다는 걸 간신히 뜯어말려서 조나난의 유해를 회수했습니다.”
“…….”
“놈의 유해는 신성왕국에 위탁해 정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카이가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리고 쓰러지는 것처럼 의자에 앉았다.
“하, 하, 하…… 세상에, 아몬 선배님이…….”
“그리고 청하건대, 저는 슬슬 제국 4대 기사에서 은퇴할 작정입니다.”
그리 말한 라인벨트가 검을 풀어 카이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부디 청을 받아 주십시오.”
“……이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어딘가에 식객으로 머물며 유유자적 살 생각입니다.”
“……라인벨트 어르신께서 식객으로요?”
킬킬 웃은 카이가 허탈한 얼굴로 축 늘어졌다.
조나난과의 싸움이 무탈하게 끝났다니 힘이 쭉 빠진 것이다.
“하하하…… 앞으로 참, 바빠지겠군요.”
“그렇겠지요.”
아르마 산맥은 제국의 영토다.
그리고 아르마 산맥의 너머, 침묵의 정원 역시 암묵적으로 제국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었다.
문제는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몬스터의 세력이 워낙 강대했기에 군침만 흘리며 그곳을 개척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석이 떨어져서 그곳을 싹 다 뒤집어엎었다.
즉 이제 그곳을 본격적으로 제국의 영토로 삼고 발전시켜야 할 차례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카이가 넌지시 말했다.
“라인벨트 어르신, 어르신께서 식객으로 머물기 딱 좋은 가문을 알고 있습니다.”
“예? 그곳이 어디입니까?”
카이가 씩 웃었다.
* * *
아몬이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뭐여, 이거.’
아몬은 황실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힌 서신을 들고 있었다.
조나난도 잡아 족쳤겠다, 느긋하게 초콜릿이나 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착한 서신은 아몬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했다.
[마왕 조나난의 토벌에 힘써 준 것에 대한 포상으로, 드레이크 가문의 차남인 아몬 드레이크에게 아르마 산맥 밖의 영토인 침묵의 정원을 통치할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아몬 공에게 ‘대공위’를 하사하여 ‘드래고니아’라는 성을 하사하니, 개척하는 영토를 ‘공국’이라 칭한다.]아몬의 눈동자가 파직파직 빛났다.
‘내가 별개의 성을 하사받는다고?’
이른바 작위를 세워 드레이크 가문과 분가한다는 뜻이다.
즉 ‘일가를 이뤘다’는 뜻이다.
게다가 보통 일가를 이룬 게 아닌 것이, 공국의 군주인 대공이 되는 것이다.
펜도리안 공작 가문도 조만간 대공가로 승격한다고 들었는데, 아몬이 한걸음 먼저 대공위에 오른 것이다!
“하, 하하하하!”
아몬 드레이크.
아니, 아몬 드래고니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출세…… 나, 진짜 출세했구나…….”
편지를 꾹 움켜쥔 아몬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 * *
아몬 사일런스 드래고니아.
드래고니아 공국의 군주로서, 흔히 ‘드래고니아 1세’라고 불리는 아몬은 공국의 수도인 ‘사일런스’의 궁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건 필시 나를 엿 먹이려는 행위가 분명하다.’
자신이 ‘공왕’이 된 지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대공위도 주고, 공국의 군주로 임명해 줬으니 처음에는 기뻤지. 근데…….’
아몬이 ‘궁궐’을 둘러봤다.
“이게 궁궐이냐? 다 쓰러져 가는 움막이지.”
그렇다.
말이 공국이고 대공이지, 침묵의 정원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그것도 운석으로 한번 싹 다 갈아엎어진 땅이다!
그나마 아르마 산맥에 있는 아몬의 본가인 드레이크 영지와 그곳에 복속된 도시인 에덴에서 지원 물자와 인력을 보내 주고 있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 언 발에 오줌누는 수준이었다.
‘몇 개월째 개척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건 뭐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운용하는 자금의 절반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니…….’
아몬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털레털레 궁궐로 들어온 아몬의 첫 번째 가신이자 식객인 라인벨트가 말했다.
“어이, 아몬.”
“이보쇼, 어르신. 대공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옥에 투옥되고 싶은가?”
“주접 그만 떨고, 전할 소식이 있다.”
“쩝…… 무슨 소식이요? 에덴에서 지원 물자 좀 준대요?”
물론 에덴도 한창 발전을 거듭하는 와중이라 지원 물자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감지덕지인 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뭔데요?”
라인벨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제국 황실에서 칙명을 내렸는데, 네가 꼭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황실에서 칙명을요?”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대공이 된 직후에는 황실에 가서 작위 수여식을 하랴, 이후 일을 논의하랴 바빴지만, 요즘은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웬 칙명?”
“그게…….”
라인벨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이곳으로 옮긴다는군.”
“……?”
“이곳이 발전하면 교육 설비도 마련해야 할 테니까, 그에 대한 대비로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일찌감치 자리 잡게 하려는 의도인 모양이야.”
“…….”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제국의 역사 깊은 교육 기관이니까, 이 드래고니아 공국과 제국이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암시도 될 거고, 상징적인 의미까지 가질 수 있을 테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
“…….”
아몬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 표정을 본 라인벨트가 껄껄 웃었다.
“허허허! 기쁜가 보군! 내 진작 자네가 기뻐할 줄 알았지!”
“…….”
“뭐, 반응을 보니 괜찮겠군! 자, 자! 다들 들어오게!”
갑자기 라인벨트가 손짓하자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들어왔다.
“와! 아몬 선생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아나르엘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제 드래고니아 대공 전하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
아몬은 아나르엘의 얼굴을 보며 멍하니 굳어 있었다.
그리고 따라 들어온 브레슬이 투덜거렸다.
“이게 무슨 궁궐입니까? 내가 살던 부족의 화장실과 비슷한 크긴데요.”
“…….”
브레슬의 불평불만에도 아몬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슬로스는 아몬을 보며 픽 웃더니 말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네가 대공 전하가 될 줄은…… 진짜 참, 누가 알았겠어.”
그리 말한 슬로스는 아몬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침낭을 들고 투덜거렸다.
그런 슬로스의 등을 툭툭 두드린 마리온이 껄껄 웃었다.
“허허헉! 거참, 우리가 갑자기 왔으니 기뻐서 정신이 나간 것 아니겠나! 안 그런가, 아몬? 아니지, 드래고니아 대공 전하!”
“…….”
“으응? 사람이 넋이 아예 나갔군. 껄껄껄!”
그리고 쭈뼛거리며 아몬을 바라보던 피오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야, 선배님은 이제 대공 가문이시네요.”
“…….”
“우리 가문과도 이제 격이 맞…….”
갑자기 번개처럼 몸을 날린 슬로스가 피오라에게 침낭을 뒤집어씌웠다.
아나르엘은 침낭을 덮어쓰고 읍읍 대는 피오라에게 박치기를 했다.
그런 그들의 주접에도 불구하고 아몬은 침묵하고 있었다.
‘도망쳐 온 곳에 낙원은 없다.’
아몬은 그 말을 깨닫고 있었다.
대공이 되어 이 지옥 마굴과 같은 인간들과 작별인가 싶었는데, 원한이 있는 것처럼 이 먼 곳까지 꾸역꾸역 쫓아오다니!
그 사실에 아몬이 절망하는 와중이었다.
“선생님!”
보리스가 우다다 달려와 아몬의 품에 안겼다.
“보, 보리스……!”
클로에도 번개처럼 달려와 아몬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크, 클로에…….”
레이몬드는 두 명(하나는 인형)이 달려왔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아몬이 입에 주먹을 넣은 채 끅끅거렸다.
“레이몬드, 너까지…….”
라스티아넬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왕과의 결전, 수고 많으셨습니다.”
“흐흐흑…… 내가 뭘 수고한 게 있을까…… 너희가 고생이었지…….”
마지막 학생, 아미가 손을 휙 들었다.
“오빠, 오랜만.”
“넌 꺼져 좀.”
“와, 진짜 너무하네.”
동생에게는 가차 없는 아몬!
아무튼 아모니스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지옥 마굴의 유일한 안식처인 학생들을 부둥켜안은 아몬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얘들아, 이 선생님은 너희들이 정말 보고 싶었다…….”
“선생니임…….”
학생들도 아몬의 뜨거운 눈물에 울음을 참으며 그의 등을 두드려 줬다.
그 눈물겨운 모습에 교사들은 떨떠름했다.
“우리랑 반응이 너무 다른데요?”
“허허허! 아몬도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배고픈데 먹을 것 없나…….”
“아몬, 침실은 어디야?”
“슬로스 선배님! 침실은 왜 찾는데요!”
그 와중, 잠깐 밖으로 나갔던 라인벨트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아몬, 네가 반가워할 얼굴들이 더 있다!”
또 반가워할 얼굴?
그리고 라인벨트의 말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은 정식으로 황위를 계승받기 전이니, 다시 교사로 일하기 위해 돌아온 카이었다!
“하하! 아몬 선배님, 그간 잘 지내셨…….”
번개처럼 날아간 아몬이 카이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이 개새끼야! 왜 제국에서 지원금을 개미 뒷다리 털만큼 주는 거야!”
“크아아아악!”
문을 부수며 쏘아진 카이가 자신의 옆을 휙 지나쳐 날아가자 안으로 들어가려던 조아민트가 우뚝 멈춰 선 채 와들와들 떨었다.
-……여, 역시 조나난을 죽인 놈답군.
조아민트는 아직도 아몬이 무서웠다.
그리고 득달같이 쫓아가 카이의 위에 올라탄 아몬이 멱살을 잡고 흔들며 외쳤다.
“그리고 뭔! 아카데미를! 우리 공국으로 이전한다는 거야! 안 그래도 쪼달려 죽겠는데!”
“켁! 케엑! 슨배임, 손, 케헥!”
“해결책을내놓지않고책임없는쾌락만을즐길거면나는너를죽일것이다!”
숨을 못 쉬어 켁켁대던 카이가 손을 뻗었다.
“저, 저스티시엘 님, 상회가, 여기를 본거지로 두고, 활동을…….”
“……엉!?”
아몬이 고개를 홱 돌렸다.
마침 마차 행렬을 끌고 오던 저스티시엘이 손을 흔들었다.
“오…… 오오……!”
아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저스티시엘 옆에는 카셀라그도 있었다.
“아몬, 오랜만이구나!”
“어르신!?”
“허허! 네 나라 이름이 드래고니아라지? 그런데 드래곤 하나쯤 더 머물러도 되지 않겠느냐?”
아몬이 활짝 웃었다.
늙고 병든 드래곤 하나 먹여 살리는 것쯤 어렵겠는가!
“물론이죠! 어르신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
비로소 카이의 멱살을 놓아준 아몬이 그를 부둥켜안았다.
“카이야, 미안하다. 내 너의 깊은 속뜻도 모르고…….”
“……콜록!”
정녕 아모니스 가문과 아몬은 어울릴 수 없는 기름과 물이란 말인가!
카이의 눈은 심상치 않게 빛나고 있었다.
‘선배님…… 아니, 아몬 사일런스 드래고니아…… 당신 정말…….’
그리고 카이를 부둥켜안고 있는 아몬의 눈도 스산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은 용서하지만,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곧이어 아몬은 카이와 어깨동무하며 사람들을 돌아봤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여러분! 그럼 이렇게 모두가 모였으니까……!”
아카데미가 망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