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22)
아카데미가 망했다 22화
농사일은 고되다.
그러나 매일같이 ‘특별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연무장을 구르던 보리스에겐 꿀맛 같은 휴식과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농사에 관해선 아몬을 제외하고, 아카데미의 누구보다 우위!
“마리온 선생님! 이랑을 너무 깊게 팠어요!”
“그, 그래?”
“부학교장님! 주머니에 넣은 감자 꺼내세요!”
“……쳇!”
아몬의 허가하에 고속 승진을 거듭한 보리스는 ‘감독관’ 직책까지 부여받은 상황!
보리스는 꿀맛 같은 권력을 휘두르며 아카데미의 노동자들을 질책했다.
“클로에! 씨감자를 채를 썰면 어떡해! 그럼 싹이 나겠어, 안 나겠어?”
“…….”
“검술은 잘하면서 칼질은 왜 그 모양이니!”
“……보리스, 돌아가서 보자.”
“미안해. 잘못했어…….”
마을사람들도, 아카데미의 인원들도 최선을 다해 감자밭 복구에 몰두했다.
덕분에 어제오늘은 꼬박 밭에 매달려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 중으로 끝낼 수 있겠군. 그런데 아몬.”
“예? 선배님.”
“일한 거 일당은 쳐주나?”
“예?”
“일당은 쳐주나?”
“예에?”
물론 현장학습 명목이니 정말 받을 생각도 없고, 그냥 물어본 것이지만 저토록 뻔뻔하게 나오다니.
“선물로 줬던 술 돌려주게.”
“……일당은 돌아갈 때 현물로 드리겠습니다.”
“됐네, 이 사람아.”
헛웃음을 지은 마리온이 주변을 둘러봤다.
비록 감자밭의 복구로 어수선하다는 걸 제외하면, 하루에 한두 번씩 고라니나 멧돼지마냥 나타나 감자밭을 파헤치는 몬스터들을 제외하면, 험한 땅이라 이렇다 할 문화 시설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제외할 게 너무 많군.’
아무튼 요점은 모처럼 만끽해 보는 전원생활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내린 판단!
“난 도시 체질이었군.”
“예? 그랬어요?”
“그렇더라고.”
기지개를 켠 마리온이 중얼거렸다.
“작업도 곧 끝날 거고, 내일은 돌아갈 수 있을 테지?”
“예. 내일이면 학교장님도 완전히 회복할 거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렇군. 정말 다행이야.”
호미로 땅을 파다가 몬스터를 쫓아내려고 달음박질치는 건 지긋지긋했다.
아무튼 얼마가 흘렀을까.
콱-!
마지막 울타리를 밧줄로 꽉 묶은 브레슬이 소리를 질렀다.
“우, 울타리 보수 끝!”
“우와아아!”
비로소 엘더 드레이크의 습격으로 황폐화된 영지의 복구를 마쳤다.
온 마을사람들과 아카데미의 노동자들이 힘쓴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고된 작업도 끝난지라 영지의 모든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으으음.”
일찍 잠자리에 든 아버지 몰래 영지의 재무표를 간략히 살펴보던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영지 사정이 많이 힘들구나.’
사실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는, 아카데미의 교사직을 때려치우기 위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려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위약금을 부탁드릴 순 없는 상황이군. 뭐, 알고는 있었지만…….’
궁핍한 영지의 사정.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더 드레이크의 습격으로 소중한 감자밭마저 박살 난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아카데미 교사직, 때려치우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는 어머니에게 업어치기를 당할 게 분명했다.
‘물론 이번에 잡은 몬스터들의 부산물을 판다면 사정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그만큼 나갈 돈이 많으니 원.’
이곳 사람들을 ‘영지민’이라 할 순 없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자 이웃이고, 동료이며 친구였다.
결국 거둬들이는 세율은 바닥이고, 몬스터의 부산물로 번 소득도 복지 및 영지의 복구에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엘더 드레이크와의 싸움에서 다친 마을사람도 절반 이상, 무너진 집도 십여 채, 창고도 두 개가 무너졌고, 그리고, 그리고…….’
즉 영지의 사정은 아몬이 늘 알던 대로였다.
그나마 뜻밖이라면, 영지를 비운 형과 동생이 근처 도시에 일을 보러 갔다더니 그곳에서 돈을 벌고 있나 보다.
‘형, 동생 이름으로 수입이 조금 있기는 하군. 하지만 내가 영지를 떠나 있을 땐 몬스터의 습격이 엄청 줄었다더니, 덕분에 정말 몬스터로 인한 수입도 엄청 줄었네.’
문득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무슨 재앙을 부르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오자마자 몬스터 대군이 습격해 오고, 엘더 드레이크가 습격해 오고…….
‘설득력이…… 있어. 아카데미 꼬락서니를 봐도 말이지.’
한숨을 쉰 아몬이 머리를 북북 긁었다.
챙겨 온 자신의 전 재산도 몰래 영지의 금고에 넣어 두긴 했지만, 그걸로 얼마나 갈지는 모를 일.
“……에휴, 빨리 출세해야지. 그럼 우리 영지 살림도 나아지겠지.”
물론 황제와 드레이크 가문 사이의 내막을 알게 된 지금, 그것 역시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쓰게 웃은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마음도 답답하니 맑은 공기나 좀 쐬다 잠자리에 들 작정이었다.
그리고 밖을 어슬렁거리던 아몬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슉, 슈슉 슉-!
‘응?’
저만치서 들려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
검을 휘두르는 소리였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설마 클로에인가?
‘이 기특한 녀석! 이런 늦은 시간까지 수련을……!’
싱글벙글하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 아몬의 얼굴이 썩었다.
그곳에서는 슬로스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니, 저 인간은 일도 안 돕더니 할 일이 없어서 검이나 휘두르고 있어?’
사람이 바뀌자 태도도 바꾸는 아몬!
내심 혀를 차며 몸을 돌리려던 와중, 아몬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어?’
게을러빠진 슬로스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고 화려한 움직임.
‘……저게 진짜배기 피드 가문의 검술인가.’
클로에, 보리스에게 가르치던 핵심이 빠져 있는 검술과는 전혀 달랐다.
화려함, 기교, 눈속임, 그 모든 단어를 응축시켰노라 말하는 것 같은 검술.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그녀를 묵묵히 지켜보던 와중이었다.
털썩-!
지쳤는지 다리를 덜덜 떨다 주저앉는 슬로스.
그러나 휘청휘청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가 재차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때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검을 쥔 슬로스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피가 흐를 정도로 검을 휘두른다고?’
그러고 보니 슬로스의 맨손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늘 침낭을 양손으로 안고 있었으니까.
‘……그럼 낮에 항상 꾸벅꾸벅 졸던 것도?’
남들이 자고 있을 때 검술을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였나?
“……쩝.”
어깨를 으쓱인 아몬이 몸을 돌렸다.
세상 살기가 참 쉽지 않구나, 싶었다.
* * *
“할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하하! 그래, 돌아왔느냐.”
깊숙이 고개를 숙인 소년을 바라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우승을 했습니다.”
“호오, 우승을?”
눈을 가늘게 뜬 노인이 말했다.
“내가 말한 대로, 실력을 감춘 채로 우승한 것이냐?”
“…….”
“크하하! 아닌가 보구나.”
소년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은 노인이 말했다.
“어떠냐, 손자야.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만은 않지?”
“……네, 할아버님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래. 세상엔 숨은 강자들이 많다. 내 비록 세간에는 창천검왕이라 불리는 실력자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조차 손쓰지 못할 강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인 법. 그러니만큼 스스로의 실력을 뽐내고 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
“……네.”
“때문에 네가 자만하지 않도록, 자신의 발톱을 감추도록 그러한 명을 내렸던 것이다. 알겠느냐?”
소년은 다름 아닌 경진대회 검술 부문의 우승자인 ‘레이몬드’였다.
클로에의 우승을 빼앗았다며 아몬이 어금니를 박박 갈고 있는 당사자!
그리고 레이몬드가 마주하고 있는 노인은, 제국의 4대 그랜드소드 마스터 중 하나인 ‘창천검왕 라인벨트’였다.
“아무튼 손자야.”
“네.”
“한데 네 본 실력을 이끌어 낸 자가 누구인고? 내 알기론, 이번 대회의 검술 부문에 참가한 자들 중 그럴듯한 인물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애초에 이번 경진대회는 ‘숨은 인물’을 찾아내려던 의도였다.
때문에 대단한 명문가의 참가자는 거의 없었다.
즉 레이몬드의 본 실력을 끌어내려면 명문에 걸맞은 실력이 있어야 할 터.
“……처음 보는 소녀였습니다.”
“소녀. 처음 보는.”
“네.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클로에 아란이라는 소녀였습니다.”
“아란? 살아남은 아란 왕국의 왕족인 겐가…….”
그리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란 왕국은 고산 지대에 위치한 소국.
그렇기에 타고나는 심폐 지구력과 체력은 여느 사람과 비할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소녀가 말하기를, 자신에게 가르친 스승이 있다고 했습니다.”
“호오? 그런 재목을 가르친 스승이라…….”
라인벨트의 눈이 번쩍였다.
“다름 아닌 내가 손수 가르친 네가 본래 실력을 보이게 만들 정도로 가르침이 뛰어난 인물이란 말이지…….”
흥미롭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라인벨트가 몸을 일으켰다.
“재밌겠군! 가자꾸나, 레이몬드!”
“네? 어, 어딜 말입니까?”
“크하하! 그거 참 어리석은 질문이구나!”
창천검왕 라인벨트가 히죽 웃었다.
* * *
침대에 풀썩 쓰러진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 아침 아카데미로 돌아온 것이다.
“휴…… 역시 아카데미 침대는 푹신하네.”
영지의 자기 방에 있는 짚과 마른풀을 깐 침대와는 차원이 다른 푹신함!
‘그마저도 아나르엘 학교장한테 뺏겨서 거실 바닥에서 잤지만 말이지.’
아무튼 다들 고생했으니, 이번 주는 마저 쉬고 다음 주부터 다시금 학생들의 교육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학생들이나 열심히 가르치자. 그 애들 실력이라면 출세하는 건 당연하고, 출세하면 제자 덕 좀 볼 수 있겠지…….’
출세가 별 건가.
잘나가는 인맥을 따라가면 그게 출세지.
‘그럼 우리 집에 있는 침대도 전부 푹신한 걸로 바꿔줘야지.’
피식 웃은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다음 주부터 뭘 교육할지를 생각하려던 와중이었다.
벌컥-!
문을 박차고 들어온 아나르엘이 새파래진 얼굴로 외쳤다.
“아, 아몬 선생님!”
“……노크 좀 하고 들어오시면 안 될까요?”
“미, 미안해요! 하지만…….”
“에휴, 뭡니까? 일단 진정하고 말씀해 보시죠.”
집에도 다녀왔겠다, 마음의 안정을 조금은 되찾은 아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아나르엘도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진정된 아나르엘이 말했다.
“손님이 왔어요.”
“아하, 손님.”
“그런데 그랜드소드 마스터예요.”
“아하, 그랜드소드 마스터…… 라고요?”
집에 다녀와 안정된 마음이 다시금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랜드소드 마스터가 왜 여길 와요?”
그 물음에 아나르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아몬 선생님, 진정하고 들어요.”
“전 지금 굉장히 진정된 상태입니다, 학교장님.”
“아뇨, 아니에요. 심호흡하세요. 얼른.”
“후, 하, 후. 예, 했습니다.”
“……그럼 진정된 걸로 알고 말할게요.”
숨을 고른 아나르엘이 천천히 말했다.
“제국의 4대 그랜드소드 마스터 중 하나, 창천검왕 라인벨트. 그가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몬 드레이크, 당신을 콕 집어서요.”
아몬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