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23)
아카데미가 망했다 23화
창천검왕 라인벨트!
4대 기사라 함은 그야말로 제국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아니던가!
‘그런 대단한 사람이 왜 나를? 내가 뭘 잘못했나?’
설득력이 있었다.
재앙을 부르는 자신의 운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의문을 담은 채, 아나르엘을 따라 응접실로 향한 아몬은 조금 전까지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라인벨트로 보이는 심상치 않은 기세의 노인 옆에 웬 낯익은 놈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저놈은 클로에의 우승을 빼앗은 날강도?’
날강도는 바로 경진 대회에서 운 좋게 우승한 레이몬드였다.
‘그렇군. 어린데 실력이 대단하다 했더니, 창천검왕 라인벨트의 제자였나?’
생각에 잠겨 있던 것도 잠시, 이쪽을 발견한 라인벨트가 몸을 일으켰다.
“크하하! 아나르엘 학교장님, 이 젊은이가 제가 찾던 교사입니까!”
“네! 그, 그래요!”
“호오, 역시 그렇습니까!”
라인벨트가 쩌렁쩌렁한 웃음을 터뜨리며 다가왔다.
“반갑네! 나는 라인벨트 나마크! 레이몬드의 조부라네! 우리 손자와는 구면이겠지!”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그냥 제자가 아니라 손자였어?’
거물 중의 거물인 라인벨트의 손자!
그 사실을 깨닫자 밉게만 보이던 레이몬드가 조금은 예뻐 보였다.
‘이건 기회야.’
위기를 기회로!
거물에게 잘 보여 점수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처음 뵙겠습니다! 드레이크 남작가의 차남인 아몬이라 합니다! 이렇게 명성 높으신 라인벨트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하하! 그래! 반갑군!”
“한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그 물음에 라인벨트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가 가르친 클로에라는 학생이 내 손자를 상대로 멋지게 한 방 먹였다더군! 그런 학생을 가르쳐 낸 자네를 내 눈으로 직접 봐 두고 싶었다네!”
상당한 고평가!
그러나 아몬은 냉철하기 짝이 없는 판단력으로 스스로의 행적을 살펴봤다.
‘내가…… 뭘 가르쳤더라?’
달리는데 뒤에서 쫓아다니기!
도발을 일삼아 자신을 공격하게 하기!
‘……딱히 없네?’
아몬이 서둘러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학생에게 길을 제시해 준 것뿐입니다.”
그 말에 담겨 있는 ‘나는 X도 한 거 없다’는 메시지!
그러나 라인벨트는 더더욱 흡족하다는 듯 쩌렁쩌렁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겸손하기까지! 내 오늘 제대로 찾아왔군!”
메시지는 닿지 않았다.
“하여간 학생을 그렇게나 훌륭히 키워 낸 걸 보면, 그대 역시 검의 길을 걷는 자가 확실할…… 테지? 그렇지 않나……?”
라인벨트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라인벨트의 눈에 비치는 아몬은 검술의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자세도 허술하고, 검을 익힌 자 특유의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상대로, 아몬은 흐려진 라인벨트의 기대를 깨 버렸다.
“저는 검술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저, 정말인가?”
“예. 말씀드렸듯, 검술과는 별개로 노력하는 길을 알려 준 것뿐입니다.”
“…….”
멍하니 아몬을 바라보던 라인벨트가 레이몬드에게 속닥거렸다.
“레이, 이야기가 틀리지 않으냐.”
“하, 하지만 클로에라는 애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 아이가 거짓을 말한 것인가.”
“그런 눈치는 아니었습니다만…….”
“흐음…….”
눈살을 찌푸린 채 입맛을 다시던 라인벨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기야 가르침에는 여럿이 있는 법. 검술을 가르친 건 아닐지언정, 그 학생이 그리 말했다면 그대 역시 훌륭한 선생의 자질을 지녔나 보군.”
말했듯, 자기 객관화가 뛰어난 아몬은 이번 칭찬은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크흠, 그럼 미안하지만 그 학생에게 검술을 가르친 사람을 불러 줄 수 있겠나? 모처럼 방문했으니 보고 가고 싶군. 그토록 훌륭한 검술을 가르친 인물이라면, 필시 그도 대단한 인물이겠지.”
활짝 웃은 아몬이 말했다.
“맞습니다! 대단하긴 하죠!”
“오오! 그런가! 기대되는군!”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크하하! 고맙네!”
* * *
자다 깬 슬로스를 끌고 온 아몬!
라인벨트가 멍한 얼굴로 이쪽을 보며 말했다.
“……저자가 맞나?”
“옙!”
“확실한가?”
“그럼요!”
“어…….”
라인벨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는 아무리 봐도 ‘소드 익스퍼트’ 수준이었다.
‘내 손자는 어려도 소드 마스터다. 그런데 실력을 숨겼다곤 하나 녀석에게 한 방 먹인 학생을 키워 낸 게 고작 소드 익스퍼트라고?’
하지만 라인벨트가 금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가르침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법. 자신의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라 한들, 가르침의 철학이 특별할지도 모른다.’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네. 학생들의 검술 교사라지?”
그리고 이미 잠은 저 멀리 달아난 슬로스가 얼른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처음 여기로 올 땐 아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으, 응…… 뭔데? 왜 깨워?’
‘창천검왕 라인벨트님께서 선배님을 불러요!’
‘무슨 헛소리야……?’
‘진짜라고요! 얼른 일어나요!’
‘저리 가, 더 잘 거…… 아악! 침낭 묶지 마!’
결국 아몬의 횡포에 굴복해 따라오긴 했지만, 그 말이 사실이었다니.
‘제국 4대 기사.’
검의 길을 걷는 자들의 우상이며 도착점.
그중 하나인 라인벨트를 눈앞에 둔 슬로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피, 피드 가문의 슬로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오, 피드 가문 출신인가?”
“그, 그렇습니다!”
라인벨트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피드 가문 출신이었나?’
피드 후작가는 검술으로 이름 높은 가문이며, 현 가주인 ‘바티스타 링슬레이 피드’ 역시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 제국 4대 기사 중 하나였다.
‘확실히 그런 곳 출신이라면 가르치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겠군. 그런데 묘한 것이…….’
말했듯 피드 가문은 검술 명가다.
가주의 자식 모두가 소드 마스터 상위권의 실력자이며, 가문에 속해 있는 가신 모두가 검술에 몰두하는 검귀들이다.
‘게다가 피드 가문은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의미로, 소드 마스터 수준에 오르지 않으면 가문 밖으로 내보내질 않는다던데 이 아이는……?’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척이 예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던 피드 후작과 닮아 있었다.
‘거짓은 아니로군.’
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의문을 접은 라인벨트가 말했다.
“그럼 나가 볼까. 연무장은 어디지?”
“……네?”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이는 슬로스를 본 라인벨트가 씩 웃었다.
“자네도 검을 길을 걷는 자라면, 내가 한 수 겨뤄 보자는 말을 감히 거절하지 않을 테지?”
“……!”
고수와의 대련 기회!
슬로스가 허겁지겁 라인벨트를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한편, 아몬은 푸근하게 웃고 있었다.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슬로스를 데려온 이후로 빌린 보릿자루마냥 시선조차 받지 못하는 아몬!
거물에게 잘 보이겠다는 계획은 실패였다!
* * *
“끝인가?”
그리 말하는 라인벨트의 앞에는 슬로스가 무릎 꿇고 있었다.
“아, 아직…… 입니다!
“흐음, 그렇군.”
의욕 넘치는 슬로스의 대답에도 라인벨트의 얼굴은 허탈함으로 가득했다.
‘역시 소드 익스퍼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피드 가문 특유의 교활한 검형은 엿보였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스스로 펼치는 검이 이토록 보잘것없는데, 가르침이 특별할까?’
검의 극에 오른 라인벨트는 상대와 겨루는 것만으로도 ‘가르침의 철학’을 읽을 수 있었다.
‘하긴, 무리도 아니지. 피드 가문은 내보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짓뭉갠 검술을 외부인에게 전파한다. 고작 그런 걸 가르칠 뿐이니 가르침에 특별한 게 있을 리 없지.’
쯧 혀를 찬 라인벨트가 말했다.
“아무튼 계속할 생각이라면 얼른 일어나게.”
“네, 네! 알겠…… 습니다!”
낑낑대며 일어나는 그녀를 바라보던 라인벨트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 한 수를 보여 줄 테니 그걸로 대련을 끝내지. 더 이상은 무리인 듯하니 말일세.”
“……네.”
“그럼…….”
라인벨트가 여태 휘두르던 ‘근처에서 주운 나뭇가지’를 슬로스에게 겨눴다.
그리고 그가 한걸음 내디딘 순간.
츳-!
어느새 라인벨트는 슬로스의 눈앞에 서 있었고, 그가 든 나뭇가지는 슬로스의 턱 끝에 닿아 있었다.
“보았는가?”
“……….”
“그래, 그래. 알겠네.”
나뭇가지를 거둔 라인벨트가 몸을 돌렸다.
“계속 정진하게.”
“……감사합니다.”
몸을 돌린 라인벨트가 문득 아몬을 바라봤다.
아몬은 좋은 구경거리다 싶어, 보리스와 클로에까지 데리고 와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오, 그 소녀가 레이몬드를 고전하게 만든 학생인가?”
“그렇습니다. 클로에라고 합니다.”
“흐음…….”
클로에를 빤히 들여다보던 라인벨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질이 뛰어나긴 하군.’
그 사실을 깨닫자 라인벨트의 관심이 확 식어 버렸다.
교육이 뛰어난 게 아니라, 단순히 클로에의 자질이 손자를 고전시킬 정도로 뛰어난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무수히 많은 ‘천재’를 보아 왔다.
그렇기에 단순한 천재 하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거라. 그럼, 아몬이라 했나? 이만 실례하지. 학교장님에게는 만나 뵈어 반가웠다고 전해 주게.”
“어어, 가시려고요?”
“그래. 이만 가 보려 하네.”
“……알겠습니다. 멋진 검술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그럼 이만…….”
몸을 돌리던 라인벨트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방금 뭐라 했나? 멋진 검술?”
“예? 그, 그렇습니다만.”
라인벨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경진대회에 참가한 레이몬드에게 충고했듯, 본인 역시 자신의 실력을 철저하게 감춘다.
즉 슬로스와의 대련은, 남들 눈에는 ‘나뭇가지를 몇 번 휘두른’ 것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멋진 검술이라니?
“……뭐가 멋졌다는 건가?”
별안간 심각해진 라인벨트의 얼굴에 아몬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그렇게 대단한 검술이 왜 멋지지 않겠습니까? 특히 마지막 한 수가 굉장했습니다.”
“……뭐라고?”
라인벨트가 눈을 부릅뜨자 아몬이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궤적이 계속 바뀌던데요? 총 서른여섯 번 바뀌었나? 그런데 중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한 번의 찌르기라니…… 그런 게 왜 멋지지 않겠습니까?”
“…….”
마지막 한 수를 모두 읽었다고?
아몬을 한참 노려보던 그가 말했다.
“……검술을 배운 적 없다고?”
“예? 그렇습니다만…….”
“정말인가?”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대답에 라인벨트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군.”
“그렇지요.”
“그렇다면…….”
대뜸 라인벨트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무심결에 받아 들자, 그럴싸한 나뭇가지를 새로 찾아온 라인벨트가 다가오며 말했다.
“자, 한 수 겨뤄 보세.”
“예? 제가요?”
“그럼 누구겠나?”
“제가 왜요?”
아몬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왜 밑도 끝도 없이 대련을 하자는 거야? 늙은이가 힘자랑하려고?’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었다.
라인벨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가벼운 대련일세. 부담 갖지 말게.”
“저는 검을 쥐는 법조차 배우지 못했습니다. 왜 부담이 없겠습니까?”
“어허, 가볍게 겨루는 거래도.”
“저한텐 안 가볍다니까요?”
라인벨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의 마지막 한 수를 정확히 읽은 아몬의 진면목을 보고 싶었다.
‘먼저 공격하면 반격이야 하겠지만, 그럼 저자의 진심어린 일검을 볼 수 없다. 얼렁뚱땅 가하는 반격이 아니라.’
그러나 말했듯 아몬에겐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끌어내는 수밖에.’
히죽 웃은 라인벨트가 말했다.
“흥, 그럴 배짱도 없나 보군.”
“그렇습니다.”
“참 실망스러워. 대단한 재목인 줄 알았건만.”
“죄송함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사실이니까!’
실제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게 덤빌 만큼 간이 크지 않다!
게다가 스스로가 아주 대단한 재목이란 생각은 않는다!
‘내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게 덤빌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진즉 시골 촌구석에서 벗어났겠지!’
아몬이 내심 혀를 찼다.
‘그리고 도발이 너무 뻔한 거 아냐?’
어떻게든 덤벼들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응, 절대 안 덤빌 거야!’
태연한 아몬을 빤히 바라보던 라인벨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본인을 헐뜯는 걸론 소용없나?’
라인벨트가 생각에 잠겼다.
아몬은 왜 이곳에 머무는 걸까?
예상이 맞다면, 제법 대단한 인물일 텐데 이런 망해 가는 아카데미에 신입 교사로 있을 리가 없다.
‘……설마 동료애인가?’
그러고 보니 소드 익스퍼트일 뿐인 슬로스를 ‘대단한 인물’이라 칭찬하지 않았던가!
그 사실을 깨달은 라인벨트는 헐뜯을 대상을 바꿨다.
“정말 실망스럽군. 자네는 물론이거니와, 저기 있는 자네의 동료도 한심하기 짝이 없어. 오늘 이곳에 온 건 헛걸음이었군.”
“예, 죄송함다.”
“이런 이들을 교사로 둔 학교장의 눈이 의심스럽군.”
“제 생각도 그렇슴다.”
아몬 역시 아나르엘의 눈은 옹이구멍만도 못하다 생각한다!
라인벨트는 더더욱 고심에 빠졌다.
‘동료애도 아니야?’
그럼 왜 여기 있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진지하게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럼 설명이 된다.
‘그래, 분명 아까 학생에게 길을 제시해 줬다 했지. 검술에는 문외한이더라도, 진지하게 교육자의 길을 걷는 게 분명하다.’
틀렸다.
‘그렇다면…….’
공격할 대상이 정해졌다.
점점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어쩔 줄 몰라 하는 보리스를, 그리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클로에를 훑어본 라인벨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자네의 꼴을 보니 알겠군.”
“예?”
“자네가 가르친 학생의 수준도 별 볼 일 없을 게 분명…….”
아몬이 호랑이처럼 달려들어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차마 미래의 구명줄까지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기에 순순히 도발에 응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