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25)
아카데미가 망했다 25화
아몬은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라인벨트를 피해 도망쳤던 그는 밤늦게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시간도 늦었으니, 미친 영감도 보금자리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웬걸, 아카데미로 돌아와 보니 웬 정신 나간 노인네가 빗자루를 들고 정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크하하! 마침 정문 경비 자리가 빈다니 당분간 여기서 일하기로 했다!’
‘컥……!’
아몬이 얼른 반론을 펼쳤다.
‘속세에 미련도 없으신 분이 어째서 속세에 몸담으려 하십니까! 얼른 산으로 돌아가세요!’
‘크크크, 나는 그렇다 쳐도 레이가 그래서야 되겠느냐?’
‘……예?’
‘레이도 소드 마스터에 올랐으니 내가 일일이 봐 줄 필요는 없을 터. 더군다나 녀석도 슬슬 나이에 걸맞은 교육을 받을 시기가 아니더냐?’
틀린 말은 아닌 게, 레이몬드는 딱 보리스와 클로에의 또래였다.
‘그, 그 말은 설마…….’
‘그래. 레이도 이곳에 입학하기로 했다. 비록 네놈이 검술엔 문외한일지언정, 교육자로서의 신념 하나만은 강한 모양이니 좋은 선생이 되어 줄 테지.’
‘크, 크윽…….’
클로에를 잘 키워 낸 것이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라인벨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근데 학비가 꽤 나가더구나. 그래서 이렇게 됐으니 여기서 일하기로 했다.’
‘……으, 으음.’
보리스와 클로에의 경우에는, 부모와 고향을 잃었기에 아카데미가 거둬 보살펴 주는 형태다.
반면 레이몬드는 제 돈 주고 입학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영지도 없고, 작위도 없는 빈털터리 라인벨트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레이몬드의 학비를 대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하네, 아몬 선생.’
그럴싸한 이유였지만, 아몬은 미친 영감탱이의 속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부탁드리죠. 제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속세를 버리면서까지 검에 몰두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 제자가 되길 강요하지는 말아 주시죠.’
라인벨트는 뜻밖에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길은 스스로의 의지로 걸어야 하는 법. 염려 말도록 해라.’
그리 말하며 푸근하게 웃는 라인벨트를 떠올린 아몬이 중얼거렸다.
“……말은 그래도 전혀 포기하지 않은 것 같던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설마 꿈인가?’
그러나 야속하게도 힘껏 꼬집어 본 뺨은 얼얼했다.
“하, 젠장…….”
빙글 몸을 뒤집은 아몬이 이불을 덮으며 눈을 감았다.
‘일단 자자. 내일부터 커리큘럼을 짜야 하니까.’
당장 다음 주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신만의 수업이 시작된다.
‘역사학…… 잘 가르칠 수 있겠지?’
조금의 불안감을 끌어안은 채 잠을 청하던 와중이었다.
똑똑-
돌연 들려온 문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부학교장.”
“……부학교장님?”
“네, 들어가도 됩니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문을 열자 브레슬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아몬은 그런 브레슬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그 물음에 브레슬은 하늘을 우러러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것처럼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가져온 감자는 언제 먹을 겁니까?”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안겨 준 감자 한 자루!
엄한 데 놔뒀다간 브레슬이 쓱싹할 게 분명했기에 아몬이 따로 숨겨 두고 있었던 그 감자!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늦은 시간에 감자 드시겠다고 찾아오신 겁니까?”
“잘 모르시나 본데, 다크엘프는 밤이 주 활동 시간입니다. 그러니 식사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에휴, 예. 잠시만요.”
아몬이 옷장에 숨겨 둔 감자 자루를 꺼내자 브레슬의 귀가 맹렬하게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흠…….”
브레슬에게 줄 감자 몇 알을 꺼낸 아몬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조금 출출했다.
‘나도 야식으로 조금 먹고 잘까?’
고향에서 매일 같이 먹었던 감자의 맛을 떠올리자 군침이 싹 돌았다.
‘그래, 우리 감자는 특히 소화도 잘되지. 밤이지만, 먹고 바로 자도 괜찮아.’
감자를 더 꺼내자 브레슬은 좋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전부 자기 몫이라 생각하나 보다.
“절반은 제 겁니다.”
브레슬이 단숨에 의기소침해졌다.
* * *
감자 소쿠리를 들고 복도를 걷는 와중 보리스와 마주쳤다.
“응? 보리스, 이 늦은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니?”
“아, 네. 물 마시러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이에요. 그러는 선생님은 웬 감자를……?”
뒤따라오는 브레슬을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부학교장님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나도 좀 먹으려고.”
“아하.”
“보리스도 먹을래?”
보리스가 활짝 웃었다.
“네! 선생님!”
활짝 웃는 녀석에게 농담조로 작게 말했다.
“클로에한테는 비밀로 하고 우리끼리만 먹자꾸나.”
원래 다른 사람한테 비밀로 하고 몰래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보리스의 안색이 급변했다.
“아…… 크, 클로에도 데려올게요.”
“어, 응? 굳이?”
“제, 제가 같이 먹고 싶어서요.”
“그래? 음, 알겠다.”
보리스가 허겁지겁 방으로 달려갔다.
정말 아몬 말대로 클로에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또한 클로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클로에가 날 죽일지도 몰라.’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기에 보리스는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클로에 데리고 제 1 연무장으로 오렴!”
“네! 선생님!”
보리스가 멀어지자 아몬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편, 아몬을 뒤따르던 브레슬의 얼굴은 우거지상이 되어 있었다.
‘나 혼자 먹어도 모자랄 양인데 괜한 입이 늘어나다니…….’
입술을 꼭 깨문 브레슬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냐, 애들이 먹어 봐야 뭐 얼마나 먹겠어?’
브레슬은 모른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먹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윽고 연무장에 도착한 아몬이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부학교장님, 찐 감자면 되겠죠?”
“좋죠.”
영지에서 질리도록, 토 나오도록 먹었던 찐 감자지만 오랜만에 먹는다 하니 아몬도 제법 기대됐다.
그리고 감자가 끓는 물에 반쯤 잠겨 들썩이는 것을 지켜보던 와중.
“거어억! 이게 뭐야? 부학교장님과 아몬? 보기 드문 조합이구만 그래.”
“어라? 마리온 선배님?”
술에 취해 휘청대며 나타난 마리온!
보아하니 아카데미 밖에서 술을 퍼먹다 이제 막 돌아온 모양이었다.
“근데 뭐 하고 있나?”
“야식으로 찐 감자나 먹으려고요.”
“오호, 자네 영지에서 가져온 그건가?”
“예. 좀 드시겠습니까?”
“하하하! 좋지!”
얼른 자리에 앉는 마리온을 본 브레슬의 귀가 파르르 떨렸다.
‘군입이 하나 또 늘었어?’
하지만 브레슬은 내심 안도했다.
‘술에 떡이 된 것 같은데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어?’
그녀는 모른다.
술에 적당히 취한 상태에선 음식이 끝없이 배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윽고 보리스와 클로에가 연무장으로 찾아왔는데, 뜻밖의 인물도 함께였다.
“어머나 이 한밤중에 웬 연회예요?”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난 아나르엘!
“하, 학교장님은 웬일이십니까?”
“보리스, 클로에 학생이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기에 주의를 주려 했더니 아몬 선생님이 야식을 먹는다지 뭐예요? 그래서 와 봤죠.”
하긴, 선생 된 자로서 하면 안 될 짓이긴 했다.
한창 자라는, 일찍 자야 할 학생들을 데리고 야밤에 야식이나 먹다니!
“……학교장님도 같이 드시겠습니까?”
아나르엘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헤헤, 모처럼의 야식이네요.”
입맛을 다시는 아나르엘의 모습에 브레슬은 귀를 동동 굴렀다.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세간에 ‘엘프는 소식한다’는 속설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엘프는 소식하지만, 브레슬은 그것이 ‘야채 이외의 음식’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학교장, 저 엘프가 한 끼에 샐러드를 몇 대접을 비우는데!’
감자도 소쿠리 하나는 가뿐하게 비울 게 분명하리라!
‘예, 예상치 못한 강적이 등장하다니.’
가져온 감자는 열두 알.
그런데 벌써 머릿수가 여섯이었다.
‘한 사람 몫으로 감자 두 알이 고작이겠군.’
브레슬이 긴장하는 와중이었다.
“음…… 맛있는 냄새.”
돌연 나타난 슬로스가 슬금슬금 다가오자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무슨 날입니까? 한 분씩 막 나타나네요.”
“……내 것도 있어?”
“음…… 많이는 없어요.”
“괜찮아. 많이 안 먹을 거야.”
이쯤 되니 브레슬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많이 먹긴 개뿔을 안 먹어?’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슬로스!
아몬도 내색은 않았지만, 그녀가 다른 연무장에서 고되게 훈련하다 이곳으로 왔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즉 얼마나 배고프겠는가!
‘이럴 줄 알았다면 감자를 더 가져왔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이었다.
“호오,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고?”
입맛을 다시며 나타난 라인벨트와 레이몬드!
척 봐도 잘 먹게 생긴 영감과 소년이 나타나자 벌떡 일어난 브레슬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몬 선생! 감자 더 가져오세요! 아니, 다 가져와요!”
그 고함을 들은 아몬이 마주 고함을 질렀다.
“웬일로 얌전하다 싶더니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시끄럽습니다! 감자 있는 대로 다 가져와…… 아니, 내가 다녀오죠!”
번개처럼 몸을 날리는 브레슬을 본 아몬이 질겁하며 뒤쫓았다.
“이 식탐에 미친 다크엘프가!”
“키아악! 놓으…… 아악! 내 머리!”
* * *
결국 감자 한 자루를 통째로 들고 왔다.
“……훌쩍!”
아몬에게 머리채를 붙잡혔던 브레슬이 콧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내 감자…….”
“……이게 왜 부학교장님 감잔데요?”
아예 새로 가져온 커다란 냄비를 뒤적대던 아몬이 혀를 차며 말했다.
“뭐, 아무튼 다 익었네요. 슬슬 먹죠.”
아몬이 감자를 건져 늘어놓자 하나둘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들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문 순간이었다.
“뭐, 뭐야, 이거?”
“……이게 감자라고?”
“내가 여태 먹어 온 건 대체……?”
입안의 감자를 삼키지도 못하고 경악하는 그들을 보자 뿌듯했다.
“우리 감자 맛있죠?”
“……우물우물.”
브레슬은 아예 눈물까지 흘려 가며 감자를 먹고 있었다.
‘후후, 역시 우리 감자가 최고야.’
코 믿을 쓱 훔쳐 검댕을 닦아 낸 아몬이 문득 라인벨트를 바라봤다.
라인벨트는 한 입 베어 문 감자를 들고 이쪽을 빤히 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입에 안 맞아요?”
“……이제 알겠군.”
“예? 뭐가요?”
감자를 삼킨 라인벨트가 피식 웃었다.
“자네가 강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예?”
“이렇게 진한 마나가 담긴 음식을 매일 먹어 댔으니 당연한 일이지. 육체가 마나 자체에 적응해 버린 경우인 건가.”
“음……?”
그 말을 들으니 짚이는 게 있었다.
‘듣고 보니 우리 영지엔 하나같이 힘 좀 쓰는 사람들밖에 없긴 해.’
그게 전부 감자 덕분이었던 건가?
‘근데 왜?’
감자 자체가 딱히 특별한 게 아니었다.
아몬이 알기론, 그냥 근처 도시에서 사 온 씨감자를 심고 재배한 거였다.
‘영지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몬이 아무렴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다. 감자나 먹자. 이러다 다른 사람들이 다 먹겠네.’
라인벨트도 더 이상 말하려는 것 같진 않았기에 서둘러 감자를 집은 아몬이 크게 한입 베어 문 순간이었다.
“아몬.”
여태 조용히 감자를 먹던 슬로스가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말했다.
“나랑 혼인하자.”
“푸후웁!”
아몬의 입에서 씹다 만 감자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