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
아카데미가 망했다 3화
거대 달팽이와의 악수는 썩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절규하는 자신을 꾸역꾸역 단상까지 끌고 간 학교장은 굳이 안 해도 될 설명까지 덧붙였었다.
‘하나슬러그 씨! 이분이 저를 설득했어요! 당신을 믿어 달라고요!’
-규오오옷!
하나슬러그는 감격의 점액질을 뿌리며 아몬의 손을 붙잡았다.
문제는 거대 달팽이의 크기가 마차만 했기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잡아먹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씻어도, 씻어도 몸이 미끈거려.’
그리고 돌아온 학교장실.
학교장은 ‘골드로드 상회’에서 보증하는 5천 골드짜리 전표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귀를 열심히 파닥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날아가겠습니다.”
“네? 날아가다뇨?”
“아닙니다. 그보다 그 5천 골드,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당연히 운영비로 써야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아카데미의 금고는 놀랄 정도로 가볍답니다.”
그게 누구 때문인지 알고 말하는 걸까.
하지만 뜻밖이었다.
“또 경주 달팽이에 돌을 꼴아 박, 아니. 투자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학교장이 까르르 웃었다.
“경주 달팽이는 10년 주기로 개최하는 걸요? 경주 달팽이가 재밌었던 건 이해하지만 조금만 참아요.”
10년이 조금인가?
아무튼 몸을 일으킨 학교장이 말했다.
“그럼 피곤하실 텐데 쉬고 계세요. 골드로드 상회 지부는 여기서 가까우니까 금방 환전하고 올게요.”
“예, 그럼 저는 쉬고 있을 투자하러 가시나요?”
학교장실을 나가려던 아나르엘이 흠칫 멈춰 서고, 조용히 서 있던 그녀가 말했다.
“아몬 선생님.”
“예.”
“5천 골드는 분명 큰돈이에요. 하지만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학생만 수천, 교사는 수백에 달하죠. 그 수많은 사람을 유지하려면 5천 골드론 턱도 없어요. 1년? 아니, 몇 개월이 고작이겠죠.”
그녀가 우수에 젖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는 몰락해 가는 지금의 아카데미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로 되돌리고 싶어요. 즉, 황실의 지원이 끊긴 이상, 독자적으로 운영비를 조달해 학생과 교사를 유치해야 하죠.”
“…….”
“그런 제 뜻을 알겠나요?”
근엄한 학교장의 말에 아몬이 답했다.
“그래서 투자를 하시겠다?”
“네.”
“이 빡통 엘프가 진짜 미쳤나!”
“뭣!? 또, 또 빡통이랬어!”
5천 골드를 전부 운영비로 쓰겠다는 말에 아카데미를 파멸시키리라는 다짐이 조금 흔들린 게 사실이었다.
이 엘프가 방법은 잘못됐어도 아카데미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짜구나, 하고.
‘하지만 믿을 걸 밀어야지.’
눈앞에 있는 건 아카데미를 말아먹은 장본인!
아몬은 마음을 도로 고쳐먹었다.
“휴우, 학교장님.”
“빡통…… 안 하기로 해 놓고…….”
“학교장님!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좀 해 보죠.”
울먹대던 학교장이 눈을 부라렸다.
“빡통 엘프랑 무슨 할 이야기가 있으시죠!?”
“투자에 대해서요! 어제 말했듯 정상적인 방법으론 아카데미를 다시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흥! 그래서요?”
“즉 방법은 옳더라도 방향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확에 15년이나 걸리는 드래곤바나나 농장에 투자하는 방향성 말이죠.”
달팽이 경주도 10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엘프!
이미 인간과 엘프의 시간관념이 다르다는 걸 질리도록 들은 학교장이 힘없이 귀를 떨어트렸다.
‘왜 여태 아카데미가 안 망했는지가 궁금할 정도…… 아니, 망하기는 했지만 말이지.’
그러나 진작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아카데미가 여태껏 멀쩡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아무튼 그 의문은 뒤로하고.
“결국 투자 자체가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
“그러니 이번에는 신중하게 해 보죠. 학교장님의 염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아, 아몬 선생님.”
감격으로 귀를 푸드덕거리는 학교장!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상회로 가죠!”
“네! 아몬 선생님!”
* * *
5천 골드라는 거금.
학교장은 당장 쓸 금화 100개를 환전하고 나머지는 전표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투자할 금액은 무려 3천 골드!
‘의외군. 학교장이라면 무지성으로 5천 골드를 꼴아 박을 거라 생각했는데.’
천 골드 전표 세 장을 바라보던 아몬이 시선을 돌렸다.
골드로드 상회에선 투자 업무도 진행한다.
때문에 학교장은 투자자를 기다리는 사업의 목록이 적힌 책자를 심각한 얼굴로 읽고 있었다.
“……저기,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이거 어때요? 좋아 보이는데.”
[블라톤 신전 건축 사업] [수익 기대성 낮음]군신 블라톤을 모시는 신전!
아모니스 제국에서 손꼽히게 신도가 많은 신으로, 전쟁 관련 신이라 헌금을 기가 막히게 빨아먹는 걸로 유명하다.
‘게다가 제국이 새로 개척한 영토에 짓는 거잖아?’
즉 지금 당장은 수익성이 낮겠지만 장래가 유망했다.
‘더구나 신전이라 자리만 잡히면 신관이랑 성기사도 출장 보내 줄 거고, 축복도 받고 여러 혜택도 많겠군.’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사업을 선택한 것일까?
눈빛을 경계로 물들인 아몬이 말했다.
“별로군요.”
“네? 정말요?”
“신전이 지어질 곳을 보세요. 새로 개척된 영토. 즉, 기반이 부족하다는 뜻이죠. 이교도가 날뛸지도 모르고, 기존 민족의 반발도 심할 겁니다.”
“그, 그렇군요. 역시 아몬 선생님.”
“별말씀을.”
학교장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럼 좀 더 읽어 볼게요.”
“예, 저는 화장실 좀 다녀오죠.”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 담당자를 붙잡고 말했다.
“블라톤 신전 건축 사업에 2골드 투자하겠습니다.”
“네, 여기 투자 확인서입니다.”
전 재산 3골드 중 무려 2골드를 투자한 아몬은 후련한 얼굴로 학교장에게 돌아갔다.
“많이 급했어요? 표정이 엄청 밝아지셨네요.”
“하하하, 그렇죠.”
“으음, 그보다 아몬 선생님.”
“네?”
귀를 축 늘어뜨린 학교장이 책자를 내밀었다.
“아몬 선생님이 좀 봐 주세요. 솔직히 저는 봐도 잘 모르겠어요.”
“예? 제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아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도 없었겠죠. 그러니 믿고 맡길게요.”
빙긋 웃는 학교장을 본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 미소를 보니 양심의 가책이…….’
그 순간 꾸역꾸역 자신을 끌고 가 거대 달팽이에게 떠밀던 학교장의 환하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양심의 가책은 없군.’
책자를 훌훌 훑어본 아몬이 입을 열었다.
“이게 좋겠군요.”
“뭐죠?”
[킹오브망고 재배 사업] [수익 기대성 높음]학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킹오브망고가 뭔지 아세요? 선생님이 저를 빠, 빡…… 이라며 비난하게 만든 드래곤바바나에 버금가는 고급 작물이라고요.”
“네. 이것도 싹 피는 데 2년, 열매가 맺히기까지 5년은 걸리죠.”
“그런데 대체 왜…….”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귀를 갸웃거리는 학교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학교장님 한 분만은 이 아카데미를 끝까지 지킬 테니까요.”
“……네?”
책자를 덮으며 말을 이었다.
“엘프의 시간관념은 인간과 다릅니다. 때문에 저로선 성과까지 15년이나 걸릴 투자를 이해할 수 없었죠.”
“…….”
“하지만 드래곤바나나를 재배하려는 농장인 이상, 그들도 그만한 시간을 들일 결연한 각오를 했겠죠. 또한 그런 결심이라면 재배에 성공할 테니 15년의 기다림 역시 빛을 볼 겁니다.”
숨을 고른 아몬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15년. 아카데미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유지비도 문제지만, 황실이 망해 가는 아카데미를 굳이 계속 남겨 두려 할까요?”
“그, 그건…….”
“때문에 반대한 겁니다. 15년은 무턱대고 감내하기엔 긴 세월이니까요.”
하지만, 하고 운을 뗀 아몬이 말했다.
“반면 킹오브망고는 재배까지 7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드래곤바나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죠.”
“…….”
“물론 7년도 인간에겐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엘프의 7년은 어떤가요?”
“짜, 짧진 않지만 그리 길지도 않아요.”
그렇겠지.
인기 만발인 경주 달팽이 행사를 10년에 한 번 개최하니까.
학교장을 향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했듯, 황실은 아카데미를 폐쇄하려 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학교장님은 7년을 버티셔야 합니다.”
“……!”
“그 이후론 투자의 성과가 나올 테니 유지비로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겠죠. 자금력이 생기면 황실의 압박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질 거고요.”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아나르엘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 그럴지도 몰라요. 그런데 7년은 인간에게 긴 시간이라면서요?”
“예, 그렇죠.”
“그렇다면 아몬 선생님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 아닌가요?”
소름이 쭉 돋았다.
설마 같이 견뎌 줄 거라 생각한 건가?
‘나는 이걸로 아카데미 말아먹고 도망칠 건데?’
그리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떠올린 아몬이 말했다.
“조금 전에 말했듯, 학교장님 한 분만은 아카데미를 끝까지 지키시겠죠.”
그 말에 학교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설마…….”
“저도 인간인 이상, 7년의 세월 동안 어찌 될지 모릅니다. 사정상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죠.”
“…….”
“하지만 학교장님만큼은 아카데미에 남으실 테니, 이 투자는…….”
킹오브망고 사업 설명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온전히 학교장님과 아카데미를 위한 투자가 되겠죠.”
“아, 아몬 선생님…….”
감격으로 입을 틀어막고 귀를 퍼덕대는 학교장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7년,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그, 그럼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카데미를 폐쇄하게 두지 않을 거예요!”
학교장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그때 아몬 선생님이 안 계시다면, 반드시 선생님을 다시 아카데미로 불러들이겠어요!”
내가 돌았다고 돌아오냐.
‘정말 그때가 온다면, 그땐 죽은 척이라도 해야겠군.’
푸근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 투자 금액을 정해 보죠.”
“네!”
원래 계획은 3천 골드를 투자하고 나머지를 남겨 두는 거였다.
하지만 ‘버틴다’는 계획이 확실해졌기 때문인지 아나르엘은 과감했다.
“최소한의 운영비인 100골드만 남겨 두고 4900골드 전부 투자하죠!”
아몬이 박수를 쳤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온다.
이러니 아카데미를 말아먹었지.
‘아무튼 이걸로 완벽하다.’
남은 100골드가 좀 거슬리긴 해도, 그쯤은 어떻게든 꾀어 탕진하게 하면 그만이다.
‘비로소 이 생지옥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겠지.’
나머지 7년은 아나르엘이 버티건 말건 알아서 할 거고, 7년 후 투자가 성공하고 말고는 내 알 바인가?
“그럼 학교장님, 가시죠!”
“네!”
아나르엘이 4900골드치 전표를 들고 활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 *
킹오브망고 사업의 농장주가 눈을 부릅떴다.
“4900골드 어치 투자가 들어왔다고요?”
“그렇습니다! 농장주님!”
“세, 세상에…….”
농장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킹오브망고의 신재배법을 개발한 지 어언 10년…… 드디어 킹오브망고를 1년 만에 수확할 수 있는 재배법을 완벽하게 개발했으나, 자금이 없어서 대량 생산과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건만…….”
눈물을 줄줄 흘리던 농장주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당장 사업 진행에 들어갑니다! 보아 둔 땅을 모두 매입하고 인부를 고용해서 작업에 착수하세요!”
“예! 농장주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본 농장주가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하늘이 도우셨구나.”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하늘보다 더 감사한 분들이 계시지.”
농장주는 서둘러 펜과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투자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 *
이튿날 아침.
아몬은 아카데미의 우편함에 편지 두통과 큼직한 덩어리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
‘웬 우편?’
수신자를 확인해 보니, 하나는 자신에게 온 것이고 하나는 ‘아모니스 아카데미’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큼직한 덩어리를 살펴본 아몬의 얼굴이 굳었다.
겉에 적혀 있는 글자.
‘킹오브망고.’
괜한 불안감에 아몬은 편지와 킹오브망고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개봉한 편지를 읽어 봤다.
“뭐, 뭐라고……?”
신재배법을 개발해 킹오브망고의 재배를 비약적으로 당길 수 있다는 소식!
그리고 거금을 쾌척한 투자자에게 향후 10년간 순이익의 일부를 선뜻 양도하겠다는 엄청난 결단!
[……그렇기에, 시제품으로 나온 킹오브망고를 자비로운 투자자님께 미리 맛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디 투자자님의 앞길에도 빛만이 내리쬐길.]편지를 읽은 아몬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머리가 띵하고 손발도 떨린다.
곧이어 아몬은 자신에게 온 편지를 개봉했다.
[블라톤 신전 건축 사업 투자자들에게 알림]“으, 으으…….”
[신전 건축은 이교도들의 폭동과 기존 민족의 반발, 또한 개척된 영토의 민심이 극도로 불안해져 무산되었습니다.]“으아아아……!”
[건축을 담당한 상회 역시 도산하여, 사업에 투자한 투자자분들께 너른 양해의 말씀을 구하는…….]날아간 2골드.
아몬은 편지를 찢으며 절규하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