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1)
아카데미가 망했다 31화
첫 시작은 좋았다.
황제를 알현하길 원한다는 아나르엘의 요청에 황실은 즉각 수락했다.
그러나 다음 일은 순탄치 않았다.
‘알현 허락은 바로 떨어졌는데 여기서 일이 꼬이다니…….’
어느 누구도 쉽사리 상상할 수 없겠지만, 아나르엘은 아모니스 아카데미라는 거대한 집단‘이었던’ 곳의 수장이다.
게다가 엘프는 긴 세월을 살아가기에 노환으로 인한 은퇴 없이 언제까지고 학교장을 해 먹을 수 있었다!
때문에 아나르엘과 친분을 나누려는 귀족 인맥이 제법 많았었다.
그래, 많았었다.
과거형이다.
-허허, 모르겠소. 황제 폐하께선 워낙 근면하신 분이라.
“그, 그런가요?”
-그럼 일이 바빠 이만.
가차 없이 끊기는 마법 통신에 아나르엘이 미간을 짚었다.
아몬이 제안한 뇌물 대작전!
그러나 벌써 열 명 넘는 귀족에게 황제의 취향을 물어보았으나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아무리 청렴한 황제라 해도 좋아하는 물건, 음식쯤은 있을 텐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니.’
아니, 사실 알고 있을 것이다.
방금 통신했던 인물은 마가모아 변경백.
국경의 수호를 도맡고 영지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니만큼 황제의 신임, 혹은 경계를 받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 황제의 취향을 모를 리가 없잖아? 애초에 통신할 때 목소리부터가 심드렁했어. 통신을 받아 줄 때까지도 몇 번을 걸어야 했고.’
황제가 직접 내린 운영중단 권고를 받은 아카데미의 학교장 따위와 더 이상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심산이리라.
“휴우, 어떡하지…….”
한숨을 쉰 아나르엘이 문득 아몬을 바라봤다.
그는 학교장실 구석에서 기묘한 동작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펄쩍 뛰었다 물구나무를 서거나,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더니 무릎으로 착지하는 둥,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몬 선생님, 아까부터 대체 뭐하시는 거예요?”
“……황제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대체 뭔데요?”
흐르는 땀을 닦은 아몬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서에선 동방대륙의 가장 큰 예법이 엎드려 ‘절’이라 하더군요. 이 물구나무서기는 그 절하기의 심화판인 ‘그랜드 절’이라는 겁니다.”
“그럼 공중제비 돌고 무릎 꿇는 건요?”
“그냥 화려하고 신경 쓴 티가 팍팍 나잖아요. 진심 같아 보이기도 하고.”
“…….”
아나르엘은 아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구나.’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우리 아카데미에 어쩌다 저런 정신 나간 선생님이 들어오게 된 걸까.’
아몬도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아나르엘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다 저런 무능한 엘프가 아카데미의 학교장을 맡게 됐을까.’
서로 쯧쯧 혀를 차던 와중이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슬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교장님, 경비 내역서 결재 부탁드립니다.”
“네, 슬로스 선생님. 들어오세요.”
내역서를 아나르엘에게 넘겨준 슬로스가 말했다.
“목검 세 자루 파손으로 여유분을 좀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아나르엘이 도장을 쿡 찍자 슬로스가 아몬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무슨 중요한 이야기 중이었나 보죠?”
“네?”
“학교장님도, 아몬도 표정이 영 심각해서요.”
“그건…….”
과연 슬로스 같은 게으름뱅이에게 아카데미가 처한 미증유의 대위기를 말해도 될까?
‘조만간 봉급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본가로 돌아가려고 할지도 모르는데…….’
가족과의 불화가 해결된 지금이라면 슬로스가 구태여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때문에 아나르엘이 대충 둘러대려는 순간, 역시 그 사실을 아는 아몬은 곧장 아카데미의 위기를 발설했다.
아몬은 어느 누구보다 슬로스가 이곳에서 꺼져 주길 바라고 있으니까!
“우리 아카데미의 재정이 무너졌습니다! 킹오브망고 농장이 망했거든요!”
“뭐? 정말?”
“네! 조만간 봉급도 안 나올 걸요!”
“그게 정말인가요, 학교장님?”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아몬의 자백에 아나르엘이 미간을 짚은 채 말했다.
“사실이에요.”
“흐음.”
“하지만 수단을 찾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봉급도 물론…… 나올 거예요.”
영 자신감이 없는 아나르엘의 말에 슬로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러시다면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네.”
슬로스가 사라지자 아몬이 혀를 쯧쯧 찼다.
“매정하다, 매정해! 후작가면 돈도 많을 텐데 도와줄까, 한마디도 없네!”
“아몬 선생님.”
“예?”
“전 가끔 당신이 정말 싫어요.”
“예? 왜요?”
느닷없는 아나르엘의 경멸과 혐오에 아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황제의 취향을 모르니 그럴싸한 뇌물을 바치긴 힘든 상황.
‘그럼 정공법으로 가는 수밖에.’
아몬이 서둘러 학생 기숙사로 향했다.
* * *
“네? 수도로 간다고요?”
“그래. 이번에 황제 폐하를 알현할 기회가 생겼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너희도 데리고 가는 거란다. 지난 번 경진대회 땐 느긋하게 구경할 상황이 아니었잖니?”
푸근한 아몬의 말에 보리스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와! 놀러 가는 거예요?”
“그러엄! 어때? 갈 거지?”
“네, 선생님!”
희희낙락하는 보리스를 향해 웃어준 아몬이 클로에를 바라봤다.
“클로에, 너는?”
“갈게요.”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마지막 학생, 레이몬드를 바라본 아몬이 말했다.
“넌 아카데미에서 쉬고 있으렴.”
“네? 저는 왜요?”
“하하하! 녀석, 몰라서 묻는 거라면 이 선생님은 정말 슬플 것 같구나.”
그 말에 레이몬드가 좌우로 끌어안은 제 모습을 본 딴 인형들을 바라봤다.
‘근데 저거 왜 두 개지?’
아무튼 레이몬드가 말했다.
“설마 인형 때문에 아카데미에 남으라는 거예요?”
“하하, 안다니 조금은 다행이구나.”
투덜거린 레이몬드가 말했다.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
“……응?”
레이몬드가 웬 손바닥 만 한 인형을 꺼냈는데, 그것도 녀석을 본 따 만든 인형이었다.
“이것만 가지고 갈게요.”
“근데 그 인형들은 대체 몇 개나 있는 거니?”
“열일곱 개요.”
“그렇구나!”
더 이상 인형에 대해 생각하길 관둔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몬드도 함께 가 준다면 일이 더 잘 풀릴지도 모르지.’
현 황제는 드레이크 가문과 얽히지만 않으면 성군 중의 성군이다.
게다가 자라나는 새싹들의 교육을 장려하며, 학생들을 아끼는 것을 감안하면 잠재력이 출중한 학생들이 곤란에 빠진 상황을 모른 척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즉 클로에와 레이몬드를 내세우면 황제를 설득하기 쉽겠지! 둘의 재능은 대단하니까!’
그리고 보리스는.
‘애는 착해!’
아무튼 서둘러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가진 옷들 중에서 가장 꼬질꼬질한 걸로 입으렴!”
“네? 모처럼 수도에 가는데 왜.”
“이유는 가면서 설명해 주마!”
학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검술 수련을 할 때 입는 헤져도 괜찮은 옷들을 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아몬이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장실에 도착했다.
“학교장님, 준비됐습니다.”
“근데 학생들 옷이 왜 저래요? 황제 폐하를 알현하는 자리인데.”
아몬은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을 거지꼴로 데려가야 황제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 있으리라는 합리적인 이유!
그리고 아몬은 처음으로 아나르엘이 폭력을 쓰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 * *
‘엘프의 박치기는 아주 위협적이군.’
증거 인멸을 위해 농장주의 편지를 먹어 치우려 할 때 엘프가 염소와 친척이라 주장하더니, 아나르엘의 박치기는 염소의 그것만큼 위협적이었다.
욱신거리는 턱을 쓰다듬던 아몬이 말했다.
“다들 준비됐니?”
“네, 선생님.”
학생 일동은 가진 옷들 중 가장 좋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다만 최후의 타협으로, 황제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아몬은 낡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럼 학교장님, 출발하시죠.”
“부디 황제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황제가 그러지 않으면 아몬도 그럴 테지만, 황제는 무례하게 나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몬은 대답 하나만은 제대로 했다.
“물론이죠.”
“아몬 선생님이 그래도 하실 땐 확실하게 하시니까요.”
근거 없는 믿음을 내뱉은 아나르엘이 워프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몬 일행은 황궁 밖 외부에 마련된 마법진에 도착했다. 곧이어 철저한 검문을 마친 후 황제를 만나기 위해 알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학교장님.”
“네?”
알현장으로 향하는 와중 아몬이 말했다.
“이렇게 곧바로 알현 허가가 떨어진 걸 보니 학교장님은 황제 폐하와 꽤 오래 알고 지내셨나봅니다?”
“그렇죠. 그러고 보니 산드리오. 황제와 알고 지낸 지 벌써 50년은 흘렀네요.”
“그렇게나 오래됐습니까?”
아나르엘이 옅은 금발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저에겐 그렇게까지 긴 세월이 아니죠. 그저께 처음 만난 것만 같은데.”
“……학교장님.”
“네?”
“몇 살이시죠?”
“올해로 269살인가 그래요.”
“와, 우리 부모님. 아니, 가족 전부 합친 것보다 나이가 많네요.”
아몬은 아나르엘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두 번째로 목격할 수 있었다.
걷어차인 정강이를 부여잡고 콩콩 뛰는 와중, 아나르엘이 걸음을 멈췄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알현장이에요.”
“아이고, 정강이야……. 아, 그런데 학교장님.”
“네?”
“우선 학교장님만 들어가서 협상을 해 보시죠.”
아나르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요? 절 믿으세요?”
사실 아몬은 아나르엘 혼자 황제를 만나길 원했다.
그러나 아나르엘은 자신의 말재주, 임기응변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득불 아몬을 데리고 온 것이다.
물론 드레이크 가문과 황제 일가의 악연을 생각하면 아예 따라오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학교장한테 그 사실을 말할 수도 없으니.’
아버지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 사실은 황제의 최측근과 드레이크 가문의 사람들만 알고 있어야 할 극비 중의 극비라고.
결국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아나르엘은 아몬이 함께 안 가면 나도 안 간다고 징징대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아몬 선생님, 오늘따라 좀 이상하네요. 평소 같았으면 먼저 황제를 만나겠다고 나섰을 텐데.”
“그게, 저한테도 사정이랄 게 좀 있어서요.”
“알겠어요.”
귀를 축 떨어트린 아나르엘이 말했다.
“그럼 우선 저 혼자 이야기해 볼게요. 하지만 정 안되겠다 싶으면 부를 테니, 그땐 나서 줘야 해요. 알겠죠?”
아몬이 가슴을 탕탕 쳤다.
“물론입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네!”
곧이어 아나르엘이 학생들과 함께 알현실로 들어간 순간, 아몬은 양손을 맞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부르지 마라! 제발 부르지 마라!’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일을 그르치게 될 테니까!
* * *
“허허허! 정말 오랜만이군요. 잘 지내셨소, 아나르엘 공주.”
“폐하는 여전하시네요.”
“일부러 공주가 온다 해서 측근들도 모두 물렸소. 섭섭하게 굴지 말고 편하게 부르시오.”
“후후, 산드리오 당신은 여전하네요. 빅토리아는 잘 지내나요?”
“물론이오. 그래, 이렇게 먼 길을 오셨으니 저녁 만찬이라도 즐기고 가시오. 빅토리아도 공주가 왔다 하면 크게 기뻐할 거요.”
“그거 좋죠.”
“험험,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소?”
비로소 본론이 나오자 아나르엘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게…… 운영중단 권고에 대해서요.”
“음…… 예상하긴 했습니다만.”
입맛을 다신 황제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역시 아나르엘 공주와의 연을 생각해 운영중단 권고는 피하고 싶었소. 그러나 무시엘 아카데미의 선례가 있어 어쩔 수 없었소.”
무시엘 아카데미!
학교장의 투자 실패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아카데미였다!
아무튼 황제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자 아나르엘이 어렵사리 말했다.
“그, 그렇지만, 어떻게 안 될까요?”
“으으음. 아무래도 선례가 확실하다보니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침음을 흘린 황제가 문득 아나르엘 뒤편에 서있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클로에, 레이몬드, 보리스.
모두 기억에 남아 있는 학생들이었다.
“오오! 저 아이들은 지난 번 경진대회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아니오?”
“마, 맞아요.”
“그래, 그러고 보니 저 아이들이 아모니스 아카데미 출신이었군.”
무릎을 탁 친 황제가 말했다.
“좋소. 훌륭한 학생들을 키워 낸 성과를 감안해 짐이 재상과 관료들을 설득해 운영중단 권고를 거두도록 해 보겠소.”
“저, 정말인가요?”
“허허허! 물론이오, 아나르엘 공주.”
“고마워요!”
껄껄 인자한 웃음을 터뜨린 황제가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의 향을 음미하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순간이었다.
“……?”
향긋한 차향에 섞여 코를 찌르는 불쾌하고 역겨운 냄새!
“킁킁킁! 킁킁킁킁?”
“산드리오?”
갑자기 개처럼 킁킁거리는 황제의 모습에 아나르엘과 학생 일동이 질색하고, 연신 콧소리를 내던 황제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알현장의 문을 노려보며 눈을 새하얗게 까뒤집었다.
“이 냄새는 더러운 드레이크 일족의 냄새!”
으르렁거린 황제가 알현장의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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