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2)
아카데미가 망했다 32화
알현실의 밖.
아몬은 문 앞에 선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진행되고 있으려나?’
아몬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나르엘의 이미지에 의하면, 지금쯤 일을 그르치고 엉엉 울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황제와 알고 지낸 지 50년은 족히 됐다고 했지? 그럼 의외로 간단하게 권고를 거둬 줄지도?’
드레이크 가문과 엮이지만 않으면 성군 중의 성군으로 이름 높은 황제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아몬은 황제의 덕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그래, 내가 황제랑 마주치지만 않으면 간단하게 풀릴 거야.’
그리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알현실의 문이 열리더니 황제가 나타났다.
“크하하하! 어디서 웬 드레이크 종자의 추악한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네놈이었구나!”
“…….”
마주치지만 않으면 잘 풀릴 거라 생각한 지 2초도 지나지 않은 시점!
황제가 악귀 같은 얼굴로 외쳤다.
“오라, 네놈이 이번 일의 원흉이렷다!”
“원흉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놈이 아나르엘 공주를 현혹시켜 운영중단 권고를 철회하라 종용한 게 아니더냐!”
일갈하는 황제!
‘근데 아카데미의 교사로서 할 일을 원흉, 현혹, 종용이라 표현하나?’
그 사실을 따지고 싶었지만, 황제의 눈이 팽팽 돌아가는 속도를 보니 미쳐도 보통 미친 상태가 아니었다.
이 상태라면 귀리로 오트밀을 쑨다 해도 거짓으로 몰아붙이리라.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걸까?’
선대의 잘못을 후대까지 끌고 와 이렇게 핍박하다니!
분노와 함께 설움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폐하.”
“누가 네 폐하냐!”
“부디 공과 사는 구분해 주십시오.”
“뭐라?”
“드레이크 가문이 예로부터 범한 무례는 무례이되, 운영중단 권고 철회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어디 더 말해 보라는 듯 팔짱을 끼자 아몬이 말을 이었다.
“저희 아카데미는 경진대회 때 그랬듯이, 폐하께서 눈여겨볼 정도의 학생을 육성할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
“그러나 현재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처해 있는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아카데미의 재정 파산으로 인해 학생들이 배를 곯고 있는 실정이란 말입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다.
오늘도 모처럼 수도에 간다고 고깃국을 든든하게 먹이고 왔다.
“또한 재정의 미비로 정규 커리큘럼의 진행조차 어려울 뿐더러, 수업의 진행에 필요한 교보재마저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슬로스의 목검 추가 발주에 찍은 도장이 채 마르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곧이어 아몬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힘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전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입니다! 드레이크 가문의 일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교육자입니다! 그런 교육자로서 아카데미의 궁핍한 재정 때문에 학생들이 배를 곯고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그저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
“하오니 황제 폐하!”
우렁차게 황제를 부르짖은 아몬이 정중하게 예를 취하며 외쳤다.
“부디 너른 아량을 베풀어 주시어, 아카데미에 내려진 운영중단 권고를 철회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점에서 아몬은 승리를 직감했다.
‘완벽해.’
교육자로서의 긍지와 신념, 학생을 향한 자애가 절절히 묻어 나오는 외침!
상대는 학생을 사랑하며 교육을 중시하는 황제가 아니던가!
그러한 황제에게 교육, 학생, 교육자로서의 신념이라는 세 박자를 꽉꽉 눌러 담아 일장 연설을 퍼부었으니 마음이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 생각하며 황제를 힐끗 쳐다본 아몬은 깨달았다.
‘씨알도 안 먹혔구나!’
심드렁한 얼굴로 귀를 후비던 황제가 말했다.
“드레이크 일족 놈이 혀가 길구나.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끝이렷다?”
“…….”
“호오? 그 표정은 뭐냐?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불만, 그 말에 아몬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 거 적당히 좀 하십쇼! 저는 알지도 못하는 옛날 일을 자꾸 들먹이면서 들들 볶으시냐고요!”
“이놈 봐라? 드디어 그 추악한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으아아악! 진짜!!”
“어어? 이러다 한 대 치겠다?”
껄껄 웃음을 터뜨린 황제가 뺨을 들이밀었다.
“크하하하! 내 한때 대륙을 종횡하던 기사다! 황제 이전에 한 명의 당당한 사내! 좋다, 네놈의 일 수 따위 얼마든 받아 주마!”
황제는 드레이크 일족이 밉다.
그렇기에 아몬이 엉엉 우는 꼴을 한번 보겠다고 개소리를 일삼으며 약 올리는 것이다!
“낄낄낄! 어디 한 대 쳐 보거라!”
“크, 크으윽!”
“어허? 못 때리겠느냐? 끼끼끼, 사내놈이 강단이 그리 없어서야.”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딱 감고 한 대만 때려?’
물론 그 일의 여파는 어떻게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리라.
황제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아몬 본인은 물론이고 위아래로 삼족을 멸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
그렇기에 아몬이 주먹만 와들와들 떨고 있는 와중이었다.
“폐하.”
“그러니까 누가 네 폐하…….”
눈이 돌아간 채 아몬을 약 올리던 황제가 입을 딱 다물었다.
엉겁결에 받아치긴 했다만 방금 들려온 목소리는 아몬의 것이 아니었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사랑하는 자신의 반쪽.
만인지상, 아모니스 제국의 황제인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인물!
어느새 나타난 빅토리아 황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폐하.”
“부, 부인……?”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제국의 황제로서 체통을 지키셔야 한다고요.”
뚜둑, 하고 목을 꺾은 황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나르엘이 찾아왔다기에 한달음에 달려왔더니, 이렇게 못 볼 꼴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
“무슨 저잣거리 시정잡배도 아니고, 한 대 쳐 봐. 이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 온당치 못한 발언이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서슬 퍼런 황후의 말에 황제가 작게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부인, 오해가 있는 것 같소.”
“그렇군요. 무슨 오해죠?”
“그보다 먼저, 어디서부터 들었소?”
황후가 빙그레 웃었다.
“어디서 웬 드레이크 종자의 추악한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니. 부터요.”
처음부터다.
“무슨 말을 하시나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갈수록 한 술 더 뜨시더군요.”
“…….”
“게다가 지난번에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대의 원한과 아무런 관계없는 젊은 청년일 뿐이다. 그러니 과거의 오랜 앙금은 이번 대에서 끝내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요?”
“…….”
“산드리오?”
“……듣고 있소.”
방긋 웃은 황후가 걸음을 옮겼다.
“가시죠.”
“…….”
황후가 앞장서 알현실로 향하자 황제는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발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곧이어 알현실에 있던 아나르엘과 학생들이 쫓겨나듯 밖으로 나오고, 알현실의 문이 닫힌 순간이었다.
퍽! 콰직, 으드득-!
알현실 밖으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그 소리에 아나르엘은 긴 귀를 접은 채 오들오들 떨었다.
“또, 또 빅토리아와 산드리오의 ‘반성의 시간’이야…….”
황제가 황제이기 이전, 황후가 황후이기 이전에 아나르엘이 숱하게 들어왔던 소리였다.
* * *
얼마가 지났을까. 황후가 알현실에서 나왔다.
알현실 안에서 ‘끄으윽, 사, 살려, 부인, 제발 그만…….’이라는 섬뜩한 신음이 연신 들려왔지만, 황후가 알현실의 문을 닫는 것으로 그 실낱같은 신음은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피에 젖은 실크 장갑을 만지작거리던 황후가 말했다.
“분명, 아몬이라 했던가요?”
“아, 예…….”
“사정이 이리되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아직 운영중단 권고 철회에 대한 답변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돌아가라니.
“하지만…….”
황후가 빙그레 웃었다.
“돌아가시지요.”
얼음이 등을 훑는 것 같은 오싹한 감각에 아몬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장 가겠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아나르엘, 간만에 먼 길 와 줬는데 미안해요.”
아나르엘이 피에 젖은 장갑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아뇨. 이런 날도 있는 법이죠. 아.하.하.하.”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도록 하죠.”
“네, 넵.”
“그리고 다음에 올 땐…….”
황후가 아나르엘에게 속삭였다.
“저 청년은 두고 오세요. 보시다시피 폐하께선 저 청년만 보면 광증에 휩싸이시는 듯하니까요.”
“아, 알겠어요.”
황후가 싱긋 웃으며 손짓하자 아몬 일행은 허겁지겁 황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황제를 확인한 황후가 입을 열었다.
“거기 있느냐, 카이야스.”
“예, 어머님.”
카이야스. 아모니스 제국의 황태자.
이내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청년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여태 아버님과 어머님의 말씀으로만 듣던 아나르엘 공주님을 한번 뵙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또 기회가 있을 게다. 그나저나 어찌 생각하느냐?”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운영중단 권고 철회 말씀이십니까?”
“그래.”
카이야스는 황후와 함께 알현실로 향하던 와중이었다.
즉 아몬과 황제가 나눈 대화 역시 모두 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황태자가 말했다.
“우선 권고를 철회하고 지켜보는 게 최선이겠지요. 드레이크 일족의 청년이 말한 것처럼 실적 역시 확실하고, 학생이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면 철회가 응당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네 생각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황태자가 말했다.
“한데 정말로 아버님께선 드레이크 일족에게 시달린 게 많았나 봅니다. 늘 인자하신 아버님께서 저토록 광분하실 줄은…….”
“말도 말거라. 나도 예전에 벨리알 드레이크, 그 인간을 고작 두어 번 봤는데도 학을 뗄 지경이니까.”
벨리알 드레이크.
아몬의 할아버지이며 산드리오가 황태자일 때 무수한 마찰을 일으킨 인물!
“그 인간이 죽었을 때 산드리오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음…….”
황당함 섞인 침음을 흘린 황태자가 빙그레 웃었다.
“듣자하니 드레이크 일족의 그 사람, 꽤 제대로 된 인물 같더군요.”
“응?”
황태자가 씩 웃었다.
“그렇다면 그 악연은 제 대에서 확실하게 끊어 보이겠습니다.”
“뭐?”
* * *
아카데미로 돌아온 아몬은 앓아 누워있었다.
‘다 끝났구나.’
피떡이 된 황제!
냉담하게 돌아갈 것을 요구한 황후!
‘그런 상황에서 운영중단 권고의 철회? 웃기지 말라 그래.’
이제 남은 길은 망한 아카데미에서 손가락 빨며 말라 죽는 것뿐이었다.
“흑흑.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빨며 훌쩍거리는 와중이었다.
“선생님, 계세요?”
“……!”
학생! 레이몬드의 목소리!
얼른 이불을 박차고 나온 아몬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 들어오렴.”
이윽고 안으로 들어온 레이몬드가 말했다.
“선생님, 오늘 황제 폐하를 알현한 이유가 아카데미의 재정 때문이었나요?”
“응? 아아, 그렇단다.”
다 들었으니 숨길 수도 없고 숨길 이유도 없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학생 앞이니 애써 괜찮다는 듯 웃은 아몬이 말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음. 그래요? 그런데 선생님.”
“응?”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좋은 생각?
라인벨트 영감이랑 산나물이나 캐 먹던 녀석이, 그것도 어린 아이가 자금 문제를 어찌 해결한다는 말인가!
때문에 아몬은 별 기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들어 볼까?”
아몬이 푸근하게 웃자 레이몬드가 웬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아몬의 푸근한 웃음은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그건 레이몬드 본인을 본떠 손수 만든 인형들이었다.
그것을 죽 늘어놓은 레이몬드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전시회를 여는 거예요!”
“…….”
“지금 아카데미에 빈 건물이 많잖아요? 그 건물 중 하나를 통째로 전시회장으로 쓰는 거예요!”
“…….”
“제 인형이라면 관람객들을 잔뜩 끌어 모을 수 있을 거라고요!”
곧이어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설명하는 레이몬드를 묵묵히 바라보던 아몬이 스르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고.
아몬의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레이몬드가 외쳤다.
“선생님! 아직 감동하시긴 일러요! 그리고 전시회를 바탕으로 절 본떠 만든 인형을 상품을 판매하면……!”
레이몬드의 거창한 계획에 아몬은 확신했다.
‘이 아카데미, 진짜 망했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