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3)
아카데미가 망했다 33화
아몬은 며칠 전 일을 회상했다.
‘선생님, 제 계획이 어때요?’
‘네 인형으로 건물 하나를 꽉 채우겠다는 완벽한 계획 말이니?’
‘네.’
아몬은 반쯤 체념한 채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것 같구나.’
괜찮긴 개뿔이 괜찮을까.
그러나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학생의 면전에 대고 ‘개똥같은 헛소리 집어치우고 썩 꺼져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래, 해 보고 싶다면 해 보렴. 하지만 이것 하나는 명심해야 한다.’
‘네? 뭘요?’
‘너도 알겠지만, 우리 아카데미의 재정은 위태롭단다. 재료를 준비해 줄 순 없어.’
본심은 ‘그딴 데 쓸 돈은 없다’였지만, 레이몬드는 별걸 다 걱정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긴, 산나물 캐 먹으면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레이몬드다.
자급자족에는 도가 튼 수준이리라.
‘그리고 학생에겐 학생의 본분이 있단다. 그 일을 준비하면서도 배움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그 약속만 해 준다면 하고 싶은 만큼 해 보렴.’
‘네! 수업도 열심히 들을게요!’
그렇게 시작된 레이몬드의 전시회 계획!
물론 아몬 입장에선 돈도 들지 않고, 레이몬드도 수업을 열심히 들으니 교육자로서 할 일도 다한 것이다.
‘물론 빈 건물을 멋대로 빌려줬다고 학교장한테 엄청 혼났지만.’
가만 보면 아나르엘이 돈 문제 이외로는 상당히 엄격하단 말이지.
아무튼 현재.
아몬은 레이몬드가 빌리기로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겉으로는 딱히 바뀐 게 없는데.’
하지만 최근 수업을 받는 레이몬드의 다크서클은 날이 갈수록 진해지고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뭘 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음, 그럼 어디 한번 들어가 볼까.’
예전에는 주로 강당 및 실내 체육관으로 사용했다던 다용도실.
이내 그곳으로 들어간 아몬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허, 허억……!?”
레이몬드. 레이몬드. 레이몬드.
어딜 둘러봐도 사방팔방에 레이몬드가 있었다.
“크, 크허억……!”
천장, 벽, 바닥 할 것 없이 오직 레이몬드뿐!
레이몬드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눈! 저 창문에!’
수십, 수백에 달하는 레이몬드가 사방을 둘러싸고 자신을 지켜보는 공포스러운 광경!
머릿속을 좀먹는 듯한 광기에 아몬이 머리를 쥐어뜯는 와중이었다.
“선생님.”
“흐아아악!”
갑자기 옆에 서있던 레이몬드 인형이 말을 걸자 아몬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만약 아르마 산맥에서 단련된 아몬이 아니었다면 누군들 한바탕 거하게 지리고 말았으리라!
“왜, 왜 그러세요?”
“어, 어어……?”
놀란 사슴마냥 굳어 있던 아몬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 인형이 아닌 ‘진짜 레이몬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레, 레이몬드냐?”
“갑자기 왜 그러세요? 소리를 지르시곤.”
“어, 음…….”
이 꼴을 봤는데 어떻게 소리를 안 지르겠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아몬은 애써 그 물음을 삼켰다.
다크서클이 거의 턱까지 내려온 채 퀭한 얼굴로 서 있는 레이몬드를 보니 그간 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헛고생도 고생은 고생이지.’
헛기침을 하며 놀란 가슴을 다독인 아몬이 말했다.
“음, 그래. 하는 일은 잘되고?”
“네, 이제 막 끝났어요. 이제 개장만 하면 돼요.”
“개장…….”
정말로 이 끔찍한 풍경을 아무르 시민들에게 공개할 작정인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 와중, 레이몬드가 웬 천 뭉치 같은 것을 내밀었다.
“맞다, 개장 전에 이것만 걸면 되겠네요.”
“이건 현수막?”
“네. 제 수제 인형 전시회가 열린다는 걸 알려야죠. 제 작품이 아무리 대단해도 사람들이 모르면 올 수가 없잖아요.”
“으, 응.”
거의 수백 점에 달하는 인형을 며칠 사이에 만들고, 그 사이에 짬을 내서 현수막까지 만들었다고?
‘손재주도 소드마스터인 건가.’
사실 풍경이 기괴해서 그렇지 인형 하나하나의 퀄리티는 굉장히 좋았다.
예전에 동생이 어릴 때 생일 선물로 인형을 사 주러 도시에 나갔을 때 눈여겨봤던 인형 따위보다 훨씬 좋은 품질이었다.
‘인형 가격을 보고 금세 포기했지만 말이지.’
아무튼 현수막을 끌어안고 있던 레이몬드가 돌연 휘청거리더니 주저앉았다.
“레이몬드! 갑자기 왜 그러니!”
“으, 으…… 며칠 밤 새워 인형을 만들었더니 너무 피곤해서.”
“뭐?”
눈을 끔뻑거리며 중얼대던 레이몬드가 말했다.
“선생님.”
“으, 응?”
“그, 그럼 이만 좀 잘게요?”
“뭐? 잔다고?”
“뒷일은, 부탁…….”
그리 말한 후 풀썩 쓰러져 잠들어 버린 레이몬드!
그런 녀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몬은 직감했다.
‘잠깐. 설마.’
녀석이 쓰러지며 떠넘기듯 안겨 준 현수막을 본 아몬이 중얼거렸다.
“내가 전시회를 맡아야 하는 거야……?”
* * *
한시가 촉박한 긴급 상황!
아몬은 믿음직스러운 동료 교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반응이 하나같이 가관이었다.
‘그래서요? 알아서 하시죠?’
멋대로 빈 건물을 빌려준 것 때문인지 아나르엘은 단단히 삐져 있었다.
치솟은 귀의 각도를 감안하면, 화가 풀리려면 꼬박 이틀은 더 지나야 할 수준!
그렇다면 다음 지원군, 브레슬은?
‘선생님이 제 식료 발주서를 찢었다죠? 그런데 도와 달라? 염치도 없군요.’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은 브레슬이 감히 염치를 논하자 아몬은 순간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한시가 촉박한 상황이었기에 당사자와 ‘사흘간 저녁식사 압수’로 원만한 합의를 이뤘다.
그리고 마리온의 경우.
‘거어억! 취한다! 도와 달라고? 그럼, 그럼! 도와줘야지! 낄껠겔!’
‘아닙니다, 그냥 술이나 계속 처드십쇼.’
애초에 마리온에겐 기대도 안했다!
‘그럼 슬로스는……?’
슬로스는 ‘아몬 덕분에’ 가족 간의 오해가 풀렸으니 흔쾌히 도와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나 지금 바쁜데? 집에 급하게 다녀와야 해.’
애초에 기대를 하니 배신을 당하는 거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어김없는 슬로스의 배신에 아몬은 오히려 초연해졌다.
‘하하, 예. 얼른 꺼ㅈ. 조심히 다녀오십쇼.’
‘응.’
슬로스도 떠나고, 결국 도와줄 만한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다.
‘라인벨트 영감이라면 당연히 도와주겠지.’
다름 아닌 손자의 전시회가 아닌가.
그런데도 안 도와주면 양심에 털이 나도 보통 덥수룩하게 난 게 아니리라.
그리 생각하며 라인벨트와 함께 정문에 현수막을 걸며 이 사실을 알렸고, 그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아무리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전시회라곤 해도 도움이 필요할 만큼 사람이 올까?’
‘아.’
듣고 보니 그랬다.
하루 종일 열 명이나 오면 많이 온 게 아닐까?
‘오히려 낙담한 레이몬드를 어찌 달래야 할지가 관건일 듯하네.’
‘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논리로 압도당해 버렸다.
아무튼 잠시 후, 아몬은 급조된 전시관 안에 임시로 마련된 탁자 앞에 앉은 채.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뭐, 그건 그렇고.’
아몬이 주변을 둘러봤다.
수백에 달하는 레이몬드가 자신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란!
‘저 중에 하나가 갑자기 움직이기라도 하면 냅다 도망칠지도…….’
분명 잘 만든 인형인 건 확실한데, 불쾌한 골짜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공포로 부르르 떤 아몬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뭐, 아무튼 꼴을 보아하니 손님은 절대 안 올 것 같군. 레이몬드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나 생각하자.’
* * *
도시 아무르!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몰락으로 빛이 조금 바랬지만, 여러 귀족 자제들이 머무르는 도시였기에 상업과 유흥의 발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말했듯 아카데미의 몰락으로 조금 쇠퇴하긴 했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르는 여전히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상업 도시였다.
그렇기에 이따금 방문하는 귀족들의 사교모임!
오늘 아무르를 찾아온 사교모임은 예술을 사랑하는 귀족들로, 예술을 찾아서 헤매는 목마른 사슴들이었다.
그리고 아무르를 찾아온 그들은 난데없는 냇가를 발견했다.
“호오,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전시회를 연다는군요.”
“비록 지금은 흔들리고 있다지만,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명문 중의 명문. 그 저력은 무시할 수 없죠.”
“껄껄껄! 그럼 우리가 꼭 찾아가야겠군요!”
수십에 달하는 예술을 사랑하는 귀족들이 종자와 하인들을 데리고 아모니스 아카데미로 진격했다.
“응? 저 행렬은 뭐지?”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전시회를 연다는데?”
“호오, 저렇게 행렬이 있는 걸 보니 제법 대단한 전시회인가 본데?”
“우리도 가 볼까?”
제 2군이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향해 진격했다.
* * *
느닷없는 인파에 아몬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줄을 서 주십쇼!!”
“껄껄껄! 알롱, 얼른 따라오거라!”
“예! 주인 어르신!”
“줄 좀! 서 주십시오오오!!”
악다구니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귀족들은 아랑곳 않고 전시관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래, 만약 들어가기만 하는 거라면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규모상 일개 건물 하나하나의 크기가 상당했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으아아악! 저 눈! 저 창문에!”
“나,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들어가는 사람들마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도망쳐 나오고 있었다.
똑같은 얼굴 수백 개가 인형 특유의 공허한 눈동자와 이질적인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면 어느 누군들 저러지 않겠는가!
때문에 들어오려는 사람, 나오려는 사람이 뒤엉켜 한바탕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소란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궁금증이 치미는 모양이었다.
“들어가는 사람들마다 난리도 아닌데?”
“대체 무슨 작품이길래?”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제, 제발 줄 좀 서 주…….”
“하하하! 이래서 예술도 모르는 것들이란! 아무리 숭한 작품도 그 안에 숨은 의미라는 것이 있는 법일진대!”
호탕하게 웃으며 들어간 귀족은 곧이어 양팔을 벌리고 뛰쳐나왔다.
“으아악! 여긴 지옥이야!”
그런 소란이 연신 반복되고 있으니 아몬은 인원의 통제를 포기했다.
‘그냥 가만히 있자.’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 미친놈들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긴 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만 떠나면 입소문이 퍼져서 더 이상 올 사람은 없겠지. 그래, 오늘만 참자.’
아몬이 흐뭇하게 웃었다.
편하게 마음먹으니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 * *
아무르의 한 주점.
사색이 된 손님 하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어, 어서 오십…….”
“수, 술! 술 가져오게! 어서!”
손님이 구르듯 자리에 앉자 주인이 얼른 술을 내주고.
허겁지겁 술을 들이키는 손님을 기다리던 사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님,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쿨럭! 일? 그래, 있었소. 술로 잊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광경을 보았소.”
“음? 대체 무슨.”
손님은 술잔을 기울이며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사장은 그 이야기를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소문을 들으려면 주점으로 가라.
즉 주점에는 온갖 소문이 모이고, 모인 소문은 주점에서 퍼진다는 뜻이다.
“호오, 그런 게 있었군요.”
사장이 눈을 반짝였다.
* * *
다음 날 아침.
라인벨트가 눈을 마구 비볐다.
‘뭐지?’
라인벨트의 업무인 ‘정문 관리’는 한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카데미를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 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이게 웬…….’
정문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수백, 수천의 군중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라인벨트를 발견한 누군가가 외쳤다.
“앗! 사람이 나왔다!”
“전시관은 언제 개장합니까!”
“얼른 문을 열어 주세요!”
고함을 꽥꽥 질러대는 군중을 본 라인벨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들 모두가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