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5)
아카데미가 망했다 35화
어두컴컴한 집무실.
아나르엘은 깍지 낀 손을 탁자 위에 올린 채 진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때가 왔군요.”
운영중단 권고가 철회되었다는 말은 드디어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공식적으로 부활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물론 자금의 융통이 원활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학생과 교사 수 등에선 변화가 없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후후후, 좋아요. 드디어 때가 됐군요.”
강조하려는 듯 재차 중얼거린 아나르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사람은 생각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필사적인 정신승리일지라도 말이다.
‘그래, 그냥 직장이 살아난 거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면 이건 악재가 아니라 호재 중의 호재가 아니겠는가.
‘비록 여전히 임원진과 동료 교사들은 무능하고, 직장이 처한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지만, 직장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는 좋은 소식이 맞지.’
싱글벙글 웃던 아몬이 중얼거렸다.
“……맞나?”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음, 근데 아까부터 웬 오한이……?’
영문 모를 서늘함에 아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단순히 피곤이 쌓여 생긴 피로로 치부한 아몬이 쌓여 있는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담당 과목인 역사학에 필요한 논문이었다.
‘우선 오늘 수업은 잘 끝냈고, 내일부터 필요한 내용이 어디 보자.’
논문 속에서 차근차근 수업 내용을 추려 내던 아몬이 문득 피식 웃었다.
“평화롭다.”
아카데미에 임용된 지 벌써 몇 개월이나 흘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곳에 온 지 반년쯤 되는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짧다면 짧은 시간은 오롯이 느껴지지 않았다.
‘체감상 몇 년은 족히 지난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보라!
지금은 당장 내일 있을 수업을 위해 논문을 정리하고 있다!
자신이 꿈꾸던 교사의 생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학생들도 하나같이 말 잘 듣고, 배우는 것도 열심이고, 이 차분한 평화가 너무 행복하군.’
동료 교사들이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일상이라면 그들과는 그렇게 깊게 엮일 일이 없었다.
자신의 과목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나 임시 수업을 빌미로 그들과 함께 수업에 들어갔지, 지금은 당당하게 자신의 과목을 맡은 역사학 교사가 아닌가!
“후후후.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겠는걸?”
소소한 행복!
최근 들어 심해진 불면증 때문에 즐겨 마시는 캐모마일 차를 입가로 가져간 순간이었다.
“아몬 선생님! 안에 계시죠!”
느닷없는 학교장, 아나르엘의 목소리에 아몬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곧 마음을 추스른 아몬이 중얼거렸다.
“별일 아니겠지.”
정서적 진정에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차를 꿀꺽 삼킨 아몬이 입을 열었다.
“예, 들어오십시오.”
“네, 네! 지금 안 바쁘시죠?”
아몬이 두툼하게 쌓인 논문을 눈짓했다.
“예에. 보시다시피 ‘전혀’ 안 바쁘죠. 그럼요.”
“다행이네요! 우선 긴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긴히 말씀.
아몬이 심적 완화에 좋은 캐모마일 차를 잔에 따르며 웃었다.
“하하, 그렇군요. 무슨 용건이시죠?”
“어머나, 차 고마워요.”
“손대지 마세요. 제 겁니다.”
“아, 네.”
헛기침을 한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아몬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아카데미에 내려진 운영중단 권고가 철회됐어요.”
“그럼요, 알죠.”
그 말대로 운영중단 권고가 철회된 지 일주일쯤 지난 시점.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운영금 때문에 마음 졸일 이유가 없어요. 운영금이 필요하다면, 합당한 내용이라면 황실이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죠.”
“그렇겠죠.”
그런 이유로 최근에는 부학교장, 브레슬이 살판난 걸로 알고 있다.
‘초라한 식당으로 학생들의 배를 만족스럽게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장 최상급의 식재료와 최정상급 셰프를 고용해서…….’
물론 그 의견의 절반 이상이 기각됐지만, 다소 초라했던 식당은 개선 중에 있었다.
“아무튼 그런 시점에서, 우리 아카데미는 현 상황에 안주하기만 해선 안 된다는 게 학교장인 저의 판단입니다.”
“호오, 그 말씀은…….”
아몬이 눈을 반짝였다.
“학교장님 말씀대로 지금 우리 아카데미는 이름만 아카데미죠. 학생 셋, 교사 셋…….”
중얼거리던 아몬이 손뼉을 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생을 모집하고 신규 교사를 임용하려는 거군요!”
그 합리적인 발언에 아나르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뇨! 아카데미 교류전을 시작할 거예요!”
잘못 들었나? 아몬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이윽고 귀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쯤, 이쯤하면 됐다는 마음에 귀에서 손을 뗀 아몬이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카데미 교류전이요!”
“……어, 음, 예.”
아카데미 교류전이라면 아몬도 익히 알고 있다.
아카데미와 학생의 경쟁심을 적극 이용하려는 제도로, 황실의 주관하에 각 아카데미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웅을 겨루는 일종의 대회였다!
즉 황실이 직접적으로 관리 감독을 실시하기에 교류전에서 승리한 아카데미는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아무튼, 아몬이 진정 효과가 있는 캐모마일 차를 꿀꺽꿀꺽 삼킨 후 말했다.
“학교장님.”
“네?”
“그 뜻은 이해하겠습니다. 운영중단 권고가 철회됐으니 우리 아카데미는 공식적으로 부활한 상태. 즉, 아카데미 교류전을 시행할 자격이 충분하죠.”
“맞아요!”
발랄하게 대답하는 아나르엘의 귀를 잡아 뜯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아몬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학교장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교류전은 시기상조입니다. 아무리 허접한, 규모가 조그만 아카데미라도 100명은 훌쩍 넘을 겁니다. 반면 우리 아카데미 학생은 고작 셋입니다. 교사도 셋이고요. 무슨 과외 교육도 아닌데 말이죠.”
“음.”
“게다가 특정 종목만 참가가 가능했던 경진대회와 달리 교류전은 종목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잖아요? 검술, 마법, 그리고 일반 일반 학문 중에서 각 아카데미가 합의하에 정하는 것.”
“그렇죠.”
자신의 말을 아나르엘이 알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아몬이 웃으며 말했다.
“결국 모든 종목에 빠짐없이 참가해야 할 거고, 학생이 셋뿐인 우리 아카데미의 사정상 누군가는 두 개 이상의 시합을 치러야겠네요?”
“그렇겠네요.”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로 알아먹고 있는 거 맞나?
“학교장님.”
“네.”
“그러니까 교류전은 미루는 게 어떨까요?”
“이미 신청했는데요?”
아몬은 심신 안정에 효과적인 캐모마일 차를 주전자 채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전자가 텅 비었을 때.
빈 주전자로 아나르엘의 머리를 후려쳤다.
“끼야아악! 무, 무슨 짓!”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입니까!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요!? 대체 뭔 생각으로 교류전을 신청해요! 이 긴 귀는 도대체 어디다 쓸 겁니까? 사람 말이 안 들려요!? 예!?”
“히이익! 귀, 귀는 안 돼애…….”
“으, 으으으아아!”
결국 아몬은 오열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아카데미와의 교류전? 그래, 검술 종목은 그렇다 치자.
경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클로에도 있고, 창천검왕 라인벨트의 손자이자 제자인 소드 마스터 레이몬드도 있다.
아, 보리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다른 종목은? 마법? 우리 애들은 아직도 에테르와 마나의 상관관계도, 에테리우스와 물질계 장벽의 간섭 현상도 이해 못하는 상황이라고!’
사실 그건 드래곤도 고민할 내용들이다!
‘그리고 역사학?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은 책을 그대로 씹어 삼키고 소화시킨 것처럼 꿰고 있는 애들이 수두룩할 거야! 그리고 수학? 아예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즉 검술을 제외한 나머지 시합은 몽땅 패배할 게 분명한 상황!
‘그렇다고 취소할 수도 없잖아!’
교류전은 황실이 주관한다.
즉 운영중단 권고가 철회된 지 이제 일주일 지난 시점에 교류전을 신청했다가 손바닥 뒤집듯 신청을 취소한다?
만약 아몬이 황제였다면 괘씸죄로 아카데미에 불을 질렀을 것이다.
“으, 으으으…….”
눈을 부라리던 아몬이 아나르엘을 홱 쏘아봤다.
“이, 일단 들어나 보죠. 대체 어느 아카데미에 교류전을 신청했습니까?”
“베스트릭 아카데미요.”
“억!”
아몬은 기절하고 말았다.
베스트릭 아카데미.
대륙 최강, 최고를 자랑하는 제국 최대의 아카데미였다.
* * *
소식을 전달받은 교사 일동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몬이야 단연 충격을 금치 못하고 앓아누운 것이고, 마리온은 술병이 나서 앓아누운 것이다.
슬로스는 그냥 누워 있는 거다.
아무튼 끙끙 앓던 아몬이 중얼거렸다.
“교류전이라니…… 우리 아카데미가 교류전이라니…….”
훌쩍거리는 아몬의 목소리에 마리온이 술 냄새 나는 입을 열었다.
“아몬, 너무 걱정하지 말게.”
“지금 걱정 안 하게 생겼습니까?”
“어허, 일단 들어 봐. 자네 말대로 다소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학교장님이 교류전을 실시하려는 의도 자체는 이해가 가네.”
“…….”
“운영중단 권고의 철회. 아카데미는 공식적으로 부활했지만, 자네 말대로 학생의 입학과 교사진의 임용…….”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린 마리온이 누워 있는 세 명의 교사들을 훑어봤다.
“이 꼴을 보고 누가 들어오려 하겠나?”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생 셋. 교사 셋.
아무리 운영이 재개됐다고 한들 어느 미친놈이 이곳의 문턱을 넘어오려 하겠는가?
“게다가 운영재개가 됐다 한들, 누가 그걸 알아줄까? 모르겠지. 진즉 망했던 아카데미 아니었어? 하고 넘기려 들겠지.”
“……….”
“하지만 교류전을 시행하면 아카데미의 부활을 제국 전역에 알릴 수 있을뿐더러, 만에 하나 교류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
아몬이 대답했다.
“입학하려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겠군요.”
“바로 그거지. 아직 명문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잊히지 않은 시점에서, 교류전에 승리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일세.”
“근데 만에 하나라는 말이 걸려도 너무 걸리는데요.”
“…….”
그렇다.
상대는 학생만 해도 수천, 교사만 해도 수백이 넘는 베스트릭 아카데미.
숫자도 숫자였지만, 질적인 면에서 아모니스 아카데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교사 하나하나가 어느 왕국으로 망명하더라도 고위 귀족 작위를 따낼 수 있을 정도이며, 졸업생 전원이 기사 및 마법사의 등용이 내정되는 수준!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닙니까?”
잠자코 듣고 있던 슬로스가 말했다.
“계란한테 실례 아냐?”
“미안하다, 계란아.”
한숨을 푹 내뱉은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학교장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가능한 서둘러 아카데미를 부활시키겠다는 생각이겠죠.”
“음, 그렇겠지?”
“게다가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황. 지금으로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음?”
느닷없이 긍정적으로 바뀐 아몬의 행동에 마리온과 슬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웬 의욕이래?”
“그러게 말일세.”
“아, 그게 말이죠.”
아몬이 퀭한 얼굴로 캐모마일 잎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말했다.
“잠깐 생각해 봤는데, 어차피 제가 고생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들이 고생하는 거지.”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