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7)
아카데미가 망했다 37화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 저렇게 어린 나이에 파이어스톰이라는 고난이도 마법진을 그렸다고? 그것도 즉석에서 저렇게 간단하게……?”
“말도 안 돼! 마탑의 중견 마법사들도 쉽게 그리지 못하는 마법진이라고!”
“그냥 저 마법진 하나만 달달 외운 거 아냐?”
그들의 술렁거림에 감독관이 싸늘한 얼굴로 그들을 노려봤다.
“그 말은 본인의 안목을 의심하는 것이오?”
“그, 그게 아니라…….”
“애초에 저 마법진만 외웠다면, 베스트릭 측의 마법진을 그리 쉬이 간파해 낼 수 없었을 터. 학생의 노력과 성과를 쉬이 여기지 말고, 섣부른 발언은 삼가시오.”
“……죄, 죄송합니다.”
호되게 혼나는 베스트릭 측을 본 아몬이 피식 웃었다.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생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벼락치기로 외웠으니까.’
그러나 감독관의 말대로 달달 외우기만 하더라도 오늘처럼 성과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
게다가 모든 일에는 지름길이 있기 마련이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요즘 네가 많이 피곤해하는 것 같더라고. 마시렴.’
‘그러니까 이게 뭐냐니까요.’
펄펄 끓는 시커먼 탕약을 본 보리스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아몬은 보리스의 물음에 미소 지으며 답했다.
‘브레슬 부학교장님 부족의 비전 기법으로 만든 거란다.’
‘……효과가 뭔데요?’
‘우선 이름부터 들으렴. 잠 못 이루는 약탕.’
‘……네?’
‘그게 이름이야. 참 직관적이지?’
‘아, 안 먹을래요.’
‘아냐. 먹어야 해.’
온몸으로 거부를 표현하던 보리스는 결국 아몬이 ‘어르고 달랜’ 덕분에 브레슬 특제 약탕을 복용하고 말았다.
‘크, 크으으…… 어, 엄청 졸렸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다니…….’
‘성능 확실하구만.’
결국 보리스는 잠도 못 자고 마법 이론서와 온갖 논문을 섭렵하게 되었으나, 사소하고 앙증맞은 문제가 있었다.
잠도 안 자고 읽는 건 읽는 거지만 외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아몬은 아나르엘과 상의 끝에 해결책을 강구해 낼 수 있었다.
‘보리스, 이 스크롤을 펼쳐 보렴.’
‘이, 이건 또 뭔데요?’
‘마법 스크롤이란다.’
‘그러니까 무슨 마법이냐고요.’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단다. 안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하는 마법. 어떠냐, 참 직관적이지?’
‘…….’
이번에도 보리스는 맹렬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아몬의 ‘회유와 애원’으로 인해 스크롤을 찢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선생님, 제 다크서클이 가슴까지 내려왔어요.’
‘음…….’
‘이거 나중에 없앨 수 있겠죠?’
‘으음…… 그나저나 논문 내용은 잘 기억하고 있니?’
‘거의 다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그보다 다크서클 이거 지울 수 있겠죠?’
아몬은 대답하지 않았고, 보리스의 얼굴엔 분노가 그득하게 차올랐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노력의 결과가 이렇게 잘 나오고 있는데!
‘보리스! 난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윽고 보리스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감독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첫 번째 시합!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보리스 학생의 승리!”
그 외침에 베스트릭 아카데미 측에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간단하게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밟아 주려고 이곳까지 친히 찾아왔는데 첫 번째 시합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아모니스의 승리를 선고한 감독관이 보리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보리스, 자네의 이름은 똑똑히 기억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황실의 브레일링을 찾거라.”
“……네?”
감독관은 대답 대신 조그만 표식 하나를 건넨 후 자리로 돌아갔다.
때문에 멍하니 표식을 쥔 채 자리로 돌아온 보리스에게 아나르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어요, 보리스 학생.”
“아, 네…… 감사합니다.”
아나르엘은 학교장의 위엄에 걸맞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없이 펄럭거리는 귀를 보니 가볍게 1승을 따낸 것이 적잖이 기쁜 모양이었다.
“맞아. 그보다 축하해요.”
“네……?”
“그 표식은 황실 마법사 모집자의 증표. 졸업 후 취직처가 일찌감치 정해졌네요?”
“……!”
아나르엘의 말에 보리스는 무심코 감독관을 홱 바라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감독관, 황실 마법사 육성관 브레일링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화, 황실 마법사…… 제, 제가 정말로…….”
그 충격적인 사실에 보리스는 표식을 양손으로 꽉 거머쥔 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평민 출신으로 황실에 입성한다? 꿈꾸는 것조차 황송한 영예가 아니던가.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보리스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은 아몬이 말했다.
“어떠냐? 선생님 말이 맞지?”
“……네, 네! 선생님.”
아몬이 구워삶은 대로 보리스가 부와 명예를 거머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리고 보리스를 바라보는 아몬의 미소는 언뜻 보기엔 푸근했지만, 유의 깊게 살펴보면 제법 썩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누구는 젊은 나이에 이 더러운 아카데미에서 썩고 있는데, 키우는 제자는 어린 나이에 황실 마법사로 채용이 내정되다니.
‘보리스 이놈!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로구나!’
학생을 향한 질투!
그러나 아몬은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진심을 가장하며 보리스를 축하해 줬다.
“축하한다! 보리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중에 성공하거든 이 선생님은 절대 잊지 말아다오!”
“네! 아론 선생님!”
“벌써 선생님 이름도 잊은 거니?”
한편, 베스트릭의 학교장의 벤자민은 다른 교사들과 함께 심각한 얼굴로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보리스? 생전 처음 듣는 놈인데 저렇게 마법 이론이 뛰어날 줄은…….”
“그,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벤자민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로군…… 그럼 다른 학생들은? 다른 시합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게 좋겠나?”
그 물음에 교사 중 하나가 아모니스 측을 눈짓하며 말했다.
“보리스라는 놈 말고, 다른 남학생…… 저 녀석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 어떤 녀석이지?”
교사가 침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레이몬드, 얼마 전에 있었던 황제폐하 배 경진대회의 검술부문 우승자입니다.”
마침 이름을 지목당한 레이몬드가 하품을 하며 턱을 긁적거리고,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베스트릭 측이 도로 회의에 들어갔다.
“……수준은 어떻게 되지?”
“준우승자가 어린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명성이 자자한 라다 가문의 엑스트입니다. 한데 그런 엑스트를 상대로 승리한 걸 보면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이상의 검사라는 뜻이겠지요.”
“……소드 마스터는 아니겠지.”
“나이를 감안하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엔 오르지 못했을 확률이 높지요.”
아무튼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우리 측 학생 중 검술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녀석은?”
“검술이 가장 뛰어난 녀석은 소드 마스터에 오른 학생입니다.”
“아아, 그 장래가 유망한 녀석 말이군.”
고개를 끄덕인 벤자민이 말했다.
“그럼 그 학생이 레이몬드를 맡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레이몬드의 존재를 미리 알아 둬서 다행이라는 듯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린 벤자민이 아나르엘을 향해 다가갔다.
“그럼 다음 시합의 종목은 무엇으로 하겠나?”
벤자민은 보나마나 검술 시합을 하리라 예상했다.
1승을 따냈다면 기세를 몰아 다음 시합도 이기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아나르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역사학으로 하죠.”
“……으, 응? 검술이 아니라?”
“네, 역사학이요.”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린 벤자민이 혀를 찼다.
‘둘째 시합도 이기기 위해 승리 확률이 높은 카드를 내놓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하여간 도무지 속내를 모를 엘프라니까.’
오히려 베스트릭도 역사학 시합을 바라고 있었다.
‘후후후…… 이쪽의 역사학 시합에 참가할 학생은 대단히 뛰어난 학생이다.’
수많은 공식 토론 대회 입상자!
우승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고, 웅변대회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졸업 후 수많은 왕국에서 정치가 및 외교관으로 임용을 제안받았다.
‘그렇기에 역사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을 수밖에 없지.’
결국 이번 시합은 베스트릭 측의 필승 카드인 셈이었다.
이윽고 시합이 정해지자 감독관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본인은 황실 학자인 칼로리스요. 본 시합은 역사와 관련된 논제로 토론하여 이치에 맞는 주장을 펼친 쪽이 승리하게 되고, 승패의 판단은 본 감독관이 결정할 것이오. 그렇다면 각 아카데미의 학생은 앞으로.”
그 말이 떨어지자 베스트릭 측의 학생이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왔다.
수많은 토론 대회의 입상자이며, 말하는 것 하나만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학생!
‘후후후, 이 교류전에서 이기면 학교장님께서 황실에 추천서를 써 준다고 했었지?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다 망해 가는 아카데미의 학생을 상대로 토론에서 승리한다?
학교장이 추천서를 써 줄 빌미를 애써 찾아낸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간단한 일 아니던가!
때문에 베스트릭 측의 학생, 마니 가문의 존은 어떤 논제를 제시할지를 궁리했다.
‘상대를 확실하게 끌어내리면서 황실 감독관의 눈에 제대로 들 수 있는 논제가 좋겠지? 그럼 블라디미어 공국과 에버글로 공작의 정치적 갈등을 논제로 삼는 게…….’
생각에 잠겨 있던 존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모니스 측의 학생이 앞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보나마나 아까 그 여학생일 테지?’
레이몬드는 검술 시합에 참가할 테니 남은 건 여학생 하나뿐.
그렇기에 고개를 들어 올린 존의 시야에 들어온 인물!
레이몬드였다.
“쿨럭!?”
존이 기침을 토하고.
“뭐, 뭣!?”
베스트릭 측의 교사진은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
“어, 어째서 레이몬드가?”
“검술 시합에 참가하는 거 아니었어!?”
교사진이 품은 의문 그대로, 기침을 토한 존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어, 어어? 왜, 왜 네가…….”
그 물음에 레이몬드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입을 열었다.
“뭐? 네가?”
싸늘한 그 한마디에 존의 몸이 흠칫 굳었다.
존은 전형적인 학자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하는,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학생이다!
그런데 ‘소드 마스터’가 짜증과 적의를 담아 한마디를 내뱉은 순간!
오싹-!
사나운 맹수가 눈앞에서 으르렁대고 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위압감!
존이 조용히 눈동자를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아, 아뇨. 죄송합니다.”
금세 주눅 들어 웅얼거리는 그를 본 레이몬드가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그래, 그래. 우리 잘해 보자.”
“으, 응.”
“응?”
“네, 넵.”
두 학생이 ‘사이좋게 악수’를 하자 감독관도 흐뭇하다는 듯 웃었다.
“허허허, 좋군. 그럼 슬슬 두 번째 시합을 시작하겠다. 그럼 어느 학생이 먼저 논제를 제시하겠는가?”
그러나 찾아온 것은 침묵.
감독관이 두 학생을 번갈아 바라봤다.
“응? 어느 학생이 먼저 논제를 제시하겠나?”
“…….”
재차 물어봤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
두 학생 중 존은 입을 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레이몬드가 존의 눈앞에서 차가운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덜덜덜덜-!
학자도 아닌, 기껏해야 ‘학자 지망 나부랭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사납고 모진 소드 마스터의 시선!
그렇기에 존이 감히 그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만 떨어트리고, 이어지는 정적에 감독관이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레이몬드가 손을 치켜들었다.
“제가 먼저 제시하겠습니다.”
아몬이 레이몬드에게 시킨 대로, 이 며칠 동안 역사서를 대충 읽었기에 입 밖으로 낼 만한 논제가 드디어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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