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8)
아카데미가 망했다 38화
간단하게 역사서를 훑은 것으로 내뱉을 만한 간단한 논제!
레이몬드가 말을 이었다.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이 낳은 의의는?”
레이몬드의 짤막한 물음에 감독관을 비롯해 토론을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에 허탈함이 떠올랐다.
‘무슨…….’
‘뭐 저런 간단한…….’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
토론회의 논제로 삼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저 ‘이런 사례가 있었고 결과가 이러했다’는 것을 말하는, 깊게 파고들 여지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역사의 한 사례!
즉 존이 ‘만나니 후작가는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고, 황권을 강화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순간 토론은 끝난다!
거기서 더 이상 파고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는 아몬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후, 하지만 과연 존이 저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까?’
질문자가 다름 아닌 소드 마스터다.
그 소드 마스터가 눈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위압감을 존에게 집중시키고 있는데, 태연자약하게 할 말을 내뱉을 수 있다?
‘그럼 그게 학자 지망 학생이겠어? 진즉 등단해서 내로라하는 학자 노릇을 해 먹고 있겠지.’
존이 아무리 정치, 외교, 학자로서의 재능이 뛰어나도 결국 일개 학생이다.
즉 상대가 누군들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담력은 모자랄 터!
레이몬드 앞에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는 존을 본 아몬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마음속으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베스트릭 아카데미! 두 번째 시합도 너희의 패배다!’
내심 광기에 젖은 웃음을 터뜨리는 와중이었다.
“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응?”
레이몬드의 시선을 피하던 존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어 똑바로 고개를 들어 레이몬드와 눈을 마주치더니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은 무용으로 돌아갔고, 그로 인해 귀족의 무분별한 세력 강화를 경계한 황실의 노력으로 인해 평민의 입지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그리하여 평민의 권리를 대표하는 호민관 제도의 도입으로 황실, 귀족, 호민관의 세 개 세력의 대립 구도의 시초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됐습니다.”
“……!”
“그러나 결국 호민관의 발족 역사를 감안하면 평민들이 황실을 지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기에,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은 황권의 강화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
힘 있는 목소리로 조리 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존!
그를 본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X됐다!’
사람은 언제나 공포에 무릎 꿇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존은 유망한 학생답게 눈앞의 공포를 극복하고 한걸음 내디딘 것이다!
‘게다가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이 낳은 의의를 완벽하게 설명했다! 저기서 뭐라 추가할 것도, 뺄 것도 없어!’
고작 며칠 역사서를 읽은 레이몬드의 한계라 할 수 있었다!
‘레이몬드, 저 멍청한 놈! 그러게 내가 역사서 좀 열심히 읽으라고 그렇게나 말했건만!
그렇게 말한 적 없다!
아무튼 존의 예리한 반격에 아몬이 전전긍긍하는 와중, 감독관도 더 이상 나올 의견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몬드를 힐끔 바라봤다.
“레이몬드 학생의 의견은?”
반박할 내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묻는 저 잔혹함이란!
“……없습니다.”
“음, 그렇군.”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감독관, 칼로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존 학생이 논제를 제시하게.”
아까 보리스와 마이어 때 그랬듯, 칼로리스는 존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존의 승리라 점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레이몬드가 내놓은 논제는 허접해도 너무 허접했다.
‘……졌다.’
아몬이 내심 패배를 직감하고 있을 때 존이 입을 열었다.
“현재 제국의 외곽, 에버글로 공작의 보스톤 영지와 블라디미어 대공국의 국경선이 접해 있는 와중. 최근 한 사건으로 인해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분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아몬이 경악했다.
‘진짜 졌다!’
혹시 레이몬드가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논제의 핵심을 찌르는 의견을 피력하진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품었건만, 존의 입에서 나온 논제는 아몬도 그 가닥을 잡기 힘든 내용이었다.
‘복잡한 내용이다. 정치적 요소가 몇 개는 얽혀 있다고.’
국경선, 난민, 국경선에 위치한 정치적 중립 지대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 에버글로 공작과 블라디미어 대공국의 실 지배자인 블라디미어 대공과의 오랜 갈등, 중립 지대의 유효 자원 등등…….
‘당장 생각나는 분쟁 요소만 해도 다섯 개는 족히 된다. 하지만 이외에도 몇 가지는 더 있을 텐데…….’
아몬조차 해당 논제에 관해선 존을 상대로 토론을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로는 ‘정보의 차이’ 때문이었다.
막대한 규모기에 수많은 최신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베스트릭 아카데미!
반면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빈말로라도 잘나간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들어오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접할 수 있는 역사라곤 케케묵은 역사책 안에 한정된 것들뿐. 반면 에버글로 공작과 블라디미어 대공국의 갈등은…….’
말하자면 ‘곧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 분쟁’이었다.
역사라면 역사지만, 굳이 딱 잡아떼 아니라면 아닌 내용.
그럼에도 이런 토론회에서 써먹기에는 딱 좋은 난제.
결국 역사책 몇 권 훑은 레이몬드로선 날고 기어도 타파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그래, 기왕 진 거 편하게 마음먹자.’
마음을 놓은 아몬이 푸근하게 웃은 순간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사건을 말하는 거죠?”
‘……응?’
“최근 한 사건이라 말하셨는데, 정치적 중립 지대에서 벌어진 정규군과 용병단의 전투를 말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대공국 호송대의 행방불명 사태?”
‘……어라?’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렇게 잘 알지? 저건 나도 생소한 사건인데……?’
갑자기 레이몬드가 달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돌연 ‘정확한 사건의 정의’를 요구하는 레이몬드의 말에 존이 당황한 듯 말했다.
“트, 특정 사건에 대해 토론하기 위함이니 어떤 사건도 괜찮습니다.”
“그래요?”
턱을 쓰다듬던 레이몬드가 말을 이었다.
“그럼 에버글로 공작의 보스톤 영지에 위치한 보스톤 산의 기현상으로 인해 공국과 벌어진 갈등에 관해 이야기해 보죠.”
“……예?”
존이 눈을 끔뻑거렸다.
저게 무슨 소리지?라고 되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곧이어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존이 감독관을 바라봤다.
“가, 감독관님! 보스톤 산의 기현상으로 벌어진 갈등 관계라는 건 금시초문입니다만…….”
당황 섞인 존의 물음에 감독관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재작년에 벌어진 사건 중 하나다.”
“……예?”
“사건 자체는 꽤 크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대공국과 에버글로 공작의 갈등이 심화됐지. 말하자면 훗날 벌어진 여러 사건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일세. 그러나…….”
문득 인상을 찡그린 감독관이 레이몬드를 바라봤다.
‘저 학생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지?’
양쪽 다 켕기는 게 다소 많은 사안이라 유야무야 묻혀 버린 사건이다.
때문에 제국의 고명한 역사학자들이나 들었을 법한 내용인데 레이몬드가 어찌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 차례는 벌써 시작했나?”
별안간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영감님, 오셨습니까?”
“허허, 오늘도 별 손님은 없을 듯하여 한번 와 봤네. 한데 듣기론 레이가 역사학 시합에 나갔다지?”
“예, 맞습니다. 영감님 손자가 큰일을 한번 치를 작정인가 봅니다.”
“끌끌끌, 저 애가 역사에 관해 뭘 알겠냐마는.”
아몬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노인을 본 감독관이 눈을 부릅떴다.
‘……어?’
눈을 몇 차례 비빈 감독관이 재차 노인을 바라보고서야 뒤늦게 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차, 창천검왕 라인벨트!? 그리고 레이몬드 학생이 라인벨트 님의 손자라고!?’
제국의 핵심 전력인 ‘제국 4대 기사’이며 그랜드소드 마스터.
거의 은거하다시피 하여 알려진 정보가 극히 적었지만, 그가 제국을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보가 부족하다곤 하지만, 거처 하나만큼은 완벽히 파악해 두었다고 생각했건만.
‘라, 라인벨트께서 어째서 이곳에……?’
의문이 치미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이 해소됐다.
레이몬드가 공작가와 대공국의 최초의 분쟁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이유!
‘그, 그야 당연히 알겠지! 라인벨트 님이 에버글로 공작가의 보스톤 산에 거주하고 계시니까! 게다가 레이몬드 학생이 언급한 보스톤 산의 기현상이 라인벨트 님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사건이라고!’
산나물을 캐던 라인벨트를 길 잃은 노인으로 착각하고 대공국의 귀족 자제 일행이 장난질을 쳤다가 개박살이 났던 사건!
그런 허접한 사건이 정치적 분쟁의 발단이라는 게 부끄러워 양쪽 다 유야무야 덮어 버린 것이다!
‘게, 게다가 상대가 다름 아닌 창천검왕 라인벨트 님이다. 은둔하시는 그분을 중심으로 사건을 키울 순 없었지. 그렇기에 갈등은 갈등으로 쳐도 발단은 덮어 버린 것이건만…….’
감독관이 라인벨트를 힐끔 바라봤다.
그 순간 둘의 눈이 마주치고.
오싹-!
전신을 찢어발기는 것 같은 살기에 감독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곧이어 감독관의 귓가를 파고드는 속삭임.
-내 손자가 괜한 사건을 들먹였군. 정말 미안하네만, 괜히 일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 조용히 넘어가 주지 않겠나?
‘…….’
-내 이렇게 부탁함세.
막대한 마나를 기반으로 공간을 넘어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예!
감독관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라인벨트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크, 크흠……!”
헛기침을 한 감독관이 매서운 얼굴로 존을 노려봤다.
“존 학생!”
“예, 옙!?”
“논제에 반박할 생각이 없는가!”
“예!? 자, 잠시 시간을…….”
“시간은 충분히 줬다! 논제에 관해 의견을 내놓을 수 없다면 결과는!”
감독관이 새파란 얼굴로 레이몬드를 가리키며 외쳤다.
“아모니스 측, 레이몬드 학생의 승리!”
느닷없는 승리 선언에 레이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레, 레이몬드 학생! 시합에 이긴 걸 축하하네! 그럼 본인은 이만!”
감독관이 허겁지겁 자리를 벗어나고, 느닷없는 승리에 아모니스 측도 황당한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 그러게요. 갑자기 무슨…….”
라인벨트와 레이몬드가 사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라인벨트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승리한 아모니스 측도 황당한데 베스트릭 쪽은 어련할까?
“감독관! 이게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제대로 된 기준도 없이 승리를 선언하다니, 이게 무슨……!”
그러나 감독관은 당당했다.
“이의가 있거든 차후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시오!”
“이, 이익……!”
결국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처사에 베스트릭 쪽은 약이 바짝 오르고 말았다.
“젠장…… 설마 아모니스 쪽도 감독관을 매수한 건가?”
베스트릭의 학교장, 벤자민이 알고 지내며 약불로 구워삶은 감독관인 제리코를 힐끔 바라봤다.
그러나 제리코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모니스 아카데미 따위한테 이런 굴욕을…….”
벤자민이 이를 부득 갈았다.
“하는 수 없군. 2승을 저쪽에 준 이상, 나머지 세 경기를 압도적으로 이기는 수밖에 없겠군.”
“맞습니다, 학교장님.”
“더 이상 저쪽에 계속 시합 선택권을 주면 안 됩니다.”
“맞소.”
이를 악문 벤자민이 아나르엘을 향해 다가갔다.
“이번엔 우리가 시합 선택권을 갖겠소!”
“……뭐, 그러세요.”
“좋소!”
벤자민이 감독관을 돌아보며 외쳤다.
“감독관! 다음 시합은 수학으로 하겠소!”
그 외침에 수학을 맡은 감독관이며, 베스트릭 측과 내통하고 있던 감독관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베스트릭 쪽에서도 수학에 조예가 깊은 학생이 걸어 나왔다!
‘……흥, 이번 경기는 압도적으로 이겨 주지.’
베스트릭 측의 학생은 이미 수학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학생이었다.
‘여러 난제를 풀고 몇 개의 논문도 발표한 나다.’
그렇기에 베스트릭 측의 학생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있을 때.
아모니스 측에서 나온 아몬이 감독관을 향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수학 시합은 기권하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