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39)
아카데미가 망했다 39화
“……어?”
“방금 뭐라고……?”
베스트릭의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진들과 감독관 모두가 얼빠진 얼굴로 아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 지금 뭐라고 했나? 기권이라고?”
당황에 찬 감독관의 물음에 아몬이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권이요.”
그 대답이 돌아온 순간 베스트릭의 학교장, 벤자민이 고함을 터뜨렸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
버럭 일갈한 그가 아모니스 측을 향해 다가오며 외쳤다.
“기권? 명예로운 아카데미의 교류전에서 기권이라니! 대체 무슨 헛소리냐!”
부들부들 떨며 분노하는 그를 본 아몬이 피식 웃었다.
“없는 걸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있는 기권 제도를 왜 쓰면 안 됩니까?”
“뭐, 뭣!?”
“애초에 시합에 참가할 우리 학생은 세 명입니다. 결국 두 학생이 두 시합에 참가하거나 학생 하나가 세 시합을 온전히 뛰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건 학생에게 무리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이…….”
“말하자면 원활한 시합을 위한 컨디션 조절이라는 겁니다.”
아몬이 이번에는 감독관을 보며 말했다.
“감독관님, 교류전에는 기권 제도가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기권을 하는 게 잘못된 겁니까?”
“그, 그건…….”
베스트릭 측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감독관, 제리코가 벤자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확실히 자네 말대로 있는 제도이긴 하다만, 황실이 직접 주관하는 교류전인 이상 기권한다는 것은 큰 불명예라네.”
“그렇군요. 그 점은 이해합니다만, 저는 명예보다 학생이 소중합니다. 학생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군요.”
“…….”
거짓말이다.
현재 아카데미에는 ‘수학’ 담당 교사가 없다.
즉 수학 시합에 참가할 학생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아몬은 학생들의 수학 수준을, 아니 수학 이전에 산수부터 조금 살펴봤지만 결과는 절망 그 자체였다!
‘얘들아! 사과가 다섯 개 있는데 보리스가 세 개를 먹었어! 그런데 레이몬드가 새로 사과 세 개를 따 오고, 너랑 레이몬드가 사과를 각기 하나씩 먹었는데 보리스가 또 두 개를 먹었어! 그럼 남은 사과는 몇 개일까?’
클로에가 대답했다.
‘혼자 사과를 다섯 개 먹은 보리스를 죽여요.’
보리스의 대답.
‘저 사과 별로 안 좋아해요.’
레이몬드.
‘세 개 남았어요.’
‘……어째서 세 개니?’
‘아니에요?’
‘…….’
기권밖에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가 살아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규 커리큘럼이 모두 되살아날 리가 없잖아.’
시합에 나서서 수치를 당하느니 ‘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최소한의 체면을 살리는 것이다!
‘난 역시 천재인가!’
그러나 시대는 언제나 천재에게 부당한 박해를 가하는 법!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모두와 제리코 감독관은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괜찮아. 악역은 익숙하니까.’
그때 아군 측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쓰레기다…….”
아군인 슬로스의 조용한 험담!
적들의 모함은 그렇다 쳐도 아군까지 자신을 욕하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때 마리온이 조용히 슬로스의 의견을 정정해 줬다.
“슬로스, 이미 다 이야기된 내용일세.”
“난 왜 못 들었지.”
“자네는 자느라 못 들었지…….”
“아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난 쓰레기가 아니야.’
아몬이 정신 승리를 하는 한편 베스트릭은 작전 회의에 돌입해 있었다.
“큰일이군. 저놈의 말본새를 보아하니…….”
“예, 놈들은 이미 앞선 두 시합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학생은 하나뿐이니, 남아 있는 두 시합 중 한 시합에서도 아마 기권을…….”
그 사실을 깨달은 베스트릭 측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리라 자신하며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남은 두 시합 중 하나를 기권한다면, 결국 실질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시합은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그럼 기권으로 두 시합을 이기고, 결국 한 시합에서만 제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인가?’
‘다 망해 가는 아카데미를 상대로 이 무슨 치욕인가…….’
두 시합을 기권으로 승리하고 나머지 한 시합을 승리하면 결과적으론 베스트릭 측의 승리였다.
하지만 ‘두 시합을 기권으로 승리’했다?
이것을 어떻게 승리했다고 표현하겠는가! 승리당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벤자민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아나르엘을 노려봤다.
‘젠장……! 또 내게 수치를 안겨 줄 셈인가?’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운영 중단 권고로 문을 닫아 텅 빈 승리를 안겨 줬을 때도 얼마나 수치스러웠는가?
그런데 교류전에서조차 이런 텅 빈 승리로 수치를 안겨다 줄 셈인가?
결국 분노한 벤자민이 고함을 질렀다.
“아나르엘 학교장!”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요?”
“다음 시합은 무슨 종목으로 할 거요? 다음 시합도 비겁하게 기권할 생각인가!”
그 고함에 아나르엘이 아몬을 붙잡고 속닥거렸다.
“어떡하죠? 눈치채 버렸는데요?”
“음…… 어쩔 수 없죠.”
두 번 연달은 기권으로 베스트릭 측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안겨 줄 셈이었건만 이렇게 간단히 속셈을 간파해 버리다니.
“뭐…… 그래도 큰 상관은 없죠.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음.”
침음을 흘린 아나르엘이 눈을 데룩 굴렸다.
“그런데 아몬 선생님.”
“네?”
“대충 듣긴 했는데요…… 그 왜, 클로에가 검술 시합에 나가는 거죠?”
남은 시합 두 개는 검술과 과학!
그중 과학은 기권하고 검술 시합에는 클로에가 출전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아나르엘은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
“결국 우리가 이기려면 3승을 챙겨야 하는 건데, 그럼 결국 레이몬드 학생을 검술 시합에 출전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는 소드 마스터잖아요?”
“음…….”
“필승 카드를 쓰지 않을 이유가…….”
“으음…….”
아나르엘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저도 처음에는 필승 카드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그래서 사실 상황을 보고 레이몬드를 출전시키려 했는데, 막상 패를 까 보니 저쪽 패가 좀 더 센 상황이더라고요.”
“……뭐라고요?”
아몬은 베스트릭 측의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소년 맞나?’
얼굴은 앳됐는데, 건장한 몸은 어지간한 청년이라 봐도 될 정도였다.
‘발육이 아주 좋은 놈이군.’
검술 시합에 참가할 것으로 보이는 학생이 은연중에 풍기는 기세를 감안하면, 녀석 역시 ‘소드 마스터’로 보였다.
‘레이몬드가 플러시쯤 되면 저쪽은 풀하우스는 되겠군.’
근소하게나마 저쪽의 실력이 조금 더 앞서는 상황.
물론 그 정도 차이라면 실전에서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저쪽의 ‘피지컬’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대체 몇 살인 거야? 덩치가 나보다 커 보이는데? 얼굴만 어리게 뜯어 고친 거 아니야?’
합리적 의심!
그렇기에 아몬은 레이몬드의 출전을 단념했다.
“그래도 만약 이게 진짜 실전이었다면…….”
“네?”
“레이몬드를 출전시켰을 겁니다.”
“……?”
“하지만 이건 실전이 아니라 시합이잖아요?”
아몬이 옆에 서 있는 클로에의 어깨를 툭 두드리며 말했다.
“클로에, 네 차례다.”
“네, 선생님.”
작게 숨을 몰아쉰 클로에가 머리칼을 쭉 쓸어 올리더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녀올게요.”
이윽고 검술 시합을 맡은 감독관이 앞으로 나왔다.
“양측의 학생, 앞으로. 상호간 예의.”
서로가 검을 가볍게 부딪친 후 한걸음씩 물러난 순간.
감독관이 손을 휘둘렀다.
“시작!”
감독관이 시합의 개시를 알렸으나 클로에와 베스트릭의 학생 둘 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중 베스트릭의 학생, 올리버는 눈살을 찌푸린 채 레이몬드 쪽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레이몬드, 너만이 유일한 적수라 생각했건만 이렇게 도망치다니.’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올리버가 고개를 돌렸다.
아모니스 측의 학생, 클로에.
키는 자신의 명치에 겨우 닿을 정도로 조그맣고, 가느다란 몸뚱이는 픽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런 꼬마가 내 상대라니…… 흥! 재미없군.’
게다가 풍겨 오는 기세를 감안하면 소드 익스퍼트는커녕 소드 유저에나 도달했을까?
소드 마스터에 도달한 자신의 상대로는 영…….
‘……하는 수 없지. 빨리 끝내야겠군. 그리고 레이몬드와의 재시합을 요구해야겠다.’
그리 생각한 올리버가 목검을 들어 올렸다.
“원망은 마라. 최대한 빨리 끝내 줄 테니.”
“…….”
“그럼 간다.”
올리버가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클로에를 향해 검을 휘두른 순간.
번쩍-!
돌연 터져 나온 섬광이 눈앞을 어지럽히더니 허벅지를 때렸다.
“……!?”
그 사실에 허벅지를 붙잡은 올리버가 눈을 부릅뜨고, 감독관이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클로에! 1점!”
그 외침에 올리버가 당혹감에 젖은 채 클로에를 바라보고.
어느새 클로에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한 채 검을 겨누고 있었다.
“제대로 해.”
“뭐……?”
곧이어 클로에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돼지 새끼가.”
“뭐, 뭣……!?”
“미안. 잘못 말했네. 천한 돼지 새끼가.”
“…….”
빠득 이를 악문 올리버가 눈을 부라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이 콩알만 한 계집애가 감히 날 능멸해?”
“돼지가 말을 하네?”
“죽여 주맛!”
고함을 내지른 올리버가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가 검을 휘두른 순간 막대한 바람이 일어나며 클로에를 향해 쇄도했다.
만약 맞는다면, 어디 하나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질 것이다.
그래, 맞는다면 말이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올리버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덧씌우는 것처럼 움직인 클로에의 신형이 올리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검을 쥔 클로에의 오른손이 흐릿해진 순간.
퍼버버벅-!
몇 차례 터져 나오는 파열음.
무릎, 명치, 옆구리, 턱 아래.
사정없이 꽂히는 연타의 충격에 올리버가 뒷걸음질 친 순간 감독관이 눈을 부릅뜬 채 손을 들어 올렸다.
“크, 클로에! 4점!”
클로에가 단숨에 5점을 따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아나르엘이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아몬 선생님!”
“왜요?”
“크, 클로에 학생의 검술이 저렇게 뛰어났나요? 실력이 좋다는 건 들었지만 저렇게 뛰어날 줄은…….”
그 물음에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립니까?”
“네?”
“경진 대회에서 클로에가 실질적으론 레이몬드를 이겼거든요? 대회 규칙 때문에 결과가 패배였던 것뿐이지.”
“엑.”
“그치, 레이몬드?”
“…….”
레이몬드의 침묵을 무시한 채 아몬이 말을 이었다.
“뭐, 물론 그땐 클로에가 자기 한계를 넘었던 거지만요.”
“그, 그래요?”
“하지만 최근엔 슬로스 선배님이 클로에한테 피드 가문의 검술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더군요. 전에 가르치던 건 가문의 비전이 빠진 반쪽짜리였고.”
가문과의 불화가 해결된 지금이라 슬로스도 더 이상 아낄 게 없었다!
“아무튼 클로에는 애초에 검술의 잠재력이 최상급이었습니다. 거기에 제대로 된 피드 가문의 검술까지 익힌다면, 결과는 보시다시피죠..”
“그, 그렇군요.”
“게다가.”
아몬이 턱으로 시합장을 가리켰다.
“상성도 문제입니다. 레이몬드의 스승인 창천검왕 어르신…….”
아몬이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레이몬드의 시합이 끝나 관심이 식었는지 라인벨트는 사라져 있었다.
“크흠, 영감님의 검술은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검. 그 때문에 기교가 굉장한 검술이지만, 그건 영감님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 굉장한 것뿐이죠. 그치, 레이몬드? 넌 아직 힘을 좀 더 중시하잖아.”
“…….”
레이몬드는 또 침묵했다.
아무튼 실제로도 레이몬드는 아직은 기교보다 힘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했다.
“반면 피드 가문의 검술은 교활, 속임수 그 자체. 상대의 눈을 속이고 그 허를 찌르는데 집중하는 검술. 클로에의 재능에 제대로 된 피드 가문의 검술이라면…….”
이 순간에도 클로에는 올리버의 우직한 검을 피하며 점수를 따내고 있었다.
“저렇게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그, 그렇군요.”
“뭐, 하지만 이건 실전이 아니라 시합이니까요.”
“네? 그건 무슨 뜻이에요?”
“검술 시합에서는 ‘오러’의 사용이 금지되거든요. 결국 단순한 기량을 겨루는 거라면, 클로에가 질 일은 없다는 뜻…….”
갑자기 아몬이 말을 끊자 아나르엘이 고개를 돌렸다.
‘……응?’
한데 방금 전만 해도 옆에 서 있던 아몬은 사라져 있었다.
그 사실에 아나르엘이 당황한 채 고개를 돌린 순간.
“……아, 아몬 선생님!?”
어느새 시합장에 난입해 올리버의 목을 움켜쥔 채 들어 올리고 있는 아몬을 볼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