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
아카데미가 망했다 4화
실의에 빠진 아몬은 앓아누웠다.
‘내 인생은 끝이야.’
킹오브망고 사업의 투자 성공으로 아카데미의 자금줄이 든든하게 확보된 상태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카데미의 인적 자원은 끔찍한 수준!
인간관계가 끝장인데 돈이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게다가 내 피 같은 2골드!’
전 재산 3골드 중 2골드가 하늘로 날아갔으니 상심이 클 수밖에.
그리고 머리맡에 앉은 박살 난 인적 자원 1호, 병문안을 온 아나르엘이 허둥거리며 말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흐흐흑…….”
“그 정정하던 분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앓아눕다니…….”
“어흐흐흑…….”
“어쩜 좋아. 회복 마법도 안 통하네.”
정신적 충격이 원인인데 마법이 통하겠는가.
“피로가 많이 쌓였나 봐요. 몸조리 잘하세요. 그리고 이건 시제품으로 도착한 킹오브망고로 만든 엘프식 스무디예요. 입맛이 없겠지만, 억지로라도 먹어 두세요.”
아몬이 열병에 시달리니 찬 음료를 준비해 온 아나르엘이었다.
그리고 ‘킹오브망고’ 소리에 부르르 경련한 아몬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학교장님도 드셔 보셨나요?”
“네. 엄청 맛있었어요. 원래 재배법으로 수확한 것보다 맛있어요.”
스무디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더 맛있다니. 사업이 망할 가능성도 없겠군.’
하지만 한 줄기 희망!
엘프와 인간의 입맛이 다를 수도 있으니 혹시나 싶어 한입 먹어 봤다.
‘……X나 맛있어. 망할 리가 없다.’
근데 왜 눈물이 날까?
“어쩜! 얼마나 맛있으면 울려 해요?”
“아흐흐흑…….”
“기다려요! 더 만들어 올게요!”
귀를 푸드덕대며 날듯이 방에서 나가는 아나르엘!
아몬은 오전 중으로 빈속에 스무디만 다섯 잔을 마셨다.
* * *
늦은 오후.
아몬은 결심했다.
‘이래선 안 돼.’
학교장은 답이 없다.
빈속인 사람한테 무슨 스무디 다섯 잔을 꾸역꾸역 먹인단 말인가.
아카데미를 위하는 마음은 그렇다쳐도, 인간적인 무언가가 결여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안 먹자니 열심히 만들어 왔다면서 귀를 축 늘어뜨리는데…….’
물론 그런 아나르엘이 안쓰러웠던 건 아니다.
달팽이 경주의 기적적 성공과 킹오브망고 투자의 파멸적 성공을 높이 사, 다른 사람들에겐 안 주고 자신에게만 주는 특별 상여금 1골드!
그걸 안주 삼아 스무디를 악으로 깡으로 삼킨 것이다.
‘마음 같아선 더 주고 싶지만 아카데미 운영비는 멋대로 쓸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하긴 하지만…… 달팽이 경주에 10골드를 쓴 사람이 할 말인가?’
뭐, 결과만 보면 오직 아카데미를 위한 게 맞긴 한데 말이지.
상여금으로 받은 금화를 꼭 움켜쥐며 다짐했다.
‘아무튼 더 이상 도망칠 길은 없다. 이렇게 자금줄이 확보됐으니 아카데미를 망하게 하는 건 쉽지 않겠지.’
즉 이렇게 된 마당이니, 학교장만 어떻게 잘 컨트롤하면 아카데미를 꽤 멀쩡하게 굴릴 수 있을지도?
“그러려면 다른 교사들의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학생을 가르친다는 아카데미의 본분은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일어난 아몬이 교사들을 찾아 나섰다.
‘그래, 지난번에 봤던 모습은 갑자기 아카데미가 망해서 낙담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오늘의 자신처럼, 실의에 빠진 나머지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해 스트레스를 씻어 내려 한 것이리라!
우선 교직원실을 찾은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첫날에 봤던 주정뱅이가 멀쩡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자네는?”
“새, 새로 부임한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오오, 그게 자네였군! 반갑네!”
쾌활하게 인사를 건넨 중년인이 손짓했다.
“그래, 일단 들어오게.”
“예, 선배님!”
“하하하! 선배라, 좋군.”
멋쩍게 웃은 중년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마리온 럼덤이네. 아몬 드레이크라고?”
“예. 드레이크 남작께서 제 부친 되십니다. 그런데 마리온 럼덤…….”
순간 아몬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마리온 럼덤? 전쟁 영웅이잖아?’
유명 마탑 소속의 마법사로, 종군 도중 적의 기사단 하나를 단신으로 궤멸시킨 유명인이었다.
‘대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들었는데 이런 곳에 있었다니.’
그 사실에 말을 잇지 못하자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마리온이 입을 열었다.
“나를 아는가?”
“무, 물론이죠. 왜 모르겠습니까?”
피식 웃은 마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다 옛날 일일 뿐이네.”
사연이 있다는 듯한 말투에 아몬이 눈을 꾹 감았다.
‘드디어 믿을 사람이 하나 생겼구나.’
역시 첫날에 봤던 모습은, 아카데미가 망했다는 소식에 허탈한 마음을 술로 잊으려 하던 게 분명했다.
지금 보이는 마리온은 마법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눈을 총기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빙긋 웃은 그가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하지.”
“예! 선배님!”
“하하! 밝아서 좋군.”
그가 웃으며 탁자에 올려 둔 물병을 집어 들었다.
“커흠, 목이 타는군. 실례하겠네.”
“아, 예.”
그리고 물을 꿀꺽꿀꺽 삼킨 그가 술 냄새를 확 풍기며 트림을 했다.
“끄어어억! 취한다!”
아니, 이게 무슨.
“……그거 물 아닙니까?”
“술인디? 속성 마법 걸어서 한 모금만 하면, 간다간다 숑 간다!”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왜 술을 마신 거죠?”
“끄윽!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지. 대전쟁 때 이야기네.”
“…….”
“기사단 하나를 내 마법으로 물리친 후,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어. 불타는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생생한 듯했으니.”
“……역시 죄책감을 술로 잊으려는 거군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때문에 조금 전에 ‘옛날 일일 뿐’이라고 말했던 거로군.
그 말에 다시 꿀꺽꿀꺽 술을 마신 마리온이 탄성을 지르며 대답했다.
“맛있어서 마시는 건데!”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원래 술은 입에도 안 댔는데, 내가 잠을 못 잔다는 말을 들은 장군이 술 한 병을 주길래 마셔 봤는데 진짜 맛있더라고!”
“……죄책감 때문이 아니고요?”
“아까부터 무슨 죄책감?”
“얼굴이 눈에 선해서 잠을 못 잤다면서요.”
“흥분돼서 못 잔 건데? 그 전장의 열기! 못 잊지, 암!”
껄껄 웃은 마리온이 술병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자네도 한잔하겠나?”
“…….”
“안 줄 거지롱! 나만 마실 거지롱!”
아몬은 교직원실에서 나왔다.
뒤에서 ‘내 술병! 내 머리! 이게 무슨 짓이냐, 이놈아!’라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 아몬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교사 중 하나가 박살 난 인적 자원 2호로 확정된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을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결말이 안 좋을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다.
비어 있는 제 3 강의실로 들어간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여인은 침낭에 박혀선 얼굴에 수건까지 덮고 자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한 단계 진보한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왔으니 인사라도 하자 싶어, 여인에게 다가간 아몬이 입을 열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휴우우…….”
“새로 부임한 아몬 드레이크라고 합니다.”
“코오오…….”
“예, 반갑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체념한 아몬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
“우응, 누구야응……?”
잠에서 깼구나!
이제 얘기를 해 볼 수 있겠군.
고개를 돌리니 수건을 들춘 여인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교사인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네에엥…….”
“실례지만 선배님 성함이!?”
“슬로스…… 피드…….”
잠결에 웅얼대는 그 목소리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피드 가문? 검술명가인 피드 후작가?’
가주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고, 가문의 직계 모두가 소드 마스터인 피드 가문?
‘마리온 럼덤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하나같이 쟁쟁한 사람인데, 왜 다들 이 모양일까?’
아무튼 잠이 조금 깼는지, 번데기처럼 꿈틀거리던 슬로스가 상반신만 일으키더니 하품을 했다.
“움, 냠…… 그래서 어떻게 찾아왔어요?”
“그냥 인사차 찾아온 겁니다.”
꼬락서니 구경 좀 하러 왔다고 할 순 없잖은가.
그리고 그 말에 슬로스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찾았냐고 물은 건데요.”
“……예?”
“음, 아니에요. 그보다 인사 끝났죠?”
그대로 벌렁 누운 슬로스가 다시 수건으로 눈을 덮으며 말했다.
“잘 자요.”
“잘 가요도 아니고 잘 자요입니까?”
“잘 가요.”
“……에휴.”
슬로스를 뒤로하고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아, 맞다. 후배님.”
“뭐요, 선배님.”
“내일부터 수업인 거 알고 있죠?”
“예?”
처음 듣는 말인데?
“몰랐나 보네요. 수업 일정은 아세요?”
“그건 압니다.”
아카데미의 커리큘럼!
‘오전 전반은 검술, 후반은 마법 수업. 점심시간 이후론 일반 학문 수업이고, 밤늦게 짤막한 정령술 수업.’
즉 검술명가인 피드 가문 출신인 슬로스가 검술 수업을 맡고, 마법사인 마리온이 마법 시간을 맡을 것이다.
‘다른 수업은 교사가 없으니 돌아가면서 맡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겠지?’
슬로스가 말했다.
슬로스가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럼 내일은 임시로 검술 수업을 맡아 봐요.”
“……예?”
“그것도 다~ 경험이에요.”
그 말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아몬이 말했다.
“지금 짬 때리는 겁니까?”
“…….”
“짬 때리는 거냐고요.”
“아, 아니에요. 선배로서 하는 말인데, 신입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
아몬이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침낭에서 못 빠져나오도록 끈을 있는 힘껏 묶어 놨기에 뒤에서 ‘뭐예요! 놓으세요! 놔 달라고요!’라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제3 강의실에서 자고 있는 이유가 있었구나.’
박살 난 인적 자원 3호라는 암시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젠장, 앞으로 어떡하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
눈물도 앞을 가려 눈앞이 뿌연 와중이었다.
“아몬 선생님!”
“……어?”
뿌연 시야 너머로 학교장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에요!”
“조, 좋은 소식이라고요?”
서둘러 눈물을 닦고 학교장을 바라본 아몬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학교장은 킹오브망고 스무디를 들고 있었다.
“너무 맛있게 드시길래 더 만들었…… 어쩜! 주저앉을 정도로 좋으세요?”
“으아아아아아!”
* * *
아카데미가 위치한 도시, 아무르의 번화가에 있는 주점.
아몬은 그곳에 있었다.
특별 상여금 1골드도 있겠다,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기에 술이라도 한잔하려고 나온 것이다.
“큭, 으흐흐흑…….”
“손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군요.”
“예, 그럴 일이…… 크흡!”
바텐더가 눈물을 삼키는 아몬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제가 사는 겁니다. 오늘 밤만은 잊으시죠.”
“가, 감사합니다.”
아몬은 이 집 장사 잘하네, 라는 생각을 하며 술을 삼켰다.
빈 잔을 넘겨받은 바텐더가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게, 제가 얼마 전에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했거든요.”
바텐더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탄식을 뱉었다.
“아이고, 저런…….”
“학교장도 동료 교사도 죄다 미친놈들뿐이라 앞일이 막막하네요.”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교사보다 학생 수가 적은 게 말이나 되냐고요.”
한숨을 쉰 아몬이 말했다.
“그렇다고 새롭게 교사를 들여서 수질 개선을 하면 어떨까 싶어도, 황실에서 내린 권고 때문에 그것조차 어려울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렇죠.”
“휴, 황실에서 내린 권고만 아니라면…….”
중얼대던 아몬이 움찔 멈췄다.
“……황실에서 내린 권고만 아니라면?”
“예?”
아몬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스터.”
“예?”
아몬이 바텐더의 뒤를 빤히 바라봤다.
바텐더의 뒤에는 채 떼어 내지 않은 ‘황제 폐하 배, 소년부 경진대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몇 개월 뒤에 황제 폐하께서 개최하는 소년부 경진대회가 있네요?”
“아, 예. 그래서 아무르가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다가, 아카데미가 한바탕 뒤집어지고 장례식 분위기로 바뀌었었죠.”
“……그렇군요. 잘 마셨습니다.”
계산을 마친 아몬이 주점에서 나왔다.
‘……이제 정말 이 방법뿐이야.’
아카데미를 무너뜨리겠다는 웅대한 모략은 물 건너갔다.
‘그럼 살 방법을 찾아 봐야지.’
자금줄은 생겼지만, 황제의 권고가 있는 이상 교사를 새로 들이긴 힘들다.
결국 교사가 없으면 학생도 더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황제 폐하가 개최한 경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아카데미의 본분이 무엇인가?
학생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 점을 높이 사서 운영 중단 권고를 철회해 줄지도 몰라!’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다!
권고를 철회했으니 지원금도 줄 거고, 새 교사도 들이고, 학생들도 오고!
‘좋아! 그 방법뿐이야!’
아몬은 허겁지겁 아카데미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