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1)
아카데미가 망했다 41화
소드 마스터.
그 경지에 도달한 검사와 기사를 그렇게 뭉뚱그려 부르는 일이 흔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안에서도 단계가 존재한다.
마나의 절대량, 오러 블레이드의 지속시간 및 견고함 등등.
수많은 기준에 따라 소드 마스터의 수준을 흔히 이렇게 세분화한다.
‘하위 소드 마스터, 중위 소드 마스터, 중견, 상급, 최상급.’
물론 이것은 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재능의 고하에 따라 하급이 중위를, 중견이 상급을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
결국 ‘경험’이라는 놈은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경험은 경험일 뿐, 재능은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 재능에 따라 평생을 하위 소드 마스터 수준에 머무르는 자도 얼마든 존재하지.’
베스트릭의 검술 교사인 알프레드가 그러했다.
그는 평생 검술에 매진했건만 ‘하위’를 넘어 ‘중위 소드 마스터’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느낀 검사로서의 한계. 그렇기에 그는 오직 검술에만 매진하는 ‘검사’를 포기하고 ‘교사’가 되었다.
자신의 오랜 경험을 후발 주자에게 넘겨주는 것은 얼마든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올리버 역시 하위 소드 마스터다. 하지만 녀석은 이제 막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선 신출내기. 녀석과 산전수전을 겪으며 소드 마스터로 살아온 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실례지.’
때문에 알프레드는 올리버가 아몬에게 제압당했던 것은 올리버의 방심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프레드는 일체의 방심을 지운 채 아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실 올리버가 방심했건 아니건, 아까 보여 준 아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에 그 역시 전력을 다한 것이다.
‘어디 한 곳 부러뜨려 단단히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이윽고 알프레드가 휘두른 목검이 아몬의 턱에 맞닿으려는 순간.
‘……어?’
돌연 목검을 쥔 아몬의 오른손이 흐릿해지고, 어느새 아몬의 목검이 알프레드의 눈앞까지 와 있었다.
‘어느새?’
그런 의문이 채 거둬지기도 전, 아몬의 목검이 느릿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본 알프레드가 내심 발끈했다.
‘이놈! 감히 손속에 사정을 두려는……?’
생각을 채 끝맺지 못한 알프레드가 눈을 깜빡였다.
아니, 깜빡일 수 없었다.
아몬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던 자신의 몸뚱이도 이미 멈춰 있었다.
자신과 아몬의 대련을 지켜보는 갤러리들의 움직임도, 자신의 돌진으로 인해 일어난 주변의 먼지도,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멈춰 있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아몬의 목검만이 유일하게 느릿한 움직임을 보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설마…….’
자신이 ‘검사’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 계기인, 전장에서 겪었던 사지(死地).
그 극한 상황에서 겪었던 현상.
‘주마등.’
곧이어 아몬의 목검이 자신의 머리통과 맞닿기 직전,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자신의 인생!
출생! 성장! 행복! 고난과 역경!
그리고 현재.
‘죽음.’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알프레드의 눈앞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 * *
아몬이 목검을 뻗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러지?’
목검이 눈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알프레드는 반격할 생각이라곤 없이 눈만 질끈 감고 있었다.
그런 이를 냅다 후려칠 순 없는 노릇이라 일단 멈추긴 했다만, 눈 감고 벌벌 떨고 있는 알프레드가 무슨 생각인지를 도통 알 수 없었다.
“흠…….”
목검을 거둔 아몬이 알프레드의 팔을 툭툭 쳤다.
“괜찮습니까?”
“……허, 헉!”
그제야 눈을 부릅뜬 알프레드가 주변을 마구 둘러보더니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사, 살아 있어……?”
곧이어 눈앞의 아몬을 바라본 알프레드가 풀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외쳤다.
“괴, 괴물!”
“……?”
“으아아악! 사람 살려!”
“……?”
아예 아카데미 밖으로 도망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미친놈인가.’
먼저 달려들기에 가볍게 목검을 마주 휘둘렀을 뿐인데, 눈이나 꽉 감고 있다가 갑자기 괴물이라며 냅다 달아나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으음, 저놈 꼴을 보아하니 베스트릭 아카데미도 정상은 아니군.’
묘한 동질감!
안쓰럽다는 듯 베스트릭 아카데미 쪽을 바라보던 아몬이 감독관 볼베르를 힐끔 보며 말했다.
“감독관님, 이러면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그 물음에 감독관 볼베르는 괜한 질문이라는 듯 손을 뻗었다.
“친선 교류전 1 시합,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승리!”
“와! 와와와와!”
열렬한 아나르엘의 환호에 아몬은 샌드위치를 먹다 바퀴벌레 반쪽을 발견한 것 같은 얼굴로 원래 자기 자리로 향했다.
곧이어 그가 아나르엘의 길쭉한 귀에 대고 속삭였다.
“교류전 끝나고 봅시다, 학교장님.”
잔뜩 가시 돋은 말투!
그러나 아나르엘은 아몬이 학교장인 자신의 명예를 위해 나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기에 세상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몬 선생님!”
“……에휴.”
한편 베스트릭 아카데미 측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아, 알프레드가 어째서…….”
“겁에 질려 달아나는 것 같은 눈치였습니다만…….”
동료 교사들이 알프레드를 걱정하는 한편, 학교장인 벤자민은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알프레드, 네놈은 감봉이다.’
공포로 달아난 알프레드는 조만간 더 큰 공포를 맛보게 되리라!
쯧 혀를 찬 벤자민이 다가오자 아나르엘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외쳤다.
“어때요, 벤자민? 우리 아카데미의 수준이?”
“…….”
“게다가 방금 본 것처럼 교사 하나하나가 학교장인 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죠! 꽁지 빠져라 달아난 어느 아카데미 교사들과는 다르게!”
아몬은 아나르엘을 다시 보고 있었다.
내용이 다소 불만스럽긴 했지만, 상대를 도발하기 위한 시적 허용 정도로 여길 셈이었다.
‘만약 내가 벤자민 학교장이었다면 아나르엘의 귀를 당장 뽑아 버렸을 텐데!’
그 정도로 훌륭한 도발이었다.
다소 창백한 감이 있던 벤자민의 얼굴이 어느새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다는 걸 감안하면 도발이 먹히기도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벌겋게 익은 얼굴로 씨근거리던 벤자민이 애써 여유롭게 웃었다.
“거참 대단하기 짝이 없군. 그렇게 잘난 아카데미가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을까? 잘나신 학교장 덕분이 아닌가?”
“뭐…….”
정곡을 찔린 아나르엘이 입을 다물자 벤자민은 공격 대상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거기, 젊은 교사.”
“예?”
지목당한 아몬이 눈을 깜빡거렸다.
“저 말입니까?”
“그렇다네. 알프레드와의 대련,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다네.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더군.”
“어…… 예,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벤자민이 눈을 번뜩였다.
“자네, 혹시 베스트릭 아카데미로 이직할 생각은 없나?”
“……!”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베, 베스트릭 아카데미로 이직?’
단언컨대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침몰 중인 배다.
‘게다가 벌써 반쯤 잠겼지.’
꽤 그럴싸한 아카데미에서 이직 제안이 온다면 당장 도장 찍을 준비가 되어 있건만, 보통 그럴싸한 곳이 아닌 베스트릭 아카데미에서 이직 제안을 한다고?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학교장이 직접?
물론 알고는 있다.
이게 아나르엘을 자극하고 도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알 반가?’
모로 가도 수도만 가면 된다고, 어쨌든 베스트릭 아카데미에서 교사질을 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때문에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이…….”
직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
아몬의 팔을 힘껏 잡아당긴 아나르엘이 외쳤다.
“흥! 어림도 없어요! 아몬 선생님은 아직 2년 넘게 계약이 남아 있다고요!”
“……!”
그렇다. 그 망할 놈의 계약.
만약 상호 합의로 서로 좋게 계약이 마무리된다면 또 모를 일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엘프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가 그렇게 해 줄 리가 없다.
그 사실에 아몬이 절망하는 찰나 벤자민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깟 위약금, 내가 내주지!”
이 시점에서 아몬은 벤자민 학교장님께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악마 같은 아나르엘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흥! 바보 같으니라고! 애초에 계약이 없었다 한들 아몬 선생님은 절대 우리 아카데미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요! 지금까지 아몬 선생님이 우리 아카데미에 얼마나 헌신했는데요! 안 그런가요, 아몬 선생님!”
“아닌데요.”
“네?”
매몰차게 아나르엘의 팔을 뿌리친 아몬이 옷깃을 정리하며 벤자민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벤자민 학교장님.”
“어……?”
아몬이 단숨에 태도를 바꾸자 도리어 벤자민이 당황했다.
그러나 이적 시장이 다 그런 법 아니겠는가?
벤자민은 금세 상황을 받아들였다.
“으하하하! 그래, 그래. 앞으로 열심히 하게!”
“제 몸과 마음을 베스트릭 아카데미에 바치겠습니다.”
“하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아몬이 얼른 속삭였다.
“그보다 학교장님,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들도 얼른 빼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교류전 때 보신 것처럼 재능과 잠재력이 대단한 학생들입니다요.”
“호오,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네.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참으로 영명하신 결단이십니다요.”
“그럼 교사들은 어떤가?”
“쓰레기들입니다요.”
“그렇군.”
단숨에 베스트릭의 충성스러운 개가 되어 버린 아몬의 모습에 아나르엘은 멍하니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 아몬 선생님?”
“벤자민 학교장님, 그보다 슬슬 이 허름한 곳을 떠나시죠. 귀하신 분이 있기엔 너무 누추합니다그려.”
“껄껄껄! 이 친구 참 마음에 드는군!”
“마음에 드신다니 삼대에 걸칠 영광입니다.”
아몬의 벤자민을 향한 간드러진 아부에 아나르엘의 귀는 더 이상 격렬해질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나르엘이 고함을 꽥 질렀다.
“벤자민!”
아나르엘의 고함에 벤자민이 씩 웃었다.
“호오, 아나르엘 학교장. 무슨 할 말이라도?”
“이, 이이익……!”
분노의 극치!
귀를 거의 직각으로 세운 채 바들바들 떨던 아나르엘이 외쳤다.
“벤자민, 당신이 이딴 식으로 비겁하게 나오니까!”
“음?”
“내가 당신의……!”
아나르엘이 벤자민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고백을 거절했던 거라고요!”
“………뭣!?”
느닷없는 충격 발언에 벤자민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당장이라도 벤자민의 구두를 닦을 기세로 허리를 굽히고 있던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뭐…… 라고?’
벤자민을 상대로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아나르엘.
아나르엘에게 묘한 적대감과 초조함을 보이는 벤자민.
‘벤자민 학교장님이 아나르엘을 연애 상대로 보고 고백했었고, 그걸 아나르엘이 걷어찼다고?’
비로소 두 학교장의 미묘한 태도가 이해됐다.
아나르엘은 고백을 거절한 당사자니 여유가 있고, 벤자민은 마음을 거절당한 입장이니 반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아몬은 공기가 확 바뀌는 것을 느꼈다.
‘자, 잠깐……!’
이제 거리낄 게 없다 싶은지 아나르엘은 폭주하고 있었다.
“알겠어요? 그런 못돼 빠진 마음씨! 조금만 수틀리면 비겁하게 수작질이나 부리는 그딴 성격 때문에 제가 당신을 싫어하는 거라고요!”
“으, 으으으…….”
“그러면서 뭐요? 시를 써 와? 그 시, 다른 사람한테 돈 주고 쓰게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진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를 읽어 주면서 뿌듯해하는 그 얼굴이 얼마나 한심했던지 아냐고요!”
“으, 아아아아아……!”
과거의 기억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벤자민 학교장님!
아몬이 얼른 그를 부축했다.
“하, 학교장님! 진정하십시오! 저 고약한 엘프의 농간에 놀아나시면 아니 됩니다!”
아나르엘이 코웃음 쳤다.
“농간? 다른 사람들 잔뜩 불러 모은 자리에서 고백하면서 몰아세우는 게 농간 아닌가요?”
“어…….”
“술 진탕 먹고 찾아와선 데굴데굴 구르면서 애처럼 엉엉 우는 게 농간 아니냐고요! 근데 사실은 취한 것도 아니었다고요! 그냥 밀어붙여서 난처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다고요!”
“…….”
신들린 것 같은 아나르엘의 폭로!
벤자민은 어느새 새하얗게 탈색된 채 무릎 꿇고 있었다.
그리고 아나르엘은 그런 벤자민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애초에! 당신은 내 이상형이 아니라고요!”
그 외침에 벤자민은 결국 얼굴을 땅에 처박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