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2)
아카데미가 망했다 42화
‘아, 안 돼.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베스트릭으로의 이직은 물 건너가 버릴 게 분명했다.
치욕과 모멸감으로 엎드린 채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쥐어뜯는 벤자민의 손을 황급히 떼어 내며 말했다.
“학교장님! 진정하십시오! 저 간악한 엘프의 술수에 놀아나선 안 됩니다!”
“으, 으윽…… 머리가…….”
“저깟 엘프가 학교장님의 깊은 속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 이 기억은 대체…….”
“학교장님!”
아몬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외쳤다.
“부디 정신 차리십시오! 서둘러 이 더러운 마굴에서 나가시지요!”
“그, 그래…….”
“제가 학교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벤자민을 부축해 일으킨 아몬이 허겁지겁 걸음을 옮겼다.
‘됐다. 이대로 이 더러운 곳에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벤자민도 진정될 테니 그때 베스트릭으로의 이직을 마저 이야기하면 된다.
때문에 우선은 이곳에서 황급히 달아나려는 순간이었다.
“아몬 선생님! 아니, 아몬!”
자신을 부르는 아나르엘의 목소리에도 아몬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아나르엘의 애절한 목소리.
“당신을 믿었는데……!”
눈물을 삼키는 아나르엘의 애절한 목소리에 아몬은 생각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
자신을 그렇게 믿는다는 엘프가 근무 환경을 똥통으로 만들어 놨단 말인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아몬이 얼른 벤자민을 잡아 이끌었다.
“자, 자. 얼른 가시…….”
한데 웬걸, 벤자민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서 있었다.
때문에 아몬이 벤자민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너…… 아나르엘이랑 무슨 관계냐?”
“예?”
그 물음과 동시에 벤자민의 눈을 본 아몬의 어깨가 흠칫 들썩거렸다.
벤자민의 눈을 채우고 있는 감정.
불신, 증오, 그리고.
‘어라……?’
진하게 느껴지는 ‘질투’라는 감정!
‘서, 설마 이 양반이 지금…….’
부축하고 있는 팔을 탁! 소리 나게 밀어낸 벤자민이 혐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묻잖아. 아나르엘이랑 무슨 관계냐고.”
“교, 교사랑 학교장이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미건조한 관계였다.
하지만 이미 의심으로 찌들어 있는 벤자민은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 하지만 괜찮아. 내 결백을 증명할 수 있어.’
그리 판단한 아몬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자신의 청렴을 말하려는 찰나였다.
“흐흑! 아몬, 우리 함께 같은 미래를 보기로 약속해 놓고…….”
“뭣!?”
저건 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엘프 소리란 말인가.
물론 아나르엘은 ‘함께 아카데미를 번영시키자’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소금을 뿌려진 아픈 가슴을 지닌 벤자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저앉아 있는 아나르엘의 모습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네, 네놈, 설마…….”
“아, 아뇨, 학교장님, 잠깐…….”
“누가 네 학교장이냐!”
이미 벤자민의 머릿속에는 아몬을 임용시키겠다는 생각은 날개를 달고 멀찍이 날아간 상태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수십 년간 짝사랑해 온 여인을 웬 젊은 개자식이 욕보였는데!
물론 그건 말도 안 되는 오해지만 말이다!
팍-!
젊은 개자식을 밀친 후 옷깃을 고친 벤자민이 아나르엘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나르엘! 저런 개자식은 잊고 나와 갑시다!”
“흐, 흐흐흑…….”
“당신이 기억하던 예전의 내가 아니오! 그러니…….”
아나르엘이 어깨로 향하는 벤자민의 손을 쳐 내며 쏘아붙였다.
“아, 만지지 마.”
벤자민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 * *
지나친 심적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벤자민이 실려 가고, 아몬은 우두커니 선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X됐다.’
베스트릭 아카데미로의 이직은 벤자민과 함께 들것에 실려 나간 상황.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이 처한 입장은?
힐끔 뒤를 돌아본 아몬은 도로 고개를 돌렸다.
훌쩍훌쩍 울고 있는 아나르엘은 차치하고, 슬로스와 마리온을 비롯한 믿음직한 동료들은 자신을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X됐군.’
이러다 오가지도 못하는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
헛기침을 한 마리온이 중얼거렸다.
“아몬, 자네가 쓰레기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슬로스도 덧붙였다.
“이 정도로 개망나니일 줄은 몰랐는데…….”
환멸! 혐오!
조금 전 벤자민이 보여 줬던 것과 닮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둘도 없는 동료들의 험담에 가슴이 아려 왔다.
“……여러분, 오해입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한 걸음 다가가자 그들도 한걸음 물러났다.
“오해는 무슨.”
“헛소리하고 있네.”
아예 슬로스는 더 이상 오지 말라는 듯 아나르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광경에 아몬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 우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한번 지껄여 보게. 들어는 주지.”
“우선 제가 베스트릭 아카데미와의 첫 번째 교사 교류전을 승리했습니다. 그 말은 두 번째 교사 교류전이 있을 거라는 뜻이잖습니까?”
“…….”
“문제는,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교사들의 수준이 상당하더군요. 결국 계속 교사 교류전을 치르게 된다면, 승리를 쉽게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 물론 두 선배님들의 실력이라면 승리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괜스레 선배님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때문에 저는 눈물을 머금고 악역을 자처한 겁니다! 어리석게도 저의 간계에 껌뻑 속아 넘어가는 베스트릭 학교장의 한심한 모습이란…… 쯧쯧!”
“…….”
“뭐, 결과적으론 아나르엘 학교장님께서 놈들을 쫓아내게 됐지만, 제 계획대로 진행됐더라도 비슷한 결과였겠죠. 우선 좋게 자리를 피한 후 이곳, 제 보금자리로 돌아왔을 테니까요. 제가 갈 곳이 여기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아몬이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교장님, 부학교장…… 어디 갔지? 그리고 선배님들. 이제 제 진심을 알아주시렵니까?”
애절한 아몬의 호소에 슬로스가 대답했다.
“개소리를 길게도 하네.”
“…….”
마리온도 혀를 차며 말했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게.”
“…….”
“휴우, 아무튼 학교장님. 어떡하시겠…… 엉?”
아몬의 얼토당토않은 변명에 잔뜩 화가 나기라도 한 것일까?
귀를 붉게 물들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나르엘.
때문에 서둘러 아나르엘을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벌떡 일어난 아나르엘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역시 아몬 선생님! 믿고 있었다고요!”
아몬도 한달음에 아나르엘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역시 아나르엘 ‘학교장님’께서는 제 진심을 알아주시는군요!”
“그럼요! 그동안 우리 아카데미를 위해서 그렇게 애써 주신 아몬 선생님이 우릴 배신할 리가 없잖아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는 두 사람의 모습에 마리온과 슬로스가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가 먼저 이직하는 게 빠르지 않겠나?”
“……그러게요.”
한숨을 내뱉은 그들이 몸을 돌렸다.
진작 밥 먹으러 자리를 비운 브레슬을 따라 식사나 하러 간 것이다.
* * *
이튿날.
‘음, 큰일이군.’
현명하신 학교장께선 자신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셨으나, 무지하고 몽매한 동료 교사들은 자신을 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게 배신자라는 오명을 씌우다니…… 정말 섭섭하군. 우리 사이가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그간 동료 교사들과 쌓아 온 신뢰 관계가 단숨에 무너지자 아몬은 깊은 섭섭함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갑자기 웬 한숨이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달랑 하나 남은 비빌 언덕, 아나르엘의 어깨를 주무르던 아몬이 말했다.
“이제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고마워요!”
존경하는 학교장을 향한 봉사와 헌신!
아몬이 열심히 아나르엘의 다리를 주무르던 와중이었다.
“맞다,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슬슬 아몬 선생님도 교원 자격증을 따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교원 자격증.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음…… 확실히 따는 게 좋겠죠.”
“역시 그렇죠?”
물론 현재 아몬의 신분 역시 교사다.
정확히 말하면 ‘3년 계약 기간으로 한정된 기간제 교사’였다.
즉 교원 자격증은 없지만 ‘귀족 신분과 인맥, 그리고 학교장의 재량’으로 고용된 형태였다.
“저도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정식으로 과목을 맡고 커리큘럼을 짜느라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죠.”
“그렇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설마 자격증 안 따면 팽하려고?
걱정스러운 아몬의 물음에 아나르엘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최근 선생님의 활약이 대단하잖아요? 만약 선생님이 없었다면 우리 아카데미는 진작 사라졌겠죠.”
맞는 말이다.
머리로는 그리 생각하지만, 혀로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과찬이십니다. 만약 제가 없었더라도 영민하신 학교장님께서 사태를 잘 수습하셨을 겁니다. 저는 약간의 도움만 드렸을 뿐이죠.”
“어머나, 겸손하셔라.”
“사실인걸요.”
입을 가리며 웃은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아몬 선생님의 활약이 대단하신데, 언제까지고 평교사로만 있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따로 직책을 드리고 싶어도 교원 자격증이 없으시니…….”
확실히 아무리 귀족에 인맥이 있다 한들 교원 자격증도 없는 작자에게 따로 직책을 부여하는 건 선례가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말씀은…….”
아몬이 눈을 번뜩이자 고개를 끄덕인 아나르엘이 말했다.
“교원 자격증만 취득하시면 곧바로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하실 거예요.”
“……!”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교, 교무부장?’
아카데미의 서열은 학교장, 부학교장, 그리고 교무부장순이었다.
‘평교사에서 단숨에 교무부장이 된다고……?’
확실히 자신이 그동안 아카데미를 위해 한 일이 많긴 했다.
숨도 못 쉬고 깔딱거리는 아카데미를 여기까지 살려 낸 게 누구인가?
다름 아닌 자신이다!
‘……아니지, 근데 잠깐만.’
이제 막 간신히 자율 호흡을 회복한 아카데미에 웬 교무부장인가. 교사가 셋, 학생도 셋밖에 안 되는데.
‘권력 맛은 꿈도 못 꾸고 쓸데없는 잡무만 늘어나겠지.’
때문에 아나르엘의 제안을 겸허히 사양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어제 베스트릭 아카데미와의 교류전에서 승리했으니, 이제 우리 아카데미가 부활했다는 소식이 대륙 전역에 퍼지겠죠.”
“……!”
“그렇게 되면 새로운 교사, 학생들이 물밀듯 밀려올 테니 업무 전반을 책임질 교무부장은 당연히 필요해지겠죠.”
“……!”
듣고 보니 그랬다.
‘맞아! 애초에 교류전의 목적이 그거였지?’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수많은 학생, 여러 교사의 위에서 군림하는 ‘아몬 교무부장’의 모습!
아몬이 아나르엘의 다리를 정성껏 주무르며 말했다.
“말씀 받잡겠습니다, 학교장님.”
“후후, 네. 그리고 솔직히 제 본심을 말하자면…….”
아나르엘이 조금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교무부장을 맡을 분이 아몬 선생님밖에 없기도 해요…….”
“……아.”
게을러터진 슬로스.
늘 술에 취해 있는 마리온.
그들이 교무부장 직책을 맡는다고 상상하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제가 적임이긴 하네요…….”
“그렇죠…….”
슬슬 그만 주물러도 된다는 듯 다리를 파닥거린 아나르엘이 말했다.
“그럼 아몬 선생님, 슬슬 자격증 준비하러 가 보세요.”
“예! 학교장님!”
이윽고 학교장실의 문을 열고 나가던 아몬은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응? 어르신?”
“오오, 자네인가.”
창천검왕 라인벨트.
정문을 지키고 있을 그가 별안간 학교장실에 찾아온 것이다.
곧이어 그가 아몬 너머로 아나르엘을 보며 말했다.
“학교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네? 손님이요?”
“예. 교사로 일하고 싶다는 청년입니다만.”
그 말에 아몬과 아나르엘이 기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벌써 교류전에서 승리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