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3)
아카데미가 망했다 43화
“네 뜻이 정녕 그러하더냐?”
“예, 아버님.”
황제, 산드리오 아르지아 아모니스.
그는 황태자 카이야스와 독대하고 있었다.
“음, 분명 당분간 네가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건재한 지금, 황태자인 네가 정치적인 일에 나서는 것도 구설에 오를 터. 때문에 네가 무료해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만…….”
황제가 턱을 짚은 채 말했다.
“왜 하필 아모니스 아카데미더냐? 단순히 교사직을 수행하려는 것이라면 다른 아카데미도 있을 터인데.”
“아버님.”
“듣고 있다.”
“과거의 해묵은 악연을 슬슬 털어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옵니다.”
“…….”
“지난번 아버님과 드레이크의 청년의 대화에서 느꼈습니다. 그는 과거의, 선대의 악연에 발목을 잡힐 인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황태자가 가슴을 짚으며 말했다.
“학생을 위하는 그 마음. 진정 제국의 올바른 교육자의 귀감이 아닐는지요.”
“으음…….”
황후에게 황태자의 뜻을 대강 듣긴 했다.
황제와 드레이크 가문 간의 골 깊은 악감정.
황태자는 직접 아모니스 아카데미로 가서 기나긴 악연을 끊어 내고 싶다고.
“역시 그렇구나. 네 입으로 그 뜻을 직접 듣고 싶었다. 좋다, 네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막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다만, 철저하게 황태자의 신분을 감추도록 하거라.”
“예? 하오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뜸 황태자 신분으로 그와 마주하면 진심을 듣기 힘들겠군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말을 이었다.
“또한 모난 돌이 정 맞는 법. 아카데미의 일개 교사로 있기에 네 힘은 너무나도 고강하다. 네 실력을 감추는 게 좋겠구나.”
카이야스는 젊은 나이임에도 소드 마스터 최상위권이며, 마법 또한 8서클 마스터의 실력자.
그런 강대한 힘을 아카데미에 속해 휘두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고,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황태자 카이야스.
아니,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 지원자 ‘카이’가 황궁을 나섰다.
* * *
아카데미에 도착한 ‘카이’가 눈을 깜빡거렸다.
“어, 어라……?”
“응?”
정문 밖에서 빗자루질하고 있던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가왔다.
“자네는…… 분명 황태자 아닌가?”
“라, 라인벨트 어르신? 어르신께서 여기서 웬 청소를 하고 계십니까?”
제국 4대 기사, 그랜드 소드 마스터 중 하나인 창천검왕 라인벨트.
그가 정문 밖에서 빗자루질이나 하고 있다니?
씩 웃은 라인벨트가 말했다.
“뭐, 이야기하자면 길지. 한데 자네는 여기까지 웬일인가? 얼굴에 잡스러운 마법이나 걸고 말이야.”
카이가 쓰게 웃었다.
8서클 마스터인 자신이 직접 사용한 용모 변화 마법을 ‘잡스럽다’고 평가하다니.
“역시 어르신은 알아보시는군요. 뭐, 제 신분을 숨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 내가 알아 둬야 할 일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어르신께 폐 끼칠 일은 전혀 없을 겁니다.”
“흠. 그런가.”
턱을 쓰다듬던 라인벨트가 빗자루를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에이, 그나저나 웬일이냐니까?”
“하하하, 이곳에서 교사 직무를 수행해 보려 합니다.”
“……엉? 자네가? 여기서?”
“그렇습니다. 아버님과도 이야기가 끝난 상태입니다.”
“흐음, 폐하께서도 윤허하셨단 말인가.”
고개를 주억거리던 라인벨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따라오게. 학교장님께 안내해 주지.”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재.
카이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나르엘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나르엘 공주님, 역시 나를 못 알아보시는구나.’
애초에 얼굴에 걸어 둔 마법이 없어도 아나르엘과 카이는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었다.
여태 황제, 황후의 이야기로만 접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심각한 얼굴로 카이를 바라보던 아나르엘이 입을 열었다.
“카이라고 했나요?”
“예, 그렇습니다.”
깍지 낀 손 너머로 카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나르엘이 말했다.
“왜 이곳에서 교사로 일하겠다고 생각하셨나요?”
갑자기 던져진 물음에 카이는 당황했다.
“그, 그야……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유서 깊은 명문 아카데미라 예전부터 꼭 한번 근무해 보고 싶었습니다.”
“……교류전에서 이겼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게 아닌가요?”
“예? 교류전이요?”
고작 아카데미 간의 교류전 소식은 황태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아나르엘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닌가요?”
“그, 그렇습니다.”
“……쳇!”
혀를 찬 아나르엘이 금화 하나를 꺼내 옆자리의 청년에게 건넸다.
그리고 금화를 받은 청년, 아몬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장님, 거봐요. 아직 소문이 퍼지려면 멀었다니까요.”
“그래도 베스트릭 아카데미를 이겼는데…….”
“조만간 빠르게 퍼지겠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그럼 카이 씨?”
“네, 학교장님.”
“우선 지망하시는 담당 과목이 있으신가요?”
그 말에 카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검술, 마법은 물론, 역사학 및 수학 등의 일반 학문 전부 얕게나마 익히고 있습니다. 어떤 과목이든 맡겨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파격적인 전 과목 소화 가능 발언!
그런 대단한 인재가 다 망해 가는 아카데미로 왔다는 사실에 아몬은 의혹으로 눈을 빛냈지만, 아나르엘은 별 의심 없이 기쁨을 표현했다.
“대단하군요! 그럼 어떤 과목이건 맡으실 수 있겠네요?”
“물론입니다!”
“마침 과목 대부분이 공석이거든요.”
아몬이 탄식했다.
아카데미가 다 망해 간다는 사실을 굳이 저렇게 대놓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대충은 알고 왔겠지만, 그래도 학교장 입으로 반쯤 망했다는 걸 듣고 실망하진 않을까?’
서둘러 카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오히려 기뻐 보이는 기색이었다.
“발전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아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도 미친놈이구나.’
하긴, 전 과목 소화 가능한 인재가 기둥뿌리가 다 빠져서 언제 망할지 모르는 아카데미에 온 것만 봐도 제정신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러나 아나르엘은 카이의 의기충천한 모습에 더없이 기뻐 보였다.
“우리 아카데미에 딱 맞는 인재네요! 좋아요! 채용하겠어요!”
가차 없는 채용 선언!
카이도 당황했다.
“느, 능력 검증 같은 건 하지 않으십니까? 아니, 교원 자격증 확인은…….”
이 대목에서 찔리는 부분이 있는 아몬이 얼른 말을 이었다.
“능력이야 차차 확인하면 될 일이고, 교원 자격증? 따면 그만이죠.”
“하지만…….”
“게다가 대충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 아카데미는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아카데미를 찾아오셨고, 의욕을 보여 주시는데 능력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아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모자란 능력은 채워 주고 길러 주면 될 일입니다. 혹여 모자람이 있으셔도 크게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믿음직한 아몬의 목소리!
카이는 직감했다.
‘아몬 드레이크…… 역시 내 예상대로 제대로 된 인물이었구나.’
그야말로 교육자의 귀감 아닌가!
모자람이 무슨 상관인가? 배우고 익히면 될 일인 것을!
때문에 카이는 감격에 젖었고, 아몬은 카이의 눈치를 보며 생각했다.
‘좋아. 잘 구워삶았다. 당장 도망칠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어렵게 먼 길 찾아온 후임 후보를 썩 꺼지라며 쫓아낼 수는 없는 일!
‘드디어 막내 생활에서 벗어나겠군.’
게다가 자신의 입장도 있지 않은가.
여태 선배 같지도 않은 슬로스와 마리온을 선배님, 선배님 하며 대접해 줬다.
게다가 늘 아카데미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자신이건만, 어제 있었던 ‘사소하고 앙증맞은 사건’을 빌미로 ‘쓰레기’에 ‘개망나니’ 취급하는 그 뻔뻔함이란!
‘그러니 내 뒤를 받쳐 줄 능력 좋은 후배 하나쯤은 필요해.’
아무튼 슬슬 자신보단 학교장이 나설 차례라는 걸 깨달은 아몬이 멍 때리고 있는 아나르엘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그때 아나르엘이 ‘응앗’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잡념에서 빠져나오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그럼 카이 선생님?”
“예, 학교장님.”
“본론으로 돌아와서, 특별히 지망하시는 과목이 있으신가요?”
카이가 침음을 흘렸다.
검술, 마법 등을 심도 깊게 익히긴 했다.
‘하지만 검술, 마법은 아모니스 가문 특유의 비전이라 남들에게 가르치긴 무리가 있지. 그럼 제왕학? 아냐, 아카데미에서 무슨 제왕학을 가르치겠어?’
몇 가지 후보를 제외하면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당연히 폭넓은 지식을 지녀야 하는 ‘역사학’이 그나마 나을 터.
카이가 말했다.
“역사학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카이의 말에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후배 놈이 벌써부터 선배 밥그릇을 걷어차려 하는구나!’
감히 자신의 담당 과목을 탐내다니!
후배를 향한 내적 친밀감이 반 토막 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몬은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흠흠, 역사학은 제가 맡고 있는 과목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검술, 마법, 역사학은 이미 담당 교사가 있으니 다른 과목을 생각해 보는 게 좋겠군요. 음, 우선은…….”
그러고 보니 학생들의 수학 수준이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래, 혹시 수학은 어떻습니까?”
“아, 수학에도 나름 조예가 있습니다.”
“그거 괜찮겠군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말했다.
“그럼 업무는 언제부터 가능하십니까?”
“당장 오늘부터도 가능합니다.”
“의욕이 넘치시는군요. 좋습니다. 마침 오전부터 수업이 있으니 정식으로 임용되기 전까진 당분간 다른 선배님들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수업에 관한 지식을 쌓으시죠.”
“아, 바로 수업에 들어가는 건 아닌가 보군요?”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의욕이 있는 건 좋지만 자신감이 넘쳐도 너무 넘쳤다.
이미 반 토막 난 내적 친밀감이 다시 한번 반 토막 나는 걸 느끼며 말했다.
“나 때도 다~ 수업 참관부터 하면서 배우고 그랬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때 아나르엘이 말했다.
“맞아, 이분에 대한 소개가 늦었네요. 이분은 아몬 드레이크 선생님이에요.”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몬 선배님.”
아몬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카이를 본 아나르엘이 방긋 웃었다.
“아몬 선생님은 교무부장으로 내정될 정도로 훌륭하신 선생님이에요. 그러니 아몬 선생님께 많이 배우도록 해요!”
카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교무부장으로 내정될 정도라니…… 역시 내 예상대로 크게 될 인물이었구나!’
아나르엘이 얼굴에 금칠을 해 주자 아몬이 멋쩍게 ‘험험’ 하고 웃었다.
“본 아카데미의 위명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예! 선배님!”
“좋습니다.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 우선 수업 참관부터 시작해 보죠. 다른 업무에 관한 건 오후부터 배워도 충분할 테니까요.”
“예! 선배님!”
아몬이 앞장서자 카이는 어미 새를 따르는 새끼 새처럼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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