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4)
아카데미가 망했다 44화
오전 첫 번째 수업인 검술.
수업을 진행하는 연무장으로 안내해 준 아몬은 수업이 끝날 때쯤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오늘 하루 정도는 수업 참관도 함께해 주고 싶지만, 일이 바빠 그러질 못하겠군요.’
‘아하, 업무가 많이 바쁘실 테니까요.’
사실 딱히 업무가 바쁜 건 아니고 ‘교원 자격증’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카이의 딱 좋은 해석에 아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그거지만…… 사정이 있습니다.’
‘예? 사정이라 하심은…….’
그 물음에 아몬은 대답 대신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당사자가 말해 주지 않으니 카이는 의문을 애써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윽고 수업의 시작이 머지않았을 때 세 명의 학생이 나타났다.
그리고 학생 중 하나,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어라? 누구세요?”
“오늘 새로 온 선생님이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나는 카이라고 해.”
“아하! 안녕하세요. 저는 보리스라고 해요.”
“잘 부탁한다, 보리스. 너희들은?”
카이의 물음에 클로에는 소 닭 보듯 시선을 한번 스친 후 말했다.
“클로에 아란이에요.”
“그렇구나!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그럼 너는?”
“레이몬드 나마크예요.”
카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나마크? 창천검왕 어르신의 혈육인가? 아아, 그래서 그분이 이곳에 계신 거구나.’
라인벨트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깨달은 카이가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슬슬 수업 시작 시간인데 검술 교사는 어디 있는 거지?’
미리 와서 수업 준비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얘들아, 선생님은 어디 계시니?”
“네?”
그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린 보리스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와 계시는데요?”
“……뭐?”
흠칫하며 고개를 돌린 카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무장 한구석에 웬 송충이 같은 것이 어느새 상반신만 일으킨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송충이…… 아니, 침낭이잖아? 자고 있었나?’
눈을 덮고 있는 안대를 보아하니 그런 모양이었다.
곧이어 침낭 속에서 꼬물대던 무언가가 안대를 들추더니 하품을 했다.
“움…… 하, 다들 왔니……?”
“네! 선생님!”
“으응…… 그럼 수업하자…….”
꿈틀거리던 송충이가 데굴데굴 굴러 학생들 앞으로 오고, 뒤늦게 카이를 발견하더니 흠칫하며 말했다.
“응? 넌 뭐야?”
“……시, 신입인 카이라고 합니다.”
“신입?”
송충이, 슬로스가 안대를 조금 더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딴 곳에 신입이 또……?”
“……예?”
“아냐. 아무튼 나는 슬로스 피드. 잘 부탁해.”
카이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드 가문의 슬로스.
그녀가 이곳의 교사로 있다는 것쯤은 미리 알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슬로스 선배님.”
“으응. 아무튼 수업 견학 온 거지?”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앉아서 보든 서서 보든 알아서 하고…….”
꾸물거리면서도 용케 벤치 위로 기어오른 슬로스가 말했다.
“자, 그럼 얘들아.”
“네, 선생님.”
“클로에는 지난번에 하던 거 계속하면 되고, 레이몬드랑 보리스는 자습.”
“네!”
“그럼 시작하자.”
벤치 위에서 꿈틀거리며 학생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슬로스를 본 카이가 입을 쩍 벌렸다.
오직 클로에만 슬로스 앞에서 수업 같은 수업을 받고, 보리스는 웬 마법 책을 들고 그늘로 향하고, 레이몬드는 동떨어진 곳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이게 수업?’
당황한 듯 슬로스에게 다가간 카이가 얼른 말했다.
“서, 선배님. 이게 뭡니까?”
“뭐가?”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을 텐데 웬 학생은 책을 읽고, 저 학생은 혼자 검술을 익히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슬로스가 침낭을 갸웃거렸다.
“안 돼?”
“……예?”
“왜 안 돼?”
“어어…….”
손가락으로 보리스를 가리키려던 슬로스는 침낭에 손이 막히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어렵사리 한쪽 손을 쭉 빼냈다.
그리고 보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리스는 마법으로 길을 정한 모양이야. 계속 읽고 익히다 보니 뭔가 좀 잘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쓰지도 않을 검술을 익히느니 그 시간에 마법서 한 쪽이라도 더 읽는 거고.”
“…….”
“그리고 레이몬드는 소속된 검술 유파가 따로 있어서 남들에게 보이며 수련하면 안 되는 경우야. 애초에 교사인 나보다 실력이 좋기도 하고.”
때문에 보리스와 레이몬드는 자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하, 하지만 정규 커리큘럼이 있지 않습니까? 제국 교육부가 권장하는 교육 커리큘럼이 있을 텐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평민이야, 귀족이야?”
“예? 어…….”
황태자인데요, 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
미리 준비해 둔 가짜 신분을 말하기로 했다.
“스, 스트로 자작가 출신의 귀족입니다.”
“귀족 자제네? 그럼 씨감자 심을 때 어느 크기로 썰어야 하는 줄 알아?”
“……예?”
천하의 황태자가 그런 걸 알 리가 있는가.
“모, 모르겠습니다.”
“그치? 쓸 놈만 배우고 알면 되는 거야.”
머릿속의 교육관이 박살 나는 것 같은 감각!
금세 정신을 추스른 카이가 말했다.
‘하지만 선배님, 아무리 마법사라도 검술을 배워 두면 적 기사에 대한 대비도 될 거고 체력 단련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리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보리스를 본 카이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다소 탄탄한 체구, 나무 밑동에 똑바로 허리를 붙이고 앉은 올바른 자세를 보니 선 자세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리스를 포함한 학생들은 체력 단련은 따로 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은 말 그대로 지식을 함양하기 위한 시간일 뿐!
‘체력 단련은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이고 자세도 올곧다. 검술도 교양이라고 할 정도론 익힌 모양인데…….’
때문에 카이는 자신이 말하려던 논리가 박살 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입이 댓 발은 나와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권장 커리큘럼이 있는데…….”
그 말에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입을 다물더니 한숨을 쉬며 쥐어짜듯 말했다.
“그래, 다음 수업부터는 정규 커리큘럼도 반영할게.”
“아…… 예.”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레이몬드는 혼자 수련하고, 보리스는 책 읽고, 클로에도 슬로스의 지시를 받아 열심히 수련하는데 카이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할 게 없네.’
입맛을 다시던 그가 슬금슬금 슬로스에게 다가갔다.
어쨌건 앞으로 함께할 동료인 이상 친분을 쌓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몬이라는 인간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온 것이니만큼 그에 대한 평가도 조금 들어 두려는 의도도 있었다.
“저, 선배님.”
“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물어봐.”
“그, 아몬 선생님이라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몬,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슬로스가 말했다.
“그 쓰레기는 왜?”
“……예?”
“아니지, 아몬이 왜?”
“아, 아뇨. 아까 잠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어떤 분인가 싶어서요.”
“흐음…… 그 쓰레기, 아니지. 아몬이 어떤 놈이냐고?”
“…….”
“간단하게 말하면, 쓰레기지. 참 대~단한 놈이지. 그럼.”
이미 카이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아몬에게 호감이 꽤 있었다.
더구나 아까 만났을 때의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 태도도 엉망이고, 커리큘럼도 전혀 준수하지 않으며, 당장 침낭을 뒤집어쓴 채 뒹굴뒹굴하고 있는 슬로스가 아몬을 욕하고 있었다.
‘누가 쓰레기야! 당신이 쓰레기지!’
목구멍까지 그 말이 솟구쳤지만, 카이는 애써 그 말을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 하. 그렇군요.”
“너도 친하게 지내지 마.”
“알. 겠. 습. 니. 다.”
“그놈이 얼마나 쓰레기냐면…….”
카이는 슬로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마음속 평가 노트에 슬로스의 이름과 평가 내용을 작성했다.
‘슬로스 피드. 교사로서의 적성, 5점.’
참고로 100점 만점이다.
* * *
검술 수업이 끝난 후, 약속대로 찾아온 아몬이 마법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안내해 주며 말했다.
“후배, 첫 참관은 어땠어?”
“어…… 그, 그게…….”
아몬을 향한 욕만 귀 아프게 듣고 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도, 독특했습니다.”
“……좋은 쪽으로 독특하다는 뜻이길 바랄게.”
“…….”
침음을 흘린 카이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 그런데 선배님.”
“응?”
“……아, 아닙니다.”
대뜸 물을 질문이 아니었기에 말을 삼켰건만, 눈치 빠른 아몬은 금세 카이가 하려던 질문을 파악했다.
“슬로스 선배님이 나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하려던 거지?”
망설일 만한 질문이 사실 그것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카이는 황급히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괜찮아. 이미 알고 있으니까.”
“…….”
“뭐, 그분이 날 싫어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예?”
아몬이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렸다.
“다 내가 모자란 탓이니까.”
“…….”
그 처연하고 애달픈 중얼거림에 카이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다 화나는군.’
자신이 직접 들었던 아몬의 교육자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
학교장 아나르엘의 칭찬 세례!
교무부장으로 내정될 정도의 인망과 능력!
그런 인물을 침낭째로 뒹굴뒹굴하는 불량 교사 따위가 모함하다니!
‘그런데도 아몬 선생님 당신은 자신이 모자란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니…… 아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 아몬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슬로스에 대한 분노가 점차 커져 갔다.
사실 교류전의 일을 감안하면 슬로스의 평가는 지극히 정당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카이는 아몬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뭐, 아무튼 여기가 마법 수업 강의실이야. 그럼 끝나고 보자고.”
“예, 아몬 선배님.”
다시 아몬이 멀어지자 카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마법 교사는 제대로 된 분이겠지. 분명히 대전쟁의 공신이었던 마리온 럼덤 자작이었던가?’
마음을 추스른 카이가 힘차게 강의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본 광경.
“거어어억! 취한다! 오늘따라 술이 쭉쭉 들어가는구만!”
땅콩을 까먹으며 술을 퍼먹고 있는 마리온의 모습에 카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