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5)
아카데미가 망했다 45화
마리온 럼덤!
그가 활약했던 대전쟁이 마무리된 게 고작 몇 년 전이었다.
개선식 때 보았던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건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때 보았던 인상과는 전혀 달랐다.
‘주정뱅이잖아!’
눈은 풀렸고,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술을 퍼마시고 있는 꼴이란!
황급히 시간을 확인해 보니 수업 시작 5분 전이다.
“마, 마리온 선배님!”
“어엉? 그으윽, 자네는 누군가아?”
“오늘 새로 온 신입 교사인 카이야, 카이입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자칫 실명을 말할 뻔한 카이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수업이 5분 남았는데 술을 드시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엥? 어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마리온이 거하게 기지개를 켰다.
“끄으응, 그럼 슬슬 수업 준비를 해 볼까……!”
수업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 카이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이는 곧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런데 선배님. 술에 취하신 채 수업을 진행하시려고요?”
“꺼어억! 그럼?”
“…….”
어쩌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육 수준이 이토록 땅에 떨어졌단 말인가!
지독한 절망감에 카이의 주먹은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때 마리온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때릴 건가?”
“예? 때리다뇨?”
“아니네.”
아몬이 신입이었을 때 술 깨게 해 주겠다며 냅다 배를 후려쳤던 것이 떠오른 마리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신입은 그러지 않을 모양이었다.
“흠흠, 그럼 슬슬 수업을 시작해 볼까? 학생들도 슬슬 들어오는군.”
마리온 말대로 보리스를 위시한 학생들이 강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카이는 술에 취한 마리온이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미심쩍다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래, 보리스! 마나의 환원에 대해 훌륭하게 이해하고 있구나!”
“네! 선생님!”
“그럼 클로에, 마법사의 공격에 대비하려면 마법진 구성의 어느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었지?”
“마법진의 중심이요.”
“정확하다! 레이몬드, 중심을 살펴보는 이유는?”
“보통 마법진의 중심에 마법의 성질 및 용도가 작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해! 자, 그럼 이번에는 축이 부정확한 이형 마법에 대해 설명해 주마!”
청산유수! 현하지변!
술에 취한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능란한 강의에 카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법사 지망인 보리스 학생에게는 마법의 이론에 대해서 충실하게 설명해 주고, 기사 지망인 클로에와 레이몬드 학생에게는 공격 마법에 대한 대비를 설명…… 각 학생의 진로를 고려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군. 제국 정규 커리큘럼은 아니지만 말이지.’
제법 훌륭한 강의였다.
딱 하나 흠이라면, 취기 때문에 마리온의 발음이 꼬부라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카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으니 마리온이 ‘술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거지, 모르는 사람들은 ‘아, 원래 말하는 게 저렇게 술 취한 것 같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술에 취했는데도 저렇게 대단한 강의라면, 멀쩡할 땐 어떨까?’
그 의문 어린 시선을 느낀 마리온이 흠칫하며 카이를 바라봤다.
아몬이 신입일 땐 슬슬 이쯤에서 한 대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때릴 건가?”
“예? 때리다뇨?”
“아니네.”
아무튼 술에 취했음에도 마리온은 훌륭한 강의를 선보였고, 수업이 끝난 직후.
술병을 정리하는 마리온에게 다가간 카이가 말했다.
“저, 마리온 선배님?”
“응? 뭔가?”
신입을 향해 빙그레 웃어 주는 마리온을 향해 카이가 말을 이었다.
“오늘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오, 그래. 고맙…….”
“하지만 술에 취한 채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마음에 걸립니다. 제국의 학생에 대한 교육 및 지도 방침에 의하면, 교사의 품행은 단정해야 하며 심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태로 교육에 임하는 것은 교육부 법령 제 3조 12항에 명시된 대로…….”
“…….”
“아무튼, 다음 강의부터는 술을 조금 줄여 보시는 게 어떨까요?”
“…….”
어느새 마리온의 미소는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소위 말하는 썩은 미소였다.
“하, 하하하! 그래, 내 고려해 보도록 하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는 무슨! 이거 의욕이 넘치는 신입이 들어왔구먼! 이거야 원, 우리 아카데미에 이런 큰 불운, 아니지. 행운이 있나!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하하하!”
웃음을 터뜨린 마리온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벌써부터 목이 타는 모양이었다.
“꺼억! 휴우우, 그럼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 보게나!”
이제 막 수업 견학이나 하는 신입이 바쁠 일이 무엇 있겠는가.
얼른 꺼지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아닙니다, 한가합니다.”
“……쿨럭!”
“그보다 선배님, 아카데미에 관해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그, 그래? 뭐가 궁금한가?”
아카데미에 관해 간단한 질문을 몇 번 하던 카이가 본격적으로 아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말했듯, 애초에 여기 온 이유가 아몬에 관해 알기 위해서였으니까.
그 질문을 받은 마리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몬이 어떤 인물이냐고? 망나니 같은 놈이지.”
“……예?”
“아니지, 그냥 망나니가 아니라 개망나니. 그래. 그게 좋겠군.”
슬로스의 그것과 어긋나지 않는 평가!
대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당사자인 마리온 럼덤마저 그렇게 말하자 카이는 퍽 당혹스러웠다.
“대, 대체 어째서입니까? 어떤 부분에서요?”
“으음, 그게…….”
마리온은 당장 어제 있었던 아몬의 배신 행각에 대해 말해 주려 했다.
하지만 막상 말하려 하니 이제 막 아카데미에 들어온 신입에게 남의 흉을 보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음, 그게…….”
“예. 그게?”
“으음…….”
할 말을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뇌던 마리온이 냅다 술병을 집어 들더니 자신의 입에 꽂고 거꾸로 돌렸다.
콸콸콸-!
단숨에 술병을 절반이나 비워 버린 마리온이 침과 술을 흘리며 외쳤다.
“거어어억! 취핸다!”
“…….”
“그으윽, 그, 그니까 뭐라꼬? 아몬? 그놈 그거, 낄낄낄! 아주 못된 놈이지!”
조금 전까진 그나마 들어 줄 만했는데 이제는 영락없는 술주정!
눈까지 탁 풀려서 횡설수설하는 그를 본 카이가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렇군.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조금 전 아몬에 대한 슬로스의 평가를 듣고 짐작했었던 것처럼, 아몬 본인은 젊은 나이에 교무부장으로 내정될 정도로 걸출한 교사였다.
‘하지만 무능한 슬로스, 마리온 이 둘이 아몬 선생님을 모함하고 헐뜯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토록 학생을 위하는 아몬 선생님께서 그르친 일을 저지를 리 없잖아.’
그 증거로 아버지, 어머니가 수없이 이야기했던 아나르엘 공주도 아몬을 훌륭한 선생님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군.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는군.’
몸을 일으킨 카이가 술에 취해 주절거리는 마리온을 노려봤다.
“겔겔겔겔! 아몬, 그놈 참, 어제는 인간인지 박쥐인지 도무지 알 수가, 꺼억! 없더라니까! 그허허허!”
침을 튀기며 아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그를 본 카이는 마음속 평가 노트에 마리온의 이름과 평가 내용을 작성했다.
‘마리온 럼덤. 교사로서의 적성, 2점.’
말했듯, 100점 만점이다.
* * *
아몬은 마법 수업이 끝난 후 다시 찾아왔다.
“드디어 오전의 검술, 마법 수업이 끝났네? 이제 점심시간이니 식당으로 가자.”
“예! 아몬 선배님!”
“점심 식사 이후 오후 수업에는 일반 인문학 수업이 진행되는 거 알지? 오늘 오후 수업은 내가 맡은 역사학 수업만 진행될 거야. 네가 정식으로 임용되면 수학 수업도 추가될 거고.”
“네! 알겠습니다!”
카이의 힘 있는 대답에 식당으로 안내해 주던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 이거, 갑자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졌지?’
슬로스와 마리온에게 연달아 아몬에 대한 험담을 듣고 동정심 및 반발심으로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거지만, 당사자인 아몬은 달리 해석했다.
‘으음, 이놈…… 둘한테 연달아 내 욕을 듣고 나니 내가 만만해 보이나?’
카이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다시 한번 반 토막 나고 말았다.
그러나 아몬은 ‘어른답게’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고, 조금 있다 역사학 수업 때 보자.”
“예? 선배님은 식사 안 하십니까?”
아몬이 여태 들고 있던 책을 슬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밀린 업무가 있어서 방에서 간단하게 먹으려고.”
사실 ‘업무’가 아니라 ‘교원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였다.
‘아나르엘 앞에서 굳이 교원 자격증 확인 안 하냐며 따졌던 걸 보면 지는 있다. 이거지?’
굳이 후배에게 자신이 교원 자격증이 없다는 걸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말했듯 ‘어른답게’ 자신의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 아몬!
카이는 그 모습을 또 다르게 받아들였다.
‘슬로스, 마리온 그 인간들이 게으름 피우고 술이나 퍼마실 때 식사까지 거르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니…… 대체 어찌 이런 참된 교육자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카이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선배님!”
“그래, 그래. 점심 맛있게 먹어.”
“예! 선배님!”
아몬이 물러가자 카이가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저런 참된 교육자가 이런 부조리함에 시달리고 있었다니…….’
제국의 황태자로서 이러한 사태를 눈 뜨고도 못 보고 있었다니,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한숨을 쉰 그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마침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카이가 곧 나온 음식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안녕, 얘들아.”
“앗! 안녕하세요, 카이 선생님.”
서슴없이 자리에 앉은 카이가 입을 열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아몬 선생님은 어떤 분이시니?”
그 물음에 보리스와 레이몬드가 별생각 없이 대답하려는 찰나, 식사를 하던 클로에가 별안간 눈을 새초롬하게 뜨며 말했다.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응? 그게…… 참 좋은 선생님 같아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그래.”
본심이었지만, 클로에는 달리 생각했다.
‘대뜸 와서 아몬 선생님에 대해 왜 묻지?’
나쁜 놈인가? 약점을 잡으려는 심산인가?
‘당장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현장의 당사자 중 하나였던 클로에 역시 어제 아몬이 저질렀던 배신 행각을 똑똑히 봤다.
물론 아몬을 굳게 믿는 클로에는 ‘현명한 계략’이라 생각했지만 세간의 평가는 늘 가혹한 법!
때문에 클로에는 최대한 아몬에게 좋은 방향으로 말하기로 했다.
“참 좋은 선생님이에요. 늘 학생들을 위해 주시죠.”
그 말에 카이가 활짝 웃었다.
“역시 그렇구나!”
뭐지? 왜 좋아하지?
클로에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어요.”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늘 현명하시고요.”
“역시 아몬 선생님은 대단하셔!”
“…….”
이윽고 클로에는 판단을 내렸다.
‘이상한 사람이 선생님으로 들어왔구나.’
* * *
잠시 후, 카이는 눈물을 꾹꾹 참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이어진 아몬의 역사학 강의!
“……해서 제국의 시조이신 아모니스 1세 선제 폐하께서 제국의 기틀을 성공적으로 마련하셨단다! 그러나 아모니스 5세 선제 폐하께서 즉위하실 때 일어난 사건이 황권을 위협하게 되는데, 그 사건이 뭔지 아는 사람?”
그때 학생 셋이 동시에 손을 들며 말했다.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이요!”
“정확하다, 얘들아!”
당장 어제 교류전의 역사 토론 시합 때 언급됐던 황권 강화의 계기!
아무튼 만나니 후작가의 반역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가는 아몬을 본 카이가 애써 참던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리며 생각했다.
‘학생 셋 전부 의욕적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다니! 게다가 제국 표준의 커리큘럼대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이런 참된 교육자가 그런 부조리에 시달리고 있었다니…….’
아몬이라는 인간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산재해 있는 것 같았다.
달그락-!
주머니 안에서 똑똑히 잡히는 황태자의 증표!
그것을 사용한다면 아카데미의 부조리를 뿌리째 뽑는 일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간단하리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황태자 카이야스가 아닌 스트로 자작가의 카이다. 그런 마당에 멋대로 황태자의 신분을 내세워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법.’
카이가 눈을 활활 불태웠다.
‘그래. 오로지 내 힘만으로 이 부조리를 해결하리라.’
굳게 다짐하는 카이!
결국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 중 하나인 ‘신입’이 열의를 불태우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