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6)
아카데미가 망했다 46화
“끄으응……!”
늦은 밤, 초 하나만이 방을 간신히 밝히고 있는 어둑한 실내.
책상 앞에서 기지개를 켠 아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벌써 일주일짼가?’
교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지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학교장도 시험 준비하라고 시시콜콜한 일로 부르지 않고, 다른 교사들은 나를 쓰레기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귀찮은 일에 엮일 일도 없고……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군.’
모든 시간과 노력을 교원 자격증 준비와 역사학 수업에만 몰두하면 될 일이니 하루가 더없이 보람찼다.
“늘 이렇게만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빙그레 웃은 순간이었다.
똑똑-!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업무 시간을 훌쩍 넘겼기에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딱히 없을 텐데?
“누구십니까?”
“슬로스인데, 들어가도 돼?”
“……쿨럭!”
예상치도 못한 불청객의 등장에 아몬이 헛숨을 들이켰다.
무능한 동료계의 쌍두마차 중 하나, 슬로스가 갑자기 찾아왔다는 사실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몬이 숨을 헐떡이는 와중 문이 열렸다.
“들어간다? 왜 대답이 없어?”
“헉! 헉…….”
“아, 미안. 바빴구나.”
벌게진 아몬의 얼굴 때문에 큰 오해를 한 슬로스가 얼른 몸을 돌렸다.
사실 이대로 돌아가게 내버려 두는 편이 옳은 판단이지만, 그딴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던 아몬이 황급히 외쳤다.
“자, 잠깐!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야?”
“예! 아닙니다! 어휴.”
심호흡을 하며 식은땀을 닦은 아몬이 슬로스를 흘겨보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웬일입니까? 그간 사람을 무슨 벌레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보시더니만.”
“아, 그게…….”
잠시 쭈뼛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그래, 그보다 이거 먹어.”
“예?”
“이거, 아무르에서 요즘 유행하는 가게에서 사 온 디저트야.”
“……예?”
과자가 든 봉투를 본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독을 넣었구나.’
이 기회에 자신을 죽이려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암살이 들통난 슬로스가 당장 칼을 뽑고 덤빌지 모를 일!
아몬이 얼굴 한껏 썩은 미소를 드리운 채 손을 뻗었다.
“하. 하. 하. 잘 먹겠습니다.”
더러운 것을 만지는 듯 엄지와 검지만으로 봉투를 받아드는 아몬을 본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뭐 이상한 생각하는구나?”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과자에 독을 넣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어휴…….”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쉰 그녀가 과자를 하나 입에 던져 넣고 오물오물 삼킨 후 말했다.
“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봐, 됐지?”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독이 안 들었다고?
경악에 찬 얼굴로 과자 봉지를 흔들던 아몬이 헛기침을 하며 슬로스를 바라봤다.
“흠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겁니까? 선배님이 저한테 과자를 사다 주다니요?”
“음, 그게 말이지…….”
“돈 없어요. 못 빌려줍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라고.”
짜증스레 한숨을 쉰 그녀가 쭈뼛거리더니 말했다.
“뭐, 그동안 무시했던 거 사과할게.”
“……예? 뭐라고요?”
과자에 독이 들었을 거라고 확신했을 때보다 한층 더 경악에 휩싸인 아몬이 슬로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렇군. 이번에야말로 사칭범이 찾아온 거구나.’
웬 미친 노인이 라인벨트를 사칭했을 거라고 오해했을 땐 말 그대로 오해였지만, 이번에야말로 확실했다.
때문에 얼른 달려들어 사칭범의 머리통을 반쪽 내놓으려는 찰나였다.
“오해를 조금 했었나 봐. 그래, 네 딴에는 아카데미를 구하, 구…… 구, 구우우…….”
차마 ‘구하려 했던 거겠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지, 비둘기 울음 비슷한 소리를 내던 슬로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겠지. 안 그래?”
“뭐가 안 그래? 인데요.”
“아무튼! 그간 미안했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악수를 하자는 듯 내밀어진 슬로스의 손을 본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갑자기?
‘……그렇군. 동방대륙 무슨 가문의 독수(毒手)인가.’
손바닥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몬을 본 슬로스가 얼른 손을 빼며 말했다.
“아무튼, 난 사과했다?”
“예? 어…….”
“앞으로 잘 지내자! 그럼 가 볼게!”
슬로스는 자신이 할 말만 남기고 아몬의 대답은 듣지 않은 채 얼른 뒤돌아 방을 나갔다.
이윽고 홀로 남은 아몬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뭔데? 갑자기.”
뭐, 독수는 농담이다.
갑작스럽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슬로스의 행동이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엉겁결에 황당한 생각이 떠올랐을 뿐.
‘요새 나를 송충이 보는 눈빛으로 보더니만……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아몬이 도로 책상 앞에 앉았다.
슬로스의 황당한 방문 때문에 머리는 충분히 식었으니, 하던 교원 자격증 공부나 계속할 참이었다.
‘음, 그럼 아까 풀었던 문제 채점부터 해 볼까.’
펜을 집어 든 아몬이 답지를 바라보며 펜촉을 문제지에 가져다 댄 순간이었다.
“아몬, 자네 안에 있는가?”
갑자기 들려온 마리온의 목소리에 펜촉이 죽 미끄러지며 오답 처리를 해 버렸다.
‘이런 씨…… 오답 맞네?’
얼떨결에 채점에 도움을 준 마리온!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 아몬이 문을 열어 줬다.
“예,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들고 온 술병을 달랑달랑 흔들며 말했다.
“허허허, 마침 좋은 술이 생겨서 말이지.”
“그렇군요. 저 주시려고요?”
“응? 어, 그, 그렇다네.”
“그간 길바닥의 토사물처럼 취급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려고요?”
“으, 응? 그, 그렇…… 아니, 토사물이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네.”
“아무튼요. 그리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하시려고요?”
“……그, 그래.”
마리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몬이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한숨을 쉬었다.
“휴, 슬로스 선배님도 방금 찾아와서는 웬 과자를 가져다주면서 그러시던데, 둘 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겁니까?”
“……슬로스도 왔다 갔다고?”
“예.”
“흠…… 그런가.”
머리를 긁적거린 마리온이 멋쩍게 웃으며 술병을 내밀었다.
“아무튼 이거나 받게. 힘들게 구한 명주일세.”
“오…… 이건 그 구하기 힘들다는…….”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있는 도시 아무르,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술인 ‘디데이 아무르’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명주인 ‘아무르 파티’가 아닌가!
슬로스가 내민 과자 쪼가리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오가는 정’이었다.
“흠흠…… 잘 마시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그럼.”
아몬이 내밀어진 마리온의 손을 콱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배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 잘 부탁하네.”
“근데 선배님.”
“응? 뭔가? 후배님.”
아몬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
“설마 말 못할 이유입니까?”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이유를 왜 안 말해 주십니까?”
마리온이 침음을 흘리면서도 이내 특유의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이 사람아! 자네와 다시 잘 지내보고 싶어서 그러지!”
그 사람 좋은 말에 아몬은 깨달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하군.’
말할 수 없는 비밀까진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기엔 애매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썩은 미소를 지은 아몬이 씩 웃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허, 허허허…… 그래,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네.”
곧이어 마리온도 돌아간 후, 다시 홀로 남은 아몬은 슬로스가 준 과자를 안주 삼아 아무르 파티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다들 갑자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고작 일주일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아카데미의 깊은 업무 같은 것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니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더라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근데 그럴 만한 일이 생겼으면 아나르엘, 아니. 학교장께서 날 부르고도 남았을 텐데.’
즉 아카데미 자체에서 무슨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그 무지하고 몽매한 인간들이 교류전 당시 내 행동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개과천선했을 리도 없고…….’
그야말로 알쏭달쏭한 상황에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으음, 혹시 모르니 학교장님께 한번 물어볼…… 잠깐, 학교장님?’
눈을 부릅뜬 아몬이 슬로스가 준 과자와 마리온이 준 술을 번갈아 바라봤다.
‘설마 학교장님이 그 인간들에게 내가 교무부장이 될 거라는 걸 넌지시 알려 준 건가?’
말했듯, 교무부장 직위는 학교장과 부학교장을 제외하면 으뜸가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학교장의 성격이라면 지나가는 말로 슬며시 발설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은…….
“……후, 후후후.”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채 웃음을 터뜨리던 아몬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드디어 내 시대가 오려는 건가.”
슬로스와 마리온이 교무부장이 될 자신에게 미리미리 잘 보이려 뇌물을 갖다 바치는 것이렷다!
“그렇군. 이게 권력의 맛인가…….”
아몬이 자신에게 ‘진상된’ 과자와 술을 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 * *
이른 아침.
침낭을 뒤집어쓴 채 연무장 구석에 누워 있는 슬로스를 발견한 마리온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슬로스.”
“으, 으응…… 응? 아, 마리온 아저씨.”
“어제 아몬에게 들었는데, 자네도 아몬에게 다녀갔다면서?”
“응. 그랬지…….”
하품을 하며 상반신을 일으킨 슬로스가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 자네도 어제 아몬에게 과자? 뭘 가져다줬다던데 혹시 자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싶어서 말이야.”
“……그러는 마리온 아저씨는?”
“나도 술 한 병 가져다주면서 다시 잘 지내보자고 그랬지.”
“…….”
슬로스가 뒤집어쓰고 있던 안대를 슬며시 내렸다.
그러자 나타난 것은 판다곰의 그것처럼 눈 아래를 가득 뒤덮고 있는 다크서클이었다.
늘 피곤에 절어 있는 슬로스였지만 그녀의 피로는 최근 절정에 올라 있었다.
“그렇구나. 역시 아몬이랑 잘 지내보는 게 낫겠지?”
“그렇다네. 관계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야.”
마리온의 얼굴도 슬로스와 맞먹을 정도로 퀭했다.
어제 아몬이 그런 두 사람의 안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늦은 밤인 데다 초 하나만 켜 두고 있어 방 안이 다소 어둡다는 이유도 있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에게 관심이 딱히 없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휴…… 아몬이 사과를 받아 줘야 할 텐데.”
“그리 모질고 정 없는 녀석은 아니니 받아 주…… 려나?”
확신이 안 선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리던 마리온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크, 온다. 난 이만 가 보겠네.”
“오, 온다고? 벌써? 아직 수업 시작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
마리온이 휑하니 달아나고, 홀로 남은 슬로스가 몸을 숨기려는 듯 침낭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카이’가 쾌활하게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슬로스 선배님!”
슬로스가 벌벌 떨며 침낭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아, 아직 수업까지 한 시간 남았어.”
“하하하! 교육자로서 그 시간을 소홀히 써서 되겠습니까? 수업 준비 및 교보재 준비 및 연무장 점검 및 수업에 앞서 필요한 마음가짐 교육 및…….”
카이는 그야말로 ‘교육자의 이상적인 모습과 행동’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배님! 어서 침낭에서 나오십시오! 안 나오시면, 나오실 때까지 제국가를 제창하겠습니다!”
“으, 으으으…….”
지난번에 슬로스가 침낭에서 나오지 않았더니, 정말로 3시간 내내 옆에서 제국가를 제창했던 카이였다.
황급히 침낭에서 빠져나와 침낭을 정리하던 그녀가 스르르 고개를 돌렸다.
아몬이 수업을 준비하고 있을 교무실 방향이었다.
‘……아몬.’
이이제이(以夷制夷). 이독제독(以毒制毒).
적은 적으로 물리쳐라!
쓰레기는 쓰레기로 물리쳐라!
‘부탁할게, 아몬…….’
때문에 마리온과 슬로스는 아몬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둘은 아몬이 교무부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 따윈 알지도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