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48)
아카데미가 망했다 48화
이른 오전.
아몬은 수업에 참관하기 위해서 조금 이른 시간에 준비를 마쳤다.
‘클로에가 부탁한 거니 어쩔 수 없지.’
이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빛과 소금 같은 학생들 중에서도 클로에는 그야말로 고급 소금과 같은 존재!
‘만약 내가 더 이상 선생질을 못 해 먹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클로에만 잘 붙들어 두면 제자 덕을 톡톡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뭐,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앞일은 한 치 앞도 모른 게 현실 아니겠는가!
막말로 아몬도 눈부신 영광을 꿈꾸며 이 아카데미로 왔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시궁창 아니었던가.
아무튼 예전에 한창 견학할 때보다 이른 시간에 연무장에 도착한 아몬은 눈살을 찌푸렸다.
“흑, 으흐흑…….”
“목소리가 작습니다! 이래서 학생들을 가르치겠습니까!”
“제, 제국의 건아야~! 이 빛을 받드는 영광아~!”
“더 크게! 더 빠르게!”
아몬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의심하며 눈을 마구 비볐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슬로스가 제국가를 부르며 연무장을 힘차게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카이도 슬로스의 뒤를 쫓으며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슬로스 선배님! 더 크게! 더 빠르게!”
“으, 으흐흑!”
늘 안고 다니던 침낭은 어디 갔는지 구슬프게 울며 연무장을 달리는 슬로스를 향해 아몬이 황급히 다가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경악에 휩싸인 아몬이 헐레벌떡 다가오자 슬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몬! 구하러 와 줬구나!’
그래, 아몬과 알고 지낸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렇게 카이가 도 넘는 하극상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아몬 성격에 그냥 넘어가진 않으리라!
쓰레기를 쓰레기로 제압한다!
그 계획이 제대로 적중했다는 생각에 슬로스의 얼굴에 화색이 깃든 순간.
“카이야!”
“앗! 아몬 선배님!”
한달음에 카이에게 달려온 아몬이 얼른 귓속말로 말했다.
“어떻게 저 게으름뱅이를 성실하게 만들었지? 비법을 알려다오!”
귓속말을 엿들은 슬로스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제압한다?
아니, 쓰레기가 쓰레기를 알아보고 동맹 연합을 시도하는 상황!
아몬의 물음에 카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아몬 선배님. 간단했습니다.”
“간단했다고? 내가 저 인간을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침낭을 뺏고 찢고 숨기고 온 난리를 피웠는데 도통 변하질 않던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교육부에 신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세상에 그런 간단한 방법이! 아몬은 카이의 수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단하구나. 카이.”
“과찬이십니다, 선배님.”
“근데…….”
자신이 카이를 불러 세운 덕분에 뜀박질을 멈춘 슬로스.
그녀는 공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 슬픈 눈빛이었지만, 아몬은 그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근데 저 인간이 교육부에 신고한다는 말을 들어먹을 인간인가?’
명색이 피드 후작가의 영애다.
까짓것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언제든 아카데미의 정문을 박차고 가문으로 돌아가면 될 일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 이유는 간단했다.
슬로스는 아몬으로 카이를 무찌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한 치 앞도 모를 미래의 끝은 시궁창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교육부에 신고라…… 괜찮군. 침낭을 찢고 숨기고 그러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겠어.’
깨달음을 얻은 아몬이 카이에게 슬며시 귀띔했다.
“잘하고 있다. 저 게으른 인간, 사람 한번 만들어 보자.”
“예! 맡겨 주십시오!”
“필요한 건 없니? 달릴 때 모래주머니를 차면 좋을 것 같은데, 준비할까?”
“그거 괜찮네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일까지 만들어 두마.”
그 귓속말을 들은 슬로스는 결심했다.
‘좋아. 때려치우자. 당장 내일, 아니지. 오늘이라도 학교장한테 가서 퇴직하겠다고 말하자.’
사실 이만큼 여유로운 직장은 다시 찾기 힘들 테지만, 아몬과 카이가 작당한 이곳에 남아 있느니 가문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마음 편하리라.
결국 퇴직을 마음먹은 슬로스의 얼굴에 평온이 찾아왔다.
퇴직자에게 찾아온 마음의 여유!
슬로스가 지금까지와 달리 연무장을 열심히 달리자 아몬은 감탄했다.
‘효과가 있어! 카이 녀석, 효과가 있구나! 슬로스, 저 인간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체력을 단련하다니!’
깊어져 가는 오해!
아무튼 필사적으로 연무장을 달리는 슬로스를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 된 건지 학생들이 오고 있었다.
“너희들 왔구나.”
“아몬 선생님도 오셨네요.”
“그래, 너희랑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와야지.”
“네…… 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뭘 말이냐?”
체력이 다 됐는지 연무장을 반쯤 구르다시피 하며 달리고 있는 슬로스를 가리킨 레이몬드가 말했다.
“저거요.”
“응? 저게 왜?”
“잘하고 있는데?”
“……네?”
그 순간 보리스의 얼굴에 지독한 배신감이 떠올랐다!
“아, 아몬 선생님까지…….”
“어? 뭐, 뭐가?”
아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던 와중이었다.
“하하하, 너희들 왔구나!”
“윽!”
어느새 다가온 카이가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상쾌하게 훑어 올리며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수업 시작해 볼까?”
“…….”
“슬로스 선배님! 당장 수업 시작하시죠!”
“윽, 헥, 흐윽, 껙…….”
대답도 못하고 헐떡거리는 슬로스의 모습에 카이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슬로스 선배님, 얼른 수업 시작하자니까요!”
“으윽…… 억…….”
슬로스가 시체에 가까운 몰골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 아몬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견학을 견학하는 것뿐인 입장이니 수업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이 진행되는 것을 본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응?’
클로에는 슬로스의 주도하에 피드 가문의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왜 저 녀석도 피드 가문의 검술을 배우고 있지?’
레이몬드는 따로 익히고 있는 ‘창천검’이라는 검술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클로에와 함께 슬로스의 지도를 받고 있는 걸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힉! 헤엑! 헉!”
“하하, 보리스! 체력 단련이 더 필요하겠구나!”
“네, 네엡! 이얍!”
문제는 보리스도 클로에, 레이몬드와 같은 지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얼른 슬로스를 향해 다가갔다.
“슬로스 선배님.”
“……왜.”
슬로스가 감정이 죽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아몬이 말을 이었다.
“왜라뇨? 수업이 갑자기 왜 이래요?”
“……뭐가.”
아몬이 축 늘어진 채 헐떡거리고 있는 보리스를 가리켰다.
“보리스는 마법사로 진로를 정했잖아요? 그런데 저건 아무리 봐도 단순 교양 수준을 넘었잖습니까?”
“……그래서.”
“아니, 그래서라뇨? 이러면 제대로 교육이 될 리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보리스는 죽었다 깨어나도 검술로는 클로에와 레이몬드의 사이에 낄 수준이 되지 못한다.
아몬, 마리온, 슬로스는 상의 끝에 마법 자습, 독자적인 검술 단련 등등 각 학생의 적성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다들 똑같은 수업을 받고 있는 건지…….
“아몬 선배님.”
“……엉?”
어느새 다가온 카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선 안 됩니다.”
“……뭐?”
“모든 학생에겐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법입니다. 아무리 뜻하는 길이 서로 다르더라도 아카데미라는 집단에 속해 있는 이상, 같은 교육을 받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
“분명 검술 수업 시간인데 누군 검술, 누군 다른 검술, 누군 마법을 익힌다는 건 교육적인 측면에서 결코 올바르지 않죠. 그렇지 않습니까?”
빙그레 웃은 카이가 아몬에게 속삭였다.
“슬로스, 마리온 선배님들이 아몬 선배님께서 먼저 학생들의 진로에 맞춘 교육을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믿지 않습니다. 제국 정규 커리큘럼에 그 누구보다 충실하고, 교육자로서 뛰어난 아몬 선생님이 그런 그릇된 길을 제안할 리 없지 않습니까?”
카이는 실제로 그리 생각했다.
자신의 눈에 비춰지는 아몬은 어느 누구보다 교육자에 걸맞은 인물이었고, 슬로스와 마리온은 교육자에 걸맞지 않은 이들이었으므로.
때문에 슬로스와 마리온이 아무리 그리 주장해도 카이가 믿을 리 없었다.
그저 당장 가해진 압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할 뿐.
이윽고 빙그레 웃은 카이가 말했다.
“아몬 선배님도 그리 생각하시죠?”
그 말에 아몬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예?”
카이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몬은 보리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보리스, 땀 닦고 잠시 쉬었다가 그늘로 가서 마법 수련해.”
“헉, 헉…… 네, 넷! 선생님.”
“레이몬드, 너도 자리 옮겨서 따로 수련해. 피드 가문 건 머릿속에서 최대한 빨리 지워. 머릿속에서 섞이면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
“넵! 아몬 선생님.”
클로에를 힐끔 바라본 아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슬로스 선배님.”
“으, 응……?”
“들어가서 씻고 침낭 가져오시죠. 그렇게 지쳐서는 클로에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실 겁니다.”
실제로 슬로스는 잔뜩 지친 참이라 클로에가 펼치는 검로의 절반가량을 놓치고 있었다.
저래서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 그래도 돼?”
“언제는 저한테 물어보고 행동하셨습니까? 얼른 다녀오세요.”
“으, 응.”
휘청거리며 숙소로 향하는 슬로스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역시 아몬……! 우리가 그간 알고 지낸 게 얼만데, 동료를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아니다.
동료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아무튼, 슬로스가 두고 간 목검을 들어 올린 아몬이 고개를 돌리자 카이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선배님?”
“응?”
삐딱하게 선 아몬이 말했다.
“그러는 넌 뭐 하는 건데?”
“……올바른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바른 교육?”
“예. 정규 커리큘럼에 맞춰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그 말에 헛웃음을 터뜨린 아몬이 말했다.
“사람이 다른데 무작정 똑같은 걸 가르치면 그게 공평한 거냐? 독수리한테 점프하는 법 가르칠 거야? 개구리한테 나는 법 가르칠 거냐고.”
“……예?”
“교육은 공평이 아니라 공정해야지.”
“…….”
굳은 얼굴로 아몬을 바라보던 카이가 애써 웃었다.
“하, 하하하. 선배님, 하지만 제국 교육부의 지침에 의하면 공평한 교육만이 제국의 미래와…….”
“야.”
“……예?”
“우리도 한번 공평하게 놀아 볼까?”
“예? 무슨…….”
아몬이 목검을 빙글빙글 휘두르며 말했다.
“내가 목검으로 너 한 대 때릴 테니까 너도 목검으로 나 한 대 때려라. 공평하게 말이야.”
“……예?”
카이의 얼굴에 짙은 당황이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