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
아카데미가 망했다 5화
당장 이튿날 오전.
검술 수업이 진행되는 연무장.
자신에게 짬 때리겠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다는 듯, 수업 시간이 됐는데도 연무장으로 오지 않은 슬로스를 침낭째로 끌고 온 것까진 좋았다.
침낭째로 단상에 누운 슬로스가 말했다.
“얘들아.”
“네, 슬로스 선생님.”
“자습하렴.”
“네.”
보리스와 클로에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주섬주섬 목검을 챙겨 검을 휘두르고, 슬로스는 단상 위로 웅크려 누워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몬은 그런 슬로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슬로스 선생님?”
“슬로스 잔다.”
“자고 있는 슬로스 선생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아야, 아! 찌르지 마!”
침낭 지퍼를 쭉 내려서 슬로스와 눈을 마주쳤다.
“수업 좀 제대로 하시죠?”
학생들을 잘 가르쳐 둬야 경진대회에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슬로스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귀찮은데.”
“그럼 교사 때려치우면 안 될까요?”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선배한테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 주시면 예의를 차려 드리죠.”
“…….”
침낭 속에서 잠시 꿈틀거리던 슬로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봉급도 없는데 일해서 뭐 해?”
“봉급이 왜 없어요?”
슬로스가 퉁명스레 말했다.
“이 아카데미 파산한 거 몰라?”
그러는 당신은 아카데미에 든든한 돈줄이 생겼다는 걸 모르는군.
“그럼 돈 받으면 열심히 일할 겁니까?”
사실 슬로스는 돈 받을 때도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다.
아카데미가 망하기 전부터 모든 검술 교사들이 슬로스를 애물단지로 여기고 있었다.
그저 피드 가문의 이름이 무서워 건드리지 못했을 뿐!
즉 아몬에게 지껄인 것은 일 하기 싫어서 내뱉은 핑계에 불과했다.
‘이 녀석이 무슨 수로 돈을 챙겨 주겠어?’
그리 생각한 슬로스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보수만 확실하다면.”
그 말에 아몬이 조용히 연무장에서 나가고, 슬로스는 비로소 평안을 되찾았다.
‘이제 좀 잘 수 있겠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아몬이 웬 주머니를 들고 나타났다.
“……뭐야, 그거.”
“슬로스 선생님의 주급입니다.”
“……돈이 왜 있어?”
“아카데미의 금고 사정이 좀 나아졌거든요.”
“거, 거짓말.”
슬로스가 얼른 주머니를 낚아챘다.
‘그럴 리 없어. 그래, 억지로 쥐어짜서 평소보다 적게 준거겠지?’
은화 한 닢이라도 모자라면 일을 안 하리라!
그리 다짐하며 열어젖힌 주머니 안에는 평소보다 푸짐한 은화가 환히 웃고 있었다.
반대로, 슬로스의 얼굴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슬로스 선생님께서 봉급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학교장님께서 특별히 보너스를 지급해 주셨습니다. 이걸로 부디 의욕을 되찾으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
“그럼 슬슬 침낭에서 나오시죠.”
침낭을 붙잡자 슬로스가 말했다.
“……잠깐만.”
“뭘 또 잠깐만입니까?”
“옷 갈아입고 올게. 지금 안에 속옷 차림이야.”
“……휴, 알겠습니다.”
슬로스가 침낭째로 일어나 연무장을 나간 후.
5분, 10분, 30분.
속았다는 걸 깨달은 아몬은 슬로스를 잡으러 뛰쳐나갔다.
* * *
놀랍게도 슬로스의 가르치는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보리스, 디딤 발에 힘을 제대로 줘.”
“네, 선생님.”
“클로에는 손목에서 힘을 좀 빼. 너무 굳어 있어.”
피드 가문 출신답게 검술 실력 하나는 진짜였는지, 슬로스의 지적은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슬로스의 수업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몬은 생각했다.
‘그런데 저 침낭은 대체 왜 끌어안고 있는 걸까? 안에 중요한 거 들었나?’
저것만 없으면 그림이 제법 그럴싸했을 텐데.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돌아가자 슬로스가 입을 열었다.
“아몬 후배님.”
“예, 슬로스 선배님.”
“그러고 보니, 아직 담당 과목이 없다고 했지?”
“예. 학교장님께 여쭤보기는 했는데,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막말로 학생이 2명뿐이니 정상적인 커리큘럼을 진행할 순 없지 않은가.
“희망 담당은 뭔데?”
“어릴 때부터 역사서를 꽤 즐겨 읽어서, 개인적으론 역사 담당을 맡고 싶긴 하네요. 물론 강의는 별개니 잘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는 하지만요.”
슬로스가 피식 웃었다.
‘일반 학문? 어울리긴 하네.’
아몬은 ‘듬직한 체형’은 아니었다.
작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평범한 체격.
‘게다가 걸음걸이와 몸가짐을 보면 따로 검술을 익히지도 않은 것 같고.’
그런데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겁이 없었다.
검술도 검술이지만, 피드 후작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있기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동료 교사들도 자신을 쉽게 대하지 못했다.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까 도망쳤을 때 쫓아온 아몬이 명치를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화나네. 내가 만만한가?’
수업도 끝났겠다, 한가해지니 새삼 분노가 솟아올랐다.
“……아몬 후배.”
“예, 슬로스 선배님.”
“검술 배워 본 적 있어?”
“검술이요?”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고개를 저었다.
“검을 써 본 적은 있지만 따로 배워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 이 기회에 한번 배워 보는 게 어때?”
“짬 때리려고요?”
거기까진 미처 생각 못했다.
‘그냥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두들겨 패 주려고 한 건데.’
하지만 그것도 제법 괜찮은 방법 같았기에 슬로스가 눈을 반짝였다.
“아니.”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시죠.”
입술을 날름날름 핥는 슬로스를 보며 말했다.
“으음, 하지만 선배님께서 가르쳐 주신다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입술에 침을 바르며 핑계를 준비하던 슬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예. 제겐 좋은 일이니까요.”
애초에 아몬은 출세를 위해 아카데미로 왔다.
‘그런데 피드 가문 출신에게 검술을 배워 두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슬로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 때려 줄 수도 있고, 가르쳐 두면 나중에 일을 떠넘길 수도 있겠지.’
그야말로 일석이조!
목검을 가져온 슬로스가 한 자루를 내밀었다.
“그럼 대련부터 해 볼까?”
“예? 바로 대련부터 시작합니까?”
“수준을 봐야, 뭘 어떻게 가르칠지 정하지 않겠어?”
“음, 그런가요…….”
목검을 넘겨받은 아몬이 몇 번 가볍게 휘둘렀다.
“음, 가볍네요. 뭔가 헛도는 것 같은 느낌이…….”
“진검보단 가볍지?”
“예. 많이요.”
마치 도끼질을 하는 듯한 아몬의 모습에 슬로스는 내심 서늘하게 웃었다.
‘검을 써 본 적 있다더니, 기본도 안 되어 있잖아?’
초보 중의 초보!
‘후후, 선배에 대한 공경을 뼛속까지 새겨 주지.’
슬로스가 목검을 까딱거렸다.
“자, 그럼 덤벼.”
“으음…… 알겠습니다.”
영 목검이 손에 맞지 않는다는 듯, 불만스러운 얼굴로 목검을 빙글빙글 돌리던 아몬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침낭 안고 대련하려고요? 어디 놔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피식 웃은 슬로스가 여태 안고 있던 침낭을 한층 더 세게 끌어안았다.
초보 하나 두들겨 패 주는 데 침낭을 안고 있는 게 무슨 대수일까.
“가벼운 대련인데 뭐. 신경 쓰지 마.”
“음, 알겠습니다. 시작할까요?”
“그래, 얼른 덤비기나…….”
순간 슬로스가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아몬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뭐?’
그 광경에 황급히 아몬의 공격을 가로막으려던 슬로스였지만, 다급한 나머지 크게 휘두른 팔이 침낭 끈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목검.
‘이런……!’
닥쳐올 충격에 대비한 채 슬로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예견된 충격은 없었다.
‘……뭐, 뭐지?’
조심스레 눈을 뜨니, 아몬이 휘두른 목검은 눈앞에 멈춰 있었다.
곧이어 목검을 거둔 아몬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러게 침낭은 내려놓으시라니까.”
“어, 어어…….”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대던 슬로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너 제법 빠르네……?”
“감사합니다. 영지에서 제가 제일 빠르긴 해요.”
“……그래?”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린 슬로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침낭을 휙 집어 던지며 말했다.
“미안. 다시하자.”
“예, 선배님.”
슬로스가 양손으로 목검을 움켜쥐었다.
이번엔 진지하게 할 작정이었다.
‘두들겨 패 주겠어.’
역시 검을 들고 있는 자세를 보면 아몬은 초보가 확실했다.
게다가 이렇다 할 마나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즉 마나를 다루는 ‘기사’는 아니라는 뜻.
‘그냥 좀 날렵한 것뿐이지?’
즉 자신이 진심을 낸다면 얼마든지 두들겨 패서 눕힐 수 있다.
시커먼 속셈을 간직한 채, 슬로스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자.”
“예. 갑니다.”
이번에는 달려드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끼질을 하듯 우직하게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목검.
슬로스는 검을 기울여 그 공격을 가볍게 받아 냈…….
쾅-!
어깨가 빠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슬로스는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뭐, 뭣!?’
강하다. 위험하다.
이를 악문 슬로스가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검에서 푸른색 마나가 불꽃처럼 솟아오르고, 그것을 본 아몬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오, 오러 블레이드!”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
경악하는 아몬의 외침에 빠득 이를 악문 슬로스가 소리를 질렀다.
“소드 오러야!”
“어어……?”
“아! 진짜 뭐냐고! 너!”
자세도 엉망이고, 오러 블레이드와 소드 오러도 구분 못하면서 저렇게 빠르고 강하다고?
슬로스는 여태껏 자신이 해 온 수행이 진흙발로 짓밟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됐어! 그만!”
“가, 갑자기 왜요?”
“소드 오러 쓸 줄 모르지?”
“예. 본 것도 처음인데요 뭐.”
“……하, 그래. 그래. 네 말마따나 가벼운 대련인데 소드 오러까지 쓰면서 할 것까진 없으니까 그만하자.”
풀썩 주저앉은 슬로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몬 드레이크…….’
드레이크 가문?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었다.
‘나는 몰라도, 제법 대단한 가문인가?’
슬로스가 입을 열었다.
“드레이크라고 했지?”
“예. 드레이크 남작께서 제 부친 되십니다.”
역시 처음 들어 본다.
“어디 출신인데?”
“저요? 우리 영지인 ‘드레이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영지 이름도 처음 들어 본다.
“역시 모르시는 눈치네요. 아르마 산맥은 아시죠?”
“당연히 알…… 설마?”
“예. 우리 영지는 아르마 산맥 안에 있어요.”
“……뭐?”
슬로스가 무슨 소리냐는 듯 아몬을 바라봤다.
“거, 거기 영지가 있어? 아르마 산맥은 대륙의 끝이잖아?”
“사람 서운하게 영지가 있었냐뇨. 그리고 대륙 끝 아닙니다. 산맥 너머로 평원 하나 있다고요.”
“거긴 침묵의 정원이잖아! 그래서 대륙 끝이라고 하는 거라고!”
어이가 없다는 듯 손발을 파르르 떤 슬로스가 말했다.
“그, 그럼 아르마 산맥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예. 고생 좀 했죠. 거의 2주는 걸렸으니까.”
슬로스는 머리가 하얘졌다.
‘말을 안 쉬고 달려도 2주 걸리는 거리라고 들었는데?’
게다가 아르마 산맥은 침묵의 정원에서 넘어오는 고위험 몬스터로 득실거리는 위험한 장소가 아니었나?
“거, 거기 몬스터 많지 않아?”
“보통 많은 게 아니죠. 매일같이 감자밭 울타리를 부숴서 골치 아파요. 오거에, 트롤에, 용인족에…….”
오거? 용인족?
슬로스는 눈앞이 아찔했다.
“그, 그럼 그걸 어떡하는데?”
“죽이죠.”
“죽여?”
“그럼 살려 둬요?”
“소, 소드 오러도 처음 본다면서? 영지에 기사도 없는데 무슨 수로 죽여?”
아몬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말했다.
“기사가 왜 필요해요? 도끼로 냅다 찍으면 죽는 걸.”
“……도끼?”
“예. 이만한 도끼.”
아몬이 손짓으로 허공에 도끼를 그리는데, 무슨 사람만 한 크기였다.
‘그래서 목검이 가볍고 헛돈다고 한 거야?’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흘리는 와중.
아몬이 입을 열었다.
“그럼 선배님, 슬슬 검술 좀 가르쳐…….”
“싫어. 안 가르쳐 줘!”
아몬이 울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