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0)
아카데미가 망했다 50화
슬로스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몬을 휘둘러 카이를 친다는 계획이 잘 맞아떨어졌는지, 카이는 대오 각성이라도 한 듯 아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래, 거기까진 괜찮았다.
“……아몬, 네가 교무부장이라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슬로스의 모습에 도리어 아몬이 당황했다.
“……모르셨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그저께 줬던 과자는 뭡니까……?”
교무부장이라는 권력자인 자신에게 진상한 공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슬로스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준 거지……?”
“엑.”
“너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
공물이 아니었군.
멋쩍음에 헛기침을 한 아몬이 말했다.
“아님 말고요. 그나저나 교무부장이라는 말은…….”
말을 이으려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근데 말해도 되나?’
말본새를 보니 학교장도 넌지시 언질을 주지 않았나 보다.
즉 자신이 교무부장이 된다는 사실을 슬로스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익히 알고 있는 슬로스였다면 귀찮음에 절어 ‘그렇구나. 교무부장에 내정됐구나.’하고 관심을 끄겠지만, 권력이라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게으름뱅이도 한 마리 흉포한 야수로 만들 수 있는 게 권력이지. 인품 좋은 나라면 권력도 겸허하게 수용할 수 있지만…….’
아무튼 만약 아몬이 슬로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아카데미에서 해치운 밥그릇 개수가 저 자식 수십 배는 될 텐데, 감히 날 내치고 교무부장을 달아?’
괘씸함! 능히 선상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 법한 분노!
‘분명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 감정을 떠올리며 슬로스를 바라보니, 평소처럼 나른함에 젖어 있는 슬로스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저 시선…… 나를 증오하고 불신하고 있는 게 분명하군.’
그때 슬로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교무부장에 내정됐구나.’
애초에 귀찮은 걸 싫어하는 슬로스에게 교무부장이라는 직함은 번거로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일 아나르엘이 슬로스에게 교무부장 직책을 수여한다고 하면 슬로스는 듣자마자 가문으로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아무튼 아몬은 슬로스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크흐흠! 뭐,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닙니다. 학교장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정도죠.”
“그렇구나.”
그때 여태 스스로의 잘못을 참회하던 카이가 끼어들었다.
“역시 아몬 선배님! 겸손하시기까지……!”
“……뭐?”
“이미 교무부장 자리에 오르시는 게 확실한데도 스스로를 낮추시다니요!”
그 말에 아몬이 흠칫하며 슬로스를 돌아봤다.
‘카이 이 새끼, 지금 타이밍에 그런 말을 하면……!’
아니나 다를까 슬로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저거 봐! 대놓고 불만스러운 얼굴이잖아! 내가 교무부장이 되는 걸 고까워하고 있을 텐데!’
그때 슬로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피곤해. 자고 싶어.’
아몬이라는 도둑은 저려 오는 발을 애써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카이야.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니? 그보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 지금은 정규 수업 시간이니 수업에 집중해야지.”
“앗……! 알겠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화제를 돌리자 슬로스도, 카이도 당장 주어진 수업 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 * *
마리온은 죽을상이었다.
‘후, 젠장…… 이러다 진짜 죽겠군.’
계속 술에 취한 채로 수업을 진행하면 교육부에 신고하겠다는 카이의 협박 때문에 최근에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
고작 일주 남짓한 시간 동안의 금주였지만, 마리온 본인에게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퇴직할까?’
슬로스도 카이 때문에 못 살겠다, 이러느니 차라리 가문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며 하소연한 적 있었다.
때문에 마리온도 한동안 꺼내 볼 기회가 없었던, 가슴속에 품은 사직서를 슬그머니 꺼내 보려던 와중이었다.
‘……아니지, 여기저기 술값 밀린 거 생각하면 때려 칠 수도 없겠구먼.’
슬로스야 쟁쟁한 가문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지만, 마리온은 영지도 없는 작위뿐인 자작!
‘갑자기 눈물이 나는군. 그나저나 아몬이 정말 카이를 잘 통제해 주려나?’
슬로스는 잘될 거라며 희망을 품었지만, 솔직히 마리온은 부정적이었다.
‘쓰레기로 쓰레기를 제압해? 아니지. 쓰레기에 쓰레기를 붙여 봐야 더 큰 쓰레기만 만들어질 뿐인데…….’
금단증상 때문에 이는 두통에 마리온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휴, 젠장. 그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얼른 수업에 들어가야겠어.’
곧이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뜻밖의 광경이 자신을 맞아줬다.
“오셨습니까, 마리온 선배님!”
“……아, 아몬?”
아몬이 만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카이와 함께 서 있었다.
‘이런 젠장!’
자신이 예상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쓰레기와 쓰레기의 연합!
한층 더 거대한 쓰레기가 탄생한 것이리라!
‘좋아, 때려치우자.’
산 입에 거미줄 칠 일은 없을 테니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자.
그리 생각하며 얼른 몸을 돌리려는 마리온에게 웬 술병이 내밀어졌다.
“자, 시원하게 쭉 들이켜시죠.”
“어…… 엉?”
엉겁결에 술병을 받아 든 마리온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카이의 눈치를 살폈다.
카이가 난리를 피울 거라 생각했건만, 다소 탐탁지 않은 기색이긴 해도 딱히 술병을 뺏어 깨 버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왜, 어째서지……?’
머릿속에 치미는 의문.
하지만 술병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주향에 군침을 꼴깍 삼킨 마리온이 말했다.
“마, 마셔도 되나?”
아몬이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죠.”
“갑자기 왜……?”
“하하! 선배님은 술이 한잔 들어가야 강의를 시원시원하게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른 드시죠.”
“…….”
멍하니 술병을 들여다보던 마리온은 깨달았다.
‘독을 넣었구나.’
이 기회에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모처럼 맡은 술 냄새에 정신이 나간 마리온은 술을 입에 부어넣었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고운 귀신이나 되자.’
각오하며 삼킨 술은 너무나도 달았다.
“후우우…… 이제 좀 살겠군.”
“다행이네요.”
“쩝쩝, 근데…… 한 병만 더 마시면 안 되나?”
그 말에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대로 과음은 안 됩니다.”
“아니, 생각해 보게. 어차피 죽을 건데 더 마시고 죽어도 나쁠 건 없잖나?”
“예? 죽다뇨?”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리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죽나?”
“왜 죽죠?”
“독 넣은 거 아니었어?”
“……독을 왜 넣어요?”
“왜 안 넣었지?”
“……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아, 무슨 말씀이신가 했네. 그런 게 아니라 카이랑 이야기를 좀 해 봤는데 선배님은 술을 한잔하시고 강의하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결론을 내렸다고?”
마리온이 카이를 바라봤다.
고작 일주일밖에 보지 않았지만, 카이는 그런 결론을 내릴 만한 놈이 아닌데?
그 시선을 받은 카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분명 교육부 법령 제 3조 12항에 의하면, 절대 용납되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잘 생각해 보니 아몬 선배님의 말씀이 옳더군요. 같은 시간의 강의라면, 양질의 강의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게 옳죠. 마리온 선배님은 술에 조금 취하셔야 양질의 강의를 보여 주시니까요.”
별안간 융통성 있게 바뀐 카이의 태도에 마리온이 입을 쩍 벌렸다.
“자, 자네들…….”
“하지만 말씀드렸듯 과음은 안 됩니다.”
재차 당부하자 마리온은 눈물까지 줄줄 흘려 가며 감격했다.
“암, 물론이지. 고마우이. 정말 고마우이.”
술 먹고 강의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기쁠까 싶은 마음에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썩은 미소를 지었다.
“뭘요. 선배님의 강의 자체는 아주 훌륭하니까요.”
“쿨쩍! 그래, 그…… 응?”
문득 눈살을 찌푸린 마리온이 말했다.
“근데 나는 술 안 마셔도 강의 잘하지 않나?”
“……예?”
그 말에 아몬의 입가에 걸린 썩은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술기운이 없으면 강의할 때 말도 제대로 못한다는 자각이 없었구나.’
가끔은 가려진 진실이 아름다울 때도 있는 법!
아몬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지만, 술에 취하셨을 땐 특유의 흥이 뚝뚝 묻어나서 강의가 머리에 쏙쏙 박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뜻입니다.”
“껄껄껄! 그렇군, 내가 한 흥 하기는 하지!”
이윽고 학생들이 도착하고 마리온은 강의를 시작했다.
카이가 금주령을 내린 이후로 처음 보는 명 강의에 보리스는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
* * *
수업이 끝난 후.
교재를 정리하는 마리온을 바라보던 아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마리온 선배님.”
“응? 그래, 아몬! 뭔가?”
카이의 금주령을 타파해 준 아몬을 향한 호감이 극도로 부풀어 오른 마리온!
그가 달갑게 돌아보자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응? 껄껄껄, 뭔가?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보게!”
아몬이 결국 이야기를 털어 놨다.
“학교장님 말씀으론, 제가 교무부장 업무를 할지도 모른다더군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이론!
슬로스처럼 우연히 알게 하느니 미리 선수를 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렵사리 내뱉은 고백에 마리온이 입을 쩍 벌렸다.
“교무부장? 자네가?”
“……예.”
“허어어어…….”
알쏭달쏭한 한숨을 푹 내뱉은 마리온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거야 원…….”
“그렇게 됐습니다. 근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
카이가 어김없이 끼어들었다.
“또 겸손을…….”
“카이야, 좀 닥치자.”
“옙.”
아무튼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는 마리온을 본 아몬은 생각했다.
‘역시 마리온 선배님도 교무부장 직책을 노리고 있었던 건가?’
하긴, 교무부장 업무에 제격인 인물은 다름 아닌 마리온이었다.
술만 안 마신다면 말이다.
경력도 있고, 능력도 출중하고 평판도 좋은 편이다.
술만 안 마신다면 말이다.
‘아무튼 나한테 교무부장 직을 뺏겨서 마음이 불편한가 본데…….’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휴우, 아몬.”
“……예. 선배님.”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예?”
갑자기 위로해 줘야 할 입장에서 위로받아야 할 입장이 되어 버린 아몬!
“왜, 왜 저를 위로하시려고요?”
“응? 몰라서 묻는…… 표정을 보니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이로군.”
머리를 긁적거린 마리온이 말했다.
“잘 생각해 보게.”
“예,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무부장은 서열상 세 번째 직책이지?”
“그렇죠?”
“교무부장 직책 특성상, 학교장님과 부학교장님이 추진할 큰 틀의 업무 초안 대부분을 교무부장이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예, 물론…….”
왜 자꾸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걸까?
때문에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아몬이 흠칫하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자, 잠깐…… 설마…….”
순간 아몬의 무릎이 휘청 흔들렸다.
학교장과 부학교장이 추진하려는 업무?
우선 학교장은?
‘달팽이 경주, 유니콘 경주 같은 되도 않은 사업 추진……?’
그리고 부학교장이 추진하려는 업무?
‘식당 증축, 식사 개선, 식비 증액, 식재료 추진 등등…….’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권력에 눈이 멀어 지금껏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