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1)
아카데미가 망했다 51화
늦은 오후.
아몬은 자신이 맡은 역사학 수업을 끝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대론 안 돼.’
마리온 말대로, 자신이 교무부장의 업무를 맡는 순간부터 밑도 끝도 없는 업무가 주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아카데미에 다른 교사도 없고, 학생 수도 얼마 없으니 일개 평교사에 불과한 자신의 말을 들어 주니 문제는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부활한 이상 규모가 커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때부턴 남들 시선도 있으니 위계질서가 중요해지겠지. 지금처럼 헛소리를 간단히 물리칠 수는 없을 거야.’
결국 ‘까라면 까’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아몬을 더욱 고심에 잠기게 만들었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교무부장이라는 감투 자체는 마음에 든다.
근데 막상 까놓고 보니 감투에 더러운 게 잔뜩 묻은 상황!
‘……감투에는 죄가 없다. 그렇다면 더러운 걸 닦아내야 하지 않겠어?’
결심한 아몬이 몸을 일으켜 곧바로 학교장실로 향했다.
* * *
“아몬 선생…… 아니지, 아몬 교무부장님. 무슨 일로 오셨나요?”
방실방실 웃으며 자신을 반겨 주는 학교장을 바라보던 아몬이 입을 열었다.
“학교장님.”
“네, 말씀하세요.”
“제가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학교장님과 부학교장님의 업무 초안을 대체적으로 제가 작성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야 그렇겠죠? 물론 너무 큰 안건은 저희가 따로 작성하겠지만 비교적 가벼운 안건이나 자잘한 것들은 아몬 교무부장님이 구상하시겠죠. 교무부장이라는 자리는 그만큼 수고로운 자리…….”
문득 말을 멈춘 학교장이 입을 틀어막더니 경악했다.
“서, 설마 교무부장 자리를 거절하시려고…….”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휴…… 다행이다. 말씀드렸듯, 아몬 선생님이 유일한 적임이거든요.”
“……그렇긴 하죠.”
게으른 슬로스와 늘 술에 쩔어 있는 마리온에게 교무부장을 맡기느니 공석으로 두는 게 올바른 판단이다.
학교장은 교무부장에 걸맞은 ‘아몬’이라는 적임자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흠흠, 아무튼 거절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그럼 무슨 일로 오셨죠?”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용건을 꺼냈다.
“교원 자격증이 나오면 즉시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문제는, 당장 평교사 업무만 수행하던 제가 곧바로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가 염려되는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몬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업무의 능률을 위해서 미리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해 보고 싶습니다. 그 편이 제가 정식으로 교무부장 자리에 올랐을 때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아! 아몬 선생님! 아니, 아몬 교무부장님!”
감격한 듯 양손을 맞잡은 학교장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대체 얼마나 아카데미에 헌신하려는 건가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벌써부터 준비하시다니…… 그 자세, 그야말로 교사들의 귀감! 너무 대단하세요!”
학교장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극치!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찬사에 아몬은 겸손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 아닙니다. 아카데미를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쩜! 어쩜!”
“아무튼 제 생각이 어떠십니까?”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이죠! 그런데 아몬 교무부장님이 먼저 이렇게 제안하시다니…….”
감동으로 귀를 푸드덕거리는 학교장을 향해 말했다.
“흠흠, 그럼 거두절미하고 우선 어떤 업무가 진행 예정인지 한번 봐도 괜찮을까요? 업무에 의견 보충이나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아, 네! 물론이죠! 다만 따로 건드릴 건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학교장이 내미는 서류철을 본 아몬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 보나마나 달팽이 경주 같은 게 있을 테지?’
그럼 즉각 ‘아몬류 손날 정수리 치기’를 학교장에게 맛보여 줄 생각이었다.
‘지금의 나는 무적이다. 평교사지만 업무 권한은 임시나마 교무부장.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존재다.’
교무부장이 학교장을 때리는 것과 평교사가 학교장을 때리는 건 천지 차이다!
평교사가 학교장을 때리면 ‘저놈 저거 미쳤구나, 제대로 돌았구나.’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겠지만, 교무부장이 학교장에게 손을 대면 그건 ‘반역’의 징조!
‘후후, 교무부장이 때리는 건 가볍게 넘길 수 없어도 평교사가 때리는 건 애교로 넘어갈 수 있지.’
아니다!
평교사도 웃고 넘어갈 수 없다! 넘어가선 안 된다!
그러나 아몬은 자신이 쓸 감투를 정비 보수하기 위해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정식으로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버릇을 제대로 들여 놓으면 이후로도 골치 아플 일 없겠지? 난 역시 천재야!’
스스로의 얼굴에 금을 펴 바른 아몬이 서류철을 힐끔 바라봤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손날을 바짝 세워 언제든 휘두를 준비를 마친 채 서류철을 펼쳤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문자의 나열!
[공관 유지 보수 의뢰] [마법서 추가 요청 및 교보재 주문] [도서관 운영 재개 절차] [신입생 입학 및 신규 교사 채용 전단 배포 건]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왜 멀쩡하지?’
이외에도 현재 아카데미에 필요한 모든 안건이 서류철에 담겨 있었다.
그 사실에 얼른 학교장을 바라본 아몬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다!
하늘에 뜬 태양을 응시한 것처럼 학교장의 얼굴이 환히 빛나 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만 것이다!
“하, 학교장님……!”
“네? 갑자기 왜 울상이에요?”
“감격했습니다! 일을 제대로 하고 계셨군요!”
“……네?”
머릿속에 달팽이 경주와 사고 칠 생각만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게 모르게 아카데미를 위한 업무들을 보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엘프가 달라 보이는군.’
감동에 젖은 아몬이 서류철을 덮어 도로 학교장에게 돌려줬다.
“학교장님 말씀대로 따로 건드릴 건 없군요.”
“그렇죠?”
생긋 웃은 학교장이 문득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보다, 제 업무는 차치하고…….”
“……예?”
“더 큰 문제가 있지 않나요?”
그 말에 아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부학교장의 업무 말이군요.”
“……그래요. 당장은 아카데미 인원 규모가 작으니 모든 업무를 제가 처리하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죠. 결국 나중에는 큰 업무는 제가, 가벼운 안건은 부학교장과 교무부장인 당신이 전적으로 맡겠죠.”
“…….”
“부학교장의 추진하려는 업무는 예상이 되시죠?”
“……됩니다.”
보나 마나 입에 넣을 것에 대한 업무로 가득하겠지.
학교장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제가 모든 업무를 맡고 있으니까 매번 부학교장의 업무를 반려하고 있지만, 당신이 교무부장이 되면 그것도 힘들어요. 교무부장이 생긴 걸로 정규적인 편제의 틀이 잡히니까요.”
침음을 흘리던 아몬이 말했다.
“……정리하자면, 그때부턴 학교장님은 업무 분할로 큰 일만 맡을 테니 부학교장님 선에서 끝낼 수 있는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거군요.”
“바로 그거죠.”
결국 학교장은 ‘아카데미가 가야 할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그 아래 부학교장과 교무부장은 ‘아카데미의 자질구레한 일’을 전적으로 해결하는 형태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마리온도 이렇게 말했었다.
‘으음…… 자네가 맡을 교무부장 직은 굳이, 굳이 비유하자면 군의 부사관이라 할 수 있지.’
‘……예?’
‘학교장님은 장군, 장교겠군.’
‘누가 전직 종군 마법사 아니랄까 봐. 비유를 군대로 하시는군요.’
당시엔 그리 와닿지 않는 비유였지만, 학교장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그럭저럭 이해가 됐다.
“교무부장이 수고로운 자리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그, 그렇죠? 설마…… 그만두실 건가요?”
“그럴 리가요.”
빙그레 웃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 봐야죠. 아니, 잘해야겠군요.”
“……아!”
“그리고 잘하려면…….”
아몬이 스르르 고개를 돌려 부학교장실이 있는 방향을 보며 말했다.
“부학교장을 족쳐야겠군요.”
* * *
늦은 저녁 시간.
본인 말마따나 ‘야행성’인 다크엘프, 부학교장 브레슬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끝낸 느지막한 시간에 식당으로 내려왔다.
“후아아암…….”
하품을 하며 주방장에게 향한 브레슬이 말했다.
“늘 먹던 걸로.”
“예! 부학교장님!”
주방장은 극도의 친 부학교장파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주방장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게 브레슬이었다.
게다가 식당 관련 설비는 무조건 최상급, 식재도 최상급으로 유지하려 노력하니 주방장으로선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노릇!
잠시 후.
부학교장의 자리 앞에는 몇 명의 장정이 포식할 정도로 산더미 같은 음식이 쌓여 있었다.
브레슬은 산처럼 쌓인 음식을 보며 중얼거렸다.
“휴, 역시 다이어트는 힘들군…….”
브레슬 기준에는 이것도 소식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요즘은 먹는 대로 불고 있으니…….”
투덜거리던 브레슬이 거의 주걱만 한 스푼으로 큼지막한 양푼에 든 필라프를 크게 뜬 순간이었다.
“부학교장님.”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브레슬의 귀가 힘차게 파닥거렸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갑자기 누가 말을 걸어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아무튼 브레슬은 뒤도 안 돌아보며 덤덤히 말했다.
“……아몬 선생이군요.”
“하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별일은 없었습니다. 그보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그러게요.”
하긴, 최근에 볼일이 없긴 했다.
오후에 있는 역사학 수업이 끝나면 아몬은 방에 틀어박혀 교원 자격증 공부에 몰두했고, 브레슬은 야행성이라 해가 떨어지면 돌아다니니 마주칠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우물우물, 그나저나 무슨 일입니까?”
“예, 뭐…… 별건 아니고요.”
씩 웃은 아몬이 말했다.
“제가 곧 교무부장 업무를 수행하게 될 예정입니다.”
“……꿀꺽, 그렇습니까?”
뜻밖에 담백한 반응에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켕기는 게 없나?’
아몬이 슬그머니 말했다.
“예, 그래서 업무 숙달을 위해서 미리 부학교장님의 업무 추진을 조금 봐 두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흐음…….”
필라프를 한입 가득 우물거리던 브레슬이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안 될 거 없죠. 어차피 앞으로 함께 의견을 나눠야 할 테니.”
“음.”
“아무튼 알겠습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아니면 다른 용무를 보시다 부학교장실로 오시던가요.”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뇨, 기다리겠습니다.”
“뭐, 그러시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브레슬이 문득 말을 이었다.
“아, 그런데 지금 당장은 진행되고 있는 업무가 거의 없어서 업무 숙달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군요. 그 부분은 감안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 *
그로부터 세 시간 후, 부학교장실.
브레슬은 아몬의 정수리 손날치기에 맞고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아몬은 거의 백과사전 두께와 맞먹는 업무 서류뭉치를 붙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킹 와이번 토벌대 후원] [의뢰 목적 – 킹 와이번의 기름(볶음 류 음식에 사용하면 굉장히 좋다)]학교장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진행 중인 업무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