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2)
아카데미가 망했다 52화
정식으로 아카데미가 운영을 재개한 현 시점, 황실에서 하사해 주는 운영금과 기타 수입 등등의 재정을 관리하는 건 학교장과 부학교장, 두 사람이었다.
아카데미 운영금을 절반씩 나눠 학교장은 아카데미의 ‘미래’에, 부학교장은 아카데미의 ‘현재’에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부학교장의 운영자금이 들어 있어야 할 금고는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정확하게 얼마인지 몰라도, 황실에서 직접 하사해 주는 운영금이니 상당한 액수겠지. 그런데 부학교장이 그 운영금의 절반을 킹 와이번 기름 따위를 의뢰하는데 몽땅 써 버렸다고……?’
질끈 감긴 아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부학교장님…….”
“…….”
“아니, 부학교장이 뭐야.”
아몬이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는 브레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망할 다크엘프야…….”
“읏, 으윽…… 내, 내 머리…….”
손날치기에 쪼개진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낑낑대던 브레슬이 외쳤다.
“이게 갑자기 뭐 하는 짓입니까?”
“뭐 하는 짓? 내가 묻고 싶은 말을 왜 당신이 하지?”
아몬이 계약서를 브레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킹 와이번 토벌대 후원? 여기다 당신이 관리하는 아카데미 운영비를 싹 다 박아 놓고, 뭐어? 뭐 하는 짓?”
“큭…… 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으르렁거린 브레슬이 고개를 발딱 치켜들며 노성을 터뜨렸다.
“킹 와이번 기름으로 필라프를 만들면 얼마나 맛있……!”
브레슬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연달아 꽂힌 정수리 손날치기에 도로 고개를 땅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레슬의 말을 정중히 끊은 아몬이 참담한 얼굴로 의뢰 계약서를 면밀히 훑어봤다.
‘젠장, 분명 빠져나올 허점이 있을…… 응? 계약 상대가 용병단?’
아몬의 눈이 번쩍였다.
킹 와이번 토벌 계약의 대상은 용병단이었다.
‘은장검 용병단…… 분명 들어 본 적 있다. 대전쟁 때도 활약했고, 여러 몬스터와 던전을 돌파한 걸로 명성이 자자하지. 하지만…….’
아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용병? 글이나 읽을 줄 알까? 계약서도 얼렁뚱땅 썼겠지!’
선 넘는 비하 발언!
다만 아몬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중이떠중이, 먹고 살 길이 없어 급조한 용병단은 아몬 말대로 이상한 계약 따위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골 깡촌, 아르마 산맥에 거주하던 아몬이 근처 도시에서 본 용병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이곳은 상업 도시 아무르!
계약서 귀퉁이에 찍혀 있는 직인에 아몬이 아래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대블레 백작? 이게 누군데 이 계약을 보증합니까?”
브레슬이 힘겹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대, 대블레 백작은 은장검 용병단을 후원하는 이 도시의 귀족입니다.”
“…….”
규모가 큰 용병단들은 귀족이 후원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시골 깡촌 아르마 산맥 근처의 허접한 용병들은 꿈도 못 꿀 호사!
‘망했다.’
귀족이 계약에 개입한 이상 허점이 있다 한들 깨트리기 힘들 것이다.
‘……근데 계약서엔 허점이랄 것도 없어. 그냥 명확한 계약이잖아.’
아카데미 전체 운영금의 절반이 필라프에 쓸 기름이 되어 날아간 순간이었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남자, 아몬의 의지는 이깟 역경에 굴하지 않는다.
“……일어나십시오.”
“으, 응?”
쭈뼛거리며 몸을 일으킨 브레슬의 귀는 축 처져 있었다.
“때, 때리려고요?”
“안 때립니다.”
브레슬의 귀가 조금 힘을 되찾았다.
“하지만 곧 때릴지도 모르죠.”
그 말에 브레슬의 귀가 다시 축 처졌다.
그런 브레슬을 가만히 노려보던 아몬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갑시다.”
“가, 가다니요? 갑자기 어딜 말입니까?”
아몬이 스산한 얼굴로 말했다.
“은장검 용병단 사무소로요.”
* * *
당장 내일부터 주말이다.
‘그러니 시간은 충분해. 그래, 시간은 충분하지만…….’
그러나 지금 계획에 문제가 있다면, 은장검 용병단이 상대해야 할 킹 와이번은 ‘엘더 드레이크’와 맞먹는 괴물이라는 것이다.
엘더 드레이크에게 감자밭을 파헤쳐진 원한을 지닌 아몬이었기에, 엘더 드레이크에 버금가는 괴물인 킹 와이번에 대한 경계는 충분했다.
‘그런 괴물을 고작 일개 용병단이 상대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렇기에 급히 은장검 용병단을 만나러 왔다.
계약 자체를 무르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하니, 그들을 일단 설득이나 해 볼 생각이었다.
이대로 출발하면 자살과 다름없다.
그 사실을 그들에게 각인시켜 계약 자체를 파기하거나 상호합의하에 해지할 작정이었다.
아무튼 은장검 용병단의 단장실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브레슬님.”
사무실로 들어온 훤칠한 인상의 중년인이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출발 준비를 서두르느라 조금 늦었군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 말에 브레슬이 조용히 시선을 피하자, 그 이유가 옆에 앉아 있는 아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중년인이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아, 우리 아카데미의 교사인 아몬…….”
아몬이 얼른 브레슬의 말을 끊으며 나섰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무부장인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아, 교무부장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은장검 용병단 단장인 메이트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마친 후, 아몬은 본론을 꺼냈다.
“용건을 말씀드리자면, 우리 아카데미의 부학교장님이 맡긴 킹 와이번 토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음, 브레슬 님의 의뢰라면…… 분명 킹 와이번의 기름 의뢰였지요?”
일 이야기가 나오자 메이트의 입가에 어려 있던 사람 좋은 미소가 지워졌다.
그리고 용병에 걸맞은, 다소 위험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좋습니다. 한번 들어 보죠.”
얼른 용건을 말하라는 메이트의 말에 아몬은 곧장 내뱉었다.
“킹 와이번은 위험합니다. 용병단이 궤멸할 수도 있으니 그만두시는 걸 추천 드리고 싶군요.”
“……예?”
잠시 눈을 깜빡거리던 메이트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것 참,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가 말했다.
“우리 은장검 용병단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본데…….”
“압니다. 대전쟁 때 활약했고, 아스라이 대미궁도 토벌한 전력이 있죠. 게다가 서펜트, 크라켄 등 대형 몬스터를 여럿 토벌한 실력 있는 용병단. 이 정도면 은장검 용병단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이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은, 그런 저희 실력으로도 킹 와이번을 감당할 수 없으리란 겁니까?”
“예. 킹 와이번을 사냥해 본 적은 있으십니까?”
“……킹 와이번에 대해 아시긴 하는 겁니까?”
“예.”
칼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 아몬이 말을 이었다.
“제가 아르마 산맥 출신이거든요.”
“예? 아르마 산맥……?”
메이트도 아몬의 말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 아르마 산맥이라면 대륙 끝에 위치한 죽음의 땅이 아닙니까?”
“……거기도 사람 살아요. 죽음의 땅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온갖 위험한 몬스터가 우글우글 대는 마굴이라 들었습니다만…….”
자신의 고향이 연이어 모욕당하자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전 무슨 마굴에서 기어 나온 마수입니까? 몬스터가 좀 많다 뿐이지 그럭저럭 살만한 곳입니다.”
“으음…….”
“하여간 킹 와이번은 정말, 정말정말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엘더 드레이크에 버금가는 몬스터라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예? 엘더 드레이크요?”
“예. 엘더 드레이크.”
순간 메이트의 눈가에 웃음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하하…… 엘더 드레이크라.”
“…….”
“엘더 드레이크는 문헌에서나 가끔 나오고, 동화에서나 나오는 전설 속 괴물 아닙니까?”
“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레이크 영지를 습격해서 감자밭을 뒤엎었는데?
하지만 실제로 아르마 산맥 밖의 인식은 그랬다.
마리온조차 엘더 드레이크가 나타난다는 말을 믿지 않았으니까.
하여튼, 메이트 입장에서는 아몬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계약을 무르려 한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쯧,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를 알겠군요.”
“예? 뭐가요?”
대뜸 서류 한 장을 꺼낸 메이트가 한숨을 쉬며 깃펜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뭐, 계약하셨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신 모양인데…… 그런 경우는 익숙하니 괜히 돌려 말하실 필요 없습니다. 계약 해지를 해 드리죠.”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이트가 뭘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결국 아몬의 목적 자체는 달성할 수 있었다.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이미 계약금의 절반 이상을 물자 구입에 사용했으니까 그만큼의 액수는 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예?”
“게다가 위약금을 제하면…….”
메이트가 서류를 내밀었다.
“돌려 드릴 수 있는 계약금은 이 정도겠군요.”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원래 금액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액수!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브레슬이 꼴아 박은 원금을 본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브레슬의 목을 손날로 후려쳤다.
“이 미친 다크엘프야!”
“캬흡!”
“저, 저만한 돈을 그깟 기름에 때려 넣어!?”
“케헥! 콜록, 쿨럭!”
넥 슬라이스를 맞고 켁켁 거리는 브레슬!
그 광경에 메이트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교무부장이 부학교장을 두들겨 패는 진귀한 광경!
하지만 금세 헛기침을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그가 말을 이었다.
“흠흠, 하여간 계약 조항에 명시된 내용을 따를 뿐입니다. 계약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실 작정이라면, 따로 소송을 거십시오.”
“크윽…….”
이를 박박 갈던 아몬이 말했다.
“근데 정말로 계약은 둘째 치고 진심으로 충고하는 겁니다. 킹 와이번을 사냥하러 갔다간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이거 참, 우리 용병단을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무시가 아니라…….”
“우리 용병단이 잡아 죽인 와이번의 소재만 해도 아무르의 일 년 치 예산은 될 겁니다. 게다가 엘더 드레이크? 동화에나 나오는 그런 건 몰라도, 드레이크도 수십 마리는 족히 사냥했단 말입니다.”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는 메이트의 말에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르마 산맥에 가끔 출몰하는 킹 와이번이 일반 드레이크를 발톱으로 잡고 훨훨 날아다니는 광경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킹 와이번이 감자에는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다’라며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모를 일!
‘진짜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이대로 이놈들을 보냈다간 전멸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이놈들이 전멸하건 말건 아몬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계약금이 그대로 공중 분해될 거란 말이지.’
계약을 해지하면 돌려받을 수 있는 5분의 1마저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
그렇다고 계약을 해지하고 5분의 1을 챙겨 돌아가는 건 너무나도 배알 꼴리는 일이었다.
‘고작 그 정도 돈으론 안 돼. 원금을 최대한 복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예전처럼 허리띠 졸라매고 아카데미를 운영해야 할 테니까.’
또한 다시 한번 닥쳐 온 재정상 위기에 학교장이 지난번에 언급했던 유니콘 경주 따위에 손을 댈지도 모를 일이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입을 열었다.
“……출발은 당장 오늘 밤이죠?”
“예? 아, 그렇습니다. 오늘 밤 출발해 킹 와이번 둥지 인근에서 야영해 휴식을 취한 후, 날이 밝으면 공세를 취할 작정입니다.”
“그렇군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스르르 눈을 떴다.
어차피 내일은 주말.
수업도 없다.
“우리도 동행하겠습니다.”
“……예?”
“의뢰주이니만큼 현장 동행 정도는 가능할 텐데요?”
“그야 가능합니다만…… 위험할 텐데요?”
아몬이 잔뜩 풀 죽은 채 귀를 늘어뜨리고 있는 브레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라는 명문 교육기관의 부학교장과 교무부장입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할 정도는 됩니다.”
“……뭐, 명문이긴 했죠.”
“말에 가시가 있군요.”
“죄송합니다. 하여간 두 분의 동행이라…….”
메이트 입장에선 딱히 어려울 건 없었다.
의뢰주가 동행하는 건 제법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고, 동행하게 되면 계약 해지는 없던 일이 되니 말이다.
“뭐, 그럼 그렇게 하시죠. 그럼 계약 해지는 없던 이야기가 되겠군요?”
“그렇겠죠.”
작성하던 해지 계약서를 죽죽 찢은 메이트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잘됐군요. 아무튼 마음 푹 놓으십시오. 우리 은장검 용병단의 저력은 제국에서 손꼽힌다고 자부합니다! 의뢰하셨던 킹 와이번의 기름은 이미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말에 브레슬의 귀가 기쁨으로 파닥거렸지만, 아몬이 노려보자 금세 귀를 축 늘어뜨렸다.
‘그 기름 때문에 이 난리가 난 건데 무슨…….’
하여간 동행이 확실해지자 아몬은 실낱같은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킹 와이번의 둥지까지 가는 길에 상당한 몬스터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킹 와이번 둥지 근처에 일반 와이번은 비둘기처럼 날아다닐 게 분명했다.
‘그놈들을 잡아서 원금을 최대한 메운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몬을 본 메이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직도 걱정되시나 보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메이트가 엄지를 척 세우며 말했다.
“우리 은장검 용병단은 제국에서 손꼽힌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니 마음 푹 놓고 따라오십시오!”
* * *
이튿날 이른 아침.
킹 와이번 둥지 공략에 나선 은장검 용병단원들은 절규하고 있었다.
“크아악! 사람 살려!”
“킹 와이번, 너무 강하다아앗!”
그 광경에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오